바른 견해 경 (M9) Sammādiṭṭhi-sutta
/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289-323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원림에 머무셨다.
거기서 사리뿟따 존자는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응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2. “도반들이여, ‘바른 견해’, ‘바른 견해’라고 말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까?” (*1)
“도반이여, 우리는 이런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해서라면 멀리서라도 사리뿟따 존자의 곁으로 올 것입니다.
그러니 사리뿟따 존자가 직접 이 말씀의 뜻을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로부터 듣고 잘 호지할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그렇다면 듣고 마음에 잘 잡도리하십시오. 설할 것입니다.”
“그러겠습니다. 도반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유익함[善]과 해로움[不善]
3.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해로움[不善]을 꿰뚫어 알고,
해로움의 뿌리를 꿰뚫어 알고, 유익함[善]을 꿰뚫어 알고, 유익함의 뿌리를 꿰뚫어 알 때,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4.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해로움[不善]이며, 무엇이 해로움의 뿌리이며,
무엇이 유익함[善]이며, 무엇이 유익함의 뿌리입니까? 도반들이여,
①생명을 죽이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②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③삿된 음행을 하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④거짓말을 하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⑤중상모략을 하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⑥욕설을 하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⑦잡담을 하는 것이 해로움입니다.
⑧욕심이 해로움입니다.
⑨악의가 해로움입니다.
⓾삿된 견해가 해로움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해로움이라 합니다.”
5.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해로움의 뿌리입니까?
①탐욕이 해로움의 뿌리입니다.
②성냄이 해로움의 뿌리입니다.
③어리석음이 해로움의 뿌리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해로움의 뿌리라 합니다.”
6.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유익함입니까?
①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는 것이 유익함입니다.
②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가는 것이 유익함입니다.
③삿된 음행을 삼가는 것이 유익함입니다.
④거짓말을 삼가는 것이 유익함입니다.
⑤중상모략을 삼가는 것이 유익함입니다.
⑥욕설을 삼가는 것이 유익함입니다.
⑦잡담을 삼가는 것이 유익함입니다.
⑧욕심 없음이 유익함입니다.
⑨악의 없음이 유익함입니다.
⓾바른 견해가 유익함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유익함이라 합니다.
7.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유익함의 뿌리입니까?
①탐욕 없음이 유익함의 뿌리입니다.
②성내지 않음이 유익함의 뿌리입니다.
③어리석음 없음이 유익함의 뿌리입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유익함의 뿌리라 합니다.”
8.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해로움을 꿰뚫어 알고, 해로움의 뿌리를 꿰뚫어 알고,
유익함을 꿰뚫어 알고, 유익함의 뿌리를 꿰뚫어 알 때, (*2)
그는 욕망의 잠재성향을 완전히 버리고,(*3) 적대감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4)
‘내가 있다.’는 삿된 견해와 비슷한 자만의 잠재성향을(*5) 뿌리 뽑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켜서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냅니다.
이렇게 하면 성스러운 제자가 바른 견해를 가지고, 견해가 올곧으며,
법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지니고, 정법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1) “‘바른 견해[正見, sammādiṭṭhi]'란
아름답고(sobhana) 훌륭한(pasattha) 견해(diṭṭhi)를 구족한 것이다.
바른 견해는 세간적인 것(lokiyā)과 출세간적인 것(lokuttarā)의 두 종류가 있다.
① 업이 자기의 주인임을 아는 지혜와 진리를 수순하는 지혜는 세간적인 것이다.
간략하게 말하면 번뇌와 함께하는 모든 통찰지를 세간적인 것이라 한다.
이것은 다시 두 종류이다.
그 중에서 업을 인정하고 업이 자기의 주인이라는 견해는 외도들과 교단 내에 있는 자들이 가지는 세간적인 바른 견해이다.
성스러운 진리를 통찰하는 수순하는 견해, 즉 위빳사나의 통찰지는 교단 내에 있는 자들만이 가지는 세간적인 바른 견해이다.
② 네 가지 성스러운 도·과와 함께한 통찰지를 출세간적인 바른 견해라 한다.
여기서는 그러나 확실하게 해탈로 인도하는 출세간적인 유익한 바른 견해를 가진 자라 한다.
출세간적인 유익한 바른 견해만이 상견과 단견의 양극단을 피하고 올곧게 된다.
오직 그 견해를 구족할 때 아홉 가지 출세간법에 대해 동요하지 않는 확신과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MA.ⅰ.196~197)
(*2) "여기서 열 가지 해로운 업의 길(십불선업도) 가운데서 욕심(abhijjha)을 제외한
아홉 가지와 열 가지 유익한 업의 길(십선업도)은 괴로움의 진리[苦諦]이다.
욕심과 탐욕(lobha)은 해로움의 뿌리인데 방편 없이 설하면 이 두 법은 일어남의 진리이다.
그러나 방편에 따르면 모든 업의 길은 괴로움의 진리[苦諦]이고,
모든 해로움의 뿌리와 유익함의 뿌리는 일어남의 진리[集諦]이고,
이 둘 다 일어나지 않음이 소멸의 진리[滅諦]이고,
괴로움을 완전히 알고, 일어남을 버리고, 소멸을 꿰뚫어 아는 성스러운 도가 도의 진리[道諦]이다."(MA.ⅰ.205~206)
(*3) "욕망의 잠재성향을 완전히 버리고(sabbaso rāgāusayaṃ pahāya)'라는 것은
감각적 욕망, 색계존재에 대한 욕망 등을 모든 측면에서 남김없이 다 버린다는 것이다.”(MA.ⅰ.206)
(*4) “‘적대감의 잠재성향을 제거하고(paṭighāusayaṃ pahāya)'라는,
여기까지는 불환도를 말씀하신 것이다.”(MA.ⅰ.206)
(*5) ‘삿된 견해와 비슷한 자만의 잠재성향’은
diṭṭhi-māna-anusayaṃ(삿된 견해인 자만의 잠재성향)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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