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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스페인 기행 2018년 4월 6일. 금요일 비.
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년 그리스 문학 대표작가-크레타 이라클리온 출생,
백혈병으로 사망
출-열린 책들
이 책이 쓰인 것은 1930년대이지만 아직도 그의 관점은 유효하다. 그가 스페인을 여행하며 보고 느꼈던 기독교 문화, 유대 문화, 아랍 문화와 혼합은 매우 중요하다. 1492년 콜럼버스기 신대륙을 발견하던 해, 스페인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8세기에 걸친 아랍의 지배에서 벗어나 스페인이 온전한 기독교 국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여행을 기록하는 것은 오만한 자아를 인간이라는 고통 받는 편력 군대 속으로 던져 담금질하여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ㆍ스페인은 슬픈 얼굴의 기사ㆍ돈키호테의 열정적이면서 긴 얼굴과 실용주의자인 산초의 멍청한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포도밭 포도를 따는 노동자입니다. 당신은요?”
“나 역시 노동자입니다. 포도밭과는 다른 일을 하지요.”
그는 나에게 양배추 한 조각을 주었다. 나도 씹어 먹었다,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웃음과 무의미한 대화, 보잘 것 없는 양파 한 조각이 그 간격을 메운 것이다.
ㆍ새들은 깃털을 털었으며 우리 인간들은 진흙 속의 세상에서 행복해했다.
ㆍ스페인을 대표하는 인물은 성스러운 순교자 돈키호테와 신비주의자 아내 성녀 테레사다. 스페인은 안전과 복지를 우습게 여기며 절대 손에 넣을 수 없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영원히 좇는다.
ㆍ 진보적 삶이 내 젊은 시절에서 현대를 사는 또 다른 젊은이에게 옮겨갔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난 이런 빠른 리듬을 좋아한다. 나의 인생이 가능한 한 많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다. 그래서 나보다 젊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그들이 젊은 시절에 사랑했던 것들을 비웃고 야유하는 것을 보면 큰 기쁨이다.
ㆍ 돈키호테는 기사였다. 오래된 책을 읽었고 녹슨 칼을 지니고 투구 대신 이발사의 세면기를 썼고 늙은 말을 타고 세상을 구하러 다녔다. 하지만 오늘날 그는 기술자다. 기술대학에서 공부했고 학위를 받고 전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풍차를 보고 그것들을 다이너마이트로 해체한다. 증기 방앗간을 짓고, 도로와 다리, 철도역과 공항을 세운다. 그는 현대인이다. 그리고 증기 기관차, 자동차, 비행기를 탄다. 지금의 돈키호테가 옛날 돈키호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 그게 소용 있나? 물론이다. 더 이상 구경거리가 아니다. 그러니 그를 보려 온 관광객들은 그냥 돈을 허비한다. 스페인은 연극 무대가 아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현대인이다. 우리의 영혼인 돈키호테는 방패와 갑옷으로 무장하고 세상을 구하러 나온 영웅이지만 지금 돈키호테는 안경을 쓰고 넓고 편한 신발과 부드러운 칼라가 달린 옷을 입는다. 기계를 신뢰하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 알며, 행복과 신속한 즐거움이 좋다고 믿는다. 자기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이익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이다.
산초는 외국인이 만들어낸 가장 큰 실수다. 돈키호테와 산호는 하나다. 둘은 스페인의 통일된 하나의 정신을 이룬다. 세르반테스는 스페인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스페인 정신을 두 개로 나누어 풍요로운 조화를 이룬다. 건조하고 단단한 껍질 속에 대조적 두 개의 힘이 한 쌍의 아몬드 알처럼 서로 껴안고 있다. ‘오직 우리 내면에 희망하는 것만이 현실이고 살아 있는 것이다.’ 돈키호테가 외쳤다. 산초는‘오직 우리가 보고 만지는 것만이 현실이고 살아있는 것이다.주인님 당신이 말하는 것은 단지 말이고 말뿐입니다.’ 이것이 돈키호테, 즉 스페인의 진짜 뿌리 깊은 투쟁이다. 스페인의 영혼은 계절에 따라 돈키호테 같은 산초가 된다. 마드리드에서 마천루를 보며 현대식 세상 뒤로 조잡한 산초같은 외곽이 모습을 드러내면 슬픔으로 초췌해진 성도다운 얼굴, 화사하고 황홀한 스페인의 위대한 수호자 돈키호테를 보라.
ㆍ 스페인 사람들은 종합적 판단을 할 수 있으며 마치 그것만이 자신에게 소중한 일인 것처럼 기쁘게 그런 일을 한다. 비판적 분석의 경우라면 어려워하고 마음 내켜 하지도 않는다.
<부르고스>-포탑과 총구멍과 뜨거운 냄비 흔적이 있는 군사 요새.
