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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
해마다 어김없이 섣달 그믐날 자정이면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여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다.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이제는 세시풍속의 하나로 굳어져 버렸지만 보신각 종은 언제부터 치기 시작했는지, 제야의 종을 33번치는 이유와 함께 제야의 종 행사에 담겨진 아픈 역사도 알아보자.
* 보신각종의 역사
원래 이 종은 태조 5년(1396)에 조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종루와 함께 불타버린 것을, 임란 직후인 1594년 종루를 재건하고 원각사에 있던 종을, 불타버린 종을 대신해 내걸었다.
이 종은 원래 태조의 제 2비인 신덕 왕후의 능인 정릉의 능사에 있었다. 이 정릉사가 폐사되자 원각사로 옮겼었다.그러나 이 절도 폐사되어 임진왜란 이후 종각에 걸렸다가 최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종은 조선시대에는 성문 개폐 시에, 광복 후부터 1985년까지는 ‘제야의 종’ 타종에 사용됐지만 종에 금이 가 타종할 수 없어 1986년 경복궁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 지난 20일 내년 10월 문을 연 용산 새 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고종 32년(1895) 종루가 보신각으로 이름이 바뀜에 따라 보신각종이라 불리게 되었고, 현재의 종은 국민성금을 모아 새로 주조한 것이다.
보물 2호인 보신각종은 높이 372 cm, 너비 273cm, 무게 24톤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문화재이다. 2차례 화재로 인해 손상을 입고, 음향도 다소 변했으나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명문(銘文)이 남아있어 귀중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 탄피가 되려다 되살아난 보신각 종
이 5백년 이상 처 오던 종은 일제 말기 대동아 전쟁이 벌어지면서 부터 일제는 쇠붙이가 모자라자, 특히 탄피 등에 쓰일 동(銅) 같은 것이 모자라자 조선인들의 숟가락 젓가락까지 모두 공출 해 갔다.
그러나 이 보신각종은 이미 총독부에서 보물 제 2 호로 지정해 놓았으므로 그대로 두었다.
이것을 본 조선인들은 지금 무슨 연대처럼 일본 천황 애국연대를 만들어 그 수가 수만 명이 되었고 이들 단체는 총독부 상대로 소송을 내었다.
취지는 그 보신각종도 걷어다가 탄피를 만들어 일본이 전승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이 건은 재판에 붙여졌고 총독부가 승소하자 주물공장 용광로 앞에까지 끌려갔던 보신각종은 되 돌아왔다.
즉 우리의 국보를 없애지 못해 안달 했던 것은 바로 우리였다. 정말 이순신을 죽이지 못해 안달하던 후예들답다.
(아래 글은 퍼온것이고 지금 사학계에서 믿는 학설이다)
* 왜 33번을 칠까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33번치는 것은 조선시대에 이른 새벽 사대문 개방과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타종, 즉 파루를 33번 친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4대문이 닫히고 주민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이경(밤 10시경)에는 종로 보신각에 있는 대종을 쳐서 널리 알렸다.
하늘의 별자리 28수(宿)를 상징한다고 생각하여 28번 타종했는데 이를 인정이라 했고,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오경(새벽 4시경)에는 하늘이 열린다고 생각하여 33천(天)을 상징하는 33번을 타종했고 이를 파루라 했다. 이는 불교의 우주관인 28계 33천 신앙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33천 동서남북 사방에 각 8계층의 하늘이 있고 이 모두를 지휘하는 하늘을 선견성(善見成)이라 하는데, 우리나라를 세운 단군이 바로 이 선견성의 성주인 환인천제의 아들이므로 단군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광명이세(光明以世)의 이념이 널리 선양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라는 민족적 의미를 가진 설도 있다.
* 언제부터 제야의 종을 쳤을까
보신각종이 오래 전에도 제야의 종으로 사용됐다는 역사적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매일 시간을 알리기 위해 종을 쳤던 조선시대에는 따로 제야의 종을 쳤을 가능성이 희박하고, 아마도 일제시대 부터 타종이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강하다.
1929년 1월 1일, 일제가 서울 정동에 설립한 경성방송이 남산에 있었던 일본 절 본원사의 범종을 빌려와 제야의 종을 치고 이 소리를 전국에 중계했다. 이후 경주 에밀레종과 개성 연복사종과 같은 유명 범종까지 제야의 종으로 동원되었다.
