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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01 : 인간의 절망적 딜레마 :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다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흠정역성경, 설교, 강해, (2022.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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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01: 인간의 절망적 딜레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다
전1:1-18
지금까지 대다수 성경 책들 강해, 맥잡기, 지혜 문학과 시가서: 잠언, 전도서, 시편, 아가서
감사하게도 올해 잠언을 31번 강해하였다.
앞으로 금요일에 10여 회에 걸쳐 전도서 강해
1. 텍스트 메인아이디어로 푸는 전도서, 미국 Holman Commentary, 편집자 맥스 앤더스, 저자
데이빗 조지 무어, 댈러스 신학교, 트리니티 복음 신학교 석사, 2003년 전도서 주석: 그 해 가장
좋은 주석서 중 하나로 인정받음
2. 위어스비 잠언 주석 등 참조
기록자: 솔로몬, 기록 시기: 주전 970년경, 성격: 지혜 문학
수신자: 솔로몬의 백성과 신하들 그리고 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람
이름: 이 책의 히브리어 책명은 ‘코헬레스’이며 영어 제목 Ecclesiastes는 전도서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책명 ‘에클레시아스테스’에서 유래하였다. 원래 히브리 책명의 뜻은 ‘백성을 모으는 사람’이다. 기록자
솔로몬은 백성을 모아서 그들에게 이 말씀을 선포하면서 자신이 타락의 길로 갔던 것을 묘사하고
있다. ‘전도서’라는 우리말 책명은 중국어 성경에서 왔으며 말씀 선포자인 솔로몬의 설교를 담은 글을
뜻한다.
주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해 아래에서 모든 것을 시도해 본 뒤 결국 그런 것들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한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의 경험
목적: 하나님을 떠나서는 해 아래 있는 어떤 것도 사람의 욕망을 채워 주지 못함을 깨닫게 하고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것
내용: 전도서는 “누구든지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리라.”(요4:13)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강해 설명서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의 바로 뒤에 ‘솔로몬의 아가’가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은 참으로 합당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전도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없이
온 세상을 소유한다 해도 그것이 아무 가치가 없음을 보여 주며 또한 이 세상 것으로 우리 마음을
다 채울 수 없음을 지혜자의 체험을 통해 알려준다. 솔로몬은 사람의 행복이 땅에 속한 지혜나 지식
혹은 재물, 또는 명예나 권력이나 권세에 달려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끝으로 그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 경배하는 것이 사람의 참된 의무임을 알려준다. 전도서는 12장, 222절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장: 12장(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충고)
핵심 절: “선포자가 말하노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자기의 모든 수고에서 무슨 유익을 얻으리오?”(1:2 3)
핵심 단어: 헛된 것, 핵심 구: ‘해 아래에서’(1:3), ‘영을 괴롭게 하는 것’(1:14)
전도서의 그리스도: 1. 가난하나 지혜로운 사람(9:14 16; 고전1:30; 고후8:9), 2. 창조자(12:1,
요1:1 3)
영적 교훈: 하나님 안에서 행복과 소망을 추구하라.
위어스비: 헛되다(38회), 해 아래에서(29회), 유익(10회), 수고(23회), 사람(49회), 악하다(39회),
기쁨 혹은 즐거움(17회), 지혜(32회), 하나님(40회), 창조자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문제
유의할 점
우선, 전도서는 지혜 문학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이 특별한 장르는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방식으로 현실을 묘사한다. 일부 예외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둘째, 예외에 해당하는 극소수에 당신이 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전도서의 의미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부정적인 생각, 그러나 결론이 있다. 전12장
저자인 솔로몬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흥미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없이는 궁극적으로 헛되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도록 설득하고 있다
.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는 "완전히 무지하고 필연적으로 불행할 - 1
수밖에 없다” (Pascal, 49).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에게 또 다른 진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삶의 활동들이
아무리 일상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면 정말로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다. 그 모든 것의 함축적 의미는 실로 극적이다. 맨해튼에서 유명 인사들과 시간을 보내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한 그리스도인 엄마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지역의 자기
집에서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느끼는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결코 소유할 수 없다. 기쁨은 당신이
뭔가를 하는 것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온다. 전도서가 "기본적으로 즐거운
가을 축제인 "장막절에 읽혀지는 성경으로 나중에 편입되었다" (Webb, 106)는 사실도 우리로 하여금
그 현실을 고려하게 만든다. 다섯 개의 두루마리(메길로스, 아가(유월절), 룻기(오순절), 애가(예루살
렘 파괴 일), 전도서(장막절), 에스더(부림절), 명절 때마다 1권씩 낭독함)
솔로몬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 만족을 추구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자기가 강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부여받는 삶이 바람직한 삶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
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마음이 '연약하여 범죄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비관적' 이라거나 '낙관적' 이라는 단어가 전도서가 어떤 책인지를 가장 잘 묘사해준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적' 이라는 단어를 택하고 싶다. 이 '현실적인 책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솔직하고 희망적인 그림을 제공한다(Luther, 7). 하나님이 하시는 것에 대한 명료성이
부족하더라도 말이다. 전도서는 또 우리가 장래를 내다보며 살아가도록 독려한다(전12:9-14 참고).
한 학자는 전도서를 옷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전도서는 우리가 여흥을 끝내고 일할 준비를
할 때 입는 옷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부풀려진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만족과 자신감을 갖고서 입는 옷이다. 어쩌면 한 벌의
작업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승리주의와 형식주의를 완전히 벗어 던지고, 삶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옷이기 때문이다" (Webb, 109),
들어가는 글
솔로몬은 우리의 영혼이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질병은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지만(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괜찮다고 느끼며' 자기들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비극적인 결론을 내린다.
솔로몬 박사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진단
당신은 정기 검진을 위해 의사를 찾아간다.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모두
낮다. 스트레스 검사도 보기 좋게 통과한다.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이 당신을 좋은 상태로 유지시킨
것처럼 보인다. 당신은 집으로 향하면서 내심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 당신은 다음날 아침 그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스티븐스(Stephens)
씨, 오늘 오후에 병원에서 좀 뵈었으면 합니다.” 당신의 오후 스케줄이 약속과 전화로 꽉 차 있기
때문에 당신은 약간 불안해하며 무엇 때문인지 묻는다. "좀 심각한 문젠데요, 스티븐스 씨. 직접
만나 뵙고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내 되시는 분도 함께 뵈었으면 합니다." 당신은 깜짝 놀라
당황해하며 그러겠다고 힘없이 대답한다.
당신은 몇 분 늦게 병원에 도착한다. 곧바로 어느 방으로 인도되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당신의 아내가
당신을 맞이하며 포옹한다.
“자리에 앉게, 짐(Jim)." 지난 20년 동안 골프 친구였던 당신 의사의 목소리가 그렇게 심각하게 들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짐, 자네의 검사 결과가 모두 나왔네. 대장암에 걸린 것 같네."
믿기지 않는다는 생각에 곧바로 분노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난 혈압도 낮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지 않은가!"
당신의 항변은 의사의 권고로 가로막힌다. "짐, 이건 치명적일 수도 있네. 이 시점에서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하네.”
당신 자신이 그런 곤경에 처해 있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이 그저 '괜찮다고 느끼기 때문에 의사의 진단을 - 2
무시하고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유형의
사고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잠 14:12, 비교. 잠 12:15, 16:2, 30:12).
솔로몬은 그 의사와 같다. 그는 우리가 죄 때문에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는 똑같은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들 대부분은 솔로몬의 진단의 심각성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처방도 주목받지 못한다. 그러나 '솔로몬 박사' 는 자기 환자들의
완고함에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이제부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우리 영혼이 지니고 있는
치명적인 병의 특성을 설득할 것이다.
심각한 문제에 대한 긴 서론(I)
솔로몬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통절한 논평을 내놓는다. 그 논평은 우리로 하여금
심란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리에 직면하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 없는 삶은 참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들려는 우리의 영리한 시도들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A. 머리말(1:1-2)
솔로몬의 갑작스런 머리말은 영적으로 무기력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붙들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져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1:1. 전도자(코헬레트)는 “일단의 사람들, 다시 말해 회중을 소집하는 자로, 우리가 설교자로 불러야
하는" (Leupold, 38)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다.
1:2. 이 머리말의 갑작스런 특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라. 솔로몬은 시작부터 하나님 없는 삶이
허무하다
는 암울한 현실로 우리를 도전하고 있다. 그는 우리를 서서히 준비시켜 자신의 주장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작부터 다량의 현실로 우리를 한 방에 날려버린다. 오늘날 자신을 그런
식으로 소개하는 누군가를 상상해 보라. 우리는 분명 그를 격정적이거나 진지한 사람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심지어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솔로몬은 심리적으로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우리가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하나님 없이도 삶이 의미 있다는 착각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것이다.
헛되다는 말은 '무익하다', '수증기나 입김같이 일시적이다‘라는 뜻이다.
헛되고 헛되며는 최상급이다. 하나님 없는 삶의 허무를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러나 허무는 하나님 없이 이루어지는 다양한 삶의 활동에 적용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좋은 세상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Leupold, 41, Kaiser, 48).
제롬(Jerome)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창조된 모든 것이 선한 창조주의 솜씨로 빚은 좋은 것들이라면, 어찌해서 모든 것이 허무하단
말인가? 만약 땅이 허무하다면, 하늘도 허무한 것인가? 천사들과, 왕좌들과, 권력들과, 통치들과,
나머지 천사들도 모두 헛된 것이란 말인가? 아니다. 만약 선한 창조주의 솜씨로 빚은 본질적으로
좋은 것들이 허무로 불린다면, 그 이유는 그것들이 훨씬 더 좋은 것들과 비교되기 때문이다(제롬
73-74).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그 아름다움이 인정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서 잘 보존되어야 한다.
