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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변증법 스터디 자료입니다.
4-2장
논리학의 구조적 원리(이원론 혹은 일원론): 셸링
셸링도 처음부터 지식의 체계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이런 체계를 창출하고자 할 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이율배반의 문제에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 셸링이 부딪힌 어려움은 세계는 하나이고, 사고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자 할 때 그 자체로 하나라는 사실(사고하는 모든 존재에게 명백하고 직관적인 사실)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데 있었다.(일리130)
그러나 유일한 세계는 논리학의 규칙과 지성의 활동 법칙에 의해 굴절돼 이성의 눈에는 둘로 나뉜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각각의 절반은 저마다 전체 세계를 절대적‧무조건적으로, 논리적‧체계적으로 드러내는 유일한 진리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일리130)
칸트처럼, 셸링도 규정들을 논리적으로 일관되게 구성하는 수준에서 해결책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에 가치 있고 가장 잘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그 본래적 지향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바로 그런 체계를 실질적으로 구체화함으로써 해결책을 발견하려고 했다.(일리131)
형식논리학을 통해 모든 것을 논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그 반대되는 체계와 대립하지 않는 무모순적 증명체계를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체계라면 직접 믿어야 하고 무조건 따라야만 할 것이다. 셸링 자신이 선택한 체계는 다음과 같은 원리로 나타난다. 즉, “비판주의에서 나의 사명은 불변적 자기성selbstheit, 무조건적 자유, 무제한적 활동 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 체계는 결코 완성될 수 없으며, 언제나 미래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한다. 그와 같은 체계는 바로 활동이라는 개념이다. 활동이 완성되고, 구현되고, 자신의 산물로 ‘고정’될 때, 활동은 이미 활동이 아니다..(일리131)
이런 셸링의 논의에서 피히테가 자랑하는 고고한 원리를 분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 한 번의 구체화된 체계로는 결코 완성되지 않고 완성될 수 없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 활동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차이, 분화, 특수성 등을 생겨나게 해 이미 확립된 것과 무한히 일치(동일)시키는 절대적 보편성이 활동이다.(일리131)
셸링에 따르면 이런 비판주의의 형식은 독단론을 자신의 계기로 포괄한다. 왜냐하면 비판주의의 형식은 인간의 정신문화의 전체 체계가 명확하게 확립된 토대 위에서만 수립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절대적으로 확립된 토대는 모든 가능한 술어들의 유일한 주어가 자아(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창조적 원리, 그리고 인간 자신은 물론 인간이 보고 관찰(직관)하고 사고하는 전체 대상 세계를 자유로이 상상하는 무한한 창조적 원리)라는 사실, 그리고 이미 성취된 어떤 결과도 자아가 지닌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권위의 힘, 즉 독단의 힘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일리131)
셸링이 말하는 체계는, 인간을 이미 주어진 영원한 객관적 힘을 적용하는 수동적 요소나 소용돌이치는 만물의 요소(지수화풍) 가운데 있는 미세한 먼지, 그리고 신의 손 안에 있는 장난감이나 지구 상에 있는 신의 대리인으로 간주하는 체계 등과는 대립적이다. 참된 비판주의의 지지자라면 그와 같은 독단적 체계가 비록 자기모순적이지 않고 형식적으로 그 타당성이 입증된다 할지라도 최종적으로 승리할 때까지 그런 체계와 싸울 것이 틀림없다.(일리131-132)
피히테처럼, 셸링도 새롭고 비판적인 ‘계몽된’ 독단론을 대표한다. “독단론−이것은 우리의 공통적 탐구의 결과다−은 이론적으로는 논박될 수 없다. 왜냐하면 독단론은 자신의 체계를 실천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이론적 영역을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단론과 절대적으로 대립되는 우리가 구체화시킨 체계는 실천적으로는 논박될 수 있다.”.(일리132)
실천적 활동은 상호 모순적인 모든 체계가 함께 나타나는 공통적 지반으로서 ‘제3’의 것이다. 이길 수 있고 이겨야만 하는 현실적 투쟁이 전개되는 곳은 순수이성의 추상개념이 아니라 바로 실천적 활동에서다. 이 실천적 활동의 영역에서, 확고하게 자신의 원리를 따르는 하나의 당파가 그 당파의 사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객관성(보편성)과 일치하는 이해관계도 변호할 수 있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일리132)
