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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시 읽기 좋은 날(그날, 그 시가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저- 김경민(서울대 대학원 국어교육과에서 시교육을 공부하고 동일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를 지내며 1년에 120권 이상의 책 읽는 독서광)-첫번째 책
출-쌤파커스(2015.12.14.일 16쇄)
독정- 2018. 9. 15. 토
-이 책은 나의 존재에 대해 한마디로 성찰하게 하는 참 좋은 책이었다.
•<플란다스의 개>는 왜 그렇게 슬펐던 걸까
아홉 살 때<플란다스의 개>를 읽은 후 한 동안 힘들었다. 이건 그 전에 읽었던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 이야기, 혹은 예쁘고 착한 여자가 멋진 왕자와 결혼하는 해피엔딩 동화와는 질적으로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초의 문학적 정서체험을 하게했던, 아홉 살 꼬마가 감당하기에는 좀 컸던 세상에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걸, 문학은 그걸 감추지 앟고 기어이 드러내기에 문학 작품을 읽다 보면 때때로 가슴 저릴 정도로 아프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그 아픔엔 슬픔뿐 아니라 마약 같은 중독성과 모종의 희열과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도 함께 들어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해주었다.(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것이고, 당시의 난 그저 네로와 파트라슈가 너무 불쌍해 마냥 슬펐다). 읽은 뒤에 밀려오는 감정의 압도성도 그 감정을 제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언어의 빈곤함 말고도 나를 안타깝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 감정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었다. 어른들은 너무 바빠 보였고 내가 기대하는 만큼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함께 고무줄놀이, 공기놀이를 하는 친구들은 이런 나를 뜬금없다고 여기거나 잘난 척한다고 말할 것 같았다. 선생님이 검사하는 일기장이나 숙제로 내는 독후감에다가 쓰자니, 어쩐지 그렇게 하면 나의 감정들이 훼손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고를 다 쓰고 난 후 “왜 이 책을 쓰게 되었을까?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그 무엇으로 읽고 느낀 것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의 느낌을 더욱 풍부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열망, 이것이 27년이 지난 후에야 이 책을 쓰게 만든 가장 큰 동력이었다.
(중략)
이 원고를 말 그대로 ‘발견’해준 팀장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한다. 책을 쓰는 사람에게 유능한 편집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이번에 알게 되었다(중략)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는 내 능력으로 키우는 것이 아님을, 내 자식은 내 부모가 나를 키울 때 쏟은 인내와 희생의 힘이 나도 모르게 전해져 스스로 자란다는 것을. 이 세상에 나 자신보다 더 나를 걱정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벅찬 은혜인가. 나에게 생명을 주신 사랑하는 두 분께 이 책을 바친다.
• 사랑, 아프지만 계속 아프고 싶은 병
마리오: 전 사랑에 빠졌어요
네루다: 심각하지 않아. 치료약이 있어
마리오: 치료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영화-‘일 포스티노’ 중에서)
•서시-이성복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 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피겨 스케이팅 경기를 보다가 황홀한 탄탄을 하게하는 위태로움과 그로 인한 조마조마함은 짝사랑하는 사람(나)의 심정과 같다. 칼날 하나로 겨우 버티며 혼자 빙판에 서서 회전과 점프를 반복하며 빨리 사랑하는 사람(당신)의 눈에
듸어 당신이 나를 다시는 넘어지지 않게 잡아줄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이 정처 없음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 너를 기다리는 동안-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고 다 네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기다림, 그 황홀한 고통. 만나자던 선배가 우산도 쓰지 않고 혼잡한 인파를 헤치며 오는 모습, 그가 늘어놓은 이유가 뭐였는지,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가물가물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비오는 날 ,찻집 밖에
서서 기다릴 때 그 시간 살갗을 감싸던 바람의 온도와 습도, 바닥에서 튀어 올라 내 발가락을 적시던 빗방울의 느낌까지도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이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사랑이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사람을 특별한 깊이와 방식으로 사랑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짝사랑이라면 그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다분히 자기중심적 파장이 사랑의 속성이다. 어차피 사랑이란 당사자에겐 매우 특별한 사건이니. 그런데 자기 사랑을 ‘사소한 일’이라 하는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고 함은 내가 온 마음 다해 사랑해도 지는 해를 뜨게 하고 부는 바람을 멈추게 할 수 없는 노릇, 그러니 고작 ‘내 그대를 생각함은’ 이라는 조심스럽게 시작할 수밖에. 퍼붓는 눈도 언젠가는 그치듯이 내 사랑도 영원할 수는 없는 법, 절망에 있는 그대를 구원해줄 사소함, 영원한 대자연의 순환 속에서 생각하는 기다림의 자세. 그러나 사소하다 말한다 해서 결코 사소해질 수 없고, 언젠가 긏일 것으로 믿는다 해서 결코 그쳐지지가 않는 것이 이 시의 사랑이다.