B. 하나님 없는 삶의 허무(1:3-11)
솔로몬은 계속해서 하나님 없는 삶이 허무하다는 주장을 전개해 나간다. 그는 (1) 우리와 자연의 관계
(1:3-8), (2) 해 아래 새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1:9-10), (3) 어떤 유산도 영원히 남겨질
수 없다는 사실 (1:11) 등 세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진리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1:3. 솔로몬은 ‘해 아래에서’라는 어구를 사용한다. 이것은 그저 하나님 없이는 삶이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우리는 이 어구가 전도서 전체에 걸쳐 여러 차례 사용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전도서에서만 29회).
여기서 제기되고 있는 솔로몬의 질문 역시 여러 차례 대답될 것이다. 여기서 인간들을 의미하는 사람은 - 3
자기 수고로부터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한다. 강조하건대, 해 아래에서는 말이다. 솔로몬은 우리의
주의를 삶의 불확실성과 무의미함에 집중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하나님 없는 삶에 대한
그의 음울한 논평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좀 더 나은 방법을 간절히 바라게 만든다. 더 좋은 방법은
때가 되면 주어질 것이다. 당분간은 솔로몬이 하나님 없는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무망한지 우리를
설득해야 한다.
1:4-7. 이 구절들에서 솔로몬은 명백하면서 심란한 논지를 주장하기 위해 사람과 자연을 비교 대조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다(4절)는 사실에 유의하라. 분명히 땅(지구)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속히 돌아가고(5절).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6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강물의 반복적인 특성을
보게 된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거기로
되돌아간다(7절).
인간은 참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극치지만, 우리는 일시적이고 불확실한 실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보다도 훨씬 더 못한 물질 세상은 비교적 안정성과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당연히
우리는 이 상황의 불공평에 대해 울부짖게 된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임을 생생하게 상기시켜주는
이 사실들 앞에서 우리는 극도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상태 히브리서 2장 14-15절
인간의 일시적인 삶에 대한 자연의 침묵과 무관심은 스티븐 크레인(Stephen Crane)의 어느 시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인간이 우주를 향해 말했다.
"우주여, 내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주가 대답했다."그런 사실이 내게 무언가를 대답할 의무감을
불러일으킨 적은 없네.”(Sire, 13에서 인용, 비교. Lockerbie, 91-109)
1:8. 이 상황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그가 하나님 없는 삶에서 만족과 의미를
찾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루터는 그 마음을 “끊임없이 하품만하는 깊은 수렁" (Luther, 19)이라
고 적절히 표현했다.
1:9-10, 솔로몬은 이제 하나님 없는 삶이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두 번째 방법으로 넘어간다.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그것이 세상 물정 모르는 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새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는 고대인들이 결코 가져본 적이
없는 컴퓨터와 자동차 같은 것들을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솔로몬이 어떻게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가? 분명 우리 현대인은 고대인들이 가져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기기들을
가지고 있다.
솔로몬의 요점은 권력과 지위와 부와 쾌락 같은 것들이,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찾기 위해 항상 추구해
온 것들임을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의 포장은 오늘날 분명히 다르지만(마차 대신에
자동차), 그러한 추구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하나님 없는 우리 삶에 의미와 목적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추구는 없다는 것이다.
1:11. 솔로몬은 또 유산을 남기려고 애쓰는 것의 무익함을 지적함으로써 하나님 없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논증하고 있다. 그저 당신의 이름을 딴 병원이나 거리를 갖는 것은 분명 해답이 아니다. 오지만디
어즈(Ozymandias)의 유명한 시구가 떠오른다. "너희 강한 자들이여, 내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옆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나니. 황폐해져가는 그 거대한 잔해의 사방에는 외롭고 평평한
모래만이 한없이 황량하게 멀리 뻗어 있을 뿐이다” (Shelley, 76, 비교. Keyes, 60).
C. 삶의 목적과 관련된 수수께끼(1:12-18)
솔로몬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하지만 그의 탐구는 추가적인
좌절만 낳을 뿐이다.
1:12-13. 그는 엄청난 노력을 투입한 후에 오직 실패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신이 무언가에 - 4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패한다는 것은 비통한 일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공부하지 않았던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것과 열심히 준비했던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은
전혀 다르다. 솔로몬이 그런 상황을 고통이라고 불렀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무 해답도 얻지 못했다.
1:14. 해 아래에서(또는 하나님 없이)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영을 괴롭게 하는 일이다.
개역성경, NIV 등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
KJV는 영적인 문제로, 현대 역본들은 인생무상의 문제로 보았다.
1:15. 하나님 없는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본질적으로 하자가 있다. 우리는 삶을 바로잡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토피아적인 이상들은 하나의 광대극에 불과하다. 조지
부시(George Bush)의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나 빌 클린턴(Bill Clinton)의
새로운 약속(New Covenant) 같은 정치적 해결책으로는 우리의 문제를 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
없는 삶에서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아무리 창의적이고 집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근본적
으로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고칠 수 없는' 것을 바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해놓으신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전7:13 참고).
1:16-18. 솔로몬은 자신이 예루살렘의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지혜를 가졌다고 언급했다. 그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고, 그것을 후하게 얻었던 것이다(왕상 3장). 분명 솔로몬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열왕기상 4장 30-33절은 그가 3,000개의 잠언과 1,005편의 노래를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대강 짐작하기 위해 잠언이라는 책이 약 900개의 잠언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라. 솔로몬은 또 초목과,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왕상4:33). 그의 지혜는 심지어 세의바 여왕 같은 이방인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의 모든 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과 관련된
수수께끼를 풀 수 없었던 것이다.
미친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허풍떠는 오만에 대한 암시" (Provan, 70)를
담고 있다. 솔로몬은 그의 노력의 무익함을 깨달았고(17절), 그것은 마음의 큰 고통을 야기했다(18
절). 오늘날 아주 사려 깊은 일부 비기독교인들이 그런 식이다. 그들은 인류가 하나님 없이는 잘
지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쉽게 분석할 수 있지만 해독제를 찾으려고 몸부림친다. 문제를 아주 분명하게
보고 있으면서도 해답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솔로몬의 독특한 고통을 생각해보라. 그는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사람으로서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그 삶의 수수께끼를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12-13절). 솔로몬이 그런
절망을 느꼈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지식이 증가할수록 현대 사회는 더욱 낙담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종적이거나 영속적인 어떠한
해답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양의 자료는 오히려 우리의 분별력을 떨어뜨릴 뿐이다.
솔로몬은 사려 깊은 의사처럼 우리의 영적 질병을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는 그것을 치료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솔로몬은 우리가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의 질병이 얼마나 치명적인
지 우리가 제대로 납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도 솔로몬은 계속해서 우리가 영적으로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에 대해 주장한다. 그리고 2장 말미에서는 치유책을 소개한다.
복습
솔로몬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통절한 논평을 내놓는다. 그 논평은 우리로 하여금
심란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리에 직면하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 없는 삶은 참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들려는 우리의 영리한 시도들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결론: 모래 위에 세운 집
우리는 하나님 없는 삶에서도 영속적인 만족감을 성취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다. 우리는 만족을 주는 어떤 활동을 찾아내고, 학교나 사업, 스포츠, 정치, 심지어 육아 등에서 - 5
뛰어난 능력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 멋지고 훌륭한 자녀를 길러내는 것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불러야 한다.)
높은 수준의 업적은 우리에게 만족을 준다. 잠시 동안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죽을수 밖에 없는 운명임을
상기시켜주는 것들이 우리의 관심을 끌 때는 우리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마
7:26-27 참고).
저명한 대통령 전기 작가 도리스 컨스 굿윈(Doris Kearns Goodwin)은 린든 존슨(Ryndon B.
Johnson)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진리를 묘사했다.
그는 죽기 한 달 전 굉장히 슬픈 목소리로 내게 하소연했다. 그는 미국 국민들이자신을 잊고 새로운
대통령에게 몰두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통과시켰던 그 위대한 민권법조차도 잊어버
린 채 말이다. 그는 불멸에 대한 자신의 추구가 헛된 것이었으며, 어쩌면 그의 시간과 관심을 아내와
자녀들에게 집중했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라면 그의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통해 대대로 다른 종류의 불멸을 추구할 수 있었을 것이고, 미국 국민들에게는 기대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그들을 의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4주 후, 그는
죽고 말았다. 그의 모든 돈과 권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을 때 완전히 혼자였다. 그의 궁극적인
공포가 현실화되었던 것이다도리스 컨스 굿윈, Commencement Address, 1).
진리 알기
• 우리의 영적 질병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가 얼마나 길을 잃고 헤매는가를 정확히 보여 준다.
• 인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 없이 만족감을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 인간의 모든 해결책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환멸감을 줄 수밖에 없다.
• 언약을 지키시는 성경의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국 절망하게 되어 있다.
삶의 적용: 어느 '절망의 수렁’
우리는 일반적으로 복음의 날카로움을 완화시키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부활 생명에 대해서는 많이
듣게 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듣지 못한다. 참된 그리스도인들
은 그들의 죄성(sinfulness)에 대한 자각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우리가 죄에 대해 절망과 슬픔을 경험해야만 하나님의 은혜가 의미 있는 것이다. 기쁨은
분명 ‘아침(morning)'에 찾아오지만, '애도(mourning)'가 선행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우리가 먼저
우리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애도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바로 교회 역사 가운데 존번연(John
Bunyan) 같은 신실한 성직자들이 설파해온 메시지다.