카스티야(이 말은 성, 요새를 뜻한다.)의 속담에 ‘스페인 사람들은 말처럼 뛰어다니거나 노새처럼 가만히 서 있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차분하게 일정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천성에 반하는 불쾌한 일로 안다. 카스티야( 이 말은 성, 요새를 뜻한다.)는 스페인의 요새, 돌의 심장부다. 카스티야의 머리인 부르고스를 출발로 백작과 왕들은 스페인 땅에서 아랍인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성자 프란체스코는 어린 거지나 하느님의 빈민으로 불리고 싶어 했다. 그의 제자 엘리아가 아시시에 3층짜리 성프란체스코 수도원을 지어 값비싼 벽화로 칠하고 금박 입힌 성서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웠다. 프란체스코는 불편하며 ‘이곳은 우리 그리스도가 태어난 마구간이 아니다. 왕궁이며 요새다.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그런데 수도원은 그 성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야비한 엘리아는 프란체스코에게 ‘노망 났어’하며 투덜거렸다. 노예들 사이에서 태어난 하느님은 굴속에 살면서 지하 묘지의 두더지처럼 자신을 숨겼다. 얼마 후 노예들은 강해졌고 해방되었으며 지하 통로에서 일어나 왕궁을 점령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과 함께 강해졌고 자유의 몸이 되었으며 어두운 지하 감옥에서 나의 왕궁과 요새에서 왕권을 이루셨다. 부르고스의 대성당도 군사 요새이며 사자이 굴이고 대홍수 이전의 괴물이다. 나는 고딕 양식의 교회가 내뿜는 혼란과 황홀함을 느꼈다. 그가 돌을 만지자 돌은 생명을 되찾았다. 그것은 포도나무나 동물, 카메라가 되었다. 북부 지방 안개 속에 자라는 장미처럼 어슴푸레한 교회 창문이 열렸다. 장식을 바라보다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자, 손을 뻗어 그것을 만져보았다. 금을 입힌 벽감 속에 실제 사람의 피부와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실물 크기의 커다란 그림들과 서 있었다. 그리스도의 몸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니고데모의 작품이었다. 십자군은 그것을 여기로 가져와 흰 레이스 옷을 입혔고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씌웠고 맨가슴을 드러내어 피 흐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이 대성당에서 스페인의 정신이 동경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두 영웅, 서로 완전히 극단을 이루는 두 사람이 만난다. 엘시드는 대담성과 용감성, 격렬함, 남자다운 삶의 표현이고 그 옆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고통과 인내, 희생과 여성스러움의 표현이다.
<스페인 민요 속 성모 마리아 모습>
ㆍ스페인 사람의 종교는 추상적이거나 육체 없는 교리가 아니다. 하느님의 상처로 뛰어든 인간의 손이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에게 성모 마리아는 흰 구름을 밝고 있는 가까이하기 어려운 동정녀가 아니다. 그녀는 저녁 무렵 현관 계단에 앉아 있거나 실 잦는 안달루시아나 카스티야 출신의 작은 시골 처녀와 같다. 그래서 안달루시아의 한 민요는 ‘성모 마리아가 로즈메리 속에서 아기 예수의 옷을 뜨고 있지요‘라고 노래한다. 스페인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행복한 성인, 승리의 하느님을 볼 수 없다. 그런 하느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떻게 우리의 기도가 그 하느님에게 미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우리 중 하나다. 그는 우리와 거의 같은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여성들은 부당하게 죽은 자신의 아들을 팔에 안고 있는 <슬픔에 잠긴 성모>가 된다. 대성당 어슴푸레한 불빛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여인들을 보았다. 그녀들의 손목은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듯 십자 모양을 긋고 있었다. 또 어떤 여자는 야체 맬론, 부구니 속에서 비죽 튀어나온 물고기 꼬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 아이인양 꼭 쥐고 감정에 압도되어 무릎을 꿇은 채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어느 순간 여자들은 모두 자기 아이를 안고 슬퍼하는 어머니가 된다. 이것은 가장 오래되고 심오하며 가장 어머니다운 여인들의 모습이다. 스페인 여인의 얼굴은 진짜 감각의 본질인 고통과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하느님은 여인의 자궁 속에서 사람이 되었을까? 이 가장 단순한 신비를 이곳 스페인에서는 경외감으로 몸서리치며 바라본다. 자물쇠 부근에는 목을 위로 뻗고 자기 노래로 자물쇠가 열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노래하는 새 한 마리가 새겨져 있다.
ㆍ1600년경에 세르반테스와 스페인은 육지로 둘러싸인 조용한 대해에서 난파되어 닻을 내린 상태였다. 그런 다음 절망 속에서 그곳 감옥과 세르반테스의 쓰라린 가슴 속에서 돈키호태가 태어났다. 세르반테스는 젊은 날의 꿈과 스페인이 젊었을 때 꾸었던 꿈을 늙은 기사 머릿속에 집어넣었고, 그를 끔찍하고 냉혹한 현실과 함께 전쟁터로 내보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고통을 보며 함께 웃고 울었다. 왜면 세르반테스 자신의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모든 스페인도 웃고 울었다. 왜냐면 위대한 사상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결국은 수백 곳에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종이 갑옷을 입은 기사는 바로 스페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돈키호테를 사랑했다. 왜냐면 더 이상 어떤 믿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즐겁게 자국민들을 현실로 안전하게 데려가는 최선의 방법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리라 여겨서다. 돈키호테는 몰락 속에 있는 카스티야의 정신을 달래 주었다. 예술은 견딜 수 없이 슬픈 위기의 순간에 있던 스페인에게 그 어느 것보다도 값진 선물을 주었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이곳 산 위에서 고통 받고 싸웠던 기사를 떠올리며 여행하고 있다. 오딧세우스. 햄릿, 파우스트와 더불어 그는 인간 영혼에 깊이 뿌리박힌 존재다. 나는 위대한 대가의 그림자와 함께 카스티야의 중심부인 바야도리들로 들어갔다. 화려한 교화와 황폐해진 거대한 궁전들로 가득한 이곳 스페인 엣 수도는 연인들이 모두 죽어 버리자 살아남기 위해 산업 전선에 뛰어들어 장사 했던 몰락한 공주와 같은 모습이었다. 작고 초라한 집, 습기, 웃자란 담쟁이덩굴, 어두운 유리창과 철제 격자창 집은 바이돌리드의 심장부에 있는데 그곳에서 세르반테스가 살았고 고통을 겪었다.
