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섭 서산시장 “서산 거북차, 거북선의 뿌리일 수도”…역사문화 콘텐츠화 추진
김영택 기자2026. 3. 17. 11:25
이완섭 서산시장이 조선 전기 서산에서 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 군사용 수레 '거북차'를 지역의 대표 역사문화 자산으로 복원·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거북차는 서산 지역 사찬 읍지인 『호산록』(1619년)에 기록된 군사 장비로, 조선시대 군사 기술의 창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기록에 따르면 거북차는 조선 전기 서산 출신 금군 안열이 제작한 군사용 수레로, 거북의 등껍질 형태를 본뜬 구조를 적용해 병사를 보호하면서 이동과 방어 기능을 강화한 장비로 전해진다.
방어력을 높인 독특한 설계는 당시 조선의 군사 기술과 전략적 사고를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된다. 서산시는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바탕으로 거북차의 복원과 역사문화 콘텐츠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실제로 지난해 열린 제22회 해미읍성 축제에서는 거북차를 주요 테마로 다루며 군사학자 이원승 박사의 연구를 토대로 한 역사 해설과 고증이 소개됐다. 또한 '상상의 거북차 그림 공모전'을 통해 초·중학생들이 상상력으로 거북차의 모습을 표현한 약 30여 점의 작품이 전시돼 관람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완섭 시장은 "이순신 장군이 젊은 시절 해미읍성에서 근무한 기록이 있는 만큼, 당시 지역에 전해지던 거북차의 구조나 개념이 훗날 거북선 설계에 영감을 주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문헌 연구와 역사 고증을 통해 거북차를 체계적으로 복원하고, 3D 콘텐츠와 VR·AR 체험, 전시·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서산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콘텐츠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산 김영택기자 kyt3769@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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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야승 > 응천일록 > 응천일록 4 > 최종정보
응천일록 4(凝川日錄四) 인조 무진(1628, 인조 6) 4월부터 인조 경오(1630, 인조 8) 9월까지 / 경오년 상 (1630, 인조 8)
槐山進士權大信上疏大槪。禦賊獻策事。答曰。省疏益嘉爾誠。所造龜車等物。予亦從當親見。姑先示於備局。
괴산(槐山)의 진사 권대신(權大信)의 상소는 대개 적을 막는 계책을 아뢴 것이었는데, 비답하기를,
“상소를 살피어 너의 정성을 더욱 가상히 여긴다. 만든 귀차(龜車) 등 물건은 내가 또한 뒤에 친히 보겠으나 우선 비변사에 보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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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 > 효종 3년 임진 > 1월 3일 > 최종정보
효종 3년 임진(1652) 1월 3일(병자)
