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고중세철학> 수업시간에 강의한 내용에 대해 질문을 전해 왔습니다.
질문 내용이 다른 학생들도 동일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 답변을 여기에 올립니다.
학생질문 : 아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이 관념론인가요?그리고 ppt에서 나온 과학의 소박한 실재론이 과학적 실재론인가요? 경험주의의 실재론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 안녕?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이 관념론인가? 라는 질문을 하였구나. 이 물음에 "그렇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지. 왜냐하면 <시간론>은 시간에 대한 하나의 이론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 자체를 관념론이라고 할 수는 없지. 관념론이란 한 철학자의 전체적인 사상의 특징이 ‘<관념>에 기초한 사상’ 혹은 ‘<관념적 존재>를 보다 중시하는 사상’ 혹은 ‘<관념>이 행위의 원리가 되는 사상’ 등으로 말할 수 있겠지.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에서 시간이란 인간이 발명한 관념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즉 과거란 이미 지나가 버렸기에 존재하지 않고, 미래란 아직 오지도 않았기에 존재하지 않지. 그러니 존재하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뿐이겠지. 그럼에도 인간은 과거와 미래를 생각할 수 있지. 그것은 비-물질적인 것을 관념의 형태로 소유할 수 있는 인간정신의 고유한 특징이지.
기억(혹은 추억)이란 이미 지나가 버렸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정신적인 실재 즉 <관념>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지칭하지. 즉 인간의 정신(영혼)은 이미 소멸한 것을 관념의 형태로 보존할 수 있으며, 이는 <인간의 의식>의 특징을 나타내어주는 것이지. 즉 인간의 영혼은 (육체가 죽어도) 소멸하지 않는 것으로 순수하게 정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지. 여기서 인간의 ‘영혼과 초-시간성(영원성)과의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지. 그러니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성에서 부각되는 것은 곧 ‘인간 정신(영혼)’의 영원성과의 관계성이고, 이는 과학이 도저히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지.
두 번째는 ‘과학의 소박한 실재론’과 ‘경험주의의 실재론’에 대해서 질문하였구나. 우선 이 둘은 서로 공통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동일한 것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과학에서 다루는 실재가 ‘소박한 실재’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과학은 오직 ‘물리적인 실재’만을 실재의 범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 위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고 있는 <정신적인 실재> 혹은 <초-시간적인 존재> 등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으니 실재를 소박한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따라서 과학의 소박한 실재론을 과학적 실재론이라고 부를 수 있지.
그런데 일반적으로 과학은 경험주의와 동일한 방법을 취하지만, 경험주의 그 자체는 ‘합리주의’에 대립하는 용어이기에 경험적 실재론과 과학적 실재론을 동일시 할 수는 없겠지. 어떤 것을 인식하거나 판별하거나 혹은 행동하고자 할 때, 그 기준이 되는 것을 경험적 사실(감각적 경험에 포착되는 것)을 근거로 삼는 것은 경험주의요, 감각적 경험이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인간의 사유로 곰곰이 생각하여 사유(이성)에 있어서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근거로 삼을 때 합리주의라고 하지. 따라서 ‘경험주의의 실재론’이란 어떤 면에서 동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실재론이라는 말 그 자체가 실재를 인식함에 있어서 경험(감각경험)에 포착되는 대상을 실재로 간주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실재론은 그 자체 경험주의를 기초적인 인식단계로 수용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관념론 ↔ 실재론 / 합리주의 ↔ 경험주의 이렇게 대립하고 있지. 관념론과 실재론은 존재론의 범주에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는 인식론의 범주에서 주로 사용되는 개념들이다. 자연히 관념론은 합리주의의 경향성을 실재론은 경험주의 경향성을 가지게 되겠지.
그럼... 시험준비 잘 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