홍동규는 고3때 작사랑하던 대학생 누나를 생각하며 썼단다.
•바람부는 날- 김종해
(중략)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하나 갖고서 당신을 향해 갑니다. 가서는 오지 않아도 좋을 일방통행의 외길, 당신을 향해서만 가고 있는 지하철을 타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으로 작은 불빛 비추며 나는 갑니다.
가랑잎이라도 떨어져서 마음마저 더욱 여린 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사랑이 사랑만으로 채워져 있으면 사랑이 괴롭지 않겠지만 제일 괴로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못 보는 것이다. 사랑은 지하철을 타고 가서 내릴 역이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이리는 사실이다. 마치 해리 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가기 위해 서 있었던 9와 4분의 3번 승강장처럼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당신 향한 내 마음이 도달하는 곳은 오직 나만 알기에. 오로지 나만이 알기에 비밀스럽고 아늑하며 황홀한 길이다.
• 어린 것- 나희덕
어디서 나왔을까 깊은 산길
갓 태어난 듯한 다람쥐새끼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맑은 눈빛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고집할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어린 것들은
내 앞에서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
나를 어미라 부른다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
젖이 차 올라 겨드랑이까지 찡해오면
지금쯤 내 어린 것은
얼마나 젖이 그리울까
울면서 젖을 짜버리던 생각이 문득 난다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난만한 그 눈동자
너를 떠나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갈수도 없다고
나는 오르던 산길을 내려오고 만다
하, 물웅덩이에는 무사한 송사리 떼
뻥튀기
-아기가 갓 태어난 내 젖을 물었을 때 내 몸 밖에 또 다른 나의 심장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어미의 사랑이란 얼마나 아픈 사랑인가. 그 사랑이 아픈 것은 그 사랑의 대상이 절대적으로 소중해 가슴 떨리게 만들 정도의 희열도 주지만 그 못지않게 때때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도 주니까. 자식의 슬픔과 좌절은 몇 배로 뻥튀기가 되어 어미의 아픔과 슬픔과 좌절이 되니까. 그래도 세상 모든 어미는 내 앞에서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있는 그 존재를 향한 지독한 짝사랑을 도저히 멈출 수 없다. 내 새끼만 챙기는 배타적 모서을 뛰어넘어 시인의 눈과 마음은 모든 어린것들을 향한다.
• 서해-이성복
(중략)
그곳 바다인들 어느 바다와 다를 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개들이 구멍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 진달래꽃-김소월
-가슴 떨리는 환희는 한 살마을 능히 반짝거리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유치함은 애교가 되고 집착은 애착이 된다.
• 선운사에서-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요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이 시는 헤어짐보다 어려운 잊기를 노래했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든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버린다. 김훈<자전거 여행>-생각의 나무에서
기억은 머리가 시키는 일이고 망각은 가슴이 시키는 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기억은 내가 하는 일, 망각은 시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일까. 기억하기보다 망각하는 것이 어렵다.
• 원시 遠視=오세영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것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자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내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젊었을 땐 모든 걸 최대한 가까이서 속속들이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는데 지금은 좀 떨어져서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한 것들은 다 예뻐 보인다, 이게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 노인네가 아닌 내 나이의 이별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며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어른으로 늙어가고 싶다.