크리스천은 그 '절망의 수렁' 이 '수리될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죄에
대한 깊은 자각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알기 위해서는 말이다.
https://youtu.be/Oq-bDUW1-Ck?list=PL4P6SBDceLgGBvTld_0CVtNRLYYVvTN4R
전도서 02 : 인간의 절망적 딜레마: 육체의 욕구를 채워도 여전히 모든 것이 헛되다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흠정역성경, (20222.11.11)
전도서 02: 인간의 절망적 딜레마: 육체의 욕구를 채워도 여전히 모든 것이 헛되다
전2:1-26
지난주부터 전도서 강해, 총 12번, 선포자, 솔로몬의 선포
솔로몬은 시작부터 강하게 밀어붙인다(1:2).
인간의 절망적 딜레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다
• 우리에게는 영적 질병이 있다. 삶의 딜레마.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길을 잃고 헤매는가를 정확히 보여 준다.
• 인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 없이 만족감을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 인간의 모든 해결책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환멸감을 줄 수밖에 없다.
• 성경의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국 절망하게 되어 있다.
오늘 < >, 1,2장 문제, 3장 해결책
1. 텍스트 메인아이디어로 푸는 전도서, 미국 Holman Commentary, 편집자 맥스 앤더스, 저자
데이빗 조지 무어, 댈러스 신학교, 트리니티 복음 신학교 석사
솔로몬은 삶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온 힘을 다 쏟은 뒤에 이번에는 만족의 가능한 원천으로서 육체의
욕구에 관심을 기울인다. 만약 지혜가 내게 '행복한 삶'을 가져다줄 수 없다면 내 육감적 즐거움을
만족시키는 데 전념하는 것이 그것을 가능케 해 줄지도 모른다. 즉 삶을 너무 많이 분석한 것이 큰
고통을 야기했으므로(1:18), 그런 강도 높은 사색을 피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의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들어가는 글: 궁정의 어릿광대와 다른 기분 전환거리들
사람들은 삶의 '중대한 문제' 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멀리하기 위해 우리의 주의를 전환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라도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심연을 응시하는 것은 분명 힘들 수 있다.
분주함을 추구하려는 우리의 경향은 종종 깊은 영적 질병을 숨기고 있다. 정치 철학자 앨런 블룸(Allan
Bloom)이 언젠가 말했듯이, 우리는 “진실을 직시하지 않기 위해, 심연을 들여다보지 않기 위해
광적인 일과 광적인 놀이 속에서 평생을 보낸다(앨런 블룸, 143). 솔로몬은 이미 그 심연을 살짝
들여다보고 그것이 끔찍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장에서 솔로몬은 스스로에게 부과했던 시험 비슷한 것을 기술한다. 그는 절제되지 않은 쾌락이 과연
한 개인에게 '행복한 삶을 제공할 수 있는지 그 여부를 알게 되었다. 솔로몬을 인생 수업의 한 학생으로
상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학생이다. 솔로몬은 그 특별한 시험을 위해 '답안지'
같은 ‘훌륭한 메모’를 남겨놓았다. 놀랍게도 선생님(하나님)은 흔쾌히 우리가 솔로몬의 메모를 들여다보
게 하신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대부분은 그것들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솔로몬의 실수로
부터 배우지 못하고, 스스로 경험해 봐야만 직성이 풀린다.
솔로몬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기 위해 몰두하게 된 것들은 바로 우리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것들이다.
그 포장은 우리의 컴퓨터 시대와 좀 다를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소유와 쾌락과 권력에 대한 욕망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A.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험(2:1-11)
이제 다양한 오락거리가 만족을 제공할 수 있는지 탐색하는 것이 솔로몬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그는
결국 그것도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없는 무익한 추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1. 이 구절은 솔로몬이 스스로에게 부과했던 테스트에 대한 일종의 예비적인 요약 보고서 역할을 한다.
1절부터 1인칭 대명사 '나'가 몇 번이나 사용되고 있는지 주목하라. 솔로몬은 다소 초연한 입장에
있는 이론가가 아니라 그 시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 솔로몬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기 위한 해결책으로서의 웃음이 정신 이상 징후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희락 자체는 영속적인 가치를 지닌 어떤 것도 제공하지 못한다. 하나님 안에서 그 원천을 찾지 않는
희락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실망을 줄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 다음은?" 신드롬으로
이어진다. 어떤 작가는 그것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인간은 종종 자신이 바라는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 7
추구하지만, 그것을 얻고 나면 마음이 바뀐다. 삼하13장 암몬과 다말 사건을 보라. 애착은 동일한
것 주변에 고정적으로 머물지 않고 우리가 다음 것을 차례로 추구하도록 몰아가기 때문이다”
2:3. 솔로몬이 마음속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포도주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하였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나중에 이 장의 9절에서도 그는 이 시험을 치르는 동안
"내 지혜도 내게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솔로몬은 완전히 비이성적으로 쾌락에 뛰어들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 시험을 치르는 동안 내내 쾌락의 유익을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단순한
자기 탐닉이 아니라 통제된 실험"을 하고 있다.
열왕기상 4장 22-23절
은 솔로몬이 하루에 소비하는 음식의 양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그 음식은 매일 1만 명에서 2만 명의 사람들을 먹였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추정했다(Stedman,
23). 그것은 매일같이 열리는 위대한 파티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런 환락을 묘사하는
중에도 잔인한 삶의 현실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짧은 한평생 동안 어떤
좋은 것이 있을까?” 이 커다란 질문이 계속해서 솔로몬의 생각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2:4-8, 솔로몬은 자기의 처분 아래 놓여 있던 인상적인 것들을 열거했다. 여러 집들과 포도원, 동산과
과원, 각종 과목과 연못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마르크스조차도 솔로몬의 관개(灌漑) 모델을 사용했다
(Ellul, 87). 솔로몬은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 떼를 비롯하여 더 많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가장 부유하거나 위대했음(2:9 참고)에 대한 이 진술은 매우 중요하다.
그가 모은 은과 금(8절)이라는 개념은 땅에서 무언가를 캔다는 의미에서 모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축적하거나 보물을 쌓아두거나 대량으로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Ellul, 234). 실제로
은금은 솔로몬의 통치 기간 동안 너무 흔해서 돌처럼 많아 보일 정도였다(왕상10:27, 대하 1:15).
개역 2:8, 처와 첩들(a harem)을 많이 두었다.
KJB: 온갖 종류의 악기들
2:9, 솔로몬의 위대함에 대한 이 진술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사람이 하나님 없는 소유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그것들을 추구하는 것의 무익함이 오늘 우리에게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 교훈은 솔로몬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배웠던 교훈과
비슷하다(전1:12-13, 18의 본문 참고).
2:10. 만약 이 구절이 솔로몬의 시험에 대한 최종 보고서라면, 우리는 '돈이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믿게
될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주의를 전환시키는 것들이 우리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파스칼(Blaise Pascal)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아무리 슬프더라도 당신이 그를 설득해 어떤 기분 전환거리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계속되는 한 그는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아무리 행복하더라도 기분 전환거리가 부족하고
권태를 멀리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열정이나 오락거리가 없다면 곧 우울해지고 불행해질 것이다.
우리의 주의를 전환시키는 것이 없다면 기쁨도 없다. 반대로 그런 것이 있다면 슬픔은 없다.
그것이 바로 신분 높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이유이다. 그들은 그들의 주의를 전환시키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 자신을 그런 상태로 유지시킬 수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블레이즈 파스칼,
70-71).
그것은 부(wealth)의 치명적인 덫이다. 부는 행복과 평화의 느낌을 주는 인위적인 많은 기분 전환거리
들을 제공할 수 있다. 부자가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사람이 일단 자신의 실존(實存) 같은 삶의 커다란 문제들(그것의 덧없음과 불확실성 모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깊은 절망감이 엄습한다. 그것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진지한
현실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다. “죽음과 불행과 무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어 왔다" (블레이즈 파스칼,66).- 8
2:11.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할 때, 삶의 혼돈과 허무의
가혹한 현실에 직면하기 시작한다. 삶의 중대한 문제들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은
하나님이 시작하셔야 하는 초자연적인 일이다. 우리 서구인들은 분명 그런 문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
록 장려받지 않는다. 피터 크리프트(Peter Kreeft)는 이렇게 말했다.
토인비의 판단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21개의 위대한 문명 가운데 우리의 현대
서구 문명이,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어떤 해답도 갖고 있지 않거나 시민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첫 번째 문명이다. 그것을 완곡하게 이야기하려고 하는 말, “우리 사회가 다원적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만의 궁극적인 가치를 선택하거나 창조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내버려두자.”
우리 사회가 가장 중요한 이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무지뿐이라는 것이다.
사회가 커질수록 점점 더 작은 것들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게 된다. 작은 것들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게 되고, 큰 것들에 대해서는 더 적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피터 크리프트, 20-21).
여러 해 전, 노벨상을 수상했던 한 남자와 복음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특권이었다. 나는 전에
그 남자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삶에서 주요한 몇 가지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은지
설명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는 놀랍게도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동료들 사이의 경쟁이 너무나 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동료들이 그가 노벨상을 수상한 후에 더욱 경쟁적이 되었다고 말했다. 학계가 군림하는 권위'
는 떨어뜨리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환경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더 많은 의미 있는
관계들에 대한 그의 욕구에 비교하면 노벨상은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솔로몬이 묘사했던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신은 지금보다 조금만 더 벌거나 어떻게 해서든지 회사에서 좀 더 높은 지위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구에 사는 우리들 대부분은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만약 우리가 솔로몬 같은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똑같은 종류의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B. 세상 지혜의 상대적 이점 (2:12-17)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자보다 더 나은지 그 여부를 곰곰이 생각한다.
