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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2장1~11절
제목 :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킴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더 큰 일을 보리라고 약속하신지 사흘 되던 날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할 목적으로(요20:30-31)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 중 7가지를 뽑아서 기록했는데,
이 사건이 그 중에서 첫 번째 표적입니다.
1.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음(1~2절)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1)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었습니다(1절).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사흘 되던 날" 이것은, 빌립을 만난 날이 이튿날(1:43)이고 그 다음 날을 말하는 듯합니다.
이렇게 자세히 날짜까지 기록한 것은,
그 저술자가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실을 확증합니다.
장소는 "갈릴리 가나" 팔레스틴에는 이 밖에 또 다른 "가나" 란 지방이 있는 것인 만큼, 여기서 "갈릴리"란 말을 붙여서 밝힌 것입니다.
이곳은 나사렛 동북편 5마일 되는 곳에 있다고 합니다.
"혼인"은 기쁨의 상징입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의 복음이 율법과 달라서 그 주는 기쁨이 가정적(家庭的)이고 보편적(普遍的)일 것을 표상(表象)합니다.
그 혼례에는 예수님의 어머니도 계셨습니다.
2) 그 혼례에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청함을 받았습니다(2절).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예수님은 염세주의(厭世主義)를 가지신 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 사람들과 잘 어울리시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것은 그의 겸손인 동시에 그의 긍휼입니다.
성결은 격리(隔離)가 아닙니다(Sanctity is not singularity).
2.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짐(3~5절)
1)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 알립니다(3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당시에 "포도주"는 팔레스틴에 있어서 일반 음료였고,
다른 나라에서처럼 유흥과 오락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팔레스틴은 사막 지방과 같아서 물이 귀하므로 과즙으로 된 음료가 필요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더러 "포도주가 없다"고 한 것은,
포도주를 기적적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겸손히 말한 청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전에 이적을 행하신 일이 없었을 터인데,
그의 모친께서 이런 청원을 어떻게 하였을까?
그것은 난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 전에 이적을 행하신 일이 없다 할지라도,
그의 인격에 초자연적이고 비범한 일들이 관련되어 있는 것인 만큼,
마리아로서 그에게서 이적을 기대할 만 하였습니다.
2) 예수님의 반응입니다(4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1)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그가 자기 어머니더러 "여자여"라고 하신 것은 하대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이, 한국 풍속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같으나, 헬라 어풍(語風)으로는 그것이 무례한 말이 아닙니다(Hendriksen).
여기서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향하여, "여자여"라고 하신 것에는 뜻이 있습니다. 메시야의 공적 역사(公的役事)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만이 주장하고 혈통적 모친 된 권세가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모친도 하나의 "여자"의 지위를 가질 뿐입니다. 크로솨이데(Grosheide)는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여기서 자기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부르실 때에,
그는 자기 어머니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해야 될 자로만 취급하신 것이다.
메시야의 공생애(公生涯)에 있어서, 예수님은 그의 하실 바 일을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만 하시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그는 혈통적 인연에 매이지 않아야 될 것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런 표현은 구약에도 많은데(삿 11:12; 삼하 16:10; 왕상 17:18; 왕하 3:13), 반드시 냉정한 어투는 아닙니다.
이 말씀은, 메시야의 구속(救贖)사업에 있어서는
비록 예수님의 모친이라도 그 모친 된 권세로써 간섭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밖에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도울 중보자(中保者)가 없습니다.
(2)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기 이른바 "내 때"란 말은 메시야의 영광을 나타낼 때를 의미합니다(7:30, 8:20, 13:1, 17:1).
그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그 혼인잔치에 포도주 그것을 보급시키신 자선 사업을 목적하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로 하여금 그를 메시야로 확실히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11절).
"내 때가 아직 이르지아니 하였나이다"라고 한 말씀에 대하여,
고데이(Godet)는 해석하기를, 그가 메시야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는
예루살렘에서야 될 일이고 가나에서 될 일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그가 가나에서 포도주를 만드시므로 메시야로서의 영광을 나타내셨다고, 우리 본문은 말하지 않는가? 11절 참조.
