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고려 우왕 2년 병진(丙辰, 1376)년 문과방목이다.
1376년에는 안종원의 아들 삼형제가 모두 문관급제하였고 또 정당문학 안원숭의 아들 삼형제가 모두 급제하였다. 순흥안씨 최고의 해이다. 이를 기리기 위히여 급제자 안조동은 목은 이색을 찾아가 "죽계안씨삼자등과 축하시"를 부탁하였을 때이다.
그런데 아래에 있는 문과방목을 보면 안원숭(安元崇)의 차남 조동(安祖同)과 안원형(安元衡)의 손자 노생(安魯生)이 동방(同榜)으로 급제하여, 1376년 방목에는 친족과 본관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괄호안은 급제연도. 그리고 원형의 아들이자 노생의 아버지 면은 1341년에 문과급제했다. 이해에는 안종원과 목은 이색도 문과 급제했다.
안목(1315년)-안원형-안조동(1376년), 본관 순흥인 안원형-안 면(1341년)-안노생(1376년), 본관 죽산인 안축(1307년)-안종원(1341년)-안경공(1376년), 본관 순흥인 순흥안씨선계변정록에는 원숭, 원형, 원린 삼형제가 1341년에 동시에 급제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아버지 원형과 아들 면이 1341년에 함께 동시 급제한 셈이다. 그리고 형 원숭의 아들 조동과 동생 원형의 손자 노생이 1376년에 동시에 급제한 셈이다.
안원형의 생년은 위 기록에서 추정해 볼 수있다. 아들 면이 문과에 평균나이(25세)에 급제하고 면이 원형의 장남(20세)이라면 보면 원형은 최소 나이는 25+20=45세이다. 그러면 원형의 생년은 1342-45=1297년이다. 즉, 원형은 1297년이나 그 이전 출생이다, 형인 안원숭의 출생년은 1309년으로 알려져 있의니 원형은 원숭보다 최소 12살 위이다.
어쨌거나 위 문과방목에서 보듯이 안원형의 본관은 죽산인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다 이상 언급할게 없다.
순흥안씨 선계변증록에는 원형은 죽성군을 봉군받아 순흥안씨에서 (신)죽산안씨로 분관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안원형은 죽성군을 봉군 받은 적이 없다.
그의 증손자 안복초(安復初, 1382-1457) 묘지명(墓誌銘)에는 안원형의 군호가 광산군(光山君)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승소(李承召, 1422-1484)의 삼탄집(三灘集)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公諱復初。姓安氏。竹州人。考諱魯生。嘉靖大夫仁寧府尹集賢殿提學。祖諱勉。通訓大夫光州敎官。曾祖諱元衡。重大匡光山君。府尹娶仁川望姓李氏典醫監資忠之女。以某年月日生公。 공의 휘는 복초이고, 성은 안씨이며, 본관은 죽주(죽산)이다. 부친의 휘는 노생이며 가정대부, 인녕부윤 집현전 제학이다. 조부의 휘는 면이며 통훈대부 광주교관이고, 증조부의 휘는 원형이며, 중대광, 광산군이다. 부윤(안노생)은 인천의 망성인 전의감 이자충의 딸에게 장가들어 모년 모월 모일에 공을 낳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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