결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2:12-13. 세상의 지혜는 분명 어리석음에 비해 몇 가지 세속적인 이점을 지니고 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가계부를 쓰고 자동차의 오일을 교환하
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다. 이 땅의 법을 준수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14절에서 보듯이,
세상의 지혜는 분명 한계를 지니고 있다.
2:14. 사회에 기여하는 윤리적인 시민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를 필연적 운명으로부터
보호해 주지는 못한다. 죽음은 우리 모두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청교도의 한 설교가는 그 실태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이 땅에 살면서 당대에 그렇게 허세를 부리고 원하는 대로 온 세상을 소유했던 과거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사도행전 25, 26장의 베스도 총독, 아그립바 왕(Agrippa)와 버니게
(Bernice)는 어떻게 되었으며 그들의 모든 화려함과 위대함은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이제 자신들
의 역할을 마치고 세상이라는 공통의 무대에서 사라졌으며, 그들의 모든 자만은 한 무덤에 그들과
함께 묻혀 있다. 부자와 빈자가 죽을 때,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가? 그들은 모두
똑같은 길을 간다. 그들은 잠시 동안 살면서 땅의 것들로 번성하다가 이제 사라졌지만 그들 뒤에
상당한 죄책감을 남겼다. 그들의 예를 보라.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당신의 경우도 틀림없이
잠시 후에 그들의 경우처럼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라. 당신을 그들처럼 낮추게 될 운명의 수레바퀴는
지금도 돌고 있다. 따라서 당신은 머지않아 틀림없이 죽은 자들 가운데 포함될 것이
다.(Burroughs, 65).
2:15. 만약 죽음이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 둘 다에게 닥치는 것이 사실이라면, 선하게 살며 열심히 - 9
노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런 의문은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그만두고 무모하고
파괴적인 행동에 관여함으로써 멋대로 살기로 결심하는 많은 ‘선한 사람들 에게 일어난다. 다른 부류
사람들은 계속해서 '선하게 살고 있다고 뽐내며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잘못된 결론을
내린다. 죽음이라는 현실은 그 두 부류의 '선한 사람들' 이 하나님 없이도 그들 자신의 노력이 영속적인
만족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2:16. 이 구절은 우리가 일찍이 전도서 1장 11절에서 보았던 것을 상기시킨다.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가 비슷한 방식으로 죽는다는 솔로몬의 진술 속에는 굉장한 엄숙함이 존재한다. 비록 애정 어린
수많은 친구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우리 모두는 혼자서 죽는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만드는 위대한 것이다.
2:17. 솔로몬의 결론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는 삶을 싫어했다. '해 아래에서', 다시 말해 하나님 없는
삶에서는 모든 것이 무익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우리의 모든 추구는 무익함이
그 특징이다. 전도서의 메시지가 지금까지는 음울했지만, 솔로몬은 이제 막 삶에 의미를 가져다주는
필수적인 요소를 보여주려고 한다.
C. 실종된 요소(2:18-26): 하나님
솔로몬의 탐색은 하나님이 인간사에 개입하신다는 현실에 직면하자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2:18-19. 솔로몬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의미를 얻으려는 자기의 모든 노력이 무익했다고 결론내렸다.
자기의 부를 다른 누군가에게 남겨주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솔로몬의 근심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그 사람이 어리석은 자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사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가장 어리석은 자). 그것은
솔로몬에게 끔찍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아주
열심히 수고한 결과가 어리석은 자에 의해 낭비될 수도 있다.
2:20-23. 해 아래에서의 삶의 의미에 대한 솔로몬의 좌절이 최저점에 도달하고 있다. 한 개인이 애쓰고
심지어 그의 일에 전념할지라도 그가 성취한 모든 것을 어리석은 자에게 남겨줄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잠은 분명 자신의 명성이 어리석은 자에 의해 훼손될 수도 있는 사람에게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솔로몬의 암울한 진단을 들어왔다. 다행히도 우리는 마침내 우리영혼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처방을 얻게 된다.
2:24-26. 자신의 영적 빈곤에 대해 의식하면 사람은 하나님께 도망치게 된다.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다(마5:3), 24절이 말하고 있듯이, 내가 이것도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왔느니라.
이러한 인식 자체는 분명 초자연적인 사건이다.
번창하는 시기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얼마나 빈곤한지
보게 만드는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통찰력을 얻기 위해 다른 곳을 보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시편 기자가 이렇게 말한 이유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길을 잃었사오나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켰나이다. ...내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좋으니 이로써 내가 주의 법규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67, 71).
하나님이 고난을 즐기신다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생명을 제공하기를 즐기시지만, 우리가 영적 생명의
원천(렘2:13)에 자연스럽게 끌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계신다. 우리는 오만 속에서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시2:3). 그래서 하나님은 의미 있는 삶을 어디서 찾게 되는지
우리가 보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사용하신다.
25절은 너무나 단호하다. 하나님 없이 참된 기쁨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에 대한 첫 번째
소개(26절)가 기쁨에 대한 첫 번째 소개와 함께 등장하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3장 13절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기쁨은 '하나님의 선물' 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의 힘만으로는 기쁨과 만족을
경험할 수 없다.
하나님의 기쁨은 악과 고통의 문제 같은 어렵거나 난처한 모든 질문에 답을 주지 않는다(Moore, 「The
Battle for Hell」, 73-75) 기독교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은 그런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을 - 10
놀라울 정도로 잘해 왔지만, 위로와 기쁨과 평화를 주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선한 것은, 그분이 삶의 참된 의미와 만족을 줄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26절). 그것은 분명 우리 사회의 선함(goodness)의 개념과는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신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도와준
다. 불신자들에게는 미련해 보이지만 말이다(고전 1:19-25).
우리가 어떻게 하면 본 장에서 곰곰이 생각했던 현실에 의거하여 우리의 우선순위를 더 잘 정할 수 있을까?
3장이 그 답을 제시할 것이다.
결론
많은 사람들은 삶의 '최고선'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영속적인 만족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현대인'이 왜 목표가 없고, 안절부절 못하며 권태를 느끼는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보통 불안은 그런
사람들을 규정하는 특징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절대적인 진리를 비웃고 자기 탐닉적인 쾌락을 최고선으
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왜 그런 불안을 느끼는 것일까? 솔로몬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그 이유를 말해
주었다. 그것은 어떤 기분 전환거리도 하나님을 대신해서 완전한 만족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리 알기
• 취미와 쇼핑, 스포츠 등과 같은 다양한 기분전환거리들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가장 중요한 삶의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 일부 비기독교인들의 외관상 행복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기만
한다면 말이다(고전7:31).
•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부터 온다.
적용하기
• 당신이 가장 빈번하게 즐기는 기분 전환거리에 대해 생각해보라(텔레비전, 스포츠, 취미, 쇼핑 등).
그런 것들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 면에서 (벧후 3:18) 자라가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도록 간구하라.
삶의 적용: “맛보아 알지어다"
시34:1-9
우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도록" (시34:8) 초대된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가운데 다른 모든 기분전환거리가 효과 없고 흥미 없어 보이게 만드는 궁극적인 기쁨을 찾게
되는 것이다.
https://youtu.be/rlQY_lGxZIA?list=PL4P6SBDceLgGBvTld_0CVtNRLYYVvTN4R
전도서 03 : 인간의 시간과 행복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설교, 강해 (2022. 11. 25)
전도서 03: 인간의 시간과 행복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지난 두 주 전도서 강해, 총 12번, 선포자, 지혜자 솔로몬의 선포
전도서의 구조
1, 인간의 문제 제시(1-2장): 1. 삶이 무미건조하다(헛되다) 2. 지혜의 헛됨, 3. 재물의 헛됨,
4. 죽음의 확실성
2. 인간의 문제에 대한 논의(3-10): 인간의 삶이 무미건조하다. 재물의 헛됨, 지혜의 헛됨, 죽음의
확실성
3. 인간의 문제 해결책: 1. 믿음, 2. 즐겁게 살기, 3. 심판에 대비하기
1장, 2장, 솔로몬은 시작부터 강하게 밀어붙인다(1:2).
1장: 인간의 절망적 딜레마(문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다.
2장: 솔로몬은 삶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온 힘을 다 쏟은 뒤에 이번에는 만족의 가능한 원천으로서
육체의 욕구에 관심을 기울인다. 모든 것을 추구한다. 그런데 해 보고 나니 역시 헛되고 헛되다.
영을 괴롭게 한다.
25절은 너무나 단호하다. 하나님 없이 참된 기쁨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 취미와 쇼핑, 스포츠, 여러 가지 세상의 일들, 다양한 기분 전환거리들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가장 중요한 삶의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부터 온다.
오늘 < >
전도서의 총주제: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살라. 그것인 인간의 의무이다.
내게 없는 것들에 불만을 표출하지 말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라.
유대인들은 장막절에 이것을 읽는다. 모든 것을 수확한 뒤 지나간 1년을 되새기며
딤전6:17-18,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을 신뢰하게 하고
이런 만족과 행복의 근원: 인간이 하는 모든 것, 하나님이 장악하고 계신다는 믿음
여기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행복을 좌우한다.