“비판주의는 독단론에 의지해서 절대자(순수 이론적으로 이해된)의 영역에 도달할 수 없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독단론이나 비판주의는, 대립적 체계에 주목하면서도 그 체계에 대해 아무런 규정도 내리지 못하는 절대적 단언으로서 오직 하나의 주장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 양자가 서로 부딪힌 이후에는 그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더는 무시할 수 없다. 반면 (순수 이론적‧논리적 영역에서) 하나의 입장은 아무런 저항이 없도록 다른 입장을 설득하기 이전에는 다른 입장에 의해 설득당할 수밖에 없다.”(일리132-133)
이런 입장이 피히테와 셸링을 칸트로부터 분리시키는 요점이다. 인류의 지적 문화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에 관해 똑같이 논리적인 두 사상체계 사이에서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왔다 갔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실천적으로 행동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만 대립되는 두 체계에 모두 부합되게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것들 중 하나를 선택한 연후에 그 원리의 정신에 따라 엄격하게 행동해야만 한다.(일리133)
사실상, 칸트 자신도 그의 마지막 저작에서 비록 두 체계가 순수 이론적 수준에서 절대로 동일하다 할지라도 실천이성에 대한 논의는 어떤 쪽이든 상관없이 한 체계의 편을 들어야만 한다고 논증했다. 그러나 칸트에게 이 주제는 단지 그의 사고 경향 중의 하나로 나타난 반면, 피히테나 셸링은 이 주제를 그들의 모든 성찰의 출발점으로 전환시켰다.(일리133)
충돌하는 논리적 입장들 가운데 하나는 다른 대립적 견해보다 우월해야만 한다. 그 때문에 하나의 논리적 입장은 더는 순수 논리적이고 현학적인 논리에 의해 강화돼서는 안 되고, 오히려 실천적인(도덕적이고 심미적인) 장점을 마땅히 갖춰야 한다. 그럴 경우 그런 입장은 단순히 영원한 이론적 논쟁을 벌일 권리나 기회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보장받는다.(일리133)
피히테처럼 셸링도 종합명제들로 이뤄져 있는 이론체계의 중요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비판 철학자를 압박하는 것은 이런 난점들이다. 그의 중요한 질문은 분석명제가 어떻게 가능한가가 아니라 종합명제가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 가장 알기 쉬운 것은 동일률에 따라서 어떻게 모든 것을 규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이고, 가장 불가해한 것은 동일률을 벗어나 있는 것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일리133-134)
이것은 적절히 정식화된다. 하나의 판단 −A는 B다− 에서 규정들을 종합하는 기본적 활동은 실제로 우리로 하여금 동일률을 넘어서도록, 다시 말해서 모순율에 의해 확립된 경계를 어기도록 이미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접한 진술 B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어쨌든 A는 아니고 not-A이기 때문이다. 모든 새로운 지식은 낡은 지식의 엄격한 한계를 침해해 그것을 반박하고 교정한다는 사실에 관한 분명한 논리적 표현이다.(일리134)
이미 획득된 지식을 완강하게 고집하는 모든 독단론은 새로운 지식이 낡은 지식과 모순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부터 모든 새로운 지식을 언제나 거부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새로운 지식은 낡은 지식과 형식적으로 모순된다. 왜냐하면 새로운 지식은 분석적으로 낡은 지식에 포함돼 있지도 않고, 어떤 논리적 장치에 의해서도 낡은 지식으로부터 ‘도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식이 낡은 지식과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지식은 낡은 지식과 결합해야만 한다.(일리134)
셸링에 따르면, 진정한 종합은 논리학의 규칙을 엄격히 고수하는 순수 이론적 능력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논리학적 토대의 엄격한 한계에 묶여 있지 않는 아주 다른 능력, 나아가서 그렇게 할 강한 필요를 느꼈을 때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권리를 지닌 능력에 의해서 실현된다. “하나의 지식체계는 필연적으로 관념의 요술·유희이거나 아니면 다음의 것일 수밖에 없다. 관념의 유희가 아닌 하나의 지식체계는 이론적 능력이 아니라 실천적 능력을 통해서, 지각 능력이 아니라 구체화 시키는 생산적 능력을 통해서, 그리고 지식이 아니라 활동을 통해서 실재를 포괄해야만 한다.”(일리134-135)
칸트는 이런 생산적 능력을 구상력Einbildungkraft이라 불렀다. 칸트의 뒤를 이어 셸링은 외적 세계의 실재에 관한 명제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외적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이론을 수립하는 객관적 관념론에 근거해 구상력을 분석했다. 비록 셸링 자신에게서 이 이론이 논리학과 아주 다른 것이고, 오히려 일종의 미학, 즉 우주의 신비를 예술적·심미적으로 이해하는 이론의 경향을 띠기는 했지만, 셸링의 이런 분석은 객관적 관념론에 근거했기 때문에 피히테와는 다른 길을 가도록 했다.(일리135)
과학자들이 볼 때, 셸링은 전통 논리학−피히테의 뒤를 이어 셸링 스스로도 아주 불만족스러운 지식 획득의 수단이라고 단언했고, 비논리적이고 심지어 몰논리적인 그 밖의 다른 수단에 의해 획득된 자료를 표면상 체계화하고 분류하는 규준으로서만 정당화된다고 주장했던−을 이론작업의 도구로 보존하고 있다.(일리135)
피히테가 일관된 주관적 관념론의 권리와 관점을 내세우면서 칸트와 그의 논리학을 비판하는 고전적 모델을 제시한 반면에, 청년 셸링은 자신의 혁신적 노력을 통해 유물론적 경향이라 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색을 분명히 보여 주기 시작했다.(일리135)