그러므로 여기 이른바, "내 때"는 바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그의 권능을 나타내실 일정한 시간을 가리킨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시어 그의 중보 역사의 일체를 시행하십니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그의 순종은, 시간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정하신대로 맞추어 움직이신 것입니다.
이런 일은 일반인으로서는 생각도 해 볼 수 없는 절대 완전하신 순종입니다.
3) 예수님의 반응에 대한 예수님의 어머니이 반응입니다(5절).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이것을 보면, 그 모친이 예수님의 의미하신 바를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에게만 순종하여 성역을 이루어 나가신 사실이, 그 모친에게 알려졌습니다.
예수님의 성역은 순종(順從)으로 일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순종(順從) 일관주의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 모친은 하인들더러,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라고 부탁합니다.
순종은 무엇에서든지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하시게 하는 비결입니다.
루터(Luther)는 말하기를, "순종은 이적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3. 예수님의 첫 이적을 행하심(6~10절).
1) 기적에 사용된 것으로 전해지는 항아리가 여섯이 있었습니다(6절).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유대인의 가정에는, 연회할 때에 물을 많이 사용하기 위하여 돌 항아리를 비치하였습니다.
그것은, 주로 식사 전후에 손 씻는 예식을 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풍속은 성경이 제정한 것이므로,
진정한 종교적 의의와 효과를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번잡한 예식을 변하여, 맛 있는 신약의 종교(포도주는 신약의 기독교를 상징함)로 변화시켰습니다.
그것이 물론 포도주를 만드신 비유적 의미입니다.
"두 세 통 드는 항아리"의 용량(用量)은, 약 77리터, 혹은 115리터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큰 항아리가 여섯이나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 본문이 이렇게 많은 분량에 대하여 관설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만드신 포도주의 많은 분량을 말하여, 그의 이적의 놀라운 사실을 지적하려는 까닭입니다.
2) 예수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시고 이제는 떠서 연회자에게 갖다 주라하시매 갖다 주었습니다(7~8절)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하인들은 즉시 순종하였다.
"이제는 떠서"라는 말을, 샘물에서 "물을 길어서"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으나(Westcott), 확실치 않습니다.
"연회장"은, 그 때 풍속에 연회의 손님들 중 주빈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적에 있어서, 물이 어떻게 포도주가 되었는지에 대하여 말한 바 없고, 다만 고요히 역사하시는 주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런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3)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9a절).
“[9a]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주님의 기이한 역사의 유래를, 사람마다 알지 못하나 오직 주님께 충성하는 종들만은 알았습니다.
4)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다라고 합니다(2:9b,10절).
“[9b]연회장이 신랑을 불러[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기독교의 복음은, 사람들을 이 세상보다 선미(善美)한 내세(來世)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기 이른 바 "좋은 포도주"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현되는 구원의 기쁨을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1) 혹설에, 여기 "좋은 포도주"는 취할 수 있는 강한 술을 의미한다고 하나,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이적으로 만든 술 인 것인 만큼 취하게 하는 성분이 강하지 않고도 좋은 술 일수 있습니다.
(2) 어떤 학자들은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만드신 술은 발효(醱酵)하지 않은, 취하지 않는 술이었을 것이라고 하나, 그렇게 주장할 만한 본문의 증거는 없습니다.
설혹 예수님께서 만드신 술은 취할 수 있는 성질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을 절제 있게 마시는 사람들은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절제"의 덕을 가르칩니다(갈 5:23).
금주(禁酒)를 규칙으로 가지는 한국 교회에 있어서,
예수님의 이 이적이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한국인의 특수한 사정(술 취하기 잘 하는 한국인)으로 보아, 금주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친 "절제"를 위한 것입니다.
4. 이적의 결과(11절)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 그의 표적은 그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11a).
“[11a]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여기 "표적"이란 말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리는 신령한 증표라는 뜻입니다.
"그 영광을 나타내셨다"는 것은, 메시야의 증표로서의 권능을 나타내셨다는 의미입니다.