오늘은 위어스비, 메인아이디어로 푸는 전도서, 럭크맨, 매튜 헨리 등
3장 요약
과연 우리의 삶은 짐승이나 곤충의 삶과 같은가?
우리 인간이 짐승과 달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면 삶 자체가 의미가 없다.
1. 하나님: 인간의 위에 인감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있다.
2. 인간의 위치: 인간은 내적으로 세상에 심취되어 있다.
3. 인간의 한계; 인간의 앞에는 죽음이 있다.
1. 하나님이 때와 시기를 주관하신다(1-18)
1절을 보라,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목적한 것에는 때가 있다.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모든 때와 시기를 주관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적다.
2절부터 8절 총 7절, 각 절에 두 개씩 대비되는 것들이 나온다. 총 14개, 28개의 때
요점: 우리가 하나님의 때에 순응하면 인생이 의미가 있다.
11절: 그분께서 자신의 때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셨으며
2절: 삶과 죽음, 인간의 산아 조절, 낙태, 안락사 등 인간이 모든 것을 조정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 삶과
죽음은 하나님이 정하신다. 시139:13-16 유전자 체계도 모태에서 하나님이 구조를 정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셔야 죽는다.
그래서 우리는 시90:12를 명심해야 한다. 그런즉 우리에게 우리의 날수 세는 것을 가르치사 우리가 - 12
지혜에 이르도록 우리 마음을 쓰게 하소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청년 시절 결심: “나이 든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인생을 살게 되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된다. 나는 기필코 내가 노년을 살고 있다고 가정하고 가능한
한 젊었을 때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대로 살아가야 겠다”
심고 뽑는 것, 유대인들 농경민족, 파종과 수확에 큰 관심, 사람이 심고 뽑아도 결실은 하나님이
주신다(시65:9-13). 뽑는 것은 수확, 혹은 잡초 제거
3절: 죽이고 고치는 것, 전쟁이나 자기 방어, 애완동물 죽이는 것, 쥐, 뱀 등 죽이는 것,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은 죽게 하고 어떤 사람들을 치유되게 하신다. 의사의 치료, 기적 등이 모두 필요하다(사39
의 히스기야)
허물 때, 세울 때
4절: 울 때, 웃을 때, 애곡할 때, 춤출 때
5절: 돌들을 모을 때 치울 때, 이스라엘에는 돌이 매우 많다. 경작을 하려면 돌을 치워야 한다. 원수들을
무찌르려면 돌들을 쌓아야 한다. 느혜미야의 성벽 건축
껴안을 때, 그렇지 않을 때: 사람을 만나면 껴안고 키스한다. 그러니까 만나서 안녕하세요? 헤어질
때 잘 가세요.
6절: 얻을 때, 잃을 때, 지킬 때 버릴 때
7절: 찢을 때, 꿰맬 때, 회개하거나 애곡할 때 찢는다. 그런데 꿰맬 때도 있다. 말할 때, 침묵할 때
욥의 사건과 그의 친구들, 말할 때
8절: 사랑할 때, 미워할 때,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우리도 미워해야 한다(잠6:16-19; 계2:6,
15). 헛된 생각들, 모든 거짓된 길을 미워해야 한다(시119:113, 104). 전쟁과 평화
인생은 이 모든 것이 알맞게 조합된 것, 하나님이 콘트롤하신다.
그래서 모든 것에는 때와 시기가 있다(1).
이것은 결코 숙명론이 아니다. 우리의 자유나 책임을 빼앗지 않는다.
모든 것을 섭리로 인도하시는 분, 인자하신 하늘 아버지의 계획이이 있음을 알고 순응하는 것이 필요하
다.
2. 인간의 구조: 사람의 생각 속에는 세상이 가득하다(9-14)
1. 9절은 1:3, 10절은 1:13의 반복이다.
2.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10)
해산의 수고, 어떻게 이것이 선물인가? 폴 트립의 고난, suffering, 실제로 이것이 은혜요 선물임을
알아야 한다.
3. 하나님의 일들은 아름답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 속에는 세상이 가득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들을 헤아리거나 알기가 어렵다(11).
개역성경, NIV 등 현대 역본들은 세상을 영원으로 바꾸었다. (*)
마치 인간이 영원을 사모하는 존재인 것처럼
그런데 실제로 인간은 영원이 아니라 잠시 있는 세상을 품고 살고 있다. 세상의 유행(요일2:15-17)
그래서 하나님의 일들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것들은 영원하다(3;14)
이것이 대다수 인간의 문제
4. 인간은 삶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다(12).
2:24를 보라. 삶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전도서는 삶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에 대하 자주 말한다. 중요한 주제이다.
유명한 감리교 생스터 목사의 결의
나이가 들고 근육이 굳어지면서
1. 절대로 불평하지 않기- 13
2. 집을 항상 밝게 유지하기
3. 내게 주어진 복을 세어 보기
4. 삶이 항상 내게 유익이 되도록 노력하기
5. 즐겁게 살라는 것을 구호로 삼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인생을 대하면 인생이 무가치하지 않게 된다. 짐승이나 곤충의 삶과 다르다(18절).
14절,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함,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영원한 집을 마련하신다(14절).
하나님의 말씀의 영원성(벧전1:23-25)
여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인생을 살자.
이 일을 위해 필요한 것: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14)
3. 인간의 한계: 우리는 죽음도 대비해야 한다(15-22)
죽음은 확실하다(전2:12-23). 솔로몬은 여러 차례 죽음에 대해 말한다(4:8; 5:15-16; 6:6; 8:8;
9:2-3,12; 12:7-8)
15절: 1:9-11 반복, 하나님이 인생의 주기를 주관하고 계신다. 늘 반복되는 것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기적들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죽음, 삶과 죽음의 주기를 정복함, 악순환을 깨심
그 결과 우리는 새로운 창조물(고후5:17)
16절: “사악한 세상, 사악한 자들이 많아요!”(16) 그래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17절: 세상이 끝날 때 하나님이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18절: 여기서 드러낸다는 말은 키질을 통해 겨와 알곡을 분리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 없으면 짐승과 같게 된다(시32:9; 벧전2:19-20)
사람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릴 때 그분 앞에서 짐승같이 된다(아삽의 시 시73:21-22),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 사실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일 것이다. 그는 교만 때문에 말 그대로 풀을
뜯는 짐승의 특징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단4:32).
게다가 거짓 교사들은 '이성 없는 짐승'으로 불린다(벧후 2:12, 유 10). 그 거짓 교사들은 성경의
명령보다는 본능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벧후 2:19-22).
사람의 짐승 같음은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제거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죄로 인해 그것이 손상될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없으면 짐승처럼 살고 짐승처럼 죽는다
밀라드 에릭슨(Millard Erickson)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일정한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순종하게 되어
있었다. 인간은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암시하고 있듯이, 동료인간과 조화를 이루며 살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분명 나머지 창조물들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도록 이 땅에 놓여졌다. 하지만
그런 관계와 역할은 다른 무언가를 전제로 한다. 인간은 그런 관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그런
역할을 수행할 때 가장 완벽하게 인간답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지성과 의지, 감정 등 인격을
구성하는 것들의 총체를 포함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 적절히 관계를 맺고 있을
때만 완벽한 인간성을 경험한다. 한 개인이 얼마나 교양 있고 품위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 구속받지 않았으면 온전한 인간이 아니다.그것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telos)'
이고, 인간은 그것 때문에 창조되었다(밀라드 에릭슨, 513-514).
19-20절: 신중하게 잘 해석해야 한다. 사람과 짐슴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솔로몬의 요점; 사람과 짐승은 두 가지 측면에서 같다. 1. 죽는다. 2, 흙으로 돌아간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은 사람에 관한 한 짐승보다 모든 면이 낫다.
그러나 죽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물론 여기서는 보통 사람들을 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한다(고전15:35). - 14
짐승과는 완전히 다르다. 짐승은 부활이 없다.
21절: 죽음: 영과 혼이 몸에서 떠나는 것(창35:18)
그런데 인간과 짐승은 차이가 있다(21). 사람의 영은 하나님께로 가고(12:7), 짐승의 영은 사라진다.
시49도 비슷하다. 시49:20, 존귀함 가운데 거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 히브리어 루아흐, (*)
3장의 결론
지금 이 시간 살고 있는 삶을 기쁘고 감사하게 여겨라(22).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다시는 이 삶을 되살 수 없다.
지금의 행복: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순응하는 데 있다.
인생의 여러 갈등, 부조리, 수수께끼를 이기는 힘, 믿음이다. 고전5:7
삶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불평하면서 혹은 즐기면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매일 매일 감사하며 삶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인생을 보내라,
우리 자신, 취미, 욕구 등으로는 우리가 만족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매 순간 우리 인생에 주시는 것들로는 만족할 수 있다.
성품, 경건함, 믿음 면에서 자라면 바울과 같이 고백할 수 있다(빌4:11)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거기에
만족하는 것을 내가 배웠노라.
전도서 04: 인생은 간단하지 않기에 우정과 협력이 중요하다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성경, 설교, 강해 (2022. 12. 02)
전도서 04: 인생은 간단하지 않기에 우정과 협력이 중요하다.