• 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는 마르틴 부버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그 관계가 의미 있기를 원하는 존재대로 누군가를 꽃으로 만들고 꽃이 되기 위한 놀격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상대만의 빛깔과 향기를 찾아보려는 수고로움이다. 그것이 귀찮아 회피하면 의미 없는 몸짓에 불과한 존대로 살아갈 수밖에. 인디언 말로 친구는 나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나는 아는 사람이 많기보다 내 곁에 남아 있는 이들에게 충실한 친구가 되고 싶다. 그들 고유의 빛깔과 향기를 알아주는
• 사랑법-강은교
(중략)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절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사천왕상이 눈에 뛴다. 흡사 염라대왕을 연상케 하는 부릅뜬 큰 눈 때문에 무섭다. 대웅전 불상은 입가에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바쪽 감은 눈, 실눈이다. 무엇인가 조용히 생각할 때 눈을 감는다. 눈 감을 때는 정신의 방향 같은 것이 자신의 내면을 향한다. 무엇인가 바라보고 확인, 분별해야 할 때는 눈을 크게 뜬다. 외부로, 실눈을 반쯤 감으면 내면을 바라보고 반쯤은 외부를 바라보는 눈이다.
• 자화상-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세에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미용실에 가면 읽게 된 엄청난 두께와 무게의 여성지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백이라는 단어 ‘눈물 고백’ ‘충격 고백’ ‘8시간의 고백’ 누군가의 사적 이야기가 상업적으로 매력 있는 아이템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고백의 주인공이 행한 어지간한 과오는 충분히 이해해줄 만한 것이라는 확신이다. 자기 고백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 거울- 이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 것이오
거울속에 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 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든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내 안의 또 다른 나
일상을 살아가는 나의 내면에 자리 잡은 또 다른 나, 나와 반대인 것 같지만 꽤 닮기도 한 나, 나 말고는 자세하게 알 수 없는 나, 때로는 나와 소통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 답답한 나, 혹은 나와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 고집 샌 나, 그럼에도 나 아니면 걱정하고 보살펴줄 이가 없는, 결국 내가 안자줄 수밖에 없는 나.
• 등- 이형기
나는 알고 있다
네가 거기
바로 거기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팔을 뻗어도
내손은 네게 닿지 않는다
무슨 대단한 보물인가어디
겨우 두세 번 긁어 대면 그만인
가려움의 벌레 한 마리
꼬물대는 그것조차
어쩌지 못하는 아득한 거리여
그래도 사람들은 너와 내가 한 몸이라 하는구나
그래그래 한 몸
앞뒤가 어울려 짝이 된 한 몸
뒤돌아보면
이마 나의 등 뒤에 숨어 버린 나
대면할 길 없는 他者타자가
한 몸이 되어 함께 살고 있다
이승과 저승처럼
-내 뒷모습의 표정. 미셀 트루니에는 총 53장의 뒷모습 사진들로 이루어진 책에서 ‘뒤쪽이 진실이다!’고 한다.
• 난 나를 본 적이 없다-이승훈
더운 여름 아파트 앞 구두 수선소 작은 의자에 앉아 구두 고치는 걸
구경할 때 수선소 아저씨가 말하네 글쎄 언젠가 교수님 지나가는 걸 보고
어떤 손님에게 저 분이 알아주는 대학 교수라고 했더니 그분 말씀이 교수 같지않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아닙니다 알아주는 대학 교수입니다. 제가 잘 아는 분인데 아주 소박하신 분입니다. 그래요? 난 웃으며 말했지. 내가 생각해도 그래요. 교수가 도무지 왜소하고 품위가 없잖아요? 여기 앉아 저쪽으로 걸어가는 나를 본다면 나도 그럴 겁니다. 난 나를 본 적이 없으니까요
-새삼스럽지만 충격적인 진실 하나, 나는 나를 한 번도 본 적 없다. 물론 매일 거울은 본다 하자만 거울 속 나는 엄밀히 말해 진짜 내가 아니다. 일단 좌우가 바뀌어 있다. 게다가 나는 시시각각 기분이 변하는 변덕스러운 존재이며 나 자신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모종의 기대와 욕망을 지닌 존재이다. 그 변덕과 기대와 욕망은 원래의 나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사진이나 동영상은? 거울보다는 정확하지만 거울을 볼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드리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내 안에 너 있다”며 사랑 고백했지만 모두 우리 안에 다른 누군가를 담고 있다.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면 그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면 각각의 눈동자 속엔 상대가 있다. 우리가 남을 바라보는 양태는 이 시의 손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남의 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런데 중요한 건 정작 남은 나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남이 나에게 갖는 관심이란 다분히 나를 대상화해놓고 품는 얄팍한 호기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남이 나를 제대로 보는 것 또한 기대라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누구인지 말살 수 있는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애정 어린 부모?