셸링의 사고를 성숙시키고 활동 무대가 됐던 서클에서는, 피히테 철학에 의해 일어났던 분위기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가 지배했다. 피히테의 모든 사고는 1789~1793년에 일어난 사건들로부터 자극을 받은 사회적·정신적 혁명에 집중돼 있었다. 피히테가 펼친 상상력의 날개는 그 당시의 사건과 문제에 연결돼 있었다. 혁명적 파도가 가라앉았을 때, 피히테의 철학도 날개를 접었고 그래서 그는 새로운 영감의 원천을 발견할 수 없었다. 혁명에 고무돼 생긴 셸링의 열정은 그가 피히테의 지지자 혹은 제자로서 머문 특정한 단계일 뿐이었다. 그러나 마치 냉혹한 현실의 힘이 가장 열정적인 자코뱅 당원들로 하여금 당원으로서의 활동을 청산하도록 한 것처럼, 셸링이 보기에 피히테에게서 나타난 완고한 외적 세계 앞에서 무한히 창조적인 자아의 힘이나 자아의 도덕적 열정의 강렬함을 고집하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벽에 자신의 머리를 부딪는 것과 같았다. 셸링은 괴테나 낭만주의 작가들과 친분을 맺음으로써, 자연(자연과학)에 관해서뿐 아니라 전승돼 온 전통적인(칸트와 피히테의 표현에 따르면 ‘객관적인’) 사회적 생활양식에 관해서도 피히테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자연과학과 예술은 처음부터 탐구자의 정신을 갖도록 영감을 불러일으킨 매개였다.(일리135-136)
사실 셸링도 피히테와 똑같은 방법으로 출발했다. 셸링 역시 인간 의식 내에서의 주관과 객관의 대립 관계, 그리고 인간이 ‘자유로이’ 산출한 외적 세계의 상과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필연적이고 강압적인 힘에 복종해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산출한 외적 세계의 상 사이의 대립 관계를 다뤘다. 피히테처럼 셸링도 필연성을 외적 신에 귀속시키는 정통 종교와 필연성을 외적 사물 혹은 ‘순수한 대상’에 귀속시키는 철학적 유물론을 통합하려는 의도에서 독단론과 맞서 싸웠다. 셸링이 볼 때 비판주의는, 인간 정신에 대한 객관적인(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규정들은 처음부터 인간 정신에 본유적인 것이며 능동적 자기 발견의 과정에서 정신 내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입장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일리136)
피히테의 뒤를 이어 셸링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칸트 사상의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피히테의 사상 내에서 이원론은 여전히 유지됐을 뿐 아니라 심지어 더욱 첨예한 형식으로 재생산되기조차 했다. 실제로 칸트의 모든 이율배반은 피히테에 의해 동일한 자아 내의 두 부분 사이의 모순이라는 하나의 이율배반으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 한 부분은 인과율·공간·시간 등을 통해 객관세계의 상을 무의식적으로 창출하는 반면, 다른 한 부분은 선험적 이념의 요구나 ‘도덕’의 요구에 따라 그 상을 재구성한다.(일리136-137)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모든 개인은 두 개의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는데, 그 두 자아가 어떻게 왜 서로 연관돼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비록 피히테가 활동이라는 개념으로 두 자아를 결합시켰지만, 그 대립 관계는 다른 두 가지 활동 원리라는 형태로 자아 내에서 다시 재생산된다. 그리고 종전대로 인간 자아의 두 부분 사이의 내적·필연적 관계가 무엇인가 하는 미해결의 문제가 남아 있다. 분할을 통해 필연적으로 두 부분이 발생했지만, 그것들은 과연 공통적 뿌리, 공통적 원천, 공통적 ‘실체’를 지니고 있는가?(일리137)
피히테는 활동이라는 개념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필연적 관념의 세계는 인간이 그 관념을 자각하기 전에 ‘더욱 뛰어난’ 개별적 자아의 활동과는 독립적으로 모든 자아 내에서 형성된다. ‘더욱 뛰어난’ 자아는 관념의 세계를 자각하는 동안 자기 내부에서 현존하는 세계를 발견한다. 그다음으로 실천이성이나 이념의 순수 형식은 마치 모르는 어떤 곳으로부터 나타나서 자아의 과거 노동의 결실을 평가하고 재평가할 기준을 제시하는 재판관처럼, 말하자면 외부로부터 필연적으로 산출된 관념의 세계에 나타난다.(일리137)
인간 자아는 원래부터 이질적인 두 원리가 서로 싸우는 끝없는 전쟁터로 다시 바뀐다. 절대적 자아라면 불완전하고 연관성이 없으며 심지어 상호 모순적으로 존재하는 관념의 세계를 자기 자신과 일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치는 무한에서나 이뤄질 뿐이다. “인간의 자기 자신과의 완전한 일치 그리고 인간 외부의 모든 사물과 그 사물에 관한 필연적이고 실제적인 개념−사물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개념−의 완전한 일치”(피히테가 정식화한 문제의 본질)는 현존 세계에서 이뤄질 수 없다.(일리137-138)
피히테 자신은 칸트적 이율배반의 형식으로부터 해방됐으나, 바로 ‘활동’ 개념 내에서 이율배반을 모순의 형식으로 그대로 재생산했다. 문제는 개별 정신의 영역으로 단순히 이전됐고, 그래서 완전히 해결할 수 없게 돼 버렸다. 셸링은 청년 헤겔과 더불어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피히테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점차 새로운 입장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일리138)
셸링과 헤겔은 칸트와 피히테의 다음과 같은 입장을 아주 불만으로 여겼다.
