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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한 사랑 1 –연리(連理)의 시간
네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된 것은 어떤 화가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였지. 그는 자신의 계정에 갤러리가 있다고 하더군. 너는 그를 팔로우하면서 소셜미디어의 세계에 접어들었어.
계정을 열고, 외국인들로부터 팔로우 요청이 오자 너는 다소 흥분했어. 모바일폰에 조그만 창 하나를 열었을 뿐인데 전 세계와 접속되는 기분이었지. 오랜만에 쓰는 영어도 너의 허영심을 부추겼어. 네게 디엠을 보내고 채팅 친구가 된 외국인들은 네 영어가 훌륭하다고 칭찬을 하더군. 그들의 대다수가 스캐머이고, 그들의 찬사는 너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전략일 뿐이라는 것은 곧 알게 되었지.
너는 디엠을 보내오는 사람들과 채팅을 하면서, 유엔과 계약을 맺고 아프리카나 중동의 전투 지역에 파견되었다는 의사나 군인, 혹은 바다 한가운데 오일 리그에 근무한다는 해양 엔지니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은 차단하기 시작했어. 당시에는 그러한 직업군이 스캐머들의 주류를 이루었지. 그들의 대체적인 캐릭터는 아내를 사고로 잃었거나, 아내의 불륜으로 이혼한 싱글남이야. 그들의 어린 아들이나 딸은 기숙학교에 있고, 그들은 은퇴가 몇 달 남지 않았어. 그들은 부모와 사별했고, 친척도 없기 때문에 고액의 퇴직금을 수령한 후, 좋은 여자를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게 꿈이야. 그들은 은행 계좌에 접속할 수 없는 고립된 지역에 근무해.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송금을 해야 할 비상 사태가 닥치지, 그들의 자녀가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었다거나, 오일 리그에 헬리콥터를 불러야 할 상황이 터졌다거나. 혹은 전투 지역에서 누군가가 감춰둔 달러 뭉치나 금괴를 습득한 이들도 있어. 그들은 그것들을 빼돌려 믿을 만한 친구에게 보내고 싶어 하지.
그러니까 네가 그에게서 팔로우 신청을 받았을 때는 스캐머들의 유형이나 스토리 패턴에 대한 감각이 어느 정도 생겼던 때였어. 너는 그의 계정이 공개되어 있고, 게재된 사진들도 시간차를 두고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맞팔을 청했지. 대개 스캐머들은 비공개로 계정을 관리하고, 동일한 날짜에 한꺼번에 올린 사진들이 많거든. 그는 팔로우 수락과 함께 바로 “저를 팔로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디엠을 보내왔고, 너와 채팅 친구가 되었어.
그는 자신이 뉴저지에 살고 있고, 온라인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한국어로 대화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쁘다고 자신을 소개했어. 그는 반말과 높임말이 뒤섞인, 때로는 번역기의 오류가 걸러지지 않은 한국어를 구사했지. 그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한국어 표현이 어렵거나, 긴 말을 해야 할 때는 영어를 썼어. 그가 한국어를 구사하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느껴진다고 네가 말했기 때문이야.
언어라고 하는 건 그 말을 사용하는 인간의 표상이야. 한 인간의 인격과 지식과 교양이 언어를 통해 드러나잖아. 단순한 문장과 어휘, 문법적 오류가 있는 한국어를 쓰는 그는 마치 어린아이 같았거든. 네가 영어를 구사할 때, 그도 같은 기분을 느꼈겠지. 그래서 너도 간단하게 구사할 수 있는 말을 제외하고는 한국어를 주로 썼어. 언어적 소통이 잘 안 될 때는 서로 “영어로 말해줘.”라고 했지. 구글 번역기가 너를 많이 도왔어.
