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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6 주님 가신 그 길 시 1; 렘 17:5-10; 고전 15:12-20; 눅 6:17-26
국가의 종교가 기독교라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물론 극히 개인적인 생각, 어쩌면 이기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종교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추구하면서도, 내가 믿는 신을 최고로 생각하는 이면에는 타종교를 인정하는 선을 넘어 배타적이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대통령에 취임하면 성경에 손을 얹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삼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일으킨 아이러니를 봅니다. 그들은 정의의 전쟁이라고 합니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고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전쟁, 명분 있는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잔인하게, 무차별적으로, 처절하게 짓밟아 버립니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립니다. 너무나 끔찍합니다. 평생 트라우마에 삽니다. 그런 전쟁을 기독교 국가 종교를 둔 나라에서, 이제 부러워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한사람 전도는, 한 사람 자본주의자로 만드는 것이라던 혹자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국가 종교의 지정보다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민족, 다양한 인종 등의 다양성의 협치가 더 부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입니다.
당장 질문이 쏟아질 것입니다. 기독교의 부정인가?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 종교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전히 이면의 염려와 걱정, 이기성에도 불구하고 그런 희망과 꿈이 있습니다. 다만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조금은 알기에 먼 꿈과 희망으로 간직할 따름입니다. 극우화 되어가는 대형교회를 봅니다. 전광훈을 넘어서는 이름난 대형교회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종으로 생각하는 주객이 바뀐 것 같습니다. 저의 이면에도 여러 번 그런 유혹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사람 사는 이야기, 역사 속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비일비재한지 모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남 위에,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곳에, 1등을 찬양하고, 돈이 최고라고 하는 그 무엇 때문일까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숨죽이고 있는 이면을 종종 마주합니다.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기에는 비겁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늘 추구하고 깨어있으려 하는 그것이 바로 주님 가신 그 길입니다. 주님이 먼저 가신 그 길입니다.
고린도 전서 본문에 바울의 말을 들어봅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바울의 일생을 둘로 나눈다면, 예수 이전과 이후입니다. 이전의 바울은 세상적으로 가장 성공한 경우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상위 1%, 장래가 촉망되는 지도자, 신념을 책상머리에 두지 않고 온몸으로 행동에 옮기던 소위 무서운 사람입니다. 신념에 따라 기독교인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강제적으로 잡아 족치는 사람입니다. 이 모든 것, 이 모든 행동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념, 확고한 신앙으로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단 1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바울의 솔직함, 비겁하지 않은 확신, 이런 바울을 하나님은 주목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칩니다. 이후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를 만난 이후, 예수를 전하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사도들보다 더욱 수고하였다고 본인 스스로 이야기합니다. 여전히 바울의 확신과 신념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가 믿던 하나님은 한 분, 같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지난주에 같은 하나님, 한 분 하나님을 믿지만 너무나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는데, 예수 이전의 바울이 믿던 하나님과 이후의 다른 양상을 봅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극우화가 비슷한 현상 같아 보입니다. 한 분, 같은 하나님, 그러나 전혀 다른 현상입니다. 혹 바울의 말처럼 세상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 아닐까요?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러나 ‘세상에서의 희망과 함께’라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공해야, 하나님의 이름으로 잘 되고 부자 되어야 본이 된다, 전도할 수 있다 등등의 교묘한 유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의 이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습니까? 여전히, 갈수록 미래가 밝은 사람이었습니까?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까? 그가 가진 모든 특권은 배설물과 같이 되었습니다. 물론 바울이 특권을 아까워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 고귀한 값비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세상의 희망, 이 모든 것 보다 더 귀한 것, 바로 주님을 만난 은혜, 주님께로부터의 가치를 느낀 것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예수는 복음서 본문에서 말합니다. “너희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침묵!
250216 시 1; 렘 17:5-10; 고전 15:12-20; 눅 6:17-26
시 1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아니하며,
2 오로지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4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한갓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다.
5 그러므로 악인은 심판받을 그 때에 얼굴을 들지 못하며, 죄인은 의인들의 모임에 들어서지 못한다.
6 그렇다. 의인의 길은 주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공동번역
제 1 편
1 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아니하며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2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3 그에게 안 될 일이 무엇이랴! 냇가에 심어진 나무 같아서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고 제 철 따라 열매 맺으리.
4 사악한 자는 그렇지 아니하니 바람에 까불리는 겨와도 같아.
5 야훼께서 심판하실 때에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죄인이라 의인들 모임에 끼지도 못하리라.
6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
렘 17:5-10
5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나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6 그는 황야에서 자라는 가시덤불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소금기가 많아서 사람이 살 수도 없는 땅, 메마른 사막에서 살게 될 것이다."
7 그러나 주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8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
9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
10 "각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심장을 감찰하며, 각 사람의 행실과 행동에 따라 보상하는 이는 바로 나 주다."
5 야훼가 하는 말이다. 나에게서 마음이 멀어져 사람을 믿는 자들,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들은 천벌을 받으리라.
6 벌판에 자라난 덤불과 같아, 좋은 일 하나 볼 수 없으리라. 소금쩍이 일어나서 아무 것도 자라지 않고 뙤약볕만이 내려 쬐는 사막에서 살리라.
7 그러나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8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개울 가로 뿌리를 뻗어 아무리 볕이 따가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잎사귀는 무성하며 아무리 가물어도 걱정없이 줄곧 열매를 맺으리라.
9 사람의 마음은 천길 물 속이라 아무도 알 수 없지만
10 이 야훼만은 그 마음을 꿰뚫어 보고 뱃속까지 환히 들여다 본다. 그래서 누구나 그 행실을 따라 그 소행대로 갚아 주리라.
고전 15:12-20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전파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어떤 이들은 죽은 사람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3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14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교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
15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거짓되이 증언하는 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정말로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않으셨을 터인데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우리가 하나님을 거슬러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16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여러분의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19 우리가 이 세상만을 생각하고 그리스도께 소망을 걸었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4)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우리가 전파하고 있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13 만일 죽은 자가 부활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셨을 리가 없고
14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5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을 리가 없읍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는 우리는 결국 하느님을 거스르는 거짓 증인이 되는 셈입니다.
16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17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19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사람이 되셨습니다.
눅 6:17-26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계셨다. 그러자 거기에 그의 제자들이 큰 떼를 이루고, 또 온 유대와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 해안지방에서 모여든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었다.
18 그들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또 자기들의 병도 고치고자 하여 몰려온 사람들이다. 3)악한 귀신에게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은 고침을 받았다.
19 온 무리가 예수에게 손이라도 대어 보려고 애를 썼다. 예수에게서 능력이 나와서 그들을 모두 낫게 하였기 때문이다.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서, 제자들을 보면서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21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 우는 사람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인자 때문에 너희를 배척하고, 욕하고, 누명을 씌울 때에 너희는 복이 있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아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다. 그들의 조상이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24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25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릴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웃는 사람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할 때에, 너희는 화가 있다. 그들의 조상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그와 같이 행하였다.“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 와 평지에 이르러 보니 거기에 많은 제자들과 함께 유다 각 지방과 예루살렘과 해안 지방인 띠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는 더러운 악령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그들도 고쳐 주셨다.
19 이렇게 예수에게서 기적의 힘이 나와 누구든지 다 낫는 것을 보고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예수를 만지려고 하였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마태오 5:1-12)
20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21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 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25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26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