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은 김포-수원-의정부-김포로 이동하는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경기도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문자로만 봐도 피곤한 일정이다.
어떻게 이동해야 할까. 지하철? 버스? 승용차? 방법은 다양하다. 조금 젊은 축에 든다면 이동시간 단축을 위해 대중교통 앱으로 최적의 수단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신에게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다.
휠체어는 버스를 탈 수 없다. 광역버스, 시외버스에는 저상버스가 도입되지 않았다. 저상버스란 계단이 없고 휠체어가 탈 수 있는 리프트가 장착된 버스를 말한다. 당신은 택시도 탈 수 없다. 장애인콜택시(아래 장콜)가 있긴 하나 장콜은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지자체별로 운행하며 한정된 지역만을 이동한다. 이렇게 하나씩 제외하다 보면 결국 남는 건 지하철이다. 그렇다, 지하철만이 휠체어 탄 장애인이 경기도 동서남북을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 ‘환승’ 보고 지하철 노선 골라
경기도 김포 마산동에 사는 이형숙 씨(48세, 지체장애 1급)는 지난 11일, 집에서 개화역까지 장콜을 이용하기 위해 전날 예약했다. 김포 장콜은 낮 1시부터 6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만 예약이 가능하다.
집에서 개화역까지는 30분, 요금은 천 원이다. 9호선 개화역에 내린 이 씨는 이제 1호선 수원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지하철로 꼬박 2시간 걸린다. 개화역에서 수원역 가는 방법도 여러 방법이 있겠으나 이 씨가 택한 방법은 9호선을 타고 동작역에 내려 4호선을 탄 뒤 금정역에서 다시 1호선으로 갈아타는 것이다. 이유는 ‘환승’ 때문이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에게 지하철 환승은 지하철 이용을 주저하게 하고 이동시간을 하염없이 잡아먹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예를 들어, 9호선을 타고 김포공항역에서 내려 5호선을 타고 신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김포공항역에서 5호선 환승을 하려면 엘리베이터만 4번 갈아타야 한다. 또한 5호선 김포공항역은 곡선 승강장이라서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의 단차가 커 옆에서 보조해주는 이가 없으면 타기 힘들 정도다. 신길역은 아예 엘리베이터는 없고 휠체어 리프트만 설치되어 있다.
혹은 9호선을 타고 노량진역까지 간 뒤 1호선을 타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노량진역 또한 엘리베이터 없이 리프트만 있으며 갈아타려면 육교를 지나야 해서 장애인 접근은 아예 불가능하다. 반면, 동작역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으며 금정역은 뒤돌아서면 바로 갈아탈 수 있다. 이 씨가 이 노선을 선택한 이유다.
2000년대 초반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수도권의 많은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설치되지 않은 곳이 남아 있고 설령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고 해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동선을 고려해 설치된 것은 아니다. 또한 휠체어 리프트의 경우, 잦은 고장으로 장애인의 원성을 사고 있다. 리프트는 이용하려면 역무원을 불러야 하고 역무원이 와서 작동하려고 하면 고장이 나 있거나 이동 중간에 멈춰 장애인들이 공포에 떠는 경우도 많다. 이러하니 웬만해서는 리프트 이용은 피한다.
# “장애인의 시간은 시간이 아닌가” 분노
오전 8시에 김포에서 집을 나선 이형숙 씨가 수원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40분이었다. 11시 회의를 마친 후 이 씨는 점심을 먹고 곧바로 의정부로 이동했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경기장차연) 공동대표로 활동하는 이 씨는 이날 4시에 의정부시청에서 시장 면담이 잡혀 있었다.
수원에서 의정부로 가기 전, 이 씨는 수원 장콜에 ‘혹시나’ 싶어 전화했다. 7월 초, 경기도가 31개 시군에 공포한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에 관한 표준조례’ 때문이었다.
경기도는 이 조례에서 각 시군의 장콜이 수도권(경기, 서울, 인천) 및 인접 지역을 운행하고 요금도 시내버스 수준의 요금으로 통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즉, 기존엔 각 기초자치단체 내에서만 운행하던 장콜이 이젠 시군 경계를 벗어나 경기도 전체 지역과 서울, 인천까지 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서 상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의정부까지 장콜 이용이 가능하냐”는 이 씨의 질문에 수원 장콜 상담원은 “가능은 하나 언제 연결될지 알 수 없다”라고 답했다. 이 씨가 “약속시각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갈지 정해야 하므로 몇 대 정도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느냐”라고 다시 물었으나 상담원은 “답할 수 없다”라는 대답만 반복할 뿐이었다. 이어 “표준조례를 아느냐”라는 이 씨의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이날도 이 씨는 결국 의정부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다.