(1) 당시에 뜨겁게 달아오른 구체적 쟁점들을 주관적·심리학적 형식으로 제시한 점.
(2) 철학자를 설교자−훌륭하고 고귀하지만 실행할 수 없는 문구나 표어를 제시하는−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양심’과 ‘의무’에 나약하게 호소한 점.
(3)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전체 세계를 ‘의무’와 ‘이념’의 명령에 대한 장애물, 비록 적대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수동적인 장애물로 해석한 점.
(4) 순수 도덕을 제외한 모든 것(인류의 역사와 자연의 변화를 포함하는)에 대한 절대적 무관심, 그리고 자연과학에 대한 절대적 무관심(이것은 피히테 사상의 저변에 깔려 있다).
(5) 인간의 ‘이기적’, ‘비도덕적’, ‘비합리적’인 사회적 행위의 동기에서 보이는 정언명령(이념)의 무기력, 그리고 더욱 고차적인 도덕을 전파하는 설교자에 대한 지구상 현실 인간들의 무관심.
(6) 실재적인 것과 타당한 것, 필연적 활동과 자유로운 활동, 현상계와 능동적인 인간 본질 사이의 원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차이 등등.(일리138-139)
이 모든 것들은 결국 하나의 문제로 집약된다. 다시 말해 결국 인간의 두 자아가 유래하는 ‘공통적 뿌리’를 발견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로 집약된다. 그러면 개인은 외적 힘(자연 혹은 신)이 적용되는 수동적 요소(대상)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주체로 나타날 것이다.(일리139)
이것으로부터 동일철학의 사상이 탄생했다. 다른 모든 사상이 그런 것처럼, 동일철학은 원래부터 아직 세부적으로 실현되지 않은 원리인 가설의 형태로 존재했고 대부분의 이론적 내용, 특히 칸트와 피히테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교정함으로써 등장했다.(일리139)
처음부터 청년 셸링은 칸트와 피히테에 의해 원래 본질과 기원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묘사된 인간의 두 부분(이것들을 결합시키고자 한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은 결국 어떤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단언했다. 즉, 문제의 본질상 그 두 부분은 논쟁과 논의 과정에서 이율배반적으로 분화되고 분리되기 이전에 하나의 상으로 결합돼 있었다. 셸링은 자아 활동의 두 형식(무의식적인 것과 의식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실제로 하나의 줄기에서 성장한 두 개의 가지이기 때문에, 먼저 그 줄기를 발견한 후 분기되기 이전의 성장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일리139)
그러나 셸링은 그런 동일성이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존재했음이 틀림없다는 것 이외에 더는 구체적이고 뚜렷한 주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이런 최초의 동일성이 어디에서 정확하게 발견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서술은 본질적으로 소극적인 것이었다. 최초의 동일성은 의식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며, 정신도 아니고 실체도 아니며, 이념도 아니고 실재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것은 무엇인가?(일리139-140)
여기서 하이네Heine의 재치 있는 경구를 들어 보자. “철학은 셸링씨와 더불어 종말을 고하고, 시詩−나는 어리석음의 뜻으로 말한다−가 시작된다. 그러나 셸링 씨는 이제 철학의 통로를 내버려 둔 채, 신비로운 직관 활동을 통해서 절대적인 것 자체를 통찰하고자 한다. 그는 그 중심과 본질에서 절대자를 직관하고자 한다. 거기에는 이념적인 것도 없고 실재적인 것도 없으며, 관념도 없고 연장도 없으며, 주체도 없고 객체도 없으며, 정신도 없고 물질도 없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있다.”(일리140)
그런데 왜 셸링은 철학의 통로, 즉 엄밀한 규정을 동반하는 사고작용의 통로에서 은유와 일종의 감성적 직관의 통로로 방향을 바꿨을까? 그 유일한 이유는 그가 알고 있었던 논리학이 대립하는 상호 모순적 술어들을 동일한 하나의 주어의 개념으로 통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칸트처럼 셸링도 동일률과 모순율은 개념적 사고작용에서 절대로 어길 수 없는 법칙으로서 신성불가침의 것이라 생각했고, 그 원리들을 어기는 것은 사고 일반의 법칙, 과학적 방법의 형식을 어기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그는 피히테의 견해를 좇아, 모순 때문에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하기 불가능한 모든 것은 사변 혹은 직관으로 포착 가능하다고 생각했다.(일리140)
셸링은 논리학의 규칙에 따라 의식적으로 수행되는 모든 활동은 칸트와 피히테의 선험철학에서 충분하고 정확하게 서술됐다고 생각했다. 논리학의 규칙에 따라 의식적으로 수행되는 활동을 다루는 철학에 관한 한, 셸링은 거의 완성됐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그는 결코 그것을 새롭게 구성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다만 활동·활동 원리의 영역과 범위를 확장 시키고자 했고, 피히테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던 자연과학의 영역을 포괄하고자 했다.(일리140)