ㆍ나무 조각가 에르난데스는 예수의 비극적 장례식 행렬을 피 범벅이 된 벌거벗은 예수와 야유 보내는 상여꾼과 평민을 새겼다. 그 나무는 눈부시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경외심으로 가득 찼다. 시간이 되돌아가 우리를 먼지 많고 피비린내 나는 예루살렘의 오르막길에 갖다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스도의 수난이 되살아나 있었다. 피가 그리스도의 상처에서 세차게 솟구쳤다 피를 사랑하는 스페인 사람은 그것을 볼 대마다 흥분하고 그의 가장 역사 깊고 심오한 미덕이 발동하여 그는 비웃음과 죽음을 무시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스페인 사람에게 예수는 돈키호테의 다른 면, 즉 가장 애처롭고 내밀하며 신성한 면이 아닐까?
<스페인 특징>
스페인과 서유럽 사이에 깊은 심연이 가로 놓여 있다. 서유럽은 논리적이며 균형적이다. 분노가 치밀 때조차 세련되고 우아한 것을 좋아하고, 열정을 논리적이고 냉정한 틀 속에 종속시킨다. 지적 법칙으로 훈육되며 지성이 노력의 절정이라 외친다. 반면 스페인 정신은 서유럽과 달리 완전히 불균형적이고 거칠며 격렬하게 움직이고 폭발적이다. 그것은 논리와 고정된 규범을 비웃고, 열정을 영원한 삶과 예술의 유일한 원천으로 주장한다.
ㆍ죽음은 죽고 그림자는 지나가는 법, 베푸는 자는 받을 것이고 지금껏 살아온 자는 여전히 살 것이다.
ㆍ진정한 스페인은 여전히 마음속에 유목민적 삶에 대한 깊은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열정, 욕망, 삶에 따스한 포옹, 그리고 모든 것이 무라는 인식, 즉 우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만이 후계자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무상, 무익한 순간을 가장 강렬하게 살고 있다.
<성녀 테레사가 있는 아빌라>
테레사는 ‘사람은 힘이다.’를 말하기 좋아했다. 저 아래 도랑과 더러운 먼지와 진흙 구덩이 속에서 행해지는 매일 매일의 전투였다. 그것이 성녀 테레사가 싸우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배고픔과 불평과 위협을 조롱하듯 끈기 있게 맞섰다. 빵이 다 떨어지면‘이게 더 나아요. 더 좋아요! 몸이 살찌면 영혼은 말라붙게 되거든요.’ 빵이 없으면 빵 굽는 펜을 잡고 탬버린처럼 흔들며 노래하고 춤췄다. ‘모든 것은 무야!’하는 말을 종종 외치면서. 그가 춤추다 쓰러져 일어났을 때 ‘나는 죽습니다. 왜냐면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는 송시를 썼다. 첫 번째 의식 상실이었다.
<에스코리알>
이교도들이 고문대에서 성 라우렌티우스를 불 고문하자 ‘이쪽은 잘 구워졌소. 이제 다른 쪽으로 나를 뒤집어 주시오!’했다. 에스코리알 험준한 바위 사이에 이 성자를 기라는 교화가 있다. 가을이라 땅에는 샛노란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축축한 땅 위에서, 갓 만들어 낸 플로린, 금화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햇빛이 비치자 우중충한 수도원이 환해졌고 미소 짓는 것 같았다.
ㆍ따뜻한 사람들은 착하건 나쁘건 모두 나의 천국으로 들어온다. 차가운 사람들은 나의 지옥으로 들어온다. 지옥의 맨 밑바닥에는 차갑고 착한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다. 사제들의 얼굴을 보며 그들은 나의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ㆍ인간의 마음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붙잡으려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진다. 부흥기 초기에 인간은 어린아이처럼 조바심을 낸다. 혼돈 상태에서 투쟁하는데 그런 상태는 결실 맺기 아주 좋고 가끔씩은 번뜩이는 천재성이 통용되기도 한다.
<마드리드>
태양은 마드리드 위로 떠오르고 마드리드 위로 진다. 달이 지나다가 마드리드의 곡선미에 사로잡힌다. 중심부에는 미국식 마천루가 있다. 주요 간선도로 주변에는 모세 혈관처럼 가난하고 빈약한 좁은 길이 뻗어 있다. 나는 불빛 가득한 교회로 들어갔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한쪽에 있다. 손과 발과 갈빗대에는 커다란 붉은 구멍이 패여 있었다. 허리를 굽혀 나무로 조각된 몸과 진홍색 상처에 키스했다. 어떤 여자들은 끊임없이 한숨을 쉬며 자기 가슴을 쳤다. 나는 상쾌한 공기를 마시려고 거리로 나왔다.
ㆍ문예 부흥 시대에는 흔히 그렇듯이, 인간의 마음은 가능한 많은 것을 붙잡으려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진다. 부흥기 초기에 인간은 어린아이처럼 조바심을 낸다. 혼돈의 상태에서 투쟁하다 결실 맺기에 좋고 번뜩이는 천재성이 통용되기도 한다.
