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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완 목사 / 책임의식 (민 11:14)
책임과 무책임에 관한 예화를 소개합니다. 먼저 책임을 다한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웨일즈라는 시골에 사는 과부가 어느 날 밤, 자기 아기가 위독하다고 10km를 걸어와 의사에게 왕진을 청했습니다. 의사는 처음에는 가봤자 가난한 과부에게서 사례 받는 것도 문제고 또 안 간다면 아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곧 마음을 바꾸어 이해타산보다 의사로서의 책임과 인도적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준비하고 시골길을 걸어 급히 그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의사의 도움으로 아기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 아기가 바로 장성하여 영국 수상이 된 로이드 조지입니다. 의사의 책임감이 영국의 수상을 살린 것입니다.
또 다른 예화입니다.
피디아스(Phidias)라는 그리스의 최고 조각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유명한 다이애나 신상을 조각한 사람입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이 거대한 조각품은 지상 100피트 높이에 세워질 작품입니다. 사람들 보기에 어느덧 일이 거의 마무리되어 그 조각품이 완성되었다고 생각되었는데, 피디아스는 아직도 멀었다는 듯이 조각 뒷부분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 중 한 사람이 답답한 나머지 물었습니다.
"선생님, 예술도 현실적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각은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인데 100피트 위에 세워질 조각의 머리 뒷부분의 머리카락을 누가 본다고 그렇게 시간을 들이십니까?"
이에 피디아스는 조용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첫째는 내가 보고, 두 번째는 역사가 평가하기 때문이네"
한 번쯤 깊이 새겨봄직한 말입니다.
이번에는 무책임에 관한 예화입니다.
1923년 영국에서 대서양을 횡단하는 초호화 유럼선 '타이타닉호'가 있었습니다. 타이타닉호가 빙산을 들이받아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그 곳에서 불과 50㎞ 떨어진 곳에서 캘리포니아호가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사고현장으로부터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타이타닉호 무선사들은 필사적으로 구조요청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호에도 무선사 한 사람이 타고 있었으나 그는 무전기를 꺼놓은 채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호는 대형참사를 까맣게 잊은채 항로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만약 무선사가 무전기를 켜 놓았더라면 '타이타닉 참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선사 한 사람의 무책임이 엄청난 희생을 낳은 것입니다.
또 다른 무책임에 관한 예화입니다.
1865년 4월14일 미국의 링컨 대통령 부부는 극장 2층의 귀빈석에 도착했습니다.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로 환영했고 링컨도 손을 흔들어 답례했습니다. 연극 공연 중간에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 동안 링컨이 부인 메리 토드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유럽 여행을 한번 하고 그 다음으로 축복받은 땅 가나안 지역 성지순례를 해보고 싶소. 특별히 예루살렘 땅을 걸어보고 싶구려. 그 곳은 예수님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주님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이지 않소. 주님이 직접 우리의 죄짐을 짊어지시고 고통의 십자가를 지신 골고다의 언덕, 거룩한 땅, 예루살렘….”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총성이 극장 안에 울려퍼졌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그것은 부주의한 경호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암살자 존 윌크스 부스가 링컨에게 접근해서 그의 머리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긴 것입니다.
우리시대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리 큰 일이 터져도.....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이스라엘 장교들은 '돌격'이라는 말을 절대 사용하지 않고 '나를 따르라'는 명령만 한다고 합니다. 리더쉽에 있어서 「책임의식」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백성은 다 못해도 적어도 리더는 5분 정도는 더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백성은 다 도망가도 리더는 끝까지 '내 책임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파산한 일본 기업가들이 눈물로 회개하는 기자회견장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 아랫목에 내려간 사람은 「배신자」와「책임에서 도피한 사람」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책임이 소중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유학생의 절규를 잊을 수 없습니다.
"남들은 내가 유학 왔다고 부러워 하지만 실상 나는 유배당해 왔습니다."
나 같은 인간이 아버지의 체면을 구길까봐 집에서 강제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본질을 버린 케이스입니다. 이제는 가정에서도 책임의식을 찾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자식은 누가 낳았는데 누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인가요?
지옥 아랫목에 가면 어느 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을까요?
