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68) 조조의 간계(姦計) <하편>
조조의 장례식을 거행하는 날이 되자, 여포는 조조의 군사들을 일거에 섬멸하기 위해, 자신이 앞장서서 삼만에 이르는 군사를 이끌고 마능산으로 향하였다.
마능산 가까이 접근해 보니, 과연 조조의 이름난 장수들이 상여를 메고 장지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적장들을 일거에 죽여 없앨 기회가 왔다! 총공격 하라!"
여포가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리자, 여포의 군사들이 상여를 메고 가는 적장들을 향하여 구름떼처럼 밀려 올라갔다.
그러자 상여를 메고 올라가던 조조의 군사들과 장수들이 상여를 그자리에 내버려두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일말의 군호(軍號)를 외치자, 마능산 기슭에서 난데없이 무장한 수 많은 군사들이 튀어나오며,
"와아! " ... "와아! "
하고 태산이 무너질 듯한 함성을 내지르며 여포군을 내달아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데, 그 수가 실로 여러 만 명이었다.
여포군은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의 기습을 받고 크게 당황하며 혼란에 빠져버렸다.
"앗차! 조조란 놈의 간계에 속았구나.... 여봐라! 즉시 퇴각을 지시하라!"
천하무적 여포도 이때만은 허겁지겁 어찌할 바를 몰라서 급히 퇴각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도망가는 적을 그대로 내버려둘 조조군이 아니었다.
조조군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의 적들을 향해 공격하다 보니, 기동도 훨씬 용이하고 공격의 강도도 훨씬 강렬하였다.
"여포란 놈을 잡아라!"
조조군은 한술 더 떠서, 여포까지 사로잡으려 하였다.
여포도 돌아서서 적들과 대적을 하려 하였으나, 여포의 적토마는 넓은 평지에서는 크게 위력을 발휘하나, 지금과 같은 산비탈에서는 기동성이 크게 떨어졌다.
게다가 이번에는 산 아래에서 수많은 적병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여포는 어쩔 수가 없어 응전을 하였다.
그러나 워낙 많은 적병들이 벌 떼처럼 덤벼드는데다가, 몰리기 시작한 자신의 부하들이 눈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가는 모습을 보자, 자신도 적들과 대적할 마음이 사라졌다.
그리하여 간신히 적의 포위망을 뚫고 공격을 벗어나고 보니, 삼만 명이나 데리고 떠났던 군사들이 채 일만 명도 남지 않았다. 여포는 허탈해 하며,
"음... 내가 조조란 놈의 잔꾀에 속았구나!"
여포는 이를 <부드득> 갈며, 남은 군사들을 수습하여 서둘러 복양성으로 돌아왔다.
전투가 이 모양으로 전개되다 보니, 설욕전(雪辱戰)에서 승리한 조조군의 사기가 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제야말로 여포와의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둘 때라고 판단하고 복양성으로 몰려가서 여포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여포는 조조에게 크게 한 번 당한지라, 조조가 이번에는 또 어떤 계략을 쓸 지 몰라서, 섣불리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양군은 서로 대치한 채 한동안 휴전 상태에 들어갔는데, 느닺없는 메뚜기떼가 몰려와서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메뚜기떼는 하늘을 가득메워, 햇빛을 차단하고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와 들판의 나무와 풀을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우기 시작하였다.
끝없이 몰려온 메뚜기 떼는 더이상 먹을 것이 없어지자, 자기네들끼리 서로 잡아먹어, 그 빈 껍데기가 땅을 뒤덮을 지경에 이르렀다.
메뚜기 떼가 휩쓸고 지나간 산동(山東)지방은 한여름 무성하게 자라던 모든 작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마침내 먹을 것을 찾아 뿔뿔이 어디론가 떠나기 시작하였다.
복양성 안팎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던 조조나 여포군의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군량을 조달해야 할 농사가 크게 망치는 바람에, 서로가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해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조조는 복양성 공격을 중지하고 군사들을 하제(河濟)로 물렸다.
하제에 도착한 얼마 뒤에, 서주의 도겸이 죽고, 유비가 새롭게 서주 자사가 되었다는 소식이 조조의 귀에 들어왔다.
그러자 조조는 크게 노하며,
"유비란 놈이 서주목이 되었다구? 흥! 죽은 도겸이 나의 선친의 원수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서주 성주가 되었다는 것은 나와 대결하겠다는 의사표시가 아니고 뭐란 말이냐?"
조조는 지난번 부터, 학수고대로 서주를 손에 넣을 야심이었는데, 여포로부터 자신의 본거지인 연주가 공격당함으로서 할 수없이 퇴각한 바 있거니와, 이제는 평소부터 가볍게 여기던 유비가 새로운 서주 성주가 되어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고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되자, 크게 분개한 것이었다.
"당장 군사를 일으켜 유비를 죽여 버리고, 도겸의 시체를 꺼내어 선친의 원수를 갚아야겠다!"
하면서 출동 명령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러자 모사 순욱(筍彧)이 간한다.
"주공, 지금 우리가 점령하고 있는 하제(河濟)는 천혜의 요지입니다. 이제 우리의 본거지인 연주를 여포에게 빼앗긴 터에, 다시 하제까지 버리고 서주를 얻으려다가 실패하면 우리는 어디를 근거로 재기를 도모하겠습니까. 우리가 서주에 힘을 기울이면 그동안 여포의 힘만 커질 것이옵니다."