ㆍ스페인에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토피아적 생각이다. 본래 정치는 무자비하고 독단적인 권력이다. 민주 박애주의를 추구하지만 굴욕적이다. 왜냐면 우리는 우리 내면 삶에서 모두 왕이기 때문이다. 가나베트는 보다 심오한 방법으로 국가를 구하려고 했다. “만일 내가 국가를 개혁하라는 부탁을 받으면 주저앉고 남녀 관계를 개혁하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가족과 사회와 국가는 이내 스스로 개혁될 것이다.
<우나무노의 설교>
ㆍ스페인이 유럽화 되어야 하는지, 스페인 경계 안에 남아야 하는지의 유명한 딜레마는 우나무노가 해결하였다. 그것은 <유럽이 스페인 화 되어야 한다>는 특유의 논리였다.
“우리는 아프리카인이다. 전기나 철도, 전화같이 그들이 발견한 것들을 사용하지만 우리의 정신은 다르다. 신비적이고 비극적이다. 유럽의 문화에 적응할 능력이 없다. 그런 무력함이 우리에게 새 문화를 만들 힘을 줄 것이다. 하느님, 우리를 풍자가나 회의주의자나 과학자로 만들지 않은 당신께 감사합니다.” 우나무노의 메시지는 정치, 민족 이상을 초월한 종교가 된다. 스페인과 모든 세계는 구원받을 것이다 삶은 논리나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다. 불멸이다. 불멸의 철학적 의미가 아니라 뼈와 살로 이루어진 개인의 불멸이다. 우나무노는 현재 스페인의 가장 현명한 자도, 가장 편견 없고 너그러운 자도, 가장 위대한 작가나 철학자도 아니다. 그는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지닌 사람이다. 그가 옛날 돈키호테의 가장 충실하고 생생한 화신이기 때문이다.
ㆍ어느 날 저녁 마드리드의 큰 거리, 파라도 미술관 쪽으로 내려갔다. 보름달이 나무들 사이로 떠 있었다. 오가는 이를 비추었다. 나는 그것의 참을 수 없는 달콤삽살함을 결코 잊지 못한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너무 강해지면 자기 자신이 스스로 정에 녹아서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저녁 산들바람이 프라도 미술관의 정원에서 향긋하게 불어오면서 여인의 향기를 흩날리고 있었다. 봄이 온 것이다.
<톨레도>
펑퍼짐하고 뚱뚱한 유모 같은 대성당이 그토록 멋지다 했나? 먼지로 뒤덮이고 썩어 문드러진 이 다리가 그토록 자랑하는 알칸타라인가? 하루는 아켈로우스 강둑을 따라 걷다가 파랑새가 갈대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농부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저 새 이름이 뭐지요?”
농부는 경멸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중얼거렸다. “왜 저 따위로 골치 아프게 해요? 그건 먹을 수 있는 새가 아니요!”
오래된 교회들, 폐호가 된 궁전들, 페허 사이로 조그마한 고개를 쳐들고 있는 향기로운 인동 덩굴을 보자. 나는 옛날 오브리아카에 있는 엘 그레코의 집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림을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그 그림들을 보며 화려한 색상과 영혼이 소진된 창백한 육체를 넋 잃고 봤다. 커다란 슬픔이 느껴졌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엘 그레코의 <부활>을 떠올렸다. 평평한 바닥에는 노란, 초록, 파란색의 경비병들이 등을 땅에 대고 쓰러져 있다. 광기 어린 인간 속에 순백의 그리스도가 줄기가 긴 백합처럼 승천하신다. 한가운데는 에나멜처럼 빛나는 <성 마우리티우스의 순교>가 걸려 있다. 전면에는 노란색 갑옷 입은 사람과 녹색 갑옷 입은 어린 아이도 있다. 그리고 저 세상 빛줄기가 공기를 가른다. 그 빛이 너무 숭고하여 우리 자신이 투영된 것 같은 느낌이다. 엘 그레코의 그림이 모두 그러하듯, 빛은 칼처럼 날카롭게 대기를 베어 낸다. 거기엔 <성신 강림 대축일> 에서의 성신처럼 잔혹한 것이 있다. 사도들은 떨며 도망가려하고 성신은 도망치려는 그들을 내리 덮쳐 머리를 붙잡는다. 엘 그레코의 작품에서 빛은 그렇게 나타난다. 육체를 소멸시킨다. 육체와 영혼의 경계를 해체한다. 궁수가 활을 잡아당기듯 육체를 부러질 정도로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그레코의 빛은 움직인다. 그것은 태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햇빛의 반대편에 있다. 엘 그레코의 고통은 현상 뒤에서 본질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를 괴롭히고, 육체를 잡아 늘이며, 탐욕스럽게 빛으로 넘치게 하고 육체를 급습하여 불태운다. 완고하게 전통 예술의 정전을 비난하며 자기 관점에 전념했다. 마치 기사가 칼을 잡는 것처럼 붓을 쥐고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법칙이나 규칙이 아니다. 그림은 개척이다. 그것은 영감이다. 절대로 개인의 에너지다.“
인간 정신과 육체 모두가 완전히 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몸이 영혼처럼 점점 더 가뿐해지고 확장되며 투명해지고 빛나면서 다른 세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화려한 옛 건물들은 모두 공연이 끝나자 허물어 버린 무대 장치처럼 변해 있었다. 하느님은 글과 말로 그분의 의지를 보여 주셨다. 그러나 그분은 말 사이의 의미, 즉, 텍스트의 행간에 있는 고결한 의미를 아직 보여 주시지 않았다.
