Имя, которое произношу на берегуреки Енисей|박소원 한러시집
박소원 저자(글) · 김태옥 번역 곰곰나루 · 2023년 04월 25일
2004년 ‘문학선’ 신인상에 ‘매미’ 외 4편 당선으로 등단한 박소원 시인의 한러시집. 가족, 고향, 집을 소재로 한 시의 세계를 러시아, 유럽 등으로의 여행을 통해 한껏 확장해 가던 중에 얻은 많은 시편들을 러시아어로 번역했다. 1부에 10편, 2부에 10편, 3부에 12편의 시를 실었다. 유라시아 대륙을 오가는 여정을 통해 내면을 통찰하는 시적 상상력이 빛난다. 한중시집에 이어 두 번째로 글로벌 영역으로 진입한다.
저자 박소원
2004년 『문학선』 신인상에 「매미」 외 4편이 당선. 서울예술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석, 박사) 졸업. 시집 『슬픔만큼 따뜻한 기억이 있을까』, 『취호공원에서 쓴 엽서』, 「즐거운 장례」 그리고 한중시집 『修飾谷聲 : 울음을 손질하다』 등을 냈다. 2022년 시집 「즐거운 장례」로 단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
인천공항 출발 북경공항 터미널에서 경우를 하고 크라스노야르스크 공항에 도착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푸시킨의 조국 광활한 땅을 달려갈 때, 분단국가인 조국의 서글픈 현실이 떠올랐다. 푸른 바이칼 호수 앞에서 일던 전율과 알혼 섬의 신비스러움에 오랫동안 사로잡혔다. 이 사로잡힘은 나를 이끌고 흐르기 시작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의 여행에서 내내 푸시킨을 향할 때, 나는 푸른 기운을 휘감고 다녔다. 그의 생가와 신혼집을 방문하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시 구절을 여행노트에 줄 맞추어 쓰곤 했다. 반복되며 증폭되는 감정은 축제 속에 어떤 잔혹함처럼 고통 속에 어떤 리듬처럼 뒤섞이며 솟구쳤다.
‘내 안의 위버멘쉬를 깨우’고 싶던 막바지 여름이었다. 하바롭스크 역에서 캄캄한 어둠을 뚫고 기차에 올랐을 때, 나를 이끌던 푸른 기운이 끝내 내 안으로 침투했다. 기차 침대칸에 누워 붉은 혈류를 누비는 호수의 물소리에 심취됐다. 방향 없이 높아가던 파도들, 이른 아침 블라디보스토크역 광장에 수많은 비둘기가 되어 모이를 쪼며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한러시집에 대한 생각은 알혼 섬에서 발원됐기에, 꼬박 9년 만에 결과를 갖게 된 셈이다. 궁금증이 많은 필자의 질문에 늘 답을 주셨고 직접 번역을 맡아주신 김태옥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 2023년 4월 박소원
목차
*시인의 말 Слова поэта
-제1부 Первая часть - 움 Почка 푸른 뿌리 Синий корень 검은 잉크 Черные чернила 아, 아 Ох! Ох! 지렁이 Дождевой червь 소문 Слухи 나는 다시 Опять я 나는 왼쪽이다 Моя левая сторона 연리지 Сплетённые ветви 능소화야 능소화야 Кампсис крупноцветковый, кампсис крупноцветковый!
- 제2부 Вторая часть - 손맛 Ощущение прикосновения рук 손 Руки 어떤 추억 Какое-то воспоминание 이별법 Разлука 즐거운 어머니 Веселая мама 실종 Исчезновение 小雪날 눈을 맞으며 Мне в глаза сыпет первый снег… 봄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Что случилось с весной? 추억들 죄다 문을 닫았다 Двери в воспоминания заперты 프라하에서 온 편지 Письмо из Праги
-제3부 Третья часть - 북경공항 터미널에서 В Терминале аэропорта Пекина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며 Бегая по сибирским полям 시베리아 벌판에 비가 내린다 На сибирском поле идет дождь 예니세이 강가에 서 있었네 Я стояла на берегу реки Енисей 예니세이 강가에서 부르는 이름 Имя, которое произношу на берегу реки Енисей 알혼 섬에서 쓴 엽서 Открытка, написанная на острове Ольхон 이르쿠츠크와 알혼 섬을 오가는 배 안에서 На пароме между Иркутском и островом Ольхон 아무르 강가에서 На берегу реки Амур 빈센트 반 고흐 Винсент Ван Гог 성 폴 요양소 앞에서 Перед лечебницей монастыря Сен-Поль-де-Мозоль 오베르의 교회 먼지 희뿌연 방명록에 В пыльной гостевой книге церкви в Овере 고흐의 무덤 앞에서 Перед могилой Ван Гога
해설 : ‘다른 공간’을 찾아가는 길 · 한원균 Комментарии : Путь поиска «Другого пространства» · Хан Вонгюн
출판사 서평
상처받은 영혼은 떠돌이 나그네 되어 바람의 노래를 듣는다. 바람의 숨결과 더불어 백 리 밖 새들의 노래를 듣는다. 이슬에 차여 신발이 젖어들수록 바람의 정조는 깊어지고 영혼의 목소리는 새로운 길을 찾아 길을 재촉한다. 몸의 길, 혼의 길, 말의 길, 어둠의 심연에서 어렵사리 열린다. 길 위에서 시인의 감응은 수렴과 확산을 거듭한다. 길 위의 서정, 길 위의 존재론, 아득하다. - 우찬제(서강대 교수, 문학평론가)
박소원의 이번 시집은 시베리아 시편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다. 시베리아는 광활하게 열린 공간이지만 이를 횡단하는 기차는 어떤 기억들을 닫고 열게 하는 매우 좁은 기억의 통로이다. 시간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지나오고 흘러가는 초자연적 질서가 아니라, 특정한 경험공간들을 분할하고 계기적으로 이행하면서 얼마든지 그 속성을 재구성할 수 있는 상대 공간이기도 하다. 타자의 공간을 발견하고 동시에 자기화하려는 욕망으로서 여행은, 시간의 무모한 폭력성과 감금된 일상성을 무력화하면서 동시에 부재의 공간을 현재화하려는 헤테로토피아적 열망의 표현이다. 박소원의 시베리아는 바로 낯선 시간을 타자화하면서 이를 ‘새로운 공간’으로 다시 열어 보이고자 하는 시적 열망의 출발지라 할 수 있다. 그녀가 찾아나서는 ‘다른 공간’은 ‘내 몸이 내 길이다’(「지렁이」)는 인식 위에서 성립하는 헤테로토피아의 발견 욕망이기도 하다. 그녀가 추구하는 공간의 확장성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하면서 동시에 그 길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 또한 간절하다. - 한원균(문학평론가, 한국교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