이 씨는 더는 지체할 수 없어 낮 1시경, 지하철을 타러 수원역으로 향했다. 이 씨는 수원 장콜 상담원의 태도에 갑갑함을 표하며 “장애인의 시간은 시간이 아닌가. 비장애인들은 버스가 몇 시간 째 안 오면 난리가 난다는데 장애인에겐 그런 게 없다.”라고 꼬집었다.
확인 결과, 수원시는 지난해 10월 8일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기존에 수원 시내만 운행하던 것을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 운행하고 있었다. 서울, 인천, 경기도 지역의 경우 치료 목적으로 병원에 갈 때는 왕복 이용이 가능하며, 치료 목적이 아닌 경우엔 편도 이용만 할 수 있다.
수원 장콜 측은 2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조례 개정과 함께 이용하는 분께 모두 안내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수원 장콜 이용자인 이 씨는 정작 “단 한 번도 광역 이동과 관련해 연락받은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 씨는 지난 1월 광역 이동에 대해 문의했으나 이용을 거절당했고, 11일 처음으로 수원에서 의정부로의 이용이 가능함을 알게 됐다.
수원 장콜 측은 “광역이동 예약은 현재 병원, 복지관과 같이 치료 목적으로 갈 때만 받고 있다”라며 “그 외의 광역 이동은 예약을 받지 않으며 ‘즉콜’로만 이용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즉콜'은 당일 전화해 접수하는 것으로 평균 두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이는 ‘평균’일 뿐 대기시간은 그때마다 다르다. 수원 장콜 측도 “그날 예약 상황에 따라 다르니 시간은 얼마가 될지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 지하철 엘리베이터 표시, 정작 장애인은 알아보기 힘들어
결국 이 씨는 수원역에서 의정부시청까지 지하철을 이용했다. 다행히 환승은 회룡역에서 의정부 경전철로 갈아타는 한 번뿐이었다. 익숙한 길이라 환승 구간을 찾는데 주저함은 없었다. 그러나 익숙한 길이 아닌 경우, 장애인은 지하철 환승할 때마다 엘리베이터를 찾아야 하는데 이것 또한 쉽지가 않다.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출입구는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보이죠. 그렇지만 장애인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는 표시도 되어 있지 않고 어떤 기준도 없이 중구난방이에요. 표지판도 휠체어를 탄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지 않고 천장에 붙어 있죠. 역무원도 없으니 물어보기 힘들고 비장애인들은 계단을 이용하니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혜화역은 이 표시가 잘 되어 있다. 혜화역은 서울대병원과 노들장애인야학이 있어 다른 지하철역보다 엘리베이터 사용 빈도가 월등히 높다. 이 대표는 혜화역의 예를 들며 “누구나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정확한 안내 표시가 불가능한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의정부시청에 도착한 이 씨는 시장실이 있는 시청 2층으로 이동하려 했으나 그곳에는 엘리베이터 없이 리프트만 설치되어 있었다.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의정부장차연) 측이 고장이 잦은 기존의 구형리프트를 폐기하고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했으나, 시청 측이 예산상의 이유로 또다시 리프트를 설치한 것이다.
결국 이날 새로 설치한 리프트조차 또다시 고장이 나 현장에 있던 장애인들의 원성을 샀다. 이 씨가 리프트를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가고 뒤이어 두 명의 동료 활동가들이 리프트를 타려고 했으나 리프트가 멈춰버린 것이다. 현장에 있던 공무원들이 수동으로 리프트를 작동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장애인들의 리프트에 대한 두려움은 지하철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 경기도가 공포한 표준조례? “전해 받은 것 없어”
한 시간의 시장 면담과 한 시간의 의정부장차연 회의가 끝난 저녁 6시.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확인차 의정부 장콜에 문의했으나 상담원은 김포까지는 운행하지 않으며 의정부 관내 및 인접지역까지만 운행한다고 안내했다. 7월 초 경기도가 공포한 표준조례에 대해서는 “의정부엔 아직 하달되지 않았다”라며 모른다고 밝혔다.
