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에서 미동으로(7)*
부동의 처지가 된지 두 달이 다가옵니다. 병원에 있을 때는 잠시 목회를 접고 하나님과 나 자신에게 집중이 되었습니다. 이제 목회에 복귀를 하고 보니 마음이 느슨해졌습니다. 환경을 초월하여 영적으로 민감하기가 여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종 하나님과 자신을 향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 동안 모든 예배를 인도하며 새벽기도는 못했는데 지난 주간에는 새벽에도 말씀을 전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부상 부위가 점점 좋아져서 힘을 실어서 균형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미동(微動)에서 활동(活動)으로 점점 전진하고 있습니다. 3층 목양실에서 지하 예배실까지 60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좀 나아지고 있습니다. 어제 주일 오후예배를 마치고는 남성도들의 족구시합을 했습니다. 힘을 내서 짧은 거리지만 차를 몰고 학교 운동장에도 갔습니다. 마음은 청춘(?)인데 운동에 여전히 부동(不動)의 신세를 면할 수 없어 응원만 했습니다. 그래도 성도들은 목사가 한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합니다.
오늘 아침엔 새벽기도를 마치고 두달 만에 ‘다니엘축복캠프’를 나갔습니다. 초,중,고등학교의 인근에 위치한 우리 교회는 다음세대를 바라보며 희망을 가집니다. 월요일 아침 등굣길에 작은 간식을 주며, 원하는 아이들을 축복하며 기도하는 일을 3년째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담임목사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했는데, 교사들과 성도들의 섬김이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다음세대의 위기는 우리 교회만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저 출산과 노령화시대의 현실을 교회 안에서도 목격합니다. 다음세대를 위해서 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물으면 답이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미래에 대한 뾰족한 전략도 비젼도 없이 막연한 염려만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축복캠프’라는 이름으로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다가가고 있지만, 마음을 열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우리 가정의 자녀들이 학교 공부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세상 문화에 마음을 빼앗기도 있습니다. 학교는 그렇다지만, 학원에 간다고 주일에도 교회에 오지 않는 아이들을 볼 때, 정말 걱정이 되고 기도가 됩니다.
어제 주일에 집사님 한분이 교회로 들어서며 목발을 잡은 저를 보고 놀라셨습니다. 제가 다친 줄도 몰랐으니 정말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제가 농담으로 집사님 구하러 전쟁에 나갔다가 부상을 당했노라 하며 웃었습니다. 제가 다친 며칠 후, 발등을 다쳐 깁스를 하신 집사님이 저처럼 목발을 집고 오셨습니다. 성도들이 우리 둘을 보면서 목발 동기(?)라고 웃으면서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그야말로 목발은 제 발을 대신합니다. 지난 주중에는 누가 교회에 휠체어를 가져왔습니다. 아파트 단지 폐기장에 내놓은 것인데 상태가 새 것과 다름없어 가져 왔답니다. 관리권사님이 제 왼발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고쳐 놨습니다. 퇴원할 때 간호사가 렌탈을 권유했지만,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 주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또 하나의 선물이 되었습니다. 한시적으로 장애인(?)이 되고 보니 이동할 때 건강한 몸이 얼마나 귀한지 깊이 깨닫습니다. 이제야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어르신을 손잡아 도움을 줌이 복된 일임을 느낍니다. 그리고 건강할 때, 두 다리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을 때, 교회생활도 열심히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있을 때 잘 해야 합니다.*
첫댓글 할렐루야!
오늘은 목요일, 그리고 낮의 길이가 년중에 가장 길다는 하지네요. 올 여름은 건강한 여름나기가 되시길 위하여 축복합니다.
오늘의 사회는 풍요로움과 곤궁함이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하다 싶습니다. 그런데 이곳 필리핀도 정도가 지나치다 여겨지네요.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우리 모두를 위해 목숨을 버려 구원하신 주님은 그게 아닐텐데 말입니다.
너무 많이 가진 자들과 너무 적게, 아니 가진 것이 전혀 없는 자들이 어떻게 하면 서로를 존중하며 살 수 있을까요?
서로가 존중하며 어울리는 세상을 소망해 봅니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운영자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