03-01-03[04] 비변사가 귀거가 전투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일찍이 전 주부(主簿) 박산남(朴山男)의 상소를 인하여 전남 병사(全南兵使)로 하여금 먼저 귀거(龜車) 1, 2량(輛)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도록 하였습니다. 금방 병사 구인기(具仁墍)의 치보(馳報)를 접하건대 ‘산남에게 귀거를 감조(監造)케 하였더니 공사를 시작한 지 3개월만에야 겨우 1량을 만들었다. 그런데 70명이 있어야 운용(運用)할 수 있을 뿐더러 언덕에 구애받고 진창에 빠지고 하여 하루 종일 10리도 가지 못했다.’ 하였습니다. 귀거가 전투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이로써 알 수 있으니, 속히 중지하도록 하소서.”
하니, 따랐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0
○備邊司啓曰: "曾因前主簿朴山男上疏, 令全南兵使先造龜車一二輛, 試其可用矣。 卽接兵使具仁墍馳報, 使山男監造龜車, 則始役三朔, 堇造一輛, 而以七十人夫, 始得運用, 礙於丘壠, 沒於泥濘, 十里之地, 終日不能至。 龜車之不合戰用, 據此可知, 請令速罷。" 從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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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집(艮齋集) 이덕홍(李德弘)생년1541년(중종 36)몰년1596년(선조 29)자굉중(宏仲)호간재(艮齋)본관영천(永川)특기사항퇴계(退溪)의 고제(高弟)
간재집(艮齋集) 이덕홍(李德弘)생년1541년(중종 36)몰년1596년(선조 29)자굉중(宏仲)호간재(艮齋)본관영천(永川)특기사항퇴계(退溪)의 고제(高弟)
艮齋先生文集卷之二 / 疏 / 上王世子書 壬辰
奉直郞前右副率李德弘。謹齋沐上書于王世子邸下。伏以蟣蝨微生。猥厠朝班。曾以司甕直長。移授本職。纔謝恩翌日。遽遭極天之變。大駕西狩。百僚失守。臣蒼黃罔措。欲隨駕而不得。顧念老母時在嶺南。年且八十有六。方在兵火之中。其存其沒。邈矣難聞。冒犯鋒刃。徒步還鄕。則老母猶存。兄弟無故。其爲一家之私幸則大矣。其去國奔竄之罪。難逃鈇鉞之誅。而聖恩含垢。置之度外。至今得保首領。實爲粉骨難酬之恩矣。晩聞鶴駕承命撫軍。來住伊川。思欲單騎馳進。望見旌旗。小贖前日之罪。自八月行將就道。期於得達。而賊路梗塞。大小使价。尙不得以時相通。況一箇微身。道死無益。趦趄未發。遷就日月之際。伏見王敎書傳自京圻行伍中。跪讀三復。淚下如泉。首擧責躬圖新之理。凡所失德疵政。開陳無隱。罷革殆盡。又論君臣分義之重。事大不渝之誠。以斥倭寇不道之狀。至哉王言。無非出於至誠惻怛之意。此實敬天勤民之本。重恢再造之基。凡有血氣者。孰不有感動奮發忘身徇國之志哉。而況臣猥以庸劣。嘗忝翊衛。雖未得一日供職。尙切蔡藿之誠。當此孔極之變。敢效一得之愚。伏願邸下幸於憂勤惕慮之中。小垂察而去取之。臣竊以爲島夷之猾亂我邦。自古有之。而其肆毒極凶之慘。未有如今日。實吾東萬古無窮之羞辱。而原其致此。則實由於人心不古。風俗頹敗。紀綱廢弛。上下乖離。頓無維持鞏固之勢。大小人民。惟知利害之迫切。而不念親上死長之爲何事。此正今日之大患。而土崩瓦解之必然者。且彼之來侵。非一朝一夕之故。近年以來。來往道路。慣見國勢之如是。民怨之至此。明知其彼此成敗之所在。經營十年。伺釁而發。不過一擧而國破家亡。亦可哀也。且彼雖卷土而來。非吾人嚮導。則亦何遽至於此哉。國小政煩。賦重民疲。其來已久。以彼貪虐之心。乘此下民之困。怯之以威。㗖之以利。吾民之歸附。勢固然也。吾民之至此。豈其所欲而自願哉。亦出於不得已也。今欲恢復舊業。莫如先正其心。以正風俗。頓綱正紀。以厚根柢。輕徭薄賦。以順民情。彰善癉惡。以示勸懲。此四者。撥亂反正轉禍爲福之基。而求其本則只在於正心。心得其正。則其下三者。可使循序而理矣。而三者之中。彰善癉惡。在今日尤所當急也。何以言之。當其賊船之初泊。望風奔潰。大小居官。無一人敢拒。惟知逃遁。未嘗交兵。效死竭忠者。旣無其人。則堅壁固守者。復何可望也。嗚呼。我國家數百年休養人材。乃至於此。此風不革。則國何由定。亂何由平。及至亂極勢迫。人窮反本。然後或有倡義而起於士林者。或有設伏而殺賊獻䤋者。亦有奮不顧身而敢於死節者。伏願邸下先訪死節者。褒而揚之。守城不去者次之。其棄城先去者。論之以律。昭示威福。此亦討賊復讐之一大權也。臣久在鼎沸之中。慘見劇賊之狀。枕戈臥薪。痛入骨髓。而資稟殘劣。未效終軍之請纓。才略疏短。有愧溫嶠之絶裾。空懷鬱抑。寢食都忘。只以賤近之言。欲獻邸駕之下。而哭望天涯。邈焉難通。