<엘 그레코의 초상화>
엘 그레코의 초상화는 요술 거울 속에서 강력한 엑소시스트에 의해 부활로 돌아온 동일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가 그린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가졌던 육체를 그대로 지닌 듯 했다. 그렇게 예술은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고대 마법의 힘을 재현했다. 그러나 부활된 육체에는 더 이상 달콤하거나 순수하거나 육체적 온기가 없다. 지옥과 연옥, 천국을 지나왔으며 내세 불꽃 형태로 지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모든 천사들과 인간들이 엘 그레코 정신이 지닌 세 단계를 지나온 뒤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ㆍ창작자는 신비의 바다 언저리에 놀고 있는 아이다. 그는 모래로 사람과 집과 산과 동물을 만들며 논다. 당신이 그에게 목적을 부여하면 그는 더 이상 놀(창작할) 수 없다. 창작은 게임이다. 신비적 도취다. 마음속 깊이 숨겨진 무한한 힘이 만드는 사람조차 짐작할 수 없는 명확하고 견고한 목적과 승강이를 하고 있다.
<코르도바>
가냘픈 하얀 종탑이 있는 작은 교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면 오리가 목을 쭉 내밀고 있는 것같다. 작은 하얀 오두막들은 산허리 아래로 내려가는 아기 오리들처럼 그 교회 뒤에 늘어서 있다. 기차가 바르게 지나가자 모든 오리들이 잠에서 깨어나 반대 방향으로 돌진하는 것 같다. 남자들은 창이 크고 높으며 풀을 먹인 것처럼 빳빳한 멋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무함마드는 “세 가지 나에게 기쁨을 준다. 그것은 꽃과 여자, 기도다.”고 했다.
파라도 미술관 쪽으로 하느님은 불쌍한 거지처럼 강림하지 않는다. 조롱조 야유로 피 흘리며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다. 찬물을 담다 두는 청동 잔이나 지저귀는 새로, 사랑받는 동ㅊ쪽의 나이팅케일의 모습으로 이곳에 오신다. 그것이 우리가 늘 준비하고 있어야만 하는 이유다. 인생이란 얼마큼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강도 높게 살았느냐는 것이다.
엘 그레코의 그림 <명상에 잠긴 프란체스코 성인>은 푸른 그림자 속에서 빛난다. <하느님의 빈민>인 프란체스코 성인은 손으로 해골을 잡고 뚫어지게 바라본다.
ㆍ스페인의 국가적 영웅 돈후안은 집착하는 깊고 마음 죄는 사랑을 하지 않는다. 절대로 감정에 지배되지 않는다. 소유하되 소유당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힘이다. 그의 고결함과 다스함은 자존심과 관능이 결합한 덕택이다.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의 커다란 문 위로 이슬람교들은 다섯 손가락을 활짝 핀 손을 하나 걸어 놓았다. 그 손은 신도들에게 신에게 이르는 다섯 가지 길, 즉 믿음과 자비, 기도, 금식, 그리고 메카로의 순ㄹ?P를 상기시켰다. 내가 찾는 메카는 내 마음속에 놓여 있다. 호리호리한 기둥들과 천상의 아치들. 나는 믿을 수 없는 동양의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 영혼인 세에라자드가 천일야화를 들려주는 소리를 득오 있는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죽음도 뒤로 물러나 있는 것 같았다. 모든 피비린내 나는 전설은 예술의 투명한 막을 통해 피 한 점 없는 상징적 의미를 취하고 있다.
ㆍ오후의 태양이 작열하여 우리의 살을 녹였다. 겨드랑이에서 냄새가 풍겨 땀과 오줌으로 범벅된 동물적 냄새였다. 태고의 요람냄새처럼. 사람들은 그 냄새를 들이키며 아무도 모르는 감동을 느꼈다.
<투우>
최초의 인류는 동물이 동굴 앞에 나타나 무아경의 눈빛으로 말없이 응시하면 그것이 바로 신이라 여기면서 우리가 배고프다는 것을 신이 알고 자신의 살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어서 그것을 먹게 하시어 죽음에서 구하기 위함이라 생각하였을 것이다. 돌멩이와 활을 사용하느 격렬한 약탈이 시작되고 살상은 마술적 행위였으며 종교 의식이었고 신의 살을 탐하는 최후의 모험이었다.
투우장에는 모래가 새로 갈렸다. 양쪽에 나무 단상이 있고 신도들은 그 계단에 앉아 있었다. 반대편 <아름다운 문>에서 황소가 나온다. 고함소리와 웃음소리 사람들의 몸 냄새와 분 냄새와 오랜지 껍질 냄새와 뒤섞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앉은 투우장 절반은 햇볕이 따갑다. 나머지 절반의 투우장은 서늘한 초저녁 그늘에 잠겨 있었다. 눈부시게 화사한 부채들이 하느님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하듯 빠르게 날갯짓 했다.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들이 모두 그 신비의 문에 고정되었다.