•쿨한 것과 쿨하게 보이고 있은 것은 정반대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태도가 쿨한 것이라면 쿨하게 보이고 싶은 것은 철저히 그 시선을 의식하는 심리다. 김소월의 ‘가는 길 / 그림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 시를 읽는데 학생이 ”그냥 쿨하게 떠나면 되지. 찌질하게.“해서 ”그럼 니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한테 쿠울하게 해어지자고 하면 니 기분이 어떨 것 같냐?“ 학생 왈 ”완전 열 받을 것 같아요!“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이별에서 마냥 쿨할 수 없다. 힘든 상황이라면 충분히 아파하는 사람이 쿨한 사람보다 건강하다. 좀 질척거려 보이면 어떤가.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이진명
내 너에게로 가노라. 질기고도 억센 밧줄을 풀고 발등에 깃털을 얹고 꽃을 들고
돌아가거라. 부드러이 가라 앉거라. 풀밭을 눕히는 순결한 바람이 되어,. 바람을 물들이는 하늘빛 오랜 영혼이 되어.
용서란 없던 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증오하기를 그만두는 것, 안이하게 화해하거나 묵인하지도 않고 증오심 없이 기억해두려고 하는 태도다. 용서할 수 없어 힘든 이유는 증오가 낳은 복수심 때문이다.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는 길이 무얼까 생각하다 보면 자신이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우리가 괴물과 싸우다 보면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된다.-피리드리히 니체<선악을 넘어서>
자존심이란 열등감의 짝꿍이었다. 질투와 열등감은 분명 사람을 힘들고 아프게 한다. 때로ㅓ는 삶을 앞으로 나가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 열등감에서 해방되기 위한 모든 노력 자체가 곧바로 성장과 성숙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에, 열등감은 자신의 밑바닥을 볼 수 잇게 하며 그리하여 그 바닥을 치고 올라올 수 있는 기회를 마려해주기도 하니까. 내가 책 읽기에 집착했던 이유를 보면 거기에 열등감과 질투가 있었다. 책 읽기를 통해 극복할 힘을 얻었다. 질투는 나의 힘이기도 했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갇혀 있는 사람은 열등감과 질투의 감옥에서 영원히 풀려나올 수 없다. 한 번 쪽팔리면 어떤가. 누가 그걸 들추면 상처가 되지만 상처 되기 싫으면 내 입으로 말해 버리면 된다. 나중에 나이 먹으면 쪽팔려한 게 더 쪽팔리지-김려령<완득이>창비 2008에서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국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중략>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김수영<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인간을 네 유형으로 분류하자면
①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인간-훌륭한 소수
② 강자에게도 강하고 약자에게도 강한 인간-강직하여 팍팍해 친구가 별로 없다
③ 강자에게도 약하고 약자에게도 약한 인간-거절 잘 못하는 가장 인간적인 유형
④ 강자에게도 약하고 약자에게도 강한 인간-상상만으로도 욕 한바탕 해주고 싶은 찌질한 인간. 연예인들에게 마구 해대는 악풀러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게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인 양 주장에 어이없어 웃음이 난다. 국민이 낸 세금과는 관께 없고 사적인 일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성격을 지녔을 뿐 그들은 상대적으로 약자다. 유명하고 돈 많이 벌어도 그들 존재 조건은 많은 이들의 시선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왕궁의 음탕에 대해서는 말 못하고 그들을 기어이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으로 만들어 욕을 해대는 것이다. 아! 이토록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찌질함이여!
