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소장 이혜숙
얼굴인식 알고리즘은 청년보다 노인을 10배 이상 잘못 인식하고 (미국표준과학원), 또 피부색 짙은 여성을 백인 남성보다 30배가 넘게 잘못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Gender Shades). 얼굴인식 알고리즘은 보안과 금융 분야에서 신원확인 외에도 환자의 식별과 질병 진단 등 의료 분야에 활용되며 기술 발전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된다는 면에서 나이나 성별에 따른 편향성을 줄이는 것은 중요한 이슈이다. 성별 등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연구 결과는 다양한 편향성을 불러왔다. 수컷동물 중심으로 개발된 약은 여성에게 부작용이 더 컸으며, 여성을 기준으로 한 골다공증 진단과 치료는 남성에게 불리한 요인이 되었다. 면역에서의 성별 차이(성차)는 백신 부작용에 대한 성차 연구를 촉발했다. 기대 수명에 대한 성차를 이해하려는 연구도 다양한 종으로 확대되어 염색체 수준까지 연구방법론이 개발되고 있다. 성별 특성을 반영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전략인 과학기술 젠더 혁신이 연구의 수월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두되고 있다. 젠더 혁신과 함께 누구나 공평하게 과학기술의 성과를 누릴 수 있는 포용적 기술혁신의 중요성은 2023년 6월 OECD 장관회의 성명서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아직은 다양한 이유로 성별 등 특성을 고려한 연구 문화가 정착된 것은 아니다. 특히 성별 등 특성 고려 없이 창출된 기존의 과학적 데이터는 편향된 사례가 많으며 이는 ICT 기술과의 융합으로 새로운 과학적 편향을 양산·강화하고 있다. 일례로 바빌론 헬스의 건강 쳇봇은 뛰어난 성능으로 여러 곳에서 큰 투자를 받고 기대를 모았지만 젠더 편향성 때문에 실제 상용화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유는 신뢰성이 높다고 알려진 영국 국립보건원의 건강 데이터를 활용하여 챗봇이 개발되었으나, 실제로 해당 데이터는 남성의 심혈관 질환을 기준으로 진단과 치료법이 연구된 편향적 데이터였기 때문이다. 이에 과거의 데이터와 지식에서 젠더 편향성을 점검하고, 향후 연구개발에서 성별 등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세계적인 학술지들이 성별 등 특성을 반영할 것을 권고하고 나섰다. 특히 네이처는 연구의 수월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의 전 과정에서 성별 특성 분석을 요구하며, 셀(Cell)지는 연구에 사용된 세포의 성별 공개를 권고하고 연구자의 다양성까지도 고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최근에는 IEEE도 포용적 다양성 정책을 펴는 등 젠더 혁신의 중요성은 확산되는 중이다.
유럽연합은 Horizon Europe에서 연구지원을 받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젠더 균형과 젠더혁신을 두루 포함한 성평등 계획(GEP)을 시행하고 있다. 지원금을 받으려면 모든 기관은 GEP를 수립하고 준수해야 하며 구성원들은 관련 교육·훈련에 참여해야 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도 척추동물과 사람에 대한 연구는 생물학적 성을 변수로 사용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캐나다는 국가 연구지원 정책으로 연구 참여 기관에서 성별 등 특성을 반영할 것을 의무화하고, 구성원들에게 관련된 체크리스트를 작성·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회적 가치를 증진하기 위한 과학기술의 구현을 위해 과학기술기본법에 성별 등 특성 반영 조항을 추가했고(2020.12) 제5차 과학기술 기본계획에 이와 같은 포용적 가치를 반영했다. 아직은 성별 등 특성 고려가 국제적 수준으로 정책에 반영되지 못했으나, 곧 젠더 혁신을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 정책이 실행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Horizon Europe에 준회원국으로 가입하고 다양한 국가들과 국제 공동연구가 확대되면 우리의 포용적 연구개발을 위한 법적 기반은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캐나다 Queen’s 대학교 박사(수학)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고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전)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