여기서 자연과학으로의 전환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무의식적 활동의 영역을 더욱 상세히 탐구하려는 시도는 결국 인간이 자신을 특수한 탐구대상으로 전환 시켜 자기 자신 내에서 발생한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관해 특유의 반성을 시작하기 전에, 그런 반성과는 무관하게 인간이 수행하는 생명 활동의 양식을 탐구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그러나 공간, 시간 그리고 인과성이라는 조건에 종속된 인간의 모든 생명 활동(칸트의 관점으로부터 발생한 것)은 자연과학의 관할 영역 내에 있다. 바꿔 말하면 무의식적 활동의 형식과 양식은 물리학·화학·생리학·심리학 등의 개념을 통해서 과학적으로 분명히 서술된다.(일리141)
왜냐하면 무의식적 활동은 생명, 유기적 자연 혹은 유기체의 존재 양식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기체(생물학적인 모든 개체)의 생명 활동에서 역학적·화학적·전기적 운동은 서로 결합 돼 있으며, 따라서 유기체는 역학, 화학, 물리학 그리고 광학 등에 의해 탐구될 수 있다. 자연은 모든 비밀과 규정을 살아 있는 유기체에 응집시킴으로써 그 비밀과 규정을 종합한다. 유기체가 그 구성요소로 분해된 이후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하지만 잘 이해되지 않는 의문점이 생겨난다. 도대체 왜 유기체의 구성요소들이 다른 방식이 아니라 바로 그런 방식으로 결합돼 있는가? 왜 그 구성 성분의 덩어리가 획득되지 않고 실제로 살아 있는 유기체가 획득되는가?(일리141)
순수 역학적 접근만으로는 유기체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기계의 원리는, 이미 만들어지고 이전에 주어진 부분들을 결합하는(일관되게 종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유기체는 부분들을 전체로 조합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원래 분화되지 않은 전체로부터 부분들(기관들)이 근원적으로 발생함으로써 생겨난다. 여기서 전체는 부분들에 선행하고, 부분들과 관련해서 부분들이 봉사하는 목적으로 기능한다. 각각의 부분은 단지 전체 내에서 수행하는 그 역할과 기능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부분은 전체를 떠나서 존재하지 않으며, 더구나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일리142)
칸트는《판단력 비판》에서 유기적 생명을 이해하는 문제를 생명체의 구조와 기능의 목적 문제로서 분석했다. 그러나 선험적 관념론이라는 입지점 때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비록 우리와 우리의 이성이 목적 개념 이외의 다른 개념으로는 유기체를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어떤 목적을 유기체 자체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목적은 의식(이것은 선험적 통각의 작용을 의미한다)을 전제하는데, 동물과 식물은 그런 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일리142)
생명의 문제는 셸링으로 하여금 선험적 관념론 철학의 특정 개념들을 포기하고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도록 했다. 칸트처럼 그도 초자연적 원인을 자연과학의 사고 틀에 도입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했다. 이 때문에 그는 활력론vitalism, 즉 비유기적 자연(역학·물리학·화학의 세계)의 경우 어떤 ‘더욱 고차적인 원리’가 외부의 어디서부터 내려와서 물리적·화학적 입자들을 생명체로 조직화한다는 사상을 단호히 거부했다. 칸트의 입장을 이어받아 셸링은 의식 외부에 이런 원리는 없다고 단언했다. 자연주의자라면 비유기적 자연에서 유기체가 발생한 원인과 기원을 자연 자체 내에서 찾아야만 한다. 생명은 일종의 자연 외적인 힘이나 초자연적 힘을 전제하지 않고서 자연과학의 방법에 의해 충분히 설명돼야만 한다. “유기체와 생명은 자연의 원리로 설명할 수 없다는 고루한 망상이 있다. … 이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유기적 자연의 최초의 원천은 물리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입증되지 않은 진술은 탐구자의 용기를 약화시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 만약 우리가 모든 유기체의 계통이 동일한 유기체의 점진적 진화를 통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이것은 그런 허황된 설명보다 적어도 한 걸음 앞서 있을 것이다.”(일리142-143)
인간과 그 특유의 유기적 조직은 논리적으로 볼 때 생명체의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다. 그리고 이 경우에 우리는 선험적 의미에서 목적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의 이성에서(특히 그 선험적 구조에 의해서) ‘목적의 형태로’ 재생산되는 객관적 특성을 자연 자체에 돌릴 수 있는 근거와 권리를 갖고 있다.(일리143)
셸링은 이런 특성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더욱더 복잡하고 고도로 조직화 돼 있는 생물−정신·의식이 깨어 있고 선험적 구조가 갖춰져 있으며, 그리고 자연에서 목적 없이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자유로이) 재생산하는 능력을 지닌 인간까지 포함해서−의 계통을 발생시킨 것은 자연 자체에 수반 돼 있는 능력의 문제였다.(일리143)