-노을은 소멸을 논리가 아닌 직관으로 느끼게 한다. 오늘 하루가 이렇게 사라져 간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이다. 바다는 강의 최종 도착지지만 바다에 도착한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다. 한마디로 강의 소멸이며 죽음인 것, 그럼에도 강은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흘러간다. 소리 죽인 강을 보면 자신이 느끼는 서러움이 얼마나 자잘할 것인가를 깨달으면서 깊은 슬픔과 황홀한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 눈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흙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부모가 죽으면 산천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 참척(慘慽- 참혹한 비참)
시련과 고통을 통해 나에게 눈물을 알게 하는 존재가 신이라면 그 눈물을ㄹ 마지막까지 받아주는 존재도 결국 신이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과 힘이 되는가.
-아들을 잃어버린 시기는 가장 강하게 신을 부정한 시간이지만 우리가 무를 부정할 수 없다. 어떤 신적 존재가 있고 그가 어떤 분이라고 생각이 내게 있었으므로 “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끊임없이 질문 했지. 그 순간 내가 질문을 던질 상대가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한없이 낮고 비루해지면 신이 보인다. 물론 그겋게 해서 신을 보란 말은 아니다. -김혜리<그녀에게 말하다.>씨네 2008
•절정-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져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판다. 성냥을 다 팔기 전에는 집에 돌아갈 수 없다. 성냥을 다 팔아 돈을 가져가지 않으면 가족이라곤 한 분 뿐인 아버지가가 ㄸ때리고 내쫓을 것이기에. 소녀는 꽁꽁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성냥 한 개비를 긋는다. 그 순간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아름다운 환상이 소녀 눈앞에 펼쳐진다. 커다란 날고와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나타나고, 그 트리에 달린 불빛 가운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 행복한 곳으로 데려가달라며 남은 성냥을 모두 써버린다. 할머니에게 안겨 하늘로 올라간다, 다음 날 아침 소녀는 얼어 죽은 채고 발견된다. 지금이라면 아동 학대 죄로 쇠고랑을 찰 인간 말종인 아버지 때문에 힘없고 어린 소녀는 고생을 했다. 이육사의 절정을 읽을 때마다 이 동화가 떠오른다. 시인은 북방과 고원도 모자라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있다. 절망적 현실의 극한에서 초월적 존재에게 의지가고 존재의 힘을 간구하나 ‘무릎 꿇는 것은 고사하고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으니 기댈 수 없는 시인은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현실 직시에 대한 내면으로 눈 돌려 눈앞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가 되는 환상을 떠올릴 수밖에. 성냥팔이 소녀는 눈앞에 펼쳐진 환상을 통해 그 고통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폭력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소녀 뿐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독립 투사의 초인적 의지와 높은 정신을 지녔던 시인 이육사(이원록)
• “넌 꿈이 뭐니?”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넌 나중에 무슨 직업으로 먹고 살래?”
꿈이 직업과 동의어가 될 수 없다.
꿈은 내가 닮고 싶은 인격일 수도,
내가 찾고 싶은 삶의 의미일 수도,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삶의 전부일 수도 있는 것을
명함에 표기된 소속과 직위가 그냥 자기 자신인 줄 착각하면서 오직 그것들에서만 존재 근거를 찾는 삶.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배부른 소리. 다른 이의 꿈까지 함부로 모욕하는 삶, 적어도 이런 삶보다는 꿈을 견디며 사는 삶이 낫지 않을까. 꿈을 견디는 순간만큼은 내가 오롯이 나일 수 있으므로
•생의 감각- 김광섭
여명의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빛은 장마에
넘쳐흐르는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일상의 눈부신 기적
시인에게 생의 감각을 선물한 것은 어떤 특별한 사물이나 사건이 아닌 조이 울리고 별이 반짝이고 개가 짖고 꽃이 피는 일상이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시인에게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로 간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을을 선물했다.