2)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11b).
예수님의 이적을 보고 그를 믿었습니다.
5.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1) 복종의 원리.
마리아는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4절), 침묵하며 순종한 후 하인들더러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5절).
이것은, 무조건 순종을 말함입니다.
무조건 순종은 하나님께만 하는 법인데,
여기서 예수님이 하나님 대우를 받으신 것은 당연합니다.
과연 하인들은 조금 후에 그렇게 순종하였습니다(7~8).
루터(Luther)의 말과 같이, 참된 신앙의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무슨 일을 지정해 드리지 아니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복속시킵니다.
2) 변화의 원리(6-9).
결례의 항아리 물의 포도주로 변화된 것은, 예수님의 권능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적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서 죄인들이 변화되어 성도가 될 것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악한 사람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루터(Luther)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또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은 죄인들을 변화시키는 운동입니다.
3)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면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리스도의 처음 표적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은 기독교는 변화시키는 종교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변화시키는 분이신 것입니다.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고,
사망을 생명으로 변화시키고,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면 어떻게 달라집니까?
(1) 맛이 달라집니다.
물은 맛이 없으나 포도주는 달콤하게 맛을 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변하여 새 사람이 되면,
맛이 달라 집니다.
① 그 마음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납니다.
② 그 말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납니다.
③ 그 생활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납니다.
사도바울은 고후2:14,15에서 “[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5]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맛과 향기가 있습니다.
(2) 색깔이 달라집니다.
물은 아무런 색깔이 없으나 포도주는 불그스레한 색깔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변하여 새사람이 되면 색깔이 달라집니다.
① 미움의 색깔이 사랑의 색깔로 변합니다.
② 근심이 색깔이 희락의 색깔로 변합니다.
③ 불평의 색깔이 화평의 색깔로 변합니다.
④ 불량의 색깔이 양선의 색깔로 변합니디.
⑤ 사나운 색깔이 온유의 색깔로 변합니다.
얼굴만 봐도 은혜가 됩니다.
음색이 달라집니다.
안색이 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색깔이 선량하게 보입니다.
(3) 용도가 달라집니다.
여기있는 물은 결례용 물이었습니다.
요2:6절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당시의 유대인들은 식사 전후나 귀가시 손을 씻는 풍속이 있었으며(마15:2,눅11:38), 잔치의 초청객도 먼저 손을 씻고 잔치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물은 더러운 손을 씻는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이 마시는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면 용도가 달라집니다.
죄의 병기에서 의의 병기가 됩니다.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지금까지 세상과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사용하던 자신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쓰게 됩니다.
(4) 위치가 달라집니다.
항아리의 물은 결례용으로 집 마당에 놓여 있었으나 포도주가 된 다음에는 신랑과 혼주와 하객들의 상 위에 놓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변하여 새사람이 되면 위치가(활동 무대)달라집니다.
인간의 편에서 하나님 편으로, 세상 편에서 하나님 편으로 위치가 달라집니다.
지상에서 하늘 나라로 위치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지옥갈 사람이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5) 값이 달라집니다.
물은 값이 적지만(싸지만) 포도주는 물에 비해 값이 비쌉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변하여 새 사람이 되면 값이 달라집니다.
전에 죄 가운데 거할 때는 아무런 가치가 없던 사람인데 예수 안에서 벼화를 받으면 값있는 사람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은 변하여 새롭게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표적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표적으로서 예수님 자신이 자연 만물을 지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요구라 할찌라도
“하나님의 때” 를 생각하시면서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결례 의식에 사용되는 항아리를 사용하셔서,
더 좋은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집과 같은,
구약 시대를 마감하고,
성령 안에서 기쁨이 넘치는 새 시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능력자이십니다.
나의 형편이 어떠해도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처음에는 좋은 것을 주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쁜 것을 줍니다. 제품도, 신용도, 봉사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순종하므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변화시키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맛이 달라지고, 색깔이 달라지고, 용도가 달라지고, 위치가 달라지고, 값이 달라집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변화를 받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