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꽃 소년> 인향만리에 취하다 / 양선례
『눈물꽃 소년』을 읽었다. 잠들기 전 비몽사몽으로 조금씩 읽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늦은 밤에 몰아서 읽었다. 박노해 시인의 첫 자전 수필 ‘내 어린 날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시인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33편의 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벌교에서 광주까지 아버지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차로 여행한다. 아버지는 중간 기착지에서 나주 배를 열서너 개 사서 깎은 뒤, 같은 칸에 탄 사람 모두에게 조금씩 나눠 준다. 그리고는 마지막 남은 하나를 통째로 깎아 아들에게 건네고, 아버지는 남은 배 깡지를 베어 문다. 단물이 흐르는 큼직한 배 하나를 먹으며 시인은 달콤한 충만감과 함께 자긍심이 가득 차오른다.
외지에서 주로 생활하는 아버지 대신 품 넓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평이(박노해 시인의 본명은 박기평이다.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의 필명이다.)를 보살핀다. 할머니는 몸살이 심한 정미소댁에게 찹쌀에 낙지를 고아 먹이고, 젖몸살이 난 젊은 아낙에게는 애저탕을 끓여 평이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책은 방물장수, 당골네, 연이 누나, 수그리 선생님 등 어렵고 고단한 살림이지만 내일은 더 나으리라는 희망을 품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할머니에 이어 아버지마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자, 소년의 여린 감수성을 감싸 안으며 품어 준 건 이웃이었다. 외롭고 말이 없던 소년의 결핍을 지지하고 응원해 준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매부터 드는 나쁜 어른도 나온다. 그 사람이 교사라서, 책을 읽으면서 조금 부끄러웠다.
누나는 광주로, 형은 서울로, 엄마는 학비를 벌러 타지로 떠난다. 학교가 끝나도 텅 빈 집으로 가기 싫었던 열한 살 소년은 몇 달에 걸쳐 학교 도서실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쌓인 책이란 책은 모두 다 씹어 삼킨다.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는 소년을 위하여 퇴근도 못 하고 늦게까지 도서실 문을 열어 두고 그 소년의 책상에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등불을 놓아 주는 여선생님도 있었다. 시인은 당시의 자신을 두고 ‘어두운 잠실 속 누에가 푸른 뽕잎을 사각사각 먹어 치우듯 사락사락 책장을 먹어 삼켰다.’고 표현한다. 그곳에서 그는 운명처럼 강소천의 시를 접하고,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다. <손바닥에 불났다/ 월사금이 늦어서/ 산에 길에 단풍 든 날/ 붉은 손바닥을 본다/ 엄니가 볼 것만 같아/ 얼른 주먹을 쥔다>
엄마는 여천 공단에 돈 벌러 가서 1주일에 한 번씩 집에 왔다. 소년은 누나와 어린 여동생과 저녁이면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살아간다. 저자는 꿈결처럼 아련하게 저자 특유의 짤막짤막한 문체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특별히 슬픈 장면이 나오는 것이 아닌 데도 소년의 외로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신기한 책이었다.
시인은 '이 책은 나의 소년 시대 이야기다. 1960년대, 그러니까 불과 두 세대 전의 이야기이다. (중략) 언제부턴가 너무 빨리 잃어버린 원형의 것들이, 인간성의 순수가, 이토록 순정하고 기품 있는 흙가슴의 사람들이 바로 얼마 전까지 있었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가슴 시린 나의 풍경이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다.
고흥군 동강면에 가면 일제시대에 지어진 면사무소를 단장하여 새로 개관한 <동강 역사 문화관>이 있다. 그곳에는 자랑스런 동강인 셋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박노해 시인이다. 그는 함평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이 지역에 이사하여 선린상고(야간)에 진학하기 전까지 살았다.
시인이 1984년 스물일곱 살에 펴낸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독재 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되었다. 1994년 군부 정권에서 사형을 구형받아 무기수로 독방에 갇혔다. 7년 6개월 만인 1998년에 석방되어 이후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복원됐으나 국가 보상금을 거부했다. 2000년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 하고 비영리단체 <나눔 문화>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시집 세 권과 『사람 만이 희망이다』는 옥중 에세이집, 2022년과 23년에는 사진 에세이집과 경구집을 펴냈으나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린 시절을 어찌 이리 세세하게 기억하는지, 또 한편으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그 시절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처럼 아득한 게 놀라웠다. 이 책이 내게 특별하게 와 닿은 건 그는 작년까지 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졸업생이었다. 글에 등장하는 노동산, 동강장, 갯벌, 동강공소, 벌교역은 풍경을 그릴 수 있으리만치 익숙하고, 행간에 쓰인 사투리는 정겨웠다. 그는 작년에 100주년을 맞은 모교가 <동강초 100년사>를 발간하자,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시를 써서 보내 주었다. 그를 이름으로만 기억하는, 시를 잘 모르는 내게도 시인의 진심이 전해져서 전문 작가에게 글과 그림을 의뢰하고 작품을 표구하여 현관에 걸었다. 책을 읽고 나니 왜 그가 이런 시를 썼는지 이해하고도 남았다.
