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심훈문학상
전봇대의 구인 광고 /김하연
길을 가다 멈춘 장소에 있어요
당신의 위치를 대변해주기도 해요
내일에 대한 불안감에 잦은 요의를 느낀다면
내게 바투 다가앉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중해를 그릴수도
비우로 싶은 토사물을 게워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감원 대상이 되지 않아요
떠도는 유기 견들이 달의 밥그릇을 물다 놓치면
한쪽 뒷발을 든 채 하소연을 여러 번 하고 간,
익숙해진 일이기도 하니까요
젖은 당신의 고민을 번쩍 들어 올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비오는 날은 위험을 감지해줘요
기분을 높이는 생의 변압기에는
자칫 일당 높은 전자파, 당신의 위험직종에 새겨져 있거든요
번개처럼 반짝 나타난 전단지는
거친 노가다를 하는 천둥들이 다 떼어가고
스티커 자국처럼 당신은 늘 한발 늦기도 하죠
그럴 때면 선술집에서 잔반을 털고 나온
왕년의 한 소절을 다 모아
못다 부른 음표를 만들어 주기도 해요
내 날개를 오래 들여다 본 적이 있나요
새들의 거처인 내 육신은
물컹한 새똥이 굳기까지 오랜 역사를 거쳐왔죠
이곳에 다시 오면 당신의 중얼거림은 경력사항이 되어
담쟁이넝쿨처럼 타고 오를 거예요
당신, 지금 저만큼 걸어오시는군요
오늘은 별들과 통신할 빈집을 구하는군요
하청 받은 내 옷들이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