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구 일째 / 황정희
구 일째 울진 산불이 타고 있다
한 할머니가 우사 문을 열고
다 타 죽는다 퍼뜩 도망가래이 퍼뜩 내빼거라 꼭 살거라
필사적으로 소들을 우사 밖으로 내몰고 있다
불길이 내려오는 화면을 바라보며
밀쳐놓은 와이셔츠를 당겨 다린다
발등에 내려앉은 석양처럼 당신은 다가오려 했고
나는 내 발등을 찍어 당신이 집나간 지도
구 일째
주름진 당신의 얼굴이 떠올라 매매 반듯하게 기다리고 있다
똑 똑
똑똑 똑똑
똑똑똑똑똑똑
빗소리다
쏟아지는 빗소리가 진화를 몰고 와
우산을 쓰고 돌아온 당신 속으로 질주하는 나는 맨발
날 밝아
체육관으로 피했던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다 타버린 우사 앞에서 할머니를 기다리는 소들의 모습이 비쳤다
[심사평] 감정 노출 없이 넌지시 제시되는 새로운 시공 ‘매혹적’
장석남 시인,나희덕 시인
당선작을 포함한 다섯 편 시 모두 잘 정제되어 있었다. 세상의 비극을 응시하되 그 현상을 자기 안에 끌어들여서 앙금으로 가라앉힌 모습이다. 얼핏 보면 아무 이야기도 아닌 듯하나 그 이면에는 들끓는 아픔과 성찰이 놓여 있다. 이즈음 떠도는 시들, 노래방 조명처럼 휘도는 언어의 쇄말 속에서 분명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산불을 만난 할머니가 키우던 소들을 우사 밖으로 내모는 텔레비전 영상과 화자의 사적인 경험이 중첩되어 전개된다든지 우연히 마주하게 된 싸움 구경에서 자신이 “아침에 산뜻하게 다려준 청색 남방이 찢겨져 있는 (‘지나쳤다’)” 장면을 발견하고는 이내 모른 척 돌아서는 모습에서 독자는 각각 처해진 삶의 조건 속에 숨어 있는 위선과 성찰을 동시에 발견하게 된다. 특별한 감정의 노출 없이 넌지시 제시되는 이 새로운 시공(時空)은 음미해볼수록 매혹적이다. 앞으로도 이 시의 축제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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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세지
이 시를 통해 시란 무엇인가?를 성찰
- 감정노출 억제
-체험과 극적 전개가 있어야 함
-시는 지적 사실인 지식(산불은 지구 온난화, 자연파괴-지구멸망-소방차 진입 등)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뭔가 대표적 이미지(2-3가지)를 잘 정제, 중층적으로 표상하여 깊이를 더하면서 그 속에 아픔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손가락이 아니라 달이다.
- 등가성의 중첩/확장이 있어야 한다(문제점(인재):산불, 부부싸움, 밀쳐놓은 와이셔츠-해결(인간/천리):비, 다리미)
-근원(철학적, 신화적, 원초적 세계)을 터치 - 구라는 숫자(오래되고 극에 달했다는 상징), 수리행위로서의 천리인 비, 파괴의 이미지인 불과 진화의 이미지인 물로서의 비(가스통 바슐라르)
-메세지, 이미지의 연쇄와 교차(산불/부부싸움/다리미/비), 자음운, 모음운 등 리듬을 살리는 장치가 유기적으로 촘촘하게 조직화되어야 한다
- 사물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말고 사물의 동원은 시를 쓰는 목적에 맞추어 딱딱 조직화되어야 한다.
구일 째라는 한 마디에 근원의 이미지가 있다.산불, 부부싸움에 대해 자연 파괴, 인재라는 말은 없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구질구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시는 이런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첫 연 제시로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사물시-사물( 事物 )은 사( 事 )라은 사건, 행위와 물( 物 )이라는 대상, 목적물로 이루어진 말이다.
시적 진실(주제) - 산불을 매개로 하여 그 현상을 자기 안에 끌어들여서 부부싸움의 문제를 앙금으로 가라앉힌 모습. 부부싸움의 아픔과
2, 이미지의 연쇄와 교차
ㅇ 산불의 이미지: 타다-죽는다-내려오다-석양-진화-타버리다
ㅇ 소의 이미지: 우사-문-도망/내빼다-내몰다-몰다-질주
ㅇ 부부싸움의 이미지:
ㅇ 다리미의 이미지: 당기다-다리다-주름지다
ㅇ 비의 이미지-똑 똑(비의 이미지와 노크의 이미지)-빗소리-진화-쏟아지다-우산-맨발
3. 리듬
ㅇ ㅁ자음운- 문-도망-내몰고-화면-바라보며-밀쳐놓은-주름진-매매-몰고-맨발-모습
ㅇㅈ자음운-집-지도-주름진-쏟아지다-진화-질주
ㅇㅂ 자음운-산불-불길-발등-반듯-빗소리-타버린
ㅇ ㅏ모음운 - 산불-타고- 당겨-다리다- 한 할머니-우사- 등등
ㅇ ㅜ모음운 - 구-우사-불길-주름진-우산-질주
구 일째 / 황정희
(구는 오랜 기간이라는 숫자, 완성의 숫자, 아홉의 수 위험의 숫자이기도 함, 귀신, 행운의 숫자)
구 일째 울진 산불이 타고 있다
(구질 구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한 할머니가 우사 문을 열고
다 타 죽는다 퍼뜩 도망가래이 퍼뜩 내빼거라 꼭 살거라
필사적으로 소들을 우사 밖으로 내몰고 있다
불길이 내려오는 화면을 바라보며
밀쳐놓은 와이셔츠를 당겨 다린다
발등에 내려앉은 석양처럼 당신은 다가오려 했고
(남편이 곧 어둠이 오기 전단계인 석양처럼 다급하게 화자를 몰아세우고)
나는 내 발등을 찍어 당신이 집나간 지도
(나도 나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남편이 집을 나간다)
구 일째
(위험과 완성의 숫자 구 일)
주름진 당신의 얼굴이 떠올라 매매 반듯하게 기다리고 있다
(매매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매매-지나칠 정도로 몹시 심하게)
똑 똑
똑똑 똑똑
똑똑똑똑똑똑
(해결책인 비의 이미지, 문 노크의 이미지)
빗소리다
(감정표현을 하지 않고 호들갑을 떨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담백하게 극적으로-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쏟아지는 빗소리가 진화를 몰고 와
(빗소리의 이미지와 소의 이미지를 연쇄)
우산을 쓰고 돌아온 당신 속으로 질주하는 나는 맨발
(질주라는 비와 소의 이미지와 화자의 순수한 마음인 맨발의 이미지를 교차)
(당신이 그립다는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고 당신 속으로 질주하는 나는 맨발로 잘 변용하여 표현)
(우산은 우사와 리듬을 맞추기 위한 장치이기도 함)
(ㅁ 자음운으로 리듬감을 창출하기 위해 위 매매, 몰고, 맨발 이런 식으로 기표를 배치)
날 밝아
체육관으로 피했던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다 타버린 우사 앞에서 할머니를 기다리는 소들의 모습이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