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헌금 낙수(落穗)
영세한 게 04년 9월 19일이니 이제 겨우 10년이다. 햇병아리라는 말은 이럴 때 두고 써야 맞으리라. 부산 교구 관내의 성당을 뒤로 하고 이곳 용인에 올라왔다. 4년이 가까워진다. 삼가동 본당, 한 마디로 좋다. 교우들 모두가 친절하고, 특히 주임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 느끼는 게 너무 많은 것이다.
10년 동안 한번이라도 가 본 성당이 많은 교우를 뽑는다면? 나도 우리 본당에서 몇 번째는 되리라. 어찌 보면 내 교만을 증명하는 것인데도 별 망설임 없이 내세운다. 그러나 그만한 사유가 있었으니 혼자서라도 자위한다. 들먹여 보자. 밀양 ․ 삼랑진 ․ 물금 ․ 금곡 ․ 화명 ․ 대천 ․ 수정마을 ․ 구포 ․ 가야 ․ 하단 ․ 중앙(주교좌) ․ 영주 ․ 금정 ․ 해운대 ․ 사직 대건 ․ 동래 ․ 양정 ․ 전포 ․ 남천(주교좌) ․ 동항 ․ 만덕 ․ 망미 ․ 서동 ․ 성지 ․ 안락 ․ 언양 등등. 또 있다. 괌(Guam)을 여행했을 때, 애써 찾아간 그곳 주교좌 아가네 성당. 그리고 돌아오는 날 들렀었던 교민 성당(마산 교구에서 파견 나온 신부가 사목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삼가동 본당까지 합하면 서른 대여섯 개는 가까이 되리라. 본당은 아니지만, 삼랑진 오순절 평화의 마을과 초량 시각 장애 복지관 등의 성당까지 머릿속에서 가늠해 본다.
본당의 경우는 거의 노인 학교 수업 때문이었다. 그래도 곳곳에 추억은 남기고 왔다.
그 모든 본당의 미사에 참례했다는 뜻은 아닐 수밖에. 글쎄, 반 정도? 이게 정답이리라. 본당(성당) 부설 노인 학교에서 시시껄렁한 우스갯소리나 하고, 민요와 대중가요 따위를 갖고 수업을 하느라 그렇게 분주했다는 결론이다. 모두가 지난 일이다. 하기야 그끄저께 한국가톨릭문인회 송년회장에서 먼발치에서 본 저 유명한 S 시인도 이런 말을 하더라만.(노래 제목은 정확하기 않다. 어쨌든 대중가요였으니 오십보백보라 하자.)
“강의를 하다가 가끔 노래를 부릅니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지는 이지러진 조각달/ 강물도 찰랑찰랑 목이 멥니다♬♫”
각설하고.
삼가동 본당에 교적을 옮긴 이후 다시 <성경> 필사를 계속하기에 이르렀다. 망가지기 시작한 시신경도 기적적으로 돌아왔기 시작했고. 부산 교구 평협 회장 이규정 교수의 말대로 <신약>부터 손을 댔다. 그제는 ‘마르코 복음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예수님께서 칭찬을 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43절)/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 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넣었기 때문이다.(44절)”
그 날 여인의 헌금액은 렙톤 두 닢이었다고 적혀 있다. ‘렙톤 한 닢+ 렙톤 한 닢= 콰드란스 한 닢’이란다. 렙톤은 당시의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이라던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실제 통용되는 주화로 치면 렙톤 한 닢이 5백 원짜리 정도…….혼자서 짐작해 본다. 예수님이 보고 계시는 터라, 부자들이야 요즘 돈 백만 원도 넣었겠지.
나는 짧은 신앙생활이지만, ‘과부의 헌금’에 어금지금한(?) 장면을 수시로 보아왔다. 바로 삼랑진 오순절 평화의 마을 성전에서였다. 거기 가족들 대다수(340명)가 장애인들이다. 요셉 자매회 수녀들도 마찬가지다. 장애를 가졌다는 말이다. 한 여남은 명이 된다. 교우들조차 그런 수녀가 있는 줄 모른다.
한 달 한 번씩 기차를 타고 올라가서 공식적으로 회의에 참석했었다. 물론 ‘독서’도 내 몫일 때가 있고. 당연히 가족들 틈에 섞여 앉는다. 이윽고 음정과 박자가 맞을 턱이 없는 성가를 같이 부른다. 그리고 봉헌 시간, 헌금함을 향해 나가다 보면 그야말로 기가 막힌 장면과 맞닥뜨린다. 괴성을 지르며 거의 뛰어다니는가 하면, 수녀들과 악수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형제도 있다.
그들 모두가 뭔가 들고 나기는 한다. 다만 천 원짜리라도 손에 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자도 그림도 아닌 걸 끼적거린 메모지를 달랑 들고 나가 헌금함에 넣는 것이다. 자기 이름이나 겨우 베낀 자매, 기도문을 적은 형제 등등. 요셉 자매회 수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기 가게 ‘살롬’에서 백 원짜리 커피 한 잔만 안 마신다 치자. 동전 하나를 갖고 예수님의 ‘과부’를 닮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게 안 되는 이유는 단 하나. 아무리 가르쳐 봤자 지적 장애를 가진 그들에겐 불가하기 때문이다. 진◌금이라는 석 자에 평생 매달려 사는 자매의 경우. 그 자매에겐 동전 한 닢보다 가운데 획이 하나 빠진 이름을 적은 종이쪽지 하나가 몇 백 배 더 나가는 헌금이다. 그 진지한(?) 얼굴을 보면 안다.
비슷하기까지는 않지만, 초량 시각 장애 복지관도 눈물겹기는 마찬가지다. 교구청 사목국장 전동기 신부와 인연이 닿았었다. 서너 해 동안 거기 노래를 불러 주러 마지막 주, 主日에 들르곤 했다. 가족들은 앞이 안 보이니 남이야 얼마를 바구니-수녀가 들고 다닌다.-에 넣는지 알아 볼 수 없다. 게다가 박 그레고리오 신부까지 근래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러서 마찬가지. 예수님만 그 헌금의 무게를 알고 계시리라. 천 원짜리 한두 장이라 해도, 티끌 모아 태산 아닌가? 뼈 빠지게 안마해서 번 돈을 호주머니에서 꺼내는 모습을 보면 ‘선뜻’이라는 부사(副詞)가 아름답다고 느껴지고말고. 그들의 적은 헌금에도 곱하기 100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
이러는 나는 헌금 이야기를 할 자격이 없다, 절대로! 교우들에게 회자되는- 속된 말이긴 하지만-배추 이파리 한 장을 갖고 발발 떠는 주제다. 예수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받고도 남은 위인 아니고 뭔가.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선 같이 간 동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라도 가끔은 과시(?)를 했었는데…….
서른 군데 넘게 본당에 갔다 왔다고 유세를 떨면 뭐하나. 또 하나 손가락 한 마디만큼의 사랑 실천도 못하는 주제에 요란하게 떠드는 건 무슨 망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