감자기 트럼펫 소리가 퍼졌다. 머리에 깃털 꽂은 중세 옷차림의 가병 두 명이 투우장을 돌며 정리했다. 그들 뒤로 문이 열리고, 투우사들이 줄을 지어 들어왔다. 결정적 순간에 앞으로 뛰어들어 투우를 죽일 주인공인 마타도르가 등장했다. 뒤이어 색색의 장식 리본이 달린 긴 창으로 날뛰는 황송의 목덜미와 어깨. 궁둥이를 찌를 <반대리예로>들이 등장. <파카도르> 즉 황소를 창으로 찔러 화나게 만들 말 탄 창기병들이 나왔다. 그들은 모두 정장 차림의 수도사들 같았다. 금과 은으로 수를 놓은 짧은 겉옷과 비단 허리띠, 여러 색깔이 어우러진 짧은 바지를 입었다. 마지막으로 붉은 망초로 황소를 자극하고 혼란에 빠뜨릴 <카페아도르>들이 등장. 이런 사제들은 젊었고 사원은 밝은 색과 경쾌한 음악으로 가득 찼다. 마치 결혼 행렬과 장혜 행렬을 하나로 합친 듯한 행렬이 깃털을 꽂고 종을 달고 화려하게 장식한 세 마리 노새가 사람을 끌고 갔다. 끝이 났다. 죽은 황소와 배가 터진 말들, 인간 시체를 끌고 나갈 노새들이다. 홀연히 모두 더나고 투우장이 그늘진 곳에 몸을 숨긴 채 움직이는 않는 말 위에 두 명의 피카도르만 남았다. 모두 숨을 멈추었다. 깊은 침묵의 순간 감자기 문이 삐걱 열리며 검게 빛나는 황소가 튀어나왔다. 조용히, 온순하게 머뭇거리면서 투우장 중앙으로 나아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멈추었다. 잠시 쿵쿵거리며 군중의 냄새를 맡고는 두려움을 느낀 것 같았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셨는지 투우장에 모인 색색의 희미한 모습과 수많은 이글거리는 눈들만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았다. 황소는 격분하여 울부짖고 방향을 바꿔 투우장의 우리로 돌아가려 했다. 한 명의 피카도르가 나왔다. 그들이 타고 있던 백마가 황소 주위로 넓은 원을 그려 황소는 우리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황소를 죽이기 위해 여기로 데려온 것이다. 황소는 돌겨할 듯이 활처럼 온몸을 웅크렸다. 순간 황소의 뿔이 말의 복부 아래 번쩍였다. 기수는 온 힘을 다해 창으로 황소의 목덜미를 찌르고는 얼른 도망쳤다. 황소는 고통으로 울부짖더니 기수를 향해 돌진했다. 카페아도르들이 붉은 케이프를 펄럭이며 황소를 에워쌌다. 황소는 방향을 바꾸어 그들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그 유연한 젊은이는 잽싸게 황소가 달려오는 길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고 황소는 아무것도 없는 케이프를 헛되이 뿔로 들이받았다. 황소는 주춤거리며 신음 했다. 오른쪽은 보더니 다시 왼쪽을 보았다. 아픈 머리를 들었지만 야유하는 수많은 인간의 무게에 짓눌려 고개를 밑으로 떨어뜨렸다. 황소는 드러 누으려 했다, 너무 지쳤고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때 반데리예로들이 나타났다. 하나가 대담하게 황소 정면에 서서 황소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두 손을 높이 들고 두 개의 작살을 황소 목덜미에 꽂았다. 하나는 빨간색 장식 리본, 다른 하나는 초록색 리본이었다. 몸을 굽히더니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순간 황소가 덤벼들었다. 황소는 다시 뿔을 허공에 들이받았다. 미쳐 날뛰는 짐승이 다시 기운을 되찾기 전에, 다른 반데리에로가 노란색 리본이 달린 작살 두 개를 더 꽂았다. 이제 황소 등 위로 피가 솟구쳤고, 팔자 사나운 그 짐승은 장식 리본이 달린 작살들을 온몸에 매달고 위아래로 날뛰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시간이 지나자 지친 황소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멈추다 황소를 죽일 마타도르가 나와 붉은 케이프를 들었다. 뒤에 길고 반짝이는 칼을 감추고 황소와 마주섰다. 황소는 이제 위기 순간을 직감하고 천천히 머리를 흔들며 힘을 모으고 준비했다. 마타도르는 황소의 율동적 움직임을 따라가며 황소에 꽂힌 작살처럼 흔들렸다. 그도 준비하고 있었다. 황소가 공격하기 위해 온 기운을 모으는 순간, 갑자기 붉은 케이프가 황소를 덮쳤다. 투우사와 황소 사이에 칼이 순간 번득였다. 황소가 다리를 부르르 떨면서 무릎을 꿇었다. 황소는 다시 용기 내어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가 포개지면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칼이 황소의 심장을 관통했다. 황소는 굴러 고꾸라져서 다리는 두세 번 허공에 흔들며 떨었다. 동시에 혀를 깨물며 머리를 들어 올려 목을 위로 들었다. 그때 그 공모자들 중 푼타에로가 단도를 뽑아 살육이 끝났다. 트럼펫이 울려 퍼졌다. 흥겹게 벨을 울리며 세 마리의 노해가 종종걸음으로 와서 도살된 황소를 매달고 투우장 밖으로 질질 끌고 갔다. 그 피비린내 나는 광경에서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또다시 숨을 죽였다. 쉬지도 않고 두 번째 황소가 뛰어나왔다. 검은 얼룩이 호리호리한 하얀 황소였다. 어린 황소는 똑바로 서 있으려 발버둥 쳤지만 다리가 떨려 비틀거렸다. 황소는 쓰러지면서 모래 위에 주저앉았다. 소름 끼치는 춤이었다. 단지 몇 초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영원의 의미를 느끼게 했다. 황소는 춤을 추었고 무릎을 꿇었으며 다시 일어났지만 울부짖을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고꾸라지면서 숨을 거두었다. 