어떤 직업의 사람들이 가장 많을까요? 우리 모두 그 곳에서 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야할 의무는 감당하지 않고, 그들의 해야할 일만 강요하는 자에게는 오해와 고통만 뒤따를 뿐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학생회 여름 수련회를 바닷가로 갔다가 한 학생이 심장마비로 죽는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학생의 아버지가 달려왔습니다. 그때 교회 담임 목사님이 울부짖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사실 그 목사님에게 실제적인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잘못은 없지만 지도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영혼을 가르치는 교사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교사의 잘못으로 어린 영혼이 실족케 되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책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맡겨 준 자에게는 많은 책임을 물으시고, 적게 맡겨 준 자에게는 적은 책임을 물으십니다. 우리는 어린 영혼들을 진리와 소망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실족케 하여 그 영혼을 멍들게 하고 죽게 만드는 교사인지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모습입니까?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18:7)
유엔 통계에 의하면 세계 인구의 약 사분의 일 가량이 빈곤으로 말미암아 기아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60억 지구 인구 중 27. 2%에 해당하는 16억 2,000만 명이 기아 상태에 있다는 보도입니다. 이는 하루에 약 40,000명의 어린이가 기아로 죽고 있는 꼴이 됩니다. 또한 빈곤인구의 61.6%가 아시아에 살고 있으며 나라별로는 인도가 제일 많은 빈곤 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미래 학자는 지구는 약 110억의 인구가 살아도 넉넉하게끔 만들어져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소득의 불균형과 인간의 자연 파괴로 말미암아 인간 스스로가 빈곤이라는 자업자득의 고통을 초래했습니다.
기독교는 획실히 세계의 기아문제에 책임이 있습니다. 더욱이 교회는 이 문제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인 자세로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아셨지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없어도 먹을 것을 주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는 간구가 비중있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온 세계인들을 향해 그 날에 족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가 남의 것을 빼앗을 만큼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기도이며 나의 양식만 아니라 모두의 양식에 관심을 가지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길을 열어 주십니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학자인 다니엘 웹스터가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뉴욕의 어느 호텔에서 저명한 인사 스무 명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서로들 담소를 나누는데, 웹스터만 가만히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게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웹스터 씨, 당신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모두 주목한 가운데 웹스터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지금 내가 하는 모든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할 때마다 저는 참으로 엄숙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내가 한 모든 말과 행동을 장차 올 그 날에 모두 다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금년에는 좀 더 성실하게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사명을 깨닫고 충성해서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고 축복 받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병천 목사 / 죽고 싶은 위기를 만났을 때 (민 11:10-23)
‘아!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여러분들은 혹시 이와 같은 극단적인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때때로 큰 위기들에 직면하곤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듯한 그 위기의 순간에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이제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광야에서 그를 믿고 따르는 백성, 200만명 이상에게 한 순간에 고기를 주어 먹게 하여야 한다는 큰 문제를 만나, 어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엄청난 부담과 엄청난 위기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향하여 곧 돌팔매질이라도 할 기세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한 순간에 큰 위기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가 당면한 위기 앞에서 아무리 궁리를 하고 묘책을 구해 보아도 그 위기를 해결할 만한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론이 이것이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하나님이시여,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라는 절규 섞인 기도와 신음을 내뱉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그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라도 하나님이 개입해 주시면 간단히 해결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죽고 싶은 위기를 만났을 때에라도, 그냥 혼자 죽지 마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작고한 고, 정몽헌 현대그룹회장의 자살사건을 접했을 때 느낀 안타까움이 그것이었습니다.
죽고 싶더라도, 절대 스스로는 죽지 마시고, 차라리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그러면 하나님께서 죽여주시던가, 혹은 그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 주시고 더 좋은 것들로 채워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자살하면 지옥에 갑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절대 자살만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다같이 따라서 합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자살만은 절대 안 된다!”^^
옆 사람을 보고 이야기 해 주시기 바랍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자살만은 절대 안 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되면 그냥 거지가 될지언정 절대로 자살만은 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거리에서 한 거지가 애처로이 통행인에게 돈을 빌고 있었습니다.
통행인 한 사람이 말을 했습니다.