지난 세 주 전도서 강해, 총 12번, 선포자, 지혜자 솔로몬의 선포
전도서의 구조
1, 인간의 문제 제시(1-2장): 1. 삶이 무미건조하다(헛되다) 2. 지혜의 헛됨, 3. 재물의 헛됨,
4. 죽음의 확실성
2. 인간의 문제에 대한 논의(3-10): 인간의 삶이 무미건조하다. 재물의 헛됨, 지혜의 헛됨, 죽음의
확실성, 3. 인간의 문제 해결책(11-12): 1. 믿음, 2. 즐겁게 살기, 3. 심판에 대비하기
지난주,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때를 주관하신다.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 주어진 일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명한 감리교 생스터 목사의 결의, 나이가 들고 근육이 굳어지면서
1. 절대로 불평하지 않기
2. 집을 항상 밝게 유지하기
3. 내게 주어진 복을 세어 보기
4. 삶이 항상 내게 유익이 되도록 노력하기
오늘 < >
솔로몬의 결론(1:4-11), 인생은 단조롭고 허무하다. 영을 괴롭게 한다.
실제 사람들이 사는 실제 장소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인생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는 것을 발견함
삶과 죽음, 시간, 세상에 고정되어 있다. 최종 심판이 있다.
4장에서 그는 몇 군데를 방문한다. 여러 가지를 경험한다.
결론: 우리가 내일을 알지 못하므로 인생은 헛된다(잠27:1).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오늘도 위어스비, 메인아이디어로 푸는 전도서, 럭크맨, 매튜 헨리 등
1. 법정의 부패(1-3)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법에 근거한 합당한 사법 제도(출18:13-27, 천 명, 백 명, 쉰 명, 열 명의
치리자; 신19, 여러 가지 법규)
그런데 이런 것은 다 부패될 가능성이 있다(5:8)
직무 수행자들에게 주는 모세의 특별 경고(레19: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라. 너는
가난한 자를 편파적으로 편들지 말고 강력한 자를 편파적으로 두둔하지 말며 의롭게 네 이웃을 재판할지
니라. (신1: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너희는 재판할 때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큰 자뿐만 아니라 작은 자의 말도 들으며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고 너희가 판단하기에 너무
어려운 사정은 내게 가져오라. 내가 그것을 들으리라, 하였으며
특별히 대언자들 불의와 불법에 대한 경고(사56:1; 암1-2)
솔로몬은 지혜롭고 정의로운 왕이었지만(왕상3:16-28) 모든 법관들이 그러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직접 법정에 가서 압제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봄.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음
압제자들이 온갖 권세를 다 가짐(1), 특히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
인간 사회에서 압제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불가피하다.
심지어 예수님도 압제를 받았다(사53:7)
그것을 본 솔로몬의 결론: 살아서 압제를 받는 것보다 죽은 것이 낫다(2).
모세, 욥, 예레미야 등이 죽기를 원하였다.
아예 유산되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3).
왕으로서 이 문제를 풀 수 없을까? 그런데 그도 할 수 없었다.
정부 조직을 재편해도 또 새 사람들이 그와 동일한 일을 한다.- 16
물론 우리가 절망할 필요는 없다.
할 수 있는 대로 개혁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딤전2:1-6).
2. 시장 방문, 여러 사람들의 문제(4-8)
시장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을 보러 감
우리 성도들은 성실하게 노동해야 한다. 아담의 수고. 예수님의 목수직, 사도 바울 등
4절: 부지런한 사람
열심히 일하는 사람, 올바로 일하는 사람이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된다.
기술도 좋고 유능한 사람, 잠언에서는 그는 이런 사람을 칭찬한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 시기와 질투,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사울과 다윗을
보라.
교회에서도 마찬가지. 나는 경쟁력이 있는 성도인가? 남을 시기 질투하지는 않는가?
5절: 게으른 사람
아무 욕망, 야망도 없이 허송세월하는 사람
사실 솔로몬은 이런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없었다(잠18:9), “게으름은 깊은 잠에 빠지게 하나니
빈둥거리는 혼은 굶주림을 당하리라”.19:15).
솔로몬이 살펴보니 게으른 사람은 멸망의 길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조금 더 잠자기를 원하는 사람들, 결국 망한다(잠6:10-11), 살후3:10
6절: 절제하는 사람, 균형을 이룬 사람
일도 적절히 하고 여가도 누리며 산다. 사실 제대로 휴가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돈에 빠지면 계속해서 욕심이 생긴다. 딤전6:1-20을 보라.
7-8절: 독립적인 사람
고독한 사람,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 일중독에 빠진 사람
일가친척 형제도 없는데 죽어라고 일만 한다. 수고에 끝이 없다. 눈이 만족하지 않는다.
결국 좋은 것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결론: 이것도 헛되며 참으로 쓰라린 해산의 고통이니라.
3. 길에서(9-12)
고독한 사람의 문제, 그래서 그는 우정과 협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9절: 당연히 둘이 일하는 것이 좋고 보상도 많다.
10절: 길을 갈 때에도 좋다. 갈6:1-2, 예수님 두 명씩 내보냄(눅10;1)
11절: 온기를 얻는 데에도 좋다. 부부 결혼
12절: 대적을 물리치는 데에도 좋다. 특히 밤에. 결국 세 겹 줄이 더 좋다.
8절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4. 궁전에서(13-16)
고독한 사람의 문제, 그래서 그는 우정과 협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9절: 당연히 둘이 일하는 것이 좋고 보상
4:3, 6, 9 더 낫다. 여기서도 너 낫다는 말이 나온다.
정치권력의 무상함과 인기의 사라짐
여기에 나오는 왕, 왕이 되면 처음에는 조언자들의 말을 말 듣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듣기를 거부한다.
주변에 간신들이 가득하다. 특히 연약한 왕에게 이런 일이 발생한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그런데 영웅이 나타난다. 감옥에 갇혀 있는 청년, 어쩌면 왕에게 조언을 했다가 감옥에 갇힘
혹은 모함을 받음, 요셉의 경우, 다니엘의 경우
그 청년이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됨
좋은 지도자를 만났다고 사람들이 기뻐함,
이 왕은 가난하게 태어나서 부자가 됨- 17
늙은 왕은 부자였으나 지혜롭지 못함
이 왕은 감옥, 지금 풀려남, 늙은 왕은 어리석게 굴다가 감옥에 갇힘
결론: 부와 위치는 성공의 보증이 아니다.
가난과 실패는 업적을 이루는 데 방해 요소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이다.
이야기가 흘러간다.
청년은 감옥에서 나와 백성들의 인기에 힘입어 왕이 된다. 백성이 둘째 아이와 함께한다.
그런데 이 왕의 인기도 오래가지 못한다.
새로운 세대는 결국 그를 거부한다(16).
그래서 그는 이것도 헛되다고 결론을 내린다.
위를 바라본다(3:1-8: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사람의 내부를 본다(3:9-14): 사람은 세상 생각만 한다.
앞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죽음이 있다.
주변을 바라본다: 인생은 복잡하고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곳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시험과 고통이 있다.
그럼에도 솔로몬은 삶에 대해 비관적이지 않다.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은둔 생활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갑작스럽게 변한다.
우리는 이것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이번 장의 교훈: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 우정이 필요하다.
독립적인 것도 좋지만 함께하는 것이 더 좋다.
21세기, 핵가족, 고독사 문제
이번 장은 또한 균형 있게 사는 것도 가르친다(6). 휴가를 내서 인생을 즐기는 것도 필요하다.
돈을 가지고 필요한 것들을 사서 즐기라. 다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잃어버리지는 말고
가장 중요한 것: 우리 혼의 구원(막8:36-37)
결론
1. 지위, 권력, 부의 가치는 높이 평가하고 주정의 중요성은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결혼은 가장
큰 우정 관계이다.
2. 만족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에게 순응하는 데서 온다.
3. 어려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우정이다.
4. 일중독의 덫에 걸리면 안 된다.
5. 균형 있게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전도서 05: 그릇된 예배와 올바른 예배, 타인의 것을 강탈하지 말라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성경, 설교, 강해 (2022. 12. 9)
전도서 05: 그릇된 예배와 올바른 예배, 타인의 것을 강탈하지 말라
전5:1-20
지혜 문학, 욥기, 잠언, 이제 전도서, 12장, 총 12번, 선포자, 지혜자 솔로몬의 선포
전도서의 구조
1, 인간의 문제 제시(1-2장): 1. 삶이 무미건조하다(헛되다) 2. 지혜의 헛됨, 3. 재물의 헛됨,
4. 죽음의 확실성
2. 인간의 문제에 대한 논의(3-10): 인간의 삶이 무미건조하다. 재물의 헛됨, 지혜의 헛됨, 죽음의
확실성, 3. 인간의 문제 해결책(11-12): 1. 믿음, 2. 즐겁게 살기, 3. 심판에 대비하기
지난주, 솔로몬은 직접 실제 사람들이 사는 실제 장소에 가서 그들의 삶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다양한
사람들, 인생이 간단하지 않다. 특별히 우정과 협력이 필요하다. 좋은 부부 관계, 교회 지체들, 친구들
오늘 <그릇된 예배와 올바른 예배, 타인의 것을 강탈하지 말라>, 돈과 재물과 행복의 관계
인생에서 돈 문제를 뺄 수 없다, 또 유대인들의 경우 예배 문제를 뺄 수 없다.
솔로몬은 5장에서 단순히 돈, 종교 의식을 말하지 않고 인생의 가치, 정말로 삶에서 중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자가 되는 길도 여러 가지, 자신을 망치는 길도 여러 가지
오늘도 위어스비, 메인아이디어로 푸는 전도서, 럭크맨, 매튜 헨리 등
1. 그릇된 예배와 올바른 예배(1-7)
4장에서 솔로몬은 법정, 시장, 길, 왕궁을 방문했다. 5장에서 그는 성전을 방문한다.