"그러나 군량을 댈 수없는 땅을 언제까지나 지키면서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여남(汝南)과 영주(潁州)에는 황건적의 잔당인 하의(何儀)와 황소(黃召)가 무리를 이끌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을 쳐부수기는 심히 용의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재물을 빼앗아 삼군을 기르면 조정은 물론 백성들도 좋아할 것이옵니다."
순욱의 생각은 조조에게는 귀한 선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조조는 그의 말대로, 하후돈과 조인에게 하제를 지키게 하고 자기는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원정길에 올랐다.
하의와 황소는 조조가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양산(羊山)에서 조조군을 맞아 싸우기로 하고 군사들을 몰고 나왔다.
조조가 양산에 진을 치고 있는 적들과 몇차례 부딪쳐 보니, 적의 병력은 많았지만, 자신의 군사들과 달리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오합지졸(烏合之卒)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조조는 전위(典韋)를 시켜 나가 싸우게 하였다.
과연, 싸움의 결과는 조조가 예측한대로 적들은 변변히 싸우지도 못하고 많은 군사가 죽었고, 또 도망을 치거나 투항해 오기도 하였다.
이튿날은 동이 트자, 하의와 황소가 작심을 하고 조조군에게 선제공격을 해왔다.
그리하여 조조가 군사들에게 맞서 싸우라고 명하려는데, 달려오는 적들 앞으로 어디선가 나타난, 키가 팔 척쯤 되어 보이는 거장부 하나가 말도 타지 않고 적들을 향해 유유히 걸어가면서, 철봉을 휘휘 내두르며 큰소리로 이렇게 외치는 것이 아닌가?
" 졸개들은 상대가 안 되니, 대장놈이 나와라!"
군사를 몰고 앞장서서 달려오던 하의가 말을 멈추고, 가당치 않은듯 물었다.
"네 놈은 누구인데 홀로 나선단 말이냐? 목숨이 아깝지도 않더란 말이냐?"
"나 혼자도 네 놈들 모두를 당할 수가 있으니 어디 한 번 나와보거라!"
그러자 하의가 군사들을 기다리게 하고 자신은 말에서 내려, 장도(長刀)를 빼들고, 거장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두 말없이 칼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이 합, 이 합, 삼 합 .. 불과 삼 합 만에 하의는 거장부가 휘두른 철봉에 대강통을 정통으로 맞고 거꾸러진다.
그러자 이를 본 황소가 말을 달려 합세했다. 그러나 황소도 거장부의 적수는 아니었다.
황소는 그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철봉에 정통으로 맞은 말의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미처 손을 써 보지도 못하고 말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거장부는 황소를 순식간에 밧줄로 묶어 의기양양하게 산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황건적 도당인 두 대장 장수가 한 사람의 정체불명의 장사에게 순식간에 제압을 당하는 것을 본 황소의 군사들은 몸을 떨며 뒤돌아 도망치기 바빴다.
침을 삼기며 숨죽여 이 광경을 지켜 보던 조조가 전위에게 명한다.
"저 장수가 누구인지 알아오라!"
전위가 급히 말을 몰아 달려가며 소리쳤다.
"이놈! 게 섰거라. 너도 황건적이냐?"
그러자 장사가 대답한다.
"이놈! 똑똑히 보고 떠들어라! 나는 황건적을 붙잡아 가는 사람이다."
"네가 황건적을 붙잡았거든 나에게 바쳐야 하거늘 어찌 네가 끌고 간단 말이냐?"
"네가 내 손에서 철봉을 빼앗아 간다면, 두 말없이 황건적은 너에게 내주리라."
그러자 전위가 크게 화를 내며 싸움을 걸었다. 정체불명의 장수도 맞서 싸운다.
십 합, 이십 합, 삼십 합, 싸움은 아침부터 정오까지 계속되었으나, 도무지 승부가 나지 않았다.
조조를 비롯한 조조의 군사들은 두 사람의 격전을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조조의 진영에서 퇴각을 명하는 징이 울렸다.
전위가 정체불명의 장수에게 말한다.
"오늘은 둘 다 지쳤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싸우자!"
"그러자! 내일 다시 싸우자!"
이렇게 전위가 본진으로 돌아오자 조조가 ,
"대단한 장수로다. 내일은 그대가 싸우다가 쫓기는 척하면서 그 장사를 내게로 유인해 오라!"
하고 일렀다.
이튼날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전위는 삼십 합쯤 싸우다가 급히 쫓겼다.
그러자 정체불명의 장수가 그의 뒤를 추격해 온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쯤 쫓아오다가, 조조의 명령으로 어젯밤 미리 만들어 놓은 함정 속에 말과함께 빠지고 말았다.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장사에게 결박을 지었다.
그리고 장사는 결박을 진 채 조조앞으로 끌려 나왔다.
조조는 장사를 보자 부하들에게,
"너희들이 사람을 몰라보고, 이런 장사에게 결박을 짓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하고, 꾸짖으면서, 친히 장사의 포박을 풀어주며 말했다.
"미안하오. 당신을 이리로 데려오라고 했더니, 부하들이 명을 잘못 받아들인 것같소. 도대체 장사는 어디사는 누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