그런데 자연과학들이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수학자·물리학자·화학자·해부학자는 저마다 자신들이 고유한 영역에 종사하면서도 자신의 탐구 결과를 인접 과학의 탐구 결과와 결합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연을 고찰해서는 안 된다. 자연은 특수과학의 주제가 분화돼 나온 일종의 최초의 전체로 간주 돼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전체와 모습을 특수과학으로부터 모자이크처럼 조립해서는 안 되고, 반대로 특수과학을 최초에 분화되지 않은 하나의 동일한 전체의 발전과정에서 나온 연속적 단계들로 간주해야만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과 스피노자에게서 아주 특징적으로 나타난 전체로서의 자연관을 셸링은 기계와 유기체 사이의 이율배반을 과학적으로(초자연적 요인에 호소하지 않고) 해결하는 중요한 원리로 발전시켰다. “우리의 탐구가 자연을 실체로 생각하는 자연관으로 상승하자마자, 기계와 유기체 사이의 대립, 즉 오랫동안 자연과학의 진보를 방해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우리의 노력을 좌절시킬 것이라고 생각한 그런 대립이 즉시 사라진다.”(일리144)
셸링은 실로 하나의 보편원리로부터 역학과 유기적 생명의 개념을 전개시킴으로써 해결책을 찾았다. 그는 결국 이 보편원리를 통해 뒤에 나타나는 단계가 앞의 단계를 부정하고 새로운 특성을 포함하는 동적인 과정으로서의 전체적 자연관을 제시했다. 따라서 더욱 고차적인 과정에 대한 순수 형식적(분석적) 규정은 더욱 낮은 과정의 규정으로부터 추론될 수 없다. 이것은 오직 새로운 규정을 부가하는 종합 과정을 거쳐서 도출된다. 동적인 과정에서 더 고차적인 단계와 더 저차적인 단계를 직접적으로 병렬시켰을 때, 그것들은 동시에 ‘공존하는’ 두 대상으로 생각되고(공존하는 두 대상이란 바로 경험적 직관에 포착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상호 모순적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일리144)
결국 자연철학의 기본적 과제는 하나의 동적인 과정에서 최초의 규정이 어떻게 발생하고 또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규정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추적해서 보여 주는 데 있다. 바꿔 말하면, 전체로서의 자연이라는 동일자 내부에서 상호 부정하는 규정들 및 대립물들이 점진적으로 발생하는 과정을 동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일리144-145)
셸링은 여기에서 역학, 화학, 전자기학, 유기적 생명 등의 영역에서 동일하게 작용하는 자연 전체에 관한 보편적 법칙을 발견했다. 이것은 실로 최초의 상태가 이분화 혹은 양극화하는 보편적(모든 자연 현상에 동일한) 법칙이다. 역학에서 질량의 인력과 척력, 자기학에서 남극과 북극, 양전기와 음전기, 화학반응에서 산과 알칼리 등, 이런 것들은 모든 측면에서 셸링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사례들−볼타Volta, 패러데이Faraday, 라부아지에Lavoisier, 킬마이어Kielmeyer 등에 의해 발견되고 거듭 확인됐다−이다. 매우 다양한 과학적 발견은 셸링의 예언의 실현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의 명성은 점차 높아졌다. 그의 제자 중에는 의사, 지질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도 있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셸링의 철학은 이론적 자연과학 내부에서 이미 절실히 필요했던 사고의 형식을 제시했다. 셸링은 자신의 성공에 만족하면서 그가 발견한 가치 있는 광맥을 계속해서 찾아 나갔다.(일리145)
그러나 대립물의 상호 전환은 자연과학과 선험철학이 만나는 경계선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경계선은 무의식적·동적 과정의 영역(비아)으로부터 자아가 발생하고 선험적·정신적 유기체가 발생하는 지점이며, 또 반대로 자아의 의식적 활동으로부터 비아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 발생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아에 대한 규정과 비아에 대한 규정의 상호 전환은 동적 과정의 보편 작용을 가장 순수하고 가장 일반적인 형식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즉 A가 not-A로 전환하는 활동, 원래 분화돼 있지 않은 최초의 상태가 ‘이원화’되고 이분화되는 활동을 입증하는 것이다.(일리145)
그런데 그 자체로 동일한 최초의 절대적 상태−이것의 양극화로부터 자연 전체의 ‘이중성’, 즉 자아와 비아, 자유롭고 의식적인 주체의 창조성과 ‘죽고’ 응고되고 화석화된 창조적 활동의 거대한 영역(대상 세계)이 발생한다−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일리146)
셸링의 철학 행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최초의 동일성을 사고하는 것, 다시 말해서 엄격히 제한된 개념의 형식으로 그 동일성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판명됐다. 최초의 동일성은 하나의 개념으로 표현되자마자 곧바로 이율배반적 이분화로 나타난다. 동일성이 분화되지 않은 경우에, 그리고 분화된 것들 사이에 형식적으로 비교할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경우에 동일성은 분명히 개념적으로(과학적으로) 이해된다.(일리146)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지점에 이르렀다. 셸링은 자신의 체계가 자아와 비아에 공통된 규정 체계 혹은 정의 체계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체계를 동일철학이라고 부른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셸링은 이런 개념체계의 가능성을 원리적으로 부인했다. 그의 철학은 형식적으로는 결합 되지 않는 두 개념체계, 즉 형식적으로 그 규정들이 서로 대립하지만 그럼에도 상호 전제하고 있는 두 개념체계의 형태도 제시됐다. 그 가운데 하나는 자아 자체의 규정 체계(선험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비아에 대한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규정 체계(자연철학)이다.(일리146)