세 번째 황소는 놀랄 정도로 아름답고 힘이 셌다. 꿀벌 같은 색깔에 포동포동 쌀이 찌고 날카로운 뿔을 가지고 있었다. 성이 나서 축축한 콧구멍을 씰룩거리면서 붉은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렸다. 창기병을 보고 감자기 씩씩거리며 달려들었다. 격노한 황소는 말의 복부를 뿔로 받았다. 말의 복부가 터져 창자가 바닥에 꿈틀거렸다. 말은 끔직한 고통에 울부짖으며 자기 내장을 발로 차 결국 다리가 내장에 뒤엉키게 되었다. 반데리예로는 황소가 달려들자 나무 울타리 위로 도망치고 황소도 뛰어 올랐다. 관객들은 너무 놀라 공포의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러나 황소는 이내 뒤로 밀려 났고 나무 울타리는 다시 제자리에 놓였다. 마타도르가 등장했다. 인간과 황소는 다시 정면으로 마주보고 섰다. 서로 애무하듯 서로의 팔다리를 어루만졌다. 화해하는 듯 기쁨의 순간이었다. 신과 인간은 더 이상 살육 없이 사랑으로 융화될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마타도르의 칼날이 황소의 곧은 뿔 사이에서 빛났다. 칼은 양 뿔 사이에 덩그러니 곶혀 있었다. 황소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들며 칼을 내동댕이쳤고 미친 듯이 날뛰며 자기를 괴롭힌 투우사를 향해 방향을 바꾸었다. 투우사는 다른 칼을 쥐고 동물이자 신인 황소의 비밀스런 힘과 맞섰다. 황소에 대한 숭배가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황소의 피를 우리 혈관에서 나오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성스러운 황소와 가장 친근하고 그런 의식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대표자로 보내 황소와 싸우고 황소와 하나가 되는 것은 황소를 죽임으로써 이루어진다. 피와 황소가 하나 되는 것, 그리고 죽음을 통해 사랑을 영원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
<톨레도의 알카사르 포위-아들을 죽이겠다는 협박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아버지>
어떻게 일상의 척박한 요소들- 배고픔, 두려움, 더러움을 전설로 만드는지 알고 싶었다.
-7월 27일, 오늘 그들은 모스카르도 대령의 아들을 죽였다.
붉은 군대가 대령의 외아들을 볼모로 잡아 전화를 걸어 “알카사르를 포기하라. 그렇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대령은 전화를 끊으며 “항복할 수 없다”고 했다. 하루는 아들이 직접 전화를 했다. “아버지 항복하지 않으면 날 죽이겠데요. 항복하지 마세요. 아버지 내 목숨은 중요하지 않아요. 전혀 중요하지 않단 말에요!”
그러자 아들에게 말했다.
“걱정 마라. 아들아. 나는 항복하지 않는다. 네 인생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러나 스페인의 명예는 더욱 더 소중하다. 스페인 만세! 우리 아들 만세!”
며칠 후 붉은 군대는 다시 전화해서 지금 알카사르를 넘기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했다. 항복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렇다면 전화를 끊지 마라, 네 아들에게 쏘는 총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대령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 그는 총소리를 들었다. 붉은 군대가 아들을 죽인 것이다.
ㆍ하느님 덕택에 도서관에는 가죽 장정의 크고 두꺼운 책이 많아서 창문을 막을 수 있었다.
ㆍ창고에는 커다란 밀 자루가 가득했다. 우리는 그것을 챙겨왔다. 때로는 인간의 생명ㅃ분 아니라 명예까지도 이 메마른 빵가루에 좌우된다. 우리는 밀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명예도 안전하게 지켜졌다. 프랑코 장군이 우리 사령관 모스카르도 대령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대령은 아들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웃으며 말했다. “제군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스페인과 함께 하신다. 용기를 가져라!” 우리는 등사기로 신문을 찍었다. 라디오는 가볍고 작아서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없어서.
ㆍ포위당한 사람들은 토끼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우리는 인간이지 돌이 아니라서.
신기하게 알카사르에서 내가 살아남았다. 걸핏하면 기침하고 땀 흘리는 사람이었는데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기침을 안 하고 침을 뱉지도 않았다. 그 모든 고생과 공포를 겪은 후에 하느님이 치료해 주신 거다. 우리는 지하에서 나왔다. 경찰, 군인, 의용군, 학생. 아이들 그리고 알카사르에 갇혀 있던 모든 이들이 나왔다. 중앙 뜰에서 대령은 바렐라 장군에게 가서 경례를 하며 말했다. “장군님, 이상 없습니다.”
ㆍ공중전을 바라보며 갈수록 빠른 것을 동경하고 조상들의 무거운 지상전과 해전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으며 전투를 가장 가볍고 광활한 공간인 공중으로 옮긴 인간에게 자부심을 느꼈다.