•슬픔을 위하여-정호승
(중략) 슬픔이 우리들을 완성하기까지는
슬픔으로 가는 새벽길을 걸으며 기도하라
슬픔의 어머니를 만나 기도하라
-슬픔은 눈물이 아니라 칼이었고 칼은 누군가를 해하는 도구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이기적이고 오만한 욕망을 잘라내는 생명의 계시였다. 출산 후 아이들을 보니 성실한 아이와 뺀질거리는 아이가 신기하게도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모두 무사히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어마어마한 공통점을 지닌 장하고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태어나준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은혜를 베푼 것이다. 때대로 자신의 기분 하나 어쩌지 못해 빌빌거리는 허접스런 인격을 그래도 엄마라고 믿고 세상에 나와준, 새삼스러운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나를 완성시킨 것은 분명 슬픔이었다.
•거미-이면우
중략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중략)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은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중략)
-먹고 산다는 것의 익숙함
표볌이 초식동물을 쫓는 장면을 보며 엄청나게 빠른 표범이 사력을 다해 도망치는 초식동ㅁ물을 쫓아갈 때 본능적으로 초식동물이 잡히지 않기를 바랐다. 그건데 시간이 갈수로 마음이 바뀌었다. 표범은 먹잇감을 얻기 위해 마지막 있는 힘 다해 아홉 시간을 달렸으나 실패했다. 다음 날 표범은 결국 굶어죽었다. 표범이 달려야 했던 이유는 초식동물과 똑갘다. 심심해서도 아니고 이미 배부른데 더 먹고 싶어서도 아니고 식량을 저축하려는 것도 아니다. 탐욕이 아닌 오로지 생존이었다. 지방 도시의 어느 공장에서 홀로 시쓰기를 즐기는 보일러공의 꿈은 늦게 둔 어린 아들에게 ‘시인’이라는 아버지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를 눈여겨본 사장은 시를 쓰라고 휴가를 선물한다. 휴가 동안 그는 한 권의 분량의 시를 ㅆ쓰고 사장이 사비 들여 오탈자 많은 붉은 시집을 묶어준다. 창고의 비료포대 자루로 들어간 폐품이 가까스로 눈 밝은 이의 눈에 띄고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서 종내에는 문단에 알려진다. 이면우 시인과 그의 시집은 이렇게 태어났다. 말 그대로 발굴이었다.-한겨레 2009년 3월 7일자
•곡비는 양반집에 상이 났을 때 대신 울어주는 노비를 이른다.
•겨울 강가에서-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가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 특별한 끈으로 이어져 있다., 소외된 인간과 훼손된 자연이 아닌 인간과 자연의 완벽한 합일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다. 그저 순하고 착한 마음이 만들어내니 결국 서정시란 이런 것이다. 어린 눈발이 물속에서 녹아 애달파 하는 것은 그 어린 눈발을 향한 애달픈 사랑이 만들어내는 가장자리의 살얼음. 이 마법의 순간을 눈치 챈 시인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김승희
아침에 눈뜨면 세계가 있다
아침에 눈뜨면 당연의 세계가 있다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있다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거기에 있다
(중략)
-동물 숲속에 원숭이 왕이 네 발 달린 동물한테 . 새들한테 자기처럼 두 발로 걸어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 한 마리가 “나는 날아다닐 거야”하며 날았거 사슴이 “나는 뛰어다닐 거야”하며 뛰어 달아났다. 이들 잡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원숭이 왕> 동화. ‘왜 그래?’라고 묻는 아이들은 시인이다.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잠재성 풍부한 시인이자 혁명가들은 생활인이 도니다. 플라톤<구가>는 통치자 계급, 군인 계급, 생산자 계급이 철저하게 분화되어 직분을 다하는 계급사회였는데 시인들은 신분 질서를 위협하는 불온한 존래로 여겼다. 원숭이가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능력을 지녀서가 아니다. 모든 네발짐승들과 새들이 두 발로 걸었기 때문이다.