今幸賊勢小挫。道路稍通。十生九死。來近耿光。敢用一二狂言。旣陳於上。以爲中興基業之助。復以數條妄見。繼之於下。少裨制敵用兵之術。伏望哀其孤憤。察其微誠。勿以人廢言。幸矣。愚聞彼賊之性。巧黠毒虐。用兵如鬼。變幻莫測。必先匿其大軍。以示其弱。使我輕敵妄動。然後取其所匿之軍。以掩其後。若其軍少。則前設芻人。編以大索。動搖如生。眩亂人目。然後突入衝擊。故我軍雖衆。必驚惶失伍。輒至潰散。彼且號令苛刻。不貸毫末。故臨陣。知進而不知退。其兵器則鐵丸猛烈。所向無前。用劍捷疾。雷奔電擊。此皆彼之所長。而我之所短。故我之制彼。莫如用鐵打兼稜杖也。所謂鐵打者。打麥之具也。以鐵爲子。其制當極其巧。使之便快。稜杖則借之甚易。用之甚便。庸夫皆能之。頃於永川之捷。以此得之。大有其利。若論陣法。則先以龜甲車五六前之。次以鐵打稜杖作橫陣。次以射夫作鶴翼陣爲後衛。置斬退將於後。而皆橫陣。又於後面。作長蛇陣兩行。分左右豎設。左者左面。右者右面。 又作鶴翼陣。前後相背。前者前面。後者後面。 於後陣。又設鐵打稜杖及射夫如前。至於左右前後。不失其伍。各效其技。各盡其力。交錯爭奔。疾如雷風。則彼之放丸用劍。恐未得其暇也。且射夫非必武夫。山村居民號爲山尺者。常以射獵爲事。故其技能有勝於武夫者。若擇其能者。編於行伍。別善養之。則其所成功。必非他比。伏願曉諭郡縣。抄發其徒。養而試之可也。且設弩處雖多。纔擊一賊。賊便驚去。終無其益。如愚之意。莫若百弩機絲。皆貫一長繩於首尾。第一弩絲。各坎地橫設。賊若自東而來。則設西之第一機絲。自西而來。則設東之第一機絲。賊犯一絲。萬弩俱發。則殺賊必多矣。不獨於陸路爲然。於江灘亦可設此機矣。又於城上四周。皆立數間土屋。前面置射穴及放炮之竇。以備鐵丸之出。設小軒於城外。以窺城下之賊。多設疑兵。立於屋邊。臥起如生。則彼不知疑兵。而放丸必多矣。然後射手炮手。俱在屋中。幷力禦之。則雖有百萬之敵。䧟城不足虞也。且列邑皆經焚蕩。軍餉計無所出。募民納粟。出於不得已也。徃在癸未。北鄙有變。亦擧此典。而民不食其報者或多有之。今雖有此令。亦以失信爲疑。伏願邸下以前之失爲戒而必信之。頃者醴泉義兵等捉得六倭。一倭手中有書曰。國王西遁。追之不及。知罪知罪。明年春。入擊大明云。行到伊川廣福里。聞自安邊逃還之人言。曰明年二月。定入大明。賊將云云。及抵平壤地。有人逃自賊中來。言賊傳說曰。我等若待來春入上國云。道路傳說。雖不可盡信。三處所聞。如合符節。則賊之定約入寇。從可知矣。根盤我國。小無挫氣。亦可想矣。但島夷畏怯寒沍。當此凍天。不能運用手足。則不可不因此急擊。而今聞天將與之議和。畫城以許。期而不至。已閱數月云。愚不知其意之所在也。姑息和議。前鑑孔昭。城下同盟。牛耳可愧。其未之思邪。而況君父之讐。不可一日共戴天。而養虎遺患。坐失此機。奄至春和。則必也諸道之賊。合勢連兵。諉向中原。而直指我大朝。則大朝將何所歸乎。人皆有言。邸下欲討箕城之賊。而大臣不從云。不知大臣之意。果安在哉。以宗社之蒙塵。大駕之播越。爲薄物細故也邪。我國家三百餘邑。已爲犬羊之窟穴。而只保一隅。欲其盡投於餓虎之口乎。平壤之距義州。只隔數邑。可謂朝發而夕至矣。其忍一日恝然坐視乎。雖然。大臣之意。則豈有他哉。必待天兵。以冀萬全之策耳。但臣之意。以爲留時易歲。勢不可救。則天兵雖至。果何補哉。若我軍先擧。而不幸見敗。猶恃於天兵。天兵一敗。則更何所恃乎。況我邸下專任監撫之責。當此宗社汲汲之秋。尤不可緩也。古人有言曰。心痛不暇緩聲。伏願邸下速效斫案之勇。亟下討賊之命。掃盡平黃兩道之賊。親迎乘輿。還駐肅川。又督三軍。徴兵諸道。進伐兩京之寇。還于舊都。灑掃園陵。不其可乎。且前月二十日。臣止宿橫城。聞子夜雷霆霹靂。倍於夏月。當此正陰之月。天變至此。其警動我邸下之意乎。伏願邸下上畏皇天之譴告。下體殿下委寄之盛意焉。又有一說。彼賊雖早晩退還。他日復來。不可謂必無也。萬一復來。則豫備之方。亦不可不爲之講求。臣嘗聞老將之言曰。禦倭之策。若於水中則無難。而下陸則其鋒不可當。以今觀之。其言果驗。愚意以爲莫如前期設備。使不得下陸可也。其備如何。賊船高且大。水淺則難容泊。必於浦口入舟以藏之。當於浦口可泊處。先以櫟材作橫箭數重。入水尺許。使不露出。而網大石壓之。使不動撓。則彼船終不敢近矣。又有 龜甲之船。亦破賊之良規也。其制則背著鎗劍。頭設伏弩。腰置板屋。容射手於其中。傍通射穴。下通船心。中藏銃筒及大斧。或打破或放丸。或射或擊。觸之者碎。犯之者潰。則賊船雖多。無所用其計矣。頃聞湖南諸將。用此大破賊船。明有其效。故幷及之。若於江津。亦用此船。則賊必不得渡矣。凡此數條。皆預防下陸之具。而前無所承。後無所試。只得於兵火憂憫之中。推以事理。雜以聞見。晝思夜度。敢爲一說。固知淺見薄識。不足以補萬一。而愛君憂國之誠。未嘗忘于懷。敢冒萬死。仰瀆淸聽。伏惟邸下乙覽留神而一試之。不勝幸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