“넌 그렇게 멀쩡한 양 팔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일하지 않는 거냐?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그 때 그 거지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주는 돈 몇 푼 때문에, 이 양팔을 끊어내란 말입니까?”^^
여러분, 이 거지와 같이 남에게 동냥을 할지언정 절대로 자살만은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거지에게는 회복의 기회가 있을지언정, 죽은 사람에게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뿐더러 그 영혼이 영원한 지옥에 가는 고통이 임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모세는 죽고 싶은 위기를 만났을 때, 자살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시여,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11:15)라고 절규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그 위기가 기적적으로 해결되는 은혜를 맛보았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도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이 나타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가 만난 위기가 도대체 어떤 것이었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의 손으로, 저주스런 고통의 노예자리에서 벗어나 출애굽을 하였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것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넜습니다. 뒤쫓는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셨습니다.
광야 길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걱정하며 불평을 하자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매일 새벽의 만나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족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원망의 말들을 터뜨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사 불을 내리셨고, 그 불이 진 끝을 사르자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불을 겨우 끌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원망은 고기를 먹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날 때 먹을 것이 없었으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벽마다 만나를 내려서 배불리 먹게 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에 감사하고 만족하기는커녕 오히려 고기가 먹고 싶다고 울고불고 원망, 불평을 해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만나는 진주 같이 생긴데다가 맛은 기름 섞은 과자 맛같이 고소하고 맛이 있었는데도, 그나마 배불리 먹게 된 것을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기를 민수기 11:4-6에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라고 하면서 울어댔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이 울며 탄식하는 모습을 보자 큰 근심이 되었습니다. 이러다간 큰 반란이 일어나서 자기를 반역하고 돌질까지 하게 될 판이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 11:11-15)라고 부르짖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 혼자 질 수 없다고 하니까 70인 장로들을 다 데리고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네게 임한 성신을 그들에게도 부어 주도록 하겠다"고 하시면서 그 백성들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되 하루나, 이틀이나, 닷세나 열흘이나 이십일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1개윌 간을 먹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모세가 "이 백성의 보행자가 60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까" 하고 반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바람이 불더니, 사방에서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지면에 덮이는데, 하룻길 되는 지면에 두 규빗 쯤 쌓여서, 백성들이 잡아다 영양 많은 메추라기 고기를 실컷 먹었습니다.
여기 보면 모세도 죽고 싶은 위기를 만났을 때, "내가 이 백성을 잉태했습니까, 내가 낳기를 했습니까, 차라리 죽여주시옵소서"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위기를 능히 극복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죽고 싶은 위기의 순간에 쓰러지지 않고 능히 일어나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창조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위기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론 모세까지도 창조주가 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 백성들을 잉태했습니까? 차라리 죽여주시옵소서" 그 뿐 아니라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데도 "소 떼와 양 떼를 잡은들 되겠습니까? 바다의 고기를 다 몰아온들 되겠습니까?" 하고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까짓 보행자 60만 명쯤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홍해 바다를 가르신 하나님의 능력도 체험하고, 하늘에서 내린 만나도 먹고 있었으며, 반석에서 나온 물도 마시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진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믿음이 짧아진 것뿐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필요한 것을 무엇이나 만들어 낼 수가 있으며, 또 예비해 두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예비해 두시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책임한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 국가, 더 나아가 전 세계의 경제가 흔들리고, 정치가 혼선을 맞이하고, 사회 문화가 아무리 어지럽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들은 조금의 두려움도 걱정도 없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의 종말까지, 인류가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예비해 두셨고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전 세계의 에너지 파동을 염려하고 고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혹 석유가 다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무한한 태양열이나, 원자력을 이용해서라도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무가 열매 하나를 만들어 내려면 30내지 50개의 잎이 있어야 필요한 수분과 영양을 빨아 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과수에는 1,000개 열리는 나무가 평균 10만개의 잎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3만 내지 5만개의 잎이면 되지만 하나님께서 비바람에 떨어질 것 등 다 예상하시고 넉넉히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필요한 것을 넉넉히 예비해 두시지 않았겠습니까? 꿩이 새끼를 겨우 몇 마리씩 키우는데 알은 보통 10-30개의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른 짐승에게 알이나 새끼 떼를 잡혀 먹힐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넉넉히 낳도록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 동질의 영적 생명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결코 굶어 죽게 하거나 얼어 죽게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도 "너희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음식보다 중한 목숨을 주신 하나님이 음식을 안 주겠으며 의복보다 중한 몸을 주신 하나님이 몸에 필요한 의복을 주시지 않겠느냐" 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마태복음 6:33에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위기상황을 능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9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 “그는 여호와 창조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치료의 하나님, 길르앗의 향료요 반석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치료의 하나님, 찬양하세 할렐루야 찬양하세 오 할렐루야 그는 여호와 창조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치료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치료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심으로, 모든 위기상황들을 능히 극복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죽고 싶은 위기의 순간에 쓰러지지 않고 능히 일어나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 긍정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역경과 위기상황에 처할 때, 우리의 생각과 말이 부정적으로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긍정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울며 불며 원망과 불평 탄식 투성이의 말만 했습니다.