•독수리(독수리, 콘들, 백조, 제비, 올빼미, 불새) 오형제- 권혁웅
(중략)
4, 제비-정복이는 꼬마 웨이터였다. 누나와 이름 모르는 아저씨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소식을 주워 날랐다 봄날은 오지 않고 박꽃도 피지 않았으며 곰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그냥, 정복이만 바빳다
-독수리 오형제는 다섯 조류가 모인 의남매다 다섯이 모여 불새로 변해 싸운다. 곰 인형을 안고 꿈나라로 가는 아이도 있지만 쉴새없이 곰 인형의 눈알을 붙여야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만화 속의 독수리 오형제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불새가 되지만 현실 속 독수리 오형제는 소방차가 접근할 수 없는 달동네에 살았기에 불새가 되었다.
•포기는 패배주의적인 체념이 아닌 견고한 사회구조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는 용기의 다른 이름이다.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것이 안주라면 거기에서 이탈하는 것은 안주를 거부하고 기꺼이 자기만의 궤도를 찾아가는 용기가 필요한 df이다. 그 용기가 가슴 저리게 부럽고 눈부시게 다가온다.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래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
-바야흐로 설득이 중요한 시대다. 민주주의는 강압이 아닌 설득에 의한 소통을 기반으로 한다. 게다가 남의 주머니에서 돈 나오게 하는 것에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자본주의 사회다. 이 땅에서 잘살기 위해서는 설득을 고군분투 할 수밖에 원치는 않아도 수많은 종류의 설득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가끔은 설득이 아닌 선동에 취하고 싶다. 선동은 이 시처럼 아름다워야 한다. 좋은 예술은 그 자체로 좋은 선동임을 보여주는 시다.
•간-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가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씨름 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워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토끼를 용궁으로 이근 것은 외부의 유혹이 아닌 토끼 자신의 욕망이다. 토끼는 자라에게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제 발로 갔다. 그의 내면에 있던 물질적 풍요의 일신의 편안함을 향한 지극히 세속적 욕망, 자신을 둘러싼 구질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욕망이 그의 팔랑귀를 펄럭이게 했다. 그러난 진정한 파라다이스라 믿었던 곳은 무능하고 탐욕적인 용왕과 권모술수를 부리는 대신들로 비정한 세계다. 거기서 죽음을 강요받는다. 강자의 탐욕을 위해 도구적 수단이 되어버린 토끼, 따라서 크게 훼손된 그의 자존심(간)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토끼가 습한 간을 햇빛 바른 바위 위에 발려야 하는 이유, 그것을 둘러리를 빙빙 돌며 지켜야 하는 이유다. 토끼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용궁의 유혹에 안 덜어진다며 스스로에게 다짐해야 한다. 원래 신화에서 독수리는 그에게 고통만을 주는 존재인데 이 시에 독수리는 내가 오래 기르는 여원 존재다. 독수리는 앤 안의 정신적 자아로 육체적 자아인 나를 끊임없이 각성시키며 성찰하게 만드는 존재인 것, 프로메테우스는 독수리에게 자신의 간을 뜯어 내줌으로써 고통을 당한다기보다는 고통을 선택한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노래에서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다.“ 했다. 정말 21세기가 나를 원하고 있을까? 지켜야 할 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인내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가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데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천지 창조의 장엄한 순간부터 산맥이 형성되는 과정을 지나 비로소 인간 역사의 시간으로 진입하는 시의 전반부를 읽다 보면 수십만 배속 카메라로 찍은 장관을 보는 것 같다. 이 장구한 시간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곳은 바로 광야라는 공대하고 신성한 공간이다. ‘눈 내리고’에서 알 수 있듯 모든 생명이 움츠리고 있는 혹독한 시간이다. 이곳에서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겠다는 것은 열매를 거두는 것이 아닌 씨 뿌림이 시인의 몫으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그 일은 추운 광야에 혼자 서서 참으로 미약한 힘으로 하기에 가난하다. 실제 이 노래를 목 놓아 부른 사람은 자신이 아닌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될 것이기에
사람들이 씨를 뿌리는 것은 그 열매를 거두려는 목적이 있어서다. 씨를 뿌리기보다 열매를 거두는 살마이 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 씨 뿌리는 수고로움은 고달픈 법이고 열매를 거두는 성취감은 달콤한 법. 하지만 간혹 열매를 덩게 되리라는 그 어떤 희망이나 기약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그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기도 한다.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 것을 알려면 여러 해 동안 행동을 관찰하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그 행동을 이끌어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난 것이다.-장지오노<나무를 심은 사람> 두레, 2005 서문에서
이육사(이원록)이 본명 독립운동 감옥 수인 번호가64(이륙사)
•묘비명-김광규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새ㅔ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모멸감 때문에 사람이 죽고 싶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으며 분노와 함게 밀려드는 설명할 수 없는 슬픔으로 진저리쳤다.