그는 자신이 자랑스러운 미국 해병대의 일원이며, 두 달 간의 휴가를 받았는데, 닷새 후에는 휴가가 끝날 거라고 했어. 네가 긴 하루를 보낸 날, 그는 기타를 치는 동영상을 보내주기도 했어. 아주 짧아서 어떤 곡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너의 피로를 달래주기 위해 기타를 연주해 주는 남자가 있다니, 낭만적인 감정이 잠깐 일었지. 그리고 그가 네게 가끔씩 던지는 반말도 싫지 않았어. 젊어진 기분이 들었거든. 오프라인의 삶에서 60대에 접어든 교수인 네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지.
- 조금 보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다. 편안한 밤 되세요.
- 당신에게 최고의 아침, 아직 안 일어났어?
그의 한국어는 경어가 제대로 구사되지 못했어. 그가 반말을 섞어 하기 때문에 너도 자연스럽게 그에게 반말을 하게 되었어. 언어라는 게 이상해. 일상 생활에서 반말을 섞어 쓰는 사이란 아주 친근한 관계인 거잖아. 특히 남녀 사이에서 말이야. 네가 그와의 친밀감이 쉽게 형성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언어의 틀과 무관하지 않았을 거야.
그는 아침, 저녁으로 인사를 건네고 장미 꽃다발 사진도 보내왔지. 그리고 네가 자신에게 충분히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했어. 자신이 네게 쏟는 에너지에 비해 너의 반응이 미미하다는 거야. 그때 너는 소셜미디어에 시간을 뺏기는 일은 낭비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점심 먹고 난 후에 잠깐, 잠들기 전에 잠깐 인스타그램을 들여다 보고 그의 메시지에 답장을 하는 정도였어.
- 너랑 얘기하는 것은 황홀해. 근데 넌 아직도 나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어. 당신이 교수라면 내가 누군지 알아?? 모든 사람은 자신의 개성과 핵심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는 이 메시지를 받고, 약간 당황했어. 그가 너를 이성으로 대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너는 그와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외국인 채팅 친구를 두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신원이 불확실한 온라인 상의 누군가를 로맨스 상대로 삼는다는 것은 너무 우스꽝스러운 일이지 않아?
- 제이, 너는 나를 연인처럼 대하는 것 같아. 나는 너의 다정한 말투나 투정이 부담스러워.
그는 깜짝 놀란 것처럼 답장을 했어.
- 나는 당신을 연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나의 말투는 세상을 대하는 나의 방식이 고 나의 퍼스낼리티예요.
너는 머쓱해졌어. 이번에도 네가 문화의 차이를 간과하고 오버했구나 싶었지. 영어 표현은 한국어에 비해 훨씬 곰살맞고 다정한 것을. 너는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언어교육원에서 영어 회화를 배우던 시절의 일화를 그에게 들려주었어.
결석을 거의 하지 않았던 네가 수업에 빠졌을 때, 원어민 강사는 네게 문자를 보내왔어. “I missed your smiling face.” 이 문자를 받고 너는 정말 고민에 빠졌지. ‘miss’가 한국어로는 ‘그리워하다’잖아. 영어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흔하게 쓰이는 표현임을 몰랐던 너는 영어 강사가 네게 연모의 감정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었지. 원어민 강사는 결석한 학생에게 선생으로서의 관심을 보였던 것이었을 뿐인데 말이지.
이런 이야기로 함께 웃고 나자, 너는 그와 좀더 친밀해진 것 같았어. 그도 같은 기분을 느꼈는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의논해도 되겠냐고 물었어. Why not? 너는 대답했지. 그가 이제 너를 나이 많은 친구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아 대화가 편안해졌어.
그는 두 딸이 있는데, 아내와는 지금 이혼 수속 중이라고 했어. 아내는 세 번째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더군. 그런데 자신이 집에 머문 시간을 계산해 봤을 때 이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거야. 아, 그는 정말 인생 선배의 조언이 필요한 상태인 것 같았어. 가톨릭 신자인 너는 가끔 메시아 신드롬에 빠질 때가 있지. 어려운 상황에 놓인 누군가를 보게 되면, 여기에 신이 네게 부여한 어떤 역할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거든.