게다가 종살이하며 벽돌 굽던 애굽 땅이 그립다고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의 말을 들을 때 심히 진노하셨다고 했습니다. 불평, 원망, 탄식하면 점점 더 절망의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노아는 홍수심판 때에도 하나님만 믿고 의지했으며 방주에 타서도 무서운 홍수를 내다보지 않고 삼층 꼭대기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베드로는 바다의 거친 풍랑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능히 그 거친 풍랑 위를 능히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바라보고도,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1-33)고 악평하는 10명의 불신의 말만을 듣고 "이제는 다 죽게 됐다"고 울며 탄식하던 사람은 그들의 말대로 광야를 배회하면서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긍정적인 말을 하며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7-9)고 외쳤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 어떤 위기상황 속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말을 해야 됩니다. 이런 긍정적인 사람과 긍정적인 민족은 위기상황에서라도,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무슨 문제이건 문제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해결의 열쇠도 있는 법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으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긍정적인 믿음만 가지면 모든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1930년 경제공황이 세계적으로 휩쓸고 지나가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사실 미국은 그렇게까지 불황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사람들이 "불황이다. 불황이다" 하고 "큰 일 났다. 큰 일 났다"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찾아가게 되서 은행이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은행이 문을 닫으니, 기업체와 회사들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 대통령으로 당선된 루즈벨트 대통령이 매일 저녁 라디오 방송 "노변담화"라는 시간에 나와서 루즈벨트 정부는 이 불황을 능히 극복하고 이길 수 있다는 신뢰감을 국민들에게 넣어주자 국민들이 다시 정부를 신뢰하여 돈을 은행에 예금하게 되어 은행이 일어나고 공장이 다시 돌아가고 회사가 번창하게 되자 경제공황은 극복되었습니다. 더욱이 우리 성도들은 위기의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긍정적인 신앙을 더욱 굳게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3:5-6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떠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긍정적인 신앙, 믿음의 말을 선포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과 말대로 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어떤 위기상황이라도 능히 이겨 나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죽고 싶은 위기의 순간에 쓰러지지 않고 능히 일어나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3. 지난날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도 기적적으로 건너고, 기적 가운데 매일 만나를 받아먹으면서도 지난날의 은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위기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겠다고 탄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32:7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굉장히 어려웠던 나라였습니다.
얼마나 가난하고 어려웠으면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하다”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먹을 것이 다 떨어져 풀을 뜯어다 쌀 한 줌 넣어서 풀죽을 끓여 먹고, 겨죽을 끓여먹고, 밀 귀리를 익혀 먹다가 심지어 술찌꺼기 까지 물에 풀어먹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소화가 안되어 똥구멍을 찢고 나올 정도로 가난했던 민족이 우리 민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우리나라가 이처럼 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저는 믿습니다.
북한이 남한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한 조건을 다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못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남한이 잘 살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치를 잘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는 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어려운 위기를 만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했었던 지난날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6·25 사변 당시 우리 군이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가서 우리나라는 완전히 공산화되고 멸망될 위기를 맞이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었고, 성도들이 기도를 드리자 장마철인데도 비행기가 뜰 수 있게 되고 전황이 바뀌게 되어 다 회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뿐 아니라 6·25 동란 때 U.N.군이 한국에 참전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 U.N.군의 한국 참전 여부를 결정할 때,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U.N.군이 한국을 도울 수가 없는데, 그날 아침 소련 대표가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해서 거부권을 행사하려고 캐디락(Cadilac)을 타고 가는데 이상하게 엔진이 꺼져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만져도 안 되서 결국 고쳐가지고야 도착했을 땐 이미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한국 참전을 만장일치로 결정한 뒤였습니다. 그래서 기적 가운데, 16개국 유엔군이 들어와서 이 땅을 다시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여러분!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 온 것이 개인이나, 국가나 우리의 힘과 재주로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살아 온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을지라도, 지금까지 우리들을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바라보시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 위기의 순간에도 함께 하시사 더 큰 은혜와 기적들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죽고 싶은 위기의 순간에 쓰러지지 않고 능히 일어나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4. 하나님께 근거를 둔 경제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가장 큰 경제위기는 신당을 짓고 우상 숭배를 많이 했던 아합 왕 때,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아니한 때였습니다. 이 때 이 경제위기를 가장 잘 극복하고 안전하게 생활한 사람은 어느 부자나 권세가가 아니라, 가장 가난했던 사렙다 과부였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고 했던 것을 선지자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하여, 가져다 바치고 그 흉년의 기간이 끝날 때까지 밀가루통의 밀가루가 마르지 아니하고, 기름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여, 경제위기를 잘 견디고 평안한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경제위기를 만날수록 더욱 하나님의 말씀대로 축복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위기상황일 때 더욱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생각하십시오.