성전은 솔로몬이 직접 세운 건물이다. 성전에서 예배자들이 들락날락한다. 찬양, 기도, 희생물을 드림,
서원을 함
그런데 이들의 다수는 신실함이 전혀 없다. 형식을 갖추어 흉내만 낼 뿐이다.
이 경우 예배를 드리고 성전을 나가면서 오히려 더 상태가 나쁘게 된다.
혹시 우리에게서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가?
이들의 죄는 무엇인가?
이들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존경, 존귀, 영광을 빼앗고 있다.
이들은 위선을 행하고 있다. 겉과 속이 다르다.
지금 교회들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라고 예외일까?
우리 역시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은 아닐까? 혹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배드리는 자들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예배이다.
worship, 가치가 있는 존재를 가치 있게 예우하는 것
특히 공예배에서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내부를 드러낸다(사1:10-20(13-14); 롬10:2-3).
1. 희생물을 바치는 것(1)
오늘날 우리는 짐승의 희생물을 드리지 않는다.
예수님의 단번 속죄로 인해, 구약 시대 짐승 희생은 예수님의 예표(히10:1-14)
우리는 다 하나님의 제사장, 영적인 희생물을 드린다(롬12:1-2). 우리의 몸이 희생물
헌금, 구원받게 한 사람들, 찬양과 선행(히13:15-16), 상한 심령(시51:17), 기도와 믿음(시
141:1-2)
그런데 예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 들으려는 자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세
아무리 큰 희생을 해도 순종을 대신할 수 없다(삼상15:12-23).
이런 순종의 자세 없이 아무리 큰 희생물을 바쳐도 이것은 어리석은 자들이 희생물
어리석은 자들: 이렇게 하면 하나님도 속을 거야!
자기가 선을 행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는 악을 행하고 있다.
2. 부주의하게 기도하는 것(2-3)
기도는 매우 신중히 해야 한다.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19
청와대 대통령에게 무엇을 부탁할 때 얼마나 신중하게 하겠는가?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의 왕좌 앞으로 갈 때에는 얼마나 더 신중해야 하겠는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경솔하게 기도한다.
급하게 기도하지는 않는가? 너무 많이 말하지는 않는가?(마6:7)
기도의 비결은 마음을 예비하는 것이다(시141:1-2).
마음의 것들이 입으로 나오기 때문이다(마12:34-37)
사람을 의식해서 기도 쇼를 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않는다.
민수기 1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에 싫증이 났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원했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이집트에서 먹었던 음식을 회상했다(5-6절). “우리가 이집트에서 마음대로 먹던 물고
기와 오이와 멜론과 부추와 양파와 마늘을 우리가 기억하는데 이제는 우리 혼이 메말랐고 이 만나
외에는 우리 눈앞에 전혀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 여호와께서는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고기)을 주기로 작정하셨다(20절).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
들에게 활기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 실제로는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했던
것이다(33-34절). “고기가 아직 그들의 이 사이에 있어 그들이 씹기도 전에 주의 진노가 백성을
향해 타올라 주께서 매우 큰 재앙으로 백성을 치셨으므로 그가 그곳의 이름을 기브롯핫다아와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묻었기 때문이더라.”
그래서 성급하게 말하고, 충동적인 말투를 사용하는 우리의 성향 때문에 말을 적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
(비교 시46:10; 마6:7).
많은 꿈을 꾸는 이유: 급하게 무슨 결정을 내리다 보니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음. 그래서 꿈이 많아짐
마찬가지로 기도할 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면 그는 어리석은 자이다.
눅18장의 바리세인과 세리
3. 주께 서원하는 것(4-7)
하나님은 반드시 서원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혼을 속박하는 것, 서약하며 맹세하는 것
그러나 서원하기를 원하는 경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할 수 있었다(민30; 신23:21-23, 행18:18)
두 종류의 오류: 1. 지키려는 마음도 없이 서원하는 것, 이것은 속이는 것이다. 2. 서원을 하고
제때에 이행하지 않는 것, 시간을 끌면서 속박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
6절의 천사: 제단을 관장하는 실제 천사. 혹은 제사장, 서원물을 받으려 하면 실수였다고 말함
최종적으로 제사장에게 말하게 됨
이 경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인간인지라 지키지 못할 수 있다. 그의 속중심은 하나님이 아신다.
그런데 처음부터 속이려 들지 말라.
종교 의식에 강한 사람들이 이런 서원을 한다.
7절: 꿈이 많고 말이 많으면 헛된 것도 많게 되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두려워할지어다.
시66:13-14, 내가 번제 헌물을 가지고 주의 집으로 들어가 나의 서원들을 주께 갚으리니 이것은
내 입술이 말한 것이요, 내가 고난 중에 있을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2. 타인의 것을 강탈하지 말라(8-9)
성전을 떠나 정부 건물로 들어감
부패와 압제를 봄(3:16-17; 4:1-3)
공무원들이 권력형 비리를 저지름(모세의 명령 레19:15; 신24:17)
솔로몬의 반응: 5절 놀라지 말라, 이런 악행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9절은 난해 구절, 전반적인 의미: 부패에도 불구하고 조직된 정부와 통치자가 있는 것이 무정부 상태보다는
낫다. 악한 자들이 있지만 대다수는 정부의 질서 유지, 안보 등으로 인해 평안을 누리며 산다.- 20
3. 돈과 재물에 대한 허상을 깨야 한다(10-17)
솔로몬은 이미 재물의 허탄함에 대해 이야기함(2:1-11), 여기서 다시 한 번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사람들의 헛된 생각들
1. 재물은 만족감을 줄 것이다(10)
어떤 사람들은 돈을 신으로 여긴다.
온갖 노력을 다한다. 다 희생한다. 재물을 얻고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런데 실제로는 돈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탐욕의 노예가 되면 안 된다.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눅12)
나는 돈 이야기를 가능하면 안 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유감스럽게 보는 목사들도 있다. 성경은
돈에 대해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과 다른 신약 성경(딤전 6:10)에서
보듯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망치는 것은 바로 '돈을 사랑하는 것' 이다. 우리의 마음은 모든 것을
불태우는 한 가지 열정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만 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주인을 미워하고 다른 주인을 사랑하거나 혹은 한 주인을 떠받들고
다른 주인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마
6:24). 우리는 바울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적게 축복하시든 많이 축복하시든 자족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빌 4:12, 비교. 잠 30:7-9).
돈은 위대한 선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큰 교회, 작은 교회, 다 용도가 있다.
우리가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도록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정기적으로 나누어지는 곳에서 참된 코이노니아(koinonia)를 경험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엡 4:11-16, 골 3:12-17).
2. 돈으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11)
돈이 있어야만 인생을 살 수 있다. 사실이다.
그런데 돈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3. 돈이 평안을 준다(12)
돈을 가졌다고 평온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장하지 않는다.
4. 돈이 안전을 가져다줄 것이다(13-17)
두 부류: 1. 돈을 모으고 쓰지 않는 구두쇠(13),
2. 잘못된 투자, 재물 허비, 아들에게 줄 유산이 없다(14-15).
솔로몬은 부유한 것과 가나한 것, 둘 중 하나를 선호하지 않는다. 다 문제가 있다(잠30:7-9).
다만 그는 돈만을 사랑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세속적 소유물에 대한 어느 현자의 말은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가치가 있다.
여인숙에 머무는 사람들 중 일부에게는 침대가 주어지지만, 침대가 없는 나머지 사람들은 바닥에
몸을 눕히고도 침대에 누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단잠을 잔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모두가
똑같이 일어나 자신의 소지품만 챙겨 가지고 여인숙을 떠난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부와 명예를 소유한
사람들도 세상적인 편안함이나 부가 아니라 그들이 이 세상에서 행해 왔던 것들만을 챙겨 가지고
여인숙 같은 이 세상을 떠난다. 그것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말이다.
4. 솔로몬의 제안(18-20)
18절: 이미 2:24; 3:12-13, 22에서 밝힌 내용
성실하게 일하고 여가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라
19절: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노력은 내가 해도 하나님의 선물, 이것을 누려야 행복하다. 이번 주 휴가, 감기, 빙판 길, 감사
20절: 이런 사람은 과거의 어려움 등을 반복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초조해하지 않는다.
https://youtu.be/wNXb1hoZpbs?list=PL4P6SBDceLgGBvTld_0CVtNRLYYVvTN4R
전도서 06: 인생의 세 가지 미스터리_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성경, 설교, 강해 (2022. 12. 16)
전도서 06: 인생의 세 가지 미스터리
지혜 문학, 욥기, 잠언, 이제 전도서, 12장, 총 12번, 선포자, 지혜자 솔로몬의 선포
전도서의 구조
1, 인간의 문제 제시(1-2장): 1. 삶이 무미건조하다(헛되다) 2. 지혜의 헛됨, 3. 재물의 헛됨,
4. 죽음의 확실성
2. 3-10장 집중 탐구, 3. 해결책(11-12장0
오늘 < >
1. 기쁨이 없이 부를 축적하는 것(1-6), 2. 만족감이 없이 수고하는 것(7-9)
3. 답이 없는 질문들(10-12)
위어스비,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전도서
부유하고 총명한 사람들도 여전히 죽는다
우리는 엄청난 부나 재능이 만족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완전히 부당한 것은 아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분명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못한 이점을
가지고 있고, 총명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만큼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을 능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점에는 한계가 있다. 부유하고 총명한 사람들도 여전히 죽는다. 그들은 또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참된 기쁨과 만족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도 갖지 못한다.