근대 사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렇게 식민지시대 관행으로 굳어졌던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해방이 된 후 특히 53년 말경부터 보신각종을 사용해 본격적으로 계속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명지대학교 한국사학과 홍순민교수는 “원래 보신각은 한양성 한가운데 삼거리 정자 모양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현재 보신각 위치는 제자리가 아니다. 또한 방위도 남향이어야 하는데 맞지 않고, 시멘트와 철근을 쓴 것도 잘못됐다”며 “제야의 종 행사가 우리나라의 전통도 아니고 제야의 종 타종 행사 자체가 일제 때 확산된 유행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지속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타종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보신각 일대에 모인다. 하지만 새해를 열며 울려 퍼지는 보신각 종소리에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식민지 유산의 아픔도 함께 담겨있다.
* 종교적 의미
불교에서의 유래. 불교의 우주관, 28계 33천 신앙에서 유래. 새벽이 열리는 인(寅)時에, 4대문을 여는 파루(罷漏)는 33번 타종. 저녁 유(酉)時에는 28번 타종.(동양적 사고로는 하늘의 별자리 28수(宿)를 상징한다고도 함.33천을 도리천이라 하는데 그곳의 天民들은 건강하고 무병장수 하므로 밝아오는 새해와 밝아오는 아침에는 우리 국민들이 33천민들처럼 건강하고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한다 한다.
* 민족적 의미
지금 학계에 민족적 의미로 역시 33천은, 동서남북 사방에 각 8계층의 하늘이 있고, 그 가운데 이 모두를 지휘하는 하늘을 선견성(善見成)이라 하는데, 우리나라를 세우신 국조단군이 바로 이 선견성의 성주인, 환인천제의 아들이므로 단군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광명이세(光明以世)의 이념이 널리 선양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이다.
* 방송국의 말.
언젠가 어느 방송국에서 아나운서가 보신각 타종장면을 중계하면서 민족대표 33인을 상징하여 33번 타종한다고 하는 어이없는 해설을 한 일이있다.
** 이상설을 글쓴이는 정면으로 부정한다.
보신각 종을 33 번 치는데 대하여 학계에서는 그 뚜렸한 이유를 모른다.
그져 전에서 부터 그래왔으니 그런 줄 안다.
우선 불교계의 주장대로라면 우리 하는님은 부처님의 궁전을 지키는 수위도 하급 수위다.
다음 현재 학계의 주장은 불교계의 주상을 뒷바침해 줄 뿐으로 우리 하느님을 부처님 수위로 만든다.
또 이 종은 태조 때 만들면서 부터 처 졌으므로 위 어느 교수말 처럼 일제의 잔재도 아니다. 단 새벽에 33번 치던 것을 새해 새벽에 33 번 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방송국 아나운서대로 33 인 때문에 종을 33 번 친다면 그 전에 33 번 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신 분은 왜 하필 33 인인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지금 보신각종이 33 번 치는 이유는 모두 일연의 삼국유사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 설이 맞을까?
다음 글을 보자
* 삼국유사(三國遺事) 三國遺事 (古朝鮮) 古記云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數意天下貪求人世父知子意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乃授天符印三箇遺往理之...
(고기에 이런 말이 있다. 옛날에 환인(제석 을 이른다)의 서자(庶子部아들) 환웅이 계서서 천하에 뜻을 두고 사람 사는 세상을 탐구하자 아버지는 이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과연 홍익인간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곳인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했다.)
그러면 제석(帝釋)이 부처님 나라, 즉 불교의 우주관 33 천 중 어디에 속해있는지 한번 보자 .
*** 불교의 33 천 우주관
** 無色界
非相非非相處天 (부처님이 계신곳)
無所有天
識無變處天
空無邊處天
** 色界
四禪天
色九境天
善見天
善現天
無熱天
無煩天
無相天
廣果天
福生天
無雲天
*三禪天
遍淨天
無量淨天
少淨天
* 二禪天
極光淨天
無量光天
少光天
* 初禪天
大梵天(梵天
梵補天
梵衆天
** 欲界
* 六欲天
他化自在天
化樂天
兜率天
夜摩天
忉利天 (東8天, 西8天 南8天,北8天 重仰 帝釋天 (합 33 천 하느님이 계신곳)
四王天(東國持國天,
西廣目天,
南增長天
北多聞天 (四天王, 八部神將)
* 人趣
人間 (東勝神州,,西牛賀州,南贍部州,北瞿盧洲- 욕망의 세계)
* 四惡趣
阿修羅 - 투쟁의 세계
畜生 - 생존영위에 매몰된 세계
餓鬼 - 굶주림의 세계
地獄 - 생사의 끊임없는 반복과 고통의 세계
이상 불교의 우주관을 보면 위서부터 무색계(無色界), 색계(色界), 욕계(欲界) 삼계가 있고 먼저 무색계에는 비상비비상처천(非相非非相處天)이라는 세계가 가장 높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부처의 세계이다.