전자는 인간 의식 외부에, 인간 의식에 앞서 존재하는 자연에 그 근거를 둘 수 없는 인간 활동 특유의 주관적 형식을 형식적으로 무모순적인 구조의 형태로 드러내고 서술했다. 반대로 후자는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인간 활동에 의해 도입된 모든 것이 면밀하게 제거된 순수 객관성을 드러내고자 했고, 대상을 ‘인간 의식에 들어오기 전에’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 묘사하고자 했다.(일리146-147)
자연철학(이론적 자연과학)의 한계 내에 갇혀 있는 이론가들은 “이런 종류의 인식에 주관이 끼어드는 것을 두려워하며”, 반대로 선험철학(논리학과 인식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론가들은 “객관적인 것이 순수 주관적 인식 원리에 포함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일리147)
요컨대 만약 선험철학이 자연철학만큼 정확하게 구성된다면 각각의 구조 내에 다른 요소는 전혀 없을 것이고, 서로 공통적 개념이나 이론적 규정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하나의 구조에 다른 구조의 요소가 있거나 공통적 개념이나 규정이 있다면) 이런 규정은 논리학의 최상의 두 원리인 동일률과 모순율을 직접 위배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와 같은 규정은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을 동시에 표현할 것이고, 동일시되는 대립물을 직접 포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두 학문(선험철학과 자연철학)은 형식상 하나로 결합될 수 없는 것이다. 동일한 하나의 개념으로부터 두 개의 과학적(형식적으로 올바른) 규정들을 전개 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논리학의 규칙에 입각해 볼 때 형식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며 또 용인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일리147)
따라서 철학은 전반적으로 볼 때 하나의 과학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로부터 셸링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즉 철학의 전체 체계는 “원리와 방향에서 서로 대립하지만, 서로 교섭하고 서로 보완하는 두 기초과학 내에서 완성”될 것이다. 의식 내부의 세계와 의식 외부의 세계에 공통된 것들을 발견하는 ‘제3의 과학’, 두 세계에 똑같이 필수적 법칙과 규칙체계가 되는 ‘제3의’ 과학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다. 과학의 형식으로 이런 법칙과 규칙을 제시하는 것은 원리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런 과학은 처음부터 동일률을 어긴 상태에서 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일리147-148)
그럼에도 세계와 인식에 공통된 법칙은 존재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인식, 즉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일치에 관해 말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고, 인식과 그 대상의 일치로서의 진리의 개념은 허튼소리일 것이다. 셸링에 따르면, 결국 보편법칙은 완고하게 구속하는 규칙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식 대상이나 자연의 통일을 직접 체험하는 시인․예술가의 영감과 관계있는 이성(엄격히 정식화되지 않은 이성)으로 작용한다. 재능 있는 예술가와 자연은 동일한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일리148)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에 작용하는 법칙의 동일성은 창조적 활동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창조 활동은 형식적 체계화에 종속되거나, 그 체계 내로 소멸해 화석화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절대적 단순성․동일성은 결코 개념을 통해 이해되고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묘사를 통해 이해되고 전달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직관될 뿐이다.” 여기서 직관은 강력한 영감에 의한 창조적 통찰의 직관이며, 지성적이고 심미적인 직관이다. 따라서 셸링의 체계는 예술철학에서 절정에 도달했고 예술철학에 의해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일리148)
그래서 최초의 동일성은 실재하지만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고, 그리고 모든 개념의 최초의 전제이지만 개념을 통해 규정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동일성은 언제나 둘로 나뉘어 있는 탐구 방향, 즉 객관적인 것이 어떻게 주관적인 것으로 전환하는지에 대한 논증(이것은 역학에서 화학을 거쳐 생물학․인류학, 요컨대 인간까지를 다루는 이론적 자연과학의 관할권이다)과 주관적인 것이 어떻게 객관적인 것으로 전환하는지에 대한 논증(이것은 인식과 그 형식에서 출발해 인식의 객관성․필연성․보편성을 논증하는 선험철학의 관할권이다)에 의해 결정된다.(일리148-149)