솔로몬은 종교적 상투어를 싫어한다. 그는 기억하기 쉬운 종교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너무나 솔직하
게 삶의 몸부림을 다룬다. 솔로몬 요점: 하나님이 없으면 기쁨도 없다. 재물과 재능이 많아도.
그는 삶의 의미가 편안함이나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장수와 부, 재능과 명예 같은 근사한 축복들은 단독으로 올바르게 평가되거나 누릴 수 없다. 기쁨의
삶에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 기쁨이 없이 부를 축적하는 것(1-6)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런 저런 연유로 그런 것들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저축을 해서 노후를 잘 보내기 위해 부지런히 일했는데 그것을 누리기 전에 심장병, 혹은 움직일 수
없는 뇌졸중 같은 병, 혹은 암
혹은 가족 내에서 갈등과 분열, 가정이 깨진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솔로몬은 이미 3:19, 5:19에서 이것을 말하였다(하나님의 선물).
솔로몬의 교훈: 우리에게 선물들을 주시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선물들을 진정으로 누릴 수
없다.
선물을 주시는 분을 배제하고 선물을 즐기는 것은 배은망덕
이것이 인간(혹은 욕망)을 만족시킬 수는 있으나 공허하다.
1절: 이런 일은 공통적으로 있다.
2절: 읽고 설명
왜 기쁨을 누리지 못할까? 집안의 갈등(잠15:16-17), 질병, 혹은 사망(눅12:20)
어떤 사람은 자식도 없어서 낯선 자가 유산을 가로챔
“지금 하나님께 감사하고 즐겁게 살아라. 즐겁게 살 계획을 꾸미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대로, 지금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아라.”
3-6절: 가정하고 말한다. 2,000년을 사는 사람(6), 한 아내에게서 100명의 자식을 두는 사람은 없다
(3).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자식이 88명, 그런데 아내가 18, 첩이 60명, 그 아버지에 그 아들(대하
11:21)
소유한 것을 누릴 능력이 없다면(3) 유산되어 죽은 자가 더 낫다.
여기의 당사자, 많은 재물, 많은 자식,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의 표시- 22
그런데 그의 가족들이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가 묻히지도 못한다(3): 그가 죽어도 애곡하는 자가
없다. 그의 친척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 무언가를 얻으려고 그를 이용할 뿐이다(전5:11). 이
사람이 죽기만을 바란다.
이런 부자는 사실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질병 등으로 자기의 소유를 즐길 수 없다.
수많은 아이들이 있어서 가족 내에 사랑이 없으므로 행복을 주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사산된 자보다 못한다.
솔로몬 당시 유대인들, 사산된 아이에게는 이름을 주지 않았다. 기억하지 못하게
그래야 부모가 아픔을 쉽게 잊어버리므로
그래도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사실이다(9:4). 살아 있는 모든 것과
결합한 자에게 소망이 있나니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솔로몬은 여기서 그것을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왜 인생에서 일들이 이렇게 꼬이는가? 그 뒤에는 무슨 목적이 있는가?
그의 질문: 그렇게 많은 재물, 그런데 그것을 누릴 능력이 없다. 이것은 헛된 일이다.
인생의 행복은 인생 자체에서 나온다. 인생의 성격, 인생의 환경이 아니라.
빌4:11
바울에게 고통이 없는 날이 없었다(고후1, 고후11 참조). 그러나 그는 늘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빌4:13
2,000년을 산 사람, 사산된 아이 모두 같은 곳에 도착한다(6). 무덤
죽음이 확실함을 다시 한 번 알려준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은 허무한 일이다. 이 모든
것을 보여 주면서 그는 11:9-12:14의 결론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 한다.
2. 만족감이 없이 수고하는 것(7-9)
지금까지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부자 이야기, 이제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부자나 빈자나 다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
부자는 돈이 자기를 위해 일하게 할 수 있다. 은행 이자, 주식, 사람 고용 등
빈자는 자기와 가족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방법밖에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그런데 죽도록 일해도 만족감을 얻을 수 없다.
왜 먹는가?(7절) 인생의 연수를 늘리기 위해
그런데 연수는 늘리지만 실제로 즐거운 사람이 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새들을 보라. 온종일 먹이를 찾아다니고 자기를 잡으려는 사람들을 피하려고 애쓴다. 어떤 의미에서
새들은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주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있다. 동시에 노래를 불러 우리를 즐겁게 해 준다.
솔로몬은 결코 일하거나 먹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먹고 일하는 것을 즐긴다.
그런데 인생이 일하는 것과 먹는 것으로만 구성된다면, 그래서 인생이 식욕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면
그것은 새들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새나 짐승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으므
로. 다른 목적이 있어야 한다(요12:20-28).
8절의 두 질문: 대답은 “No”이다. 우리 사람이 식욕만을 채운다면
솔로몬은 교육이나 자기 계발을 무시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 자체가 우리의 사람을 풍성하게 하지 않음을 말할 뿐이다.
인간은 이것보다는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현시대 인류, 스마트폰, 인공위성, 유튜브, 수많은 말들을 삽시간에 쏟아낸다.
그런데 과연 의미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되는가?
사진 비디오 등 인공위성 중계, 얼마나 많이 보는가? 그런데 자기의 종착지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 23
매우 많다.
9절: 내 수중의 한 마리 새가 들의 두 마리보다 낫다.
적게 가지고 즐기는 것이 많은 것을 얻으려는 야망을 가지고 살면서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
솔로몬은 우리가 꿈 혹은 야망을 가지고 사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의 꿈이나 야망은 사람들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아니라 남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
우리의 업적과 성취가 만족감을 줄 수 있을까? 없다.
만족감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서 온다(엡6:6-7).
주님의 말씀(요4: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끝마치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 여기에 기쁨, 만족감, 노동의 의미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이것을 찾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그리고 질주해야 한다.
시16:11
3. 답이 없는 질문들(10-12)
두 종류의 사람: 1. 재물은 있는데 즐기지 못하는 사람, 2. 수고하는데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람
솔로몬의 세 번째 요점: 좋은 삶을 산다고 해서 자동으로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룰 때 부산물로 주어진다.
즉 행복을 추구하려고 삶을 살면 대개는 불행해진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인생을 쓰면 행복이 동신에 생긴다.
인생의 모든 답, 의미를 을 알려고 하면 결국 힘들어진다.
솔로몬은 정직하게 탐구하는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전도서 자체도 일종의 탐구이다.
솔로몬의 요점: 인생에서 어떤 것들에는 정답이 없다.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무지가 우리를 불신으로 이끌도록 두면 안 된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을 신뢰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설명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을 사는 사람이다.
X-ray를 찍는다. X-ray 사진을 아무리 잘 설명해 주어도 병이 낫지는 않는다. 그저 회복을 위한
하나의 단계이다.
고난당하는 욥, 하나님께 답을 달라고 떼를 쓴다. 하나님은 끝까지 답을 주시지 않는다.
이성과 생각의 설명이나 지식이 마음의 문제를 풀지 못한다. 마음의 치유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들을
신뢰하는 데서 온다.
10-12, 다섯 가지 질문
1. 일어날 것은 일어날 것이다.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는가? 다 예정되어 있는데(10).
무언가에 이름을 주는 것은 그것의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창조의 시점에 하나님은 모든 것에 이름을
붙여 주셧다. 빛은 빛이다. 어둠, 낮, 밤 등
세상과 인간은 모두 고유한 특징을 확립해 왔다. 하나님은 인간보다 더 강한 분이시다. 따라서 전도자는
지금 삶의 기본적인 특징을 변화시키는 것의 불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회피할 수도 없고, 세상의 이상 현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비교. 1:15). 그는 욥처럼
하나님과 논쟁하기를 바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더 위대한 분이시다(Eaton, 107).
우리의 이름은 사람 즉 아담이다. 뜻. 붉은 흙에서 왔다. 아무도 이것을 바꾸지 못한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창3:19).
사람은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으므로
하나님이 이름을 붙이신 것들을 바꾸면 안 된다. 죄는 죄, 순종, 진리- 24
이런 것들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면 혼란이 생긴다. 이게 좌익들이 하는 짓, 마귀의 사주를 받아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의
섭리
우리는 마음대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못 바꾼다,.
우리가 마음대로 이름을 바꾸고 혼동의 세계에 살면 만족감이 없다. 요17:3, 요일5:20
2. 왜 하나님과 갈등을 일으키며 사는가? 그분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10).
3. 우리가 이 말들로 성취하는 것은 무엇인가? 말한다고 문제들이 풀리는가? (11)
말하는 것이 항상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4.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12),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5. 이후에 올 것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12) AI, 천문학자, 점성술사, 무당,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만 확실하다. 모두가 죽는다.
결론
실제로 하나님 없이는 삶이 무미건조하고 많은 재물도 헛되다.
재물, 명예, 재능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과 함께하면 삶은 하나님의 선물이 된다(5:18-20).
하나님이 붙여 놓은 이름을 바꾸려 하지 말라. 순응하면서 살자.
다음 장부터 그는 지혜의 헛됨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정동수 목사님 프로필
- 학 력 -
인하대학교 기계공학 학사(1982)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립대 기계공학 석사(1984)
미국 매리랜드 주립대 기계공학 박사(1988)
미국 펜사콜라 신학대학원 석사(2001)
목사 안수(2001)
- 경 력 -
현,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1992-현재)현,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http://www.cbck.org/html/ 사랑침례교회
http://cafe.daum.net/Jesus-bible 예수그리스도안에서(카페)
http://www.keepbible.com/ 킵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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