ㆍ우리는 당장의 필요 때문에 미래를 희생하고 있다. 언젠가 모든 강한 부족들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나는 야만의 후예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위해 길을 열면서 무자비하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역사의 법칙을 확인하며 즐거워했다.
ㆍ붉은 군대의 시체에서 편지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아내가 군인 남편에게 쓴 편지였다.
“하루 종일 밤새 당신만 생각해요. 울로 만든 조끼와 양말 두 벌 보내요. 이모가 오렌지를 조금 보내주어 당신에게 보내요. 당신은 그걸 좋아하잖아요. 차마 내가 먹을 수 없었어요.
그 다음 필체가 굵고 비뚤삐뚤하다.
“사랑하는 아빠, 돌아오세요. 제발, 제발! 우리 고양이가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어요. 돌아와서 보세요. 내가 아빠에게 쓰는 거예요.”
<마드리드 함락 2>
옛 친구에게 연락을 하니 변해 있었다. 통제 불능의 욕망으로 번득였다. 불태우고 죽이고 고문하려는 욕망이었다. 그들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흉측한 시대의 욕망이었다. 어떤 이들 입술은 약간 비틀어져 비웃는 듯 했고 사나운 이빨을 내밀고 있어 물어뜯으려는 개 같았다. 어떤 이는 무관심하고 냉정, 냉혹한 표정이었다. 우리 시대 산업화된 비인간적 문명은 우리 마음을 잔인하게 만들고 우리 정을 시들게 했다. 인간이 이 정도의 비인간성에 도달하면 멸종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피와 모순과 잔혹성에만 몰두하는 이 모든 스페인의 드라마는 더 커다란 재앙의 서곡일 것이다.
형제간의 증오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원시적인 것이다. 수천 년간 억눌렸다가 가끔씩 분출된다. 그런 역사적 순간을 조심하라! 나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스페인을 돌아다니며 지구 궤도가 카인의 별자리 아래에서 움직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ㆍ내 깃발은 내가 죽거나 승리할 때까지 용감하게 싸우기 위한 것.
ㆍ두루미는 날개에 먹을 것을 싣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술통처럼 커다란 죽음의 폭탄을 달고 있었다.
“이 살육이 언제 끝날까요?”
“이 망할 놈의 마드리드가 잿더미가 되면요.”
“그 잿더미로 뭘 할 건데요?”
“공중에 뿌려야죠!”
ㆍ삶은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있고 이 실은 눈 멀고 비양심적인 운명이 손에서 왔다 갔다 한다. 이름이 비슷해서 혹은 실제로 하지도 않은 말 때문에, 누군가와 비슷한 옷을 입었다는 이유 때문에 살해당한다.
ㆍ스페인 사람들은 부조화에 열광한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색을 내걸고 자기만의 특징적인 모자를 쓰며 옆 사람의 십자가와 다른 십자가를 새겨 넣는다.
“우리 십자가는 콤포스텔라의 성 야곱에게 바치는 것이오 .” 녹색 모자들이 자랑스럽게 외쳤다. “우리 것은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요.”
심자가들은 서로 싸우며 십자가에 못 박힌 구세주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ㆍ사람들은 마음속에 어떤 동물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의 세대를 지배하는 고대의 신이다.
ㆍ여인들이 주위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서로 팔꿈치로 밀치며 말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자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애를 썼다. 그것이 가련한 인간이 지닌 불치의 약점이었다. 즉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자존심이나 수치심도 없이 자신의 속내를 다 털어놓고 싶어했다.
“스패인 사람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냈어요. 폭력의 몸짓, 피비린내 나는 광경, 그리고 전쟁. 그리고 투우경기의 가장 고귀한 형태. 폭력적 충동과 치유할 수 없는 분노를 가진 민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스페인 사람들은 내부에 여러 개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 아직 결정화되지 않고 모순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수많은 인종의 혼합체. 이 모든 욕망이 내부에서 충돌하고 결코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은다. 우리는 인생을 열정으로 사랑하지만 이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외침이 우리 내부를 흔든다. 스페인 사람은 어디에도 어울ㄹ리지 못하고 죽음을 동경한다. 피가 너무 많아서 피를 뽑아내야 하는 사람처럼. 이것이 내전과 비인간적 것이 왜 우리게에 기쁨을 주는지에 대한 답이다. 이것만이 우리 내면에 갇힌 동물 우리를 여는 열쇠다. 스페인 사람의 열정에는 쓰라린 근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건 바로 절망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무어보다 아프리카 종족이다. 몇 년째 계속 그들은 가만히 웅크린 채 바라보며 듣고 갈망하고 있다. 그들의 심장은 물탱크와 같다. 그것은 갑자기 넘쳐흐른다. 굶주림과 부정의 힘이 스페인의 사회적 부정을 참을 수 없게 한다. 수 세기 동안 소작농들은 영주의 땅을 갈아 왔고, 그들의 담과 피를 땅에 쏟아 부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굶주렸다. 당연한 일이지만 스페인에서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우세했다. 파업, 살인, 방화
“배고픔 속에서 나는 왕이오!”
마치 배고픔이 국경 없는 왕국이고, 배가 고픈 한 그는 그 왕국의 왕권을 쥐고 있는 듯 하다.그러나 조금이라도 일을 하거나 음식을 먹으면 곧 왕위를 상실한다고 믿는다. 배고픔의 왕관을 쓰고 있는 것이 지겨워 병사처럼 옷을 갈아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