그리고 맨 아래 욕계(欲界) 중에 사악취(四惡趣) 가 있고 그 사악취중 지옥계가 가장 아래이며 그 위로 아귀, 축생. 아수라 계가 있고 그 위는 인취(人趣)라 해서 인간계이다.
그리고 그 위 육욕천(六欲天) 맨 아래, 절에 가보면 눈알을 부릅뜨고 있는 사천왕, 팔부신장 위에는 도리천(忉利天) 이 있는데 이 도리천은 사방과 간방까지 합쳐 8 방이 되고 이 8방의 합이 32 이며 그 중앙에 있는 것이 바로 일연이 말한 제석천(帝釋天)이다.
그러니까 우리 하느님(桓因)은 바로 인간계에서 두 단계 올라간 것에 불과하고 부처님으로 부터는 27 단계나 낮은데 있다.
그리고 이건 부처님을 지키는 수호신이긴 한데 그 비서도 못되고 비서, 비서의 하인...한참 비서의 하인인 수위정도라 감히 부님을 처다 볼 수도 없는 위치이다.
승려인 일연은 이런 자리를 골라 우리 하느님 자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며 사학자들도 우리 하느님이 일단 체석천왕 이라니 그것이 부처님 비서도 못되는 수위인줄도 모르고 그저 감읍할 따름이다.
* 보신각 종을 33 치는 진정한 이유
우리 민족은 옛날서 부터 3 의 민족이었다.
우리 민족의 행운의 수는 3 이다.
삼세판, 초가삼간, 살아 삼배 죽어 삼배, 아들 삼형제 ...
삼은 하느님이 개국을 하려는 환웅께, 아니 우리 민족에게 내려주신 천부인 세 개로부터 나온다.
천부인 세 개란 천지인을 뜻 하고 이것으로 환웅의 신하 신지는 [진본 천부경]을 만드는데 셋이 바로 환웅이고 이로부터 우리의 생명이 생긴다.
* 아래는 우주를 창조하고 있는 삼극.
환웅시대 유물인 홍산문화 유물 옥지환에도 삼태극이 나오고 신라유물 이나 심지어 홍살문 북 부채도 모두 삼태극이다.
* 아래는 용(홍)산문화 (중국대륙에 있던 고조선 문화) 옥기의 삼극환
* 아래 보물 제 635호 신라 시대의 장식 보검 ( 경주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14호분 출토. 국립경주박물관 103쪽 ) 우리 민족이 사용하던 삼극 무늬는 신라시절 기와장뿐 아니라 보검 자루에도 있다.
이 3 은 발전하여 삼에 삼을 더한다. 즉 천부경을 해설한 최치원 81 자 중에 天二三 만 보자,
3 을 더하면 6 이 되고 곱하면 9 가 되며 3 을 그냥 포개놓으면 33 이 된다.
결국 우리 하늘은 애초부터 33 차원의 하늘이었다.
글쓴이는 전에서 부터 남북한 공동행사에 한반도 기를 들고 설칠 것이 아니라 삼극 기를 만들어 쓰자고 했으며 통일 한민족 기를 삼태극 기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이런 글쓴이의 말은 말귀에 샛파람(馬耳東風)이다.
지금 미국 펩시콜라의 마크가 태극 모양이다.
그런데 그들이 만약 삼극을 특허내서 쓴다면 우리는 그것을 엄청난 돈을 주고 사다가 그제야 사용할 것이다.
꼭 성리학의 '성' 자도 모르는 미국 학자가 성리학에 대한 책을 내자 우리는 그 책을 역 번역하여 출판사에서 미처 책을 찍을 사이도 없이 그 책을 사 보았고 결국 퇴계는 천 원짜리 지폐의 모델까지 되었다.
미련한 황우석 박사는 이런 것도 모르고 감히 미국 쌔튼 교수보다 먼저 줄기세포 이론을 발표하니 그렇게 고생이 심한 것이다.
제야의 종은 금년도 어김없이 33 번 울렸다.
이 종은 과연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
정말 말로만 애국 애족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뿌리부터 알아야 할 것이며 특히 보신각종의 전신인 진짜 보신각종은 일제조차도 보호 하려 했으나 대동아 전쟁 때 탄피를 만들려고 애쓴 것은 일제가 아닌 우리 민족 연대 라는데 놀라며 그 연대가 한 일은 새만금을 막지 못하게 16 년 간이나 소행했던 것과 같으니 그 친목계와 같은 연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