아이는/ 온 우주를 한껏 머금은 장엄한 존재// 아무도 모른다/ 이 아이가 누구이고, 왜 이곳에 왔고,/ 그 무엇이 되어 어디로 나아갈지// 지금 작고 갓난해도/ 영원으로부터 온 아이는/ 이미 다 가지고 여기 왔으니//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어주고,/ ‘뜨거운 믿음의 침묵’으로 눈물의 기도를 바칠 뿐이니// 아이야, 착하고 강하여라/ 사랑이 많고 지혜로워라/ 아름답고 생생하여라// 맘껏 뛰놀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네 삶을 망치는 것들과 싸워가라// 언제까지나 네 마음 깊은 곳에/ 하늘 빛과 힘이 끊이지 않기를// 네가 여기 와주어 감사하다 사랑한다(‘동강의 아이들아’ 전문, 박노해 시)
‘화향백리(花香百里,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인향만리(人香萬里,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라고 하였다. 박노해 시인의 향기가 진하다.
첫댓글 향기가 진하게 전해오네요.
그런 선배님이 계시다니 자랑스럽겠네요.
제가 잠시 머문 학교의 선배이죠.
제 모교의 선배가 아닌 걸요?
저도 <눈물꽃 소년> 박노해 첫 자전 수필 도서관에서 빌려와 세 번 읽었어요.
그 며칠 동안 시인의 정서에 흠뻑 취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마치 기평이가 된 듯이,
'인향만리' 그래요. 온갖 좋은 향기 중에 사람 향기가 제일이지요.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등불 같은 존재, 양선례 선생님 향기는 최고일거예요.
제가 인정합니다.
<눈물꽃 소년> 또 읽고 싶네요.
아니. 이런 찬사를. 하하.
이름이 같다고 너무 봐 주시는 것 아닌가요?
저는 두 번 읽었습니다.
박노해라는 이름이 그런 뜻인 줄 처음 알았네요. '인향만리'가 되도록 더 노력해야겠어요.
제 글에 적지는 않았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기질이 어린 시절부터 있었답니다.
한 밤중에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공부합니다. 읽는 내내 몸이 떨립니다. 그리고 너무 안락하게 사는 내가 부끄럽습니다.
이 책을 따져 보며 읽어봐야 겠습니다. 좋은 책 안내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책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특별한 인연이라서 반갑게 읽었답니다.
저의 독서 폭이 좁음을 느낍니다. 좋은 책 추천 고맙습니다.
좁다니요? 어려운 책 많이 읽으시던 걸요. 취향이 다를 뿐이지요. 고맙습니다.
이름만 익숙한 시인이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많은 걸 알았습니다. 산문집, 시 챙겨서 읽어보겠습니댜. 푹 빠져서 읽은 선생님 글도 좋았습니다.
다작하는 분은 아니더군요.
책을 보니 어린 시절에 그 싹은 이미 심겨져 있었습니다만.
읽는 내내 가슴이 절절했습니다. 시인의 이름은 익혀 알고 있으나 작품은 읽지 못했습니다.
<눈물꽃 소년> 꼭 읽어 보려고 합니다. 동강 후배들에게 보낸 시도 명작이네요. 복사해서
두고두고 음미하겠습니다.
저도 그렇답니다.
후배를 향한 사랑이 절절하여 <동강사 100년>에만 적기에는 아쉬웠습니다.
복사까지 하신다니 고맙습니다.
아, 내 심장.
그래도 잘 붙어있지요?
박노해 시인을 응원하고 있는지라 선생님 글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네요
응원하시는군요?
저는 작년의 인연으로 처음으로 이 분의 책을 읽었답니다.
고문도 엄청 당했고, 독방에서 그 긴 세월을 갇혀서 지냈다네요.
쓰지는 않았지만 세상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기질이 초등학생 때부터 다분했답니다.
우리 사회를 위해 고민한 시인으로 사신 작가의 글은 어떨지 궁금하군요. 박시인이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하고요. 사회운동을 했던 분들이 빨리 떠나는 걸 보면 안타깝더라고요. 김민기, 장기표선생님...
김근태도 한 자리 주시지요.
소신을 지키고 살기가 아마도 너무 어려워서 그러지 않을까요?
흙가슴의 순수한 사람들 이야기가 따스하게 그려졌어요.
동향이시니 아마도 더 감동으로 다가오리라 여겨집니다.
그의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도 좋았어요.
바위처럼 강하면서도 엄마 품처럼 따듯한 시인이죠.
'눈물 꽃 소년'도 읽어봐야겠어요.
평론가가 쓴 글인줄 알았습니다. 두 번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