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순
- 황실의 먼 친척으로 함풍제의 총애를 받던 권신.
- 함풍제 재위 초 반부패 개혁 운동의 선봉장으로 중용되어 정국을 주도, 권세를 떨쳤다.
- 뛰어난 안목으로 한족 인재들을 발탁, 청 조정이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는데 크게 기여.
- 1860년 영불연합군을 피해 함풍제를 데리고 열하로 도망치면서 권위에 금이 가기 시작, 황제 붕어 후 보정대신들을 이끌며 의귀비의 수렴청정을 막기 위해 애섰으나 결국 공친왕 혁흔과 의귀비의 손에 숙청당하다
* 승격림심
- 몽골 귀족 춝신 군왕, 만몽팔기를 지휘아며 태평천국 전쟁과 2차 아편전댕 당시 청군을 이끈 사령관
- 1853년 태평천국군의 북벌을 텐진에서 맞아 싸워 좌절시켰다.
- 2차 아편전쟁 당시 흠차대신이었으며 2차 다구포대 전투때 영불연합군에 맞서 승리를 거둬 군왕에서 진왕으로 승작된다
- 이후 재침공한 영불연합군과의 팔리교 전투에서 만몽팔기 1만 기를 일고 패배해 해임됨
* 의귀비
- 함풍제의 세번째 황후, 동치제의 생모,
- 2차 아편전쟁으로 함풍제, 황후 뉴호록씨와 함께 열하로 피난갔다.
- 열하에서 홤풍제가 붕어한 후 의귀비는 공친왕 혁은과 손잡고 정적인 숙순을 숙청하는 신유정병을 일으킨다.
- 이후 숙순 일파가 정한 연호 기상을 동치로 변경하고 동태후와 함께 수렴청정에 나선다
* 이속빈
- 청나라 산군 장수, 석탄장수 향토 의용병 출신이나 난세를 맞이해 활약한 덕분에 벼슬이 안찰사, 절강포정사 순무 등에 이르렀다.
- 호림익 휘하에서 군을 이끌며 장강과 안휘성으로 깊숙히 진격, 태평천국군을 상대로 수차례 승리를 거두며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허페이를 향해 진격하던 중 심하대첩에서 패배해 전사한다.
- 그가 가난했던 시절 석탄을 팔아 공부시킨 동생 이속의가 훗날 안휘 순무로 허페이에 부임했고, 허페이로 쳐들어온 이수성군을 패퇴시켜 형의 복수를 이룬다.
* 이수성
- 광서성 시골 출신으로 고향 후배인 진옥성과 함꼐 배상제회 초기 함께 가담했다.
- 태평천국 후기에 군을 이끌며 진옥성과 함께 여러 전투에에서 크게 활약. 강남대영을 궤멸시키고 푸커우를 탈환한 공으로 충왕 직위를 받았다.
- 강남대영을 궤멸시킨 후 동쪽을 정벌해 상하이를 취하자는 동정을 주장, 이에 따라 강소성 남부와 절강성 북부를 휩쓸며 상하이 공략을 시도.
- 쑤저우에 입성한 이수성은 상하이의 서양 선교사들을 초대하는 등 서양 세력의 중립을 꾀하지만, 상하이의 영불세력은 청나라를 도와 이수성의 태평천국군을 격퇴한다.
- 이후 다시 동정을 계획하지만 우화대 전투로 난징이 위험하다는 연락을 받고 상하이 전선에서 회군한다
* 이홍장
- 안휘성 허페이 출신, 과거에 합격해 한림원에서 수학하던 시절 증국번을 스승으로 모셨다.
- 증국번이 아끼던 수제자로 1858년 복건성의 한직에 있다가 증국번의 참모로 기용된다.
- 고향인 안휘성에서 모집한 회군을 이끌고 강소 순무로써 상하이 방면에서의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수행,
- 수화대 전투로 이수성이 동부전선을 떠난 사이 쑤저우를 공격해 태평천국의 담소광과 일진일퇴를 거듭한다.
* 제임스 호프
- 2차 아편전쟁을 전후해 중국에서 활동한 영국 해군 제독.
- 청나라에 텐진 조약 비준을 강요하기 위해 병력 2200명, 함선 21척을 이끌고 텐진 앞바다로 올라온다.
- 다구포대 앞의 수중 방어물들을 철거하기 위해 나섰지만 역습을 당해 대패.
- 영국은 2차 다구포대 전투를 비열한 기습이라 호도하고 전투의 패장이던 제임스 호프에게는 분투한 공으로 훈장을 수여한다
* 좌종당
- 호남성 출신 선비. 과거시험 본시에서 수차례 낙방했으나 일찍이 임칙서 등에게 재능을 인정 받았다.
- 난세를 만나 전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증국번의 참모로 기용되어 태평천국군에 맞선다.
- 이후 경당 벼슬을 받고 초군을 창설, 초군을 이끌고 절강성으로 진입한 좌종당은 항저우 상인들의 지원을 받고 상승군을 본따 프랑스 해군의 프로스페 지켈 중위를 지휘관으로 삼은 상첩군을 창설하기도 한다
* 진옥성
- 태평천국 후기의 지도자, 고향 선배 이수성과 함께 태평천국군을 이끌었다.
- 일찍이 1854년 서정때 19세 어린 나이로 우창성 함락에 큰 공을 세워 군 고위직으로 중용된다.
- 이후 여러 전투에서 크게 활약, 1858년 이수성과 함께 강북대영을 궤멸시키고 삼하대첩의 승리를 거둬 영왕에 봉작된다.
- 상하이 공략을 주장한 이수성과 달리 장강을 따라 서쪽으로 진격해야 한다는 서정을 주장,
- 이에 따라 장강변의 거점인 안칭 포위를 풀기 위해 인칭으로 진격했으나 증국전의 강력한 참호진을 뚫지 못하고 허페이로 퇴각
- 이후 허페이 방어에도 어려움을 느껴 화이난까지 후퇴, 이곳에서 청군에 매수된 염군 두목 묘채림의 배신으로 승보에게 넘겨져 1862.5월 처형 당한다.
* 호림익
- 청나라의 상군 지도자, 호북방면을 담당.
- 전쟁 초기부터 우창 방면에 집중하다가 1856년 휘하 맹장 이속빈과 함께 태평천국군으로부터 오창을 수복한 공으로 호북 순무로 임명된다.
- 이후 장강을 다라 주장- 후커우로 진격하며 태평천국군에 맞선다.
- 군사뿐 아니라 정령지 통치, 행정조직 대건, 병력 충원, 물자 보금 관리 등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 사실상 상군의 척추 역할을 맡았다.
- 증국번과 함께 태평천국 격파의 가장 큰 공신으로 꼽혔으나 전쟁중인 1867년 9월 지병으로 사망.
* 홍인간
- 태평천국의 후기 지도자, 홍수전의 사촌동생으로 간왕르로 책봉되었다.
- 태평천국 초기 홍수전과 함께 활동하다가 난징으로 향하던 시기에 길이 엇갈려 청군을 피해 홍콩에 몸을 숨기고 그곳에서 서양 선교사들과 교류하며 서양 문물을 익힌다.
- 홍콩 유학을 마치고 난징으로 들어와 우체국과 신문사 설립, 공장 건설, 서구와 교역 적극 추진 등 서구화 새혁안을 내놓는다.
- 그의 정책이 태평천국 수뇌부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후 상하이에서 사양 세력이 태평천국에 대한 적대를 확실히 함으로써 발언권을 잃고 세자의 교육 담당으로 밀려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