그의 목소리는 격앙되기 시작했어. 놀랍게도 자신의 삼촌이 아기의 아버지라는 거야. 아내와 두 딸을 두고 해외로 파견을 나가면서, 가까이 살고 있는 삼촌에게 가족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까지 했는데, 그 삼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분개했지. 아내를 죽여야 할지, 삼촌을 죽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어. 너는 두 딸을 위해서 아버지가 살인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진심으로 충고했지.
그는 자신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서 떠나고 싶다고 했어. 퇴임을 하고 나면, 언어가 다른 땅에 가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다고 했지. 너는 이 말에 흥미를 느꼈어. 언어가 마음의 평화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거지?
그의 아내는 법정에서 자신이 성중독이며, 스스로 삼촌을 유혹했다고 진술했다는 거야. 그는 아내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었을 때 자기의 심정은 어땠겠냐고 했어. 더 기가 막힌 것은 주변 사람들 누구도 그의 아내가 삼촌과 섹스를 한 것을 비난하지 않고 그의 삼촌 역시 비난받지 않는다는 거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화살을 돌린다고 했어. 그가 늘 가족과 함께하지 않았다는 비난, 가족보다 직업을 우선시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는 거지. 너는 이야기만 들어도 그의 억울한 마음이 사무치게 느껴졌어. 그는 군인이잖아? 그의 아내는 남편의 직업을 모르고 결혼했다는 거야?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군인 남편을 둔 외로운 아내의 불륜이 동정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군인인 남편을 비난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아내의 세 번째 아이가 그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은 아직 모른다고 했어. 피를 나눈 삼촌이 자신의 아내를 임신시켰다는 것이 불명예이고 역겨운 일이기 때문에 차마 말을 할 수 없다는 거야. 그는 세상이 그 사실을 알게 될까봐 두렵다고 했어. 오쟁이진 남편. 그가 사는 세상의 언어로 그에게 가해지는 비난과 동정과 조롱. 동네 사람들의 속닥거림. 그와 마주치는 사람들의 어색한 웃음. 그가 지나쳐 가는 사람들의 돌연한 정적까지도 그는 자신의 언어로 느꼈겠지. 언어가 다른 땅에서야 그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 비로소 이해되었어.
그는 고통을 느끼지만, 두 딸과 새로 태어난 아기를 위해서 아내와 함께 공동 육아를 하고 있다고 했어. 너는 대단하다고 답했지. 하긴 아기에게 무슨 죄가 있겠냐고도 덧붙였지. 그는 삼촌의 아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속으로는 끔찍하다고 했어. 네가 그의 분노와 슬픔을 느낄 수 있다고 하자 그는 지금은 괜찮다고 했어. 마음 속 깊숙한 이야기를 폭포처럼 쏟아낸 그는 후련해 보였어.
그는 이제 자신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지. 딸들은 앞으로 자신이 키울 것이며, 딸들이 아내와 함께 있는 동안은 아내에게 양육비를 보낼 것이라고 했어. 그리고 자신은 이제 자유의 몸이라고 말했어. 그는 여섯 살, 세 살인 두 딸과 찍은 사진을 보내왔고, 너도 답례로 가족 사진을 보냈지. 너희는 비로소 서로의 정확한 나이를 확인했어. 그는 40대였고, 너는 60대였지. 그는 너와 스무 살 차이가 난다며 놀라워 했어. 그가 로맨스를 시작할 가능성이 있는 상대가 아닌 게 너는 좀 미안해졌지. 그가 새로운 여성을 만나 상처가 치유되길 바랐거든. 그는 네가 40대 후반으로 보인다면서 다른 사진을 한 장 더 보내달라고 했어. 너는 좀더 젊어 보이는 2년 전 사진을 보냈지. 그는 자신의 졸업 연설 비디오를 교수인 너에게 보내고 싶다면서 자신을 카톡 친구로 추가해 달라고 했어. 인스타그램보다는 카카오톡의 시스템이 더 안전하다고 했지. 너희는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을 떠나서 카톡 친구가 되었어.

첫댓글 흥미진진합니다.
아. 조마조마.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 지 궁금합니다. 다음 이야기 들려주세요. 개인적으로 스무 살 차이를 극복하는 스토리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