결국 이날도 김포까지 다시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다. 출발 전 이 씨는 김포 장콜에 저녁 8시에 개화역에서 집까지의 경로를 예약했다. 김포 장콜은 당일 이용 시, 두 시간 전에 예약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
의정부에서 개화역까지 지하철은 총 세 번 환승해야 한다. 의정부경전철로 회룡역까지 간 뒤 1호선으로 갈아타고 서울역으로 간다. 서울역에서 다시 공항철도를 타고 김포공항역에서 내려 개화역까지 9호선을 탄다.
이 씨는 얼마 전 서울역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그날도 의정부에서 귀가 중이었는데 자정이 다 된 시각에 1호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으나 엘리베이터가 공사 중이었다. 당시 서울역 측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대체이동수단도 만들어 놓지 않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이 씨는 어느 곳으로도 이동할 수 없었다. 공항철도 막차를 놓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이 씨는 다급히 역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는 “오늘부터 엘리베이터가 중지돼서 하루 종일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들어 올렸더니 무릎을 다쳤다. 더는 못 들어 올린다.”라며 “119 불렀으니 기다려라”라고 답했다.
결국 119가 와서 이 씨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역무원에게 “대체수단도 없이 엘리베이터를 중지시키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했고, 이에 역무원은 “엘리베이터 교체 회사에 가서 항의하라. 우리는 모른다.”라며 “이렇게 도와줬으면 고마워해야지”라는 말로 오히려 이 씨에게 모욕감을 주는 발언을 했다.
11일, 다시 서울역을 갔을 때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정상운행하고 있었다. 서울역 측은 “민원이 많이 들어와서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한 뒤 공사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김포에서 경기도 광주 가도 돌아올 방법 없어
지하철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경기 지역의 동서남북을 유일하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이마저도 편히 이용할 수 없다. 매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돌부리처럼 튀어나온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은 없다. 피해는 온전히 그것을 이용한 장애인의 몫이다.
경기장차연은 2009년부터 경기도에 광역 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광역이동지원센터 구축을 요구해왔다. 그리고 지난 7월 초, 경기도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표준조례를 31개 시군에 공포했다. 그러나 이는 강제사항도 아니고 미이행 시 처벌 조항 또한 없어 사실상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확인 결과, 7월 25일 기준으로 김포, 수원, 의정부시 중에서 이 표준조례를 알고 있다고 답한 곳은 없었다.
표준조례에서 주요하게 담고 있는 내용은 광역 간 경계 없는 이동과 시내버스 수준의 요금 책정이다.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장콜과 같은 차량으로라도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 특별교통수단이다. 즉, 장애인에게 장콜은 대중교통과 같은 의미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 정한 특별교통수단의 법정대수는 등록장애인 중 1~2급 장애인 200명당 1대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경기도 광주, 구리, 양주, 동두천 지역 등은 여전히 특별교통수단이 한 대도 없는 등 법정대수에 미달하는 곳이 여전히 많다. 이러한 곳은 지하철도 없고 저상버스 도입률도 미비해 장애인 이동권 자체를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경기장차연 이도건 이동권위원장은 “국가에서 수많은 보조금과 지원금이 내려오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각 시군에선 이행하지 않고 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는 게 핵심”이라면서 “지자체는 특별교통수단 요금 체계를 대중교통 수준으로 책정하는 것, 광역 간 거리 제한을 푸는 이유 등을 여전히 철학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2008년, 서울과 경기도 간 광역버스 환승할인제도가 시행됐다. ‘수도권’이라고 묶이는 이 권역은 이제 상시로 이동하는 공간이 됐다. 그러나 여기서도 장애인은 배제된다.
김포 장콜의 경우, 이틀 전에 예약하면 광역 간에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김포에 사는 장애인이 경기도 광주에 장콜을 타고 간다면, 갈 수는 있으나 광주에서 김포로 다시 돌아올 방법이 없다.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기도 내 장애인 이동권은 분할되어 있다. 이용시간, 이용방법, 이용요금 등도 제각각이다. 이를 통합해 관리하는 시스템도 없어 이용하려는 사람이 직접 알아봐야 한다. 경기도뿐만 아니라 장애인이 타지방에 갈 때면 매번 부딪히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혼란스럽고 어지럽다.
선택이란 고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때에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장애인에게 이동할 수 있는 선택이 있는가? 없다. 이동권, 교통약자편의증진법,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에 관한 표준조례 등은 글로만 존재할 뿐, 장애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것은 여전히 끊어지고 차단된 도로이다.
아직도 많은 지자체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고 있고, 장애인은 오늘도 이동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동을 하지 못함으로써 많은 삶의 권리가 박탈되고 있다. 교육도, 여행도, 만남도, 노동도. 이는 2014년 지금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