•폭포-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께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자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초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폭포는 떨어지는 물이다. 수많은 물방울의 부서짐이다. 어떤 사람이 이 물과 같은 존재라면 옴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감수하는 독하고 무서운 사람이다. 물소리는 물방울이 서로 부딪쳐 개지고 부서지는 소리다. 흔히 맑고 시원하다 느끼는 소리가 사실 물에겐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다. 나타와 안정에 빠져 매너리즘에 갇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삶은 나를 갉아먹는 칼날이다. 가끔 폭포를 볼 필요가 있다.
-엄마 전에 어떤 액에서 에스키모들의 늑대 사냥법을 읽었다. 늑대의 고기와 모피가 중요한 생계 수단인 에스키모들은 늑대를 직접 사냥하지 않는다. 대신 얼음 바닥에 다른 동물의 피를 묻힌 칼을 거꾸로 꽂아놓고 숨는다. 늑대가 냄새를 맡고 제 발로 다가와 칼을 핥는다. 처음에는 칼날에 묻는 피만 핥지만 차츰 칼날을 핥게 되고, 결국에는 칼날에 혀를 배인다. 그런데 이미 파 맛에 취해 그 피가 지자기 피인 줄 모르고 계속 핥아 몸에서 피가 흘러 점점 더 목이 마른 늑대들은 더 격렬하게 피를 핥아먹고 과다출혈로 한 마리씩 쓰러져 죽어간다. 그때서야 에스키모들은 천천히 다가와 죽은 늑대들을 가져간다. 난 늑대가 내 모습인 것 같았다. 칼날에 혀를 베이면서 자기 피 맛에 취하는 것처럼 나타와 안정에 빠져 극복의 노력 없이 매너리즘에 갖히는 나, 조금씩 나를 갉아먹는 칼날을 버려야지.
이슬람 경전엔 지금 내가 하려는
① 그 말이 진실한가.
② 그 말이 필요한가.
③ 그 말이 친절한가를 미리 점검해보라는 가르침이 있다. 말을 적게 하라는 게다.
① 진실함- 역사는 사실을 기술하고 문학은 진실을 이야기 한다
② 필요함-사실 필요는 실용의 범위와 수준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인간은 필요의 피조물이 아니라 욕망의피조물이라고 바슐라르가 말했던가. 이 욕망을 의미라 해도 좋고 재미나 감동이라 해도 좋다. 즉 진정한 필요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욕망과 의미, 재미와 감동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일 것이다. 친철함은 성격으로만 생각할 수 있다. 따뜻하고 상냥한 말투, 칭찬하려는 마음이다. 하지만 언어활동에서의 친절함이란 이런 것들이 아니다. 허황된 말 빈말이 얼마나 많은데 친절한 말이란 간절한 말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꾸 아름다운 것을 보려는 이유는 그걸 통해 자신 또한 아름다워지고 싶어서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그와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우정은 함께 예찬하는 가운데서만 생겨나는 것이다고 미셀 투르나가 말했다. 선함을 담보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시!
그 말이 진실한가
• 슬픔이 기쁨에게-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른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슬픔이 사랑보다 소중한 이유는 개인적인 사랑을 넘어선 이 세상 낮은 곳은 곳을 향한 보다 큰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큰 사랑에는 당연히 인내와 희생, 즉 기다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