결국 문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즉, 정면으로 대립하는 두 영역은 그 모든 특성에서 서로 비교된다. 이 두 영역의 동일성(이것들이 일치한다는 사실은 진리다)은 한 영역이 다른 영역으로 이행함으로써 명백히 실현된다. 그러나 이행 및 이행 자체의 계기는 비이성적이기 때문에 무모순적인 개념에 의해 표현될 수 없다. 왜냐하면 바로 그 이행의 계기에서 A의 not-A로의 이행, 그 둘의 일치와 동일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둘의 일치와 동일성을 하나의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 개념의 형식을 깨뜨리는 것을 의미한다.(일리149)
여기서 셸링은 개념적 사고 가능성이 지니는 절대적 전제의 성격을 동일률과 모순율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한 칸트 논리학의 편협성에 직접적으로 대항했다. 왜냐하면 모순율과 동일률에는 대립물의 상호이행의 계기가 들어설 여지가 없을 뿐 아니라 이행의 계기는 그 두 법칙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셸링은 사고형식에는 자기 파괴적 측면이 있다는 사실에 동의함으로써 현실적 진리는 개념을 통해 포착될 수도 없고 표현될 수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의 입장에서는 과학이 아닌 예술이야말로 정신적 활동의 최고 형식을 드러내게 된다.(일리149)
만약 일반논리학의 규칙이 절대적이라면, 주관과 객관의 동일성을 실현시키는 의식과 자연의 상호이행은 개념적으로 표현될 수 없으며, 나아가서 인식 활동은 절대이념․진리를 시적으로 포착하는 비이성적 직관 활동으로 거듭 비약하지 않을 수 없다.(일리149)
바꿔 말하면 셸링은 칸트의 논리학이 실제로 대립물의 개념(엄격히 정의된 규정)적 상호이행을 표현하거나 이해하는 것을 막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아주 당연한 주장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논리학 일반을 거부해 버렸다. 그는 논리학을 직관(관찰)에 자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서 논리학 자체를 개조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에 그는 기존 논리학(그는 논리학을 사고 자체보다 열등한 것으로 잘못 이해했다)의 한계와 부족한 점을, 배우거나 가르칠 수 없는 비이성적 능력, 즉 지성적이고 심미적인 직관 능력을 통해 보완했다. 이 신비로운 능력은 이성(사고 일반)이 서로 결합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부분들로 나누고 분해해서 사라지게 만든 모든 것을 결합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일리150)
셸링의 고유한 이론체계는 19세기의 과학 발전에 영향을 끼쳤으며, 본질적으로 뚜렷한 변증법적 특성을 보여 줬다. 그러나 천재적이기조차 한 대담한 추측과 발상에도 불구하고 셸링은 그 당시 과학자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결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개념들을 두려움이나 의심 없이 결합하는 신적 영감을 지닌 예언자나 천재를 게속 자처했다. 셸링 자신은 젊었을 때 자연과학 분야에 상당한 재능과 소질이 있었고 가끔 직관적으로 요점을 찔렀으나, 그에 비해 그의 제자들이나 계승자들은 공허한 도식을 받아들이고 과학에 박식하지도 못하고 재능도 없었으며, 오히려 나중에 헤겔도 그랬듯이 셸링의 철학하는 태도나 방법을 조롱했다. 그러나 셸링은 칸트 논리학의 경직성을 폭로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칸트 논리학을 근본적으로 개조하지는 않았지만, 헤겔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충분한 근거를 제공했다.(일리150)
논리학 자체는 셸링의 사상체계에서는 하나의 삽화로 남아 있을 뿐이며, 선험철학에서도 하찮은 부분에 불과하다. 또 전혀 이질적인 인식능력과 방법을 통해 획득된 지식을 정식화(분류․도식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형식적 규칙들에 대한 현학적 서술일 뿐이다. 결국 셸링에게 논리학은 지식을 산출하는 도식이 아니라 오히려 말 그대로 ‘다른 것들을 위해’ 지식을 서술하는 수단이자 엄격히 정의되고 무모순적으로 규정된 용어들(셸링은 이것을 ‘개념’이라 불렀다)의 체계를 통해 지식을 표현하는 수단인 것이다. 셸링은 궁극적으로 논리학에서 취할 점은 지식의 외적 언어형식뿐이라고 봤다.(일리151)
사실 지식을 산출하는 과정 자체는 셸링이 다양한 ‘직관’의 형태 내에서 아주 상세하게 분석한 상상력에 의해 이뤄진다. 직관과 상상력의 영역에서 셸링은, 표상의 세계와 과학의 개념을 이해하는 인간의 주관적 인식능력의 진정한 도식, 즉 변증법을 발견했다.(일리151)
그래서 셸링은 변증법을 순수 과학적 인식론으로 확립하기는 했지만, 논리학과의 모든 연관성을 단절시켜 버렸다. 셸링은 자신의 입장 때문에, 칸트와 피히테가 당시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서 재구성 하려는 시도를 하기 전의 한심스러운 상태로 논리학을 후퇴시켜 버렸다.(일리151)
셸링 이후의 문제는 인식 과정의 진정한 도식인 변증법과 사고 일반의 규칙체계인 논리학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논리학의 규칙과 인식 과정의 실질적 도식(법칙)의 관계는 어떤가? 그 둘은 서로 다른가? 또 상호 연관성은 없는가? 그렇지 않다면 논리학은 단지 과학의 현실적 발전과정에 의식적으로 적용되고 계획적으로 적용된 도식일 뿐인가? 그렇다면 논리학을 그 구태의연한 전통적 형식으로 방치해두는 것은 더는 용납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횃불은 헤겔에게 넘어간다.(일리151)
[발췌 출처] E. 일리옌코프: [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기동/이병수 역, 책갈피 2019
[참고 원문] https://www.marxists.org/archive/ilyenkov/works/essays/essay4a.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