말라기 3:10에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펌푸에 물이 안 나오면 다른 데서 길어다가라도 부어야 물이 계속 나오지 빈 펌푸질을 암만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생활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십일조와 감사의 생활을 더 잘해야 하나님 이 하늘 문을 여시고 축복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 바쳐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릅니다. 하나님께는 많이 바칠수록 손해가 아니라 축복임을 믿고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헌금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억지로 하거나 인색함으로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심는 만큼 거두듯이 하나님께 물질을 바치는 만큼 또 남에게 도와준 만큼 많은 축복을 주십니다. 특별히 십일조는 축복의 씨앗입니다. 십일조를 안 드리고 진정한 축복을 받을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때 일수록 더욱 철저한 순종의 생활을 해야 축복과 기적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가뭄이 와도 시들지 않는 것과 같이 위기상황 중에도 기적과 축복을 더욱 체험할 수가 있게 됩니다. - 아멘 -
이병천 목사 /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민 11:10-23)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어려운 문제들과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럴 때, 신앙을 가진 우리 크리스챤들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어떻게 그런 문제들을 이겨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사태들에 직면했지마는, 그것을 믿음으로 극복한 사실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도 그러한 사건들 중에 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날 때 먹을 것이 없으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벽마다 만나를 내려서 배불리 먹게 해 주셨는데, 그 백성들은 그것으로 감사하며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고기가 먹고 싶다고 울고불고 원망, 불평했습니다.
이 만나는 진주 같이 생긴데다가 맛은 기름이 섞인 과자와 같이 고소하고 맛이 있었는데도, 그나마 배불리 먹게 된 것을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기를 민수기 11:4-6에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라고 하면서 울어댔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이 울며 불며 탄식하는 모습을 보고 큰 근심이 되었습니다. 이러다간 큰 반란이 일어나서 자기를 반역하고 돌질까지 하게 될 판이었습니다.
모세가 엎드려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 11:11-15).라는 기도를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 혼자 질 수 없다고 하니까 70인 장로들과 유사들을 다 데리고 회막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면서 그 백성들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되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일만 먹을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1 개윌 간을 먹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모세가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60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까?"하고 반문했습니다.
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Is the Lord's arm too short? / Is there any limit to my power?)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You will now see whether or not what I say will come true for you.)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람이 불더니, 사방에서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지면에 덮이는데, 하룻길 되는 지면에 두 규빗 쯤 쌓여서, 백성들이 잡아다 영양 많은 메추라기 고기를 실컷 먹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 위대한 하나님의 종 모세도 사람의 힘과 계산으로 도저히 될 수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상황을 믿음으로 이기지 못해서 "내가 이 백성을 잉태했습니까, 내가 낳기를 했습니까, 차라리 죽여주시옵소서."라고 하는 불신앙의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만 하면 이 세상에 안되는 일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이 암담한 상황도 여호와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거뜬히 해결됨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일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일,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개입하여 주심으로 그러한 모든 일들이 거뜬히 해결되는 복된 자리에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을 해결 받으려면
첫째, 창조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 아멘. 우리들은 어떤 문제를 만나더라도 그 문제보다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더 크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살펴보시면 광야에서 고기를 먹고 싶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론 그들의 문제를 직면한 모세까지도 그들의 문제를 능히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12-15절, "내가 이 백성들을 잉태했습니까? 차라리 죽여주시옵소서."라는 부정적인 기도를 드렸고,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22절, "소 떼와 양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하고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까짓 상황 쯤 해결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홍해 바다를 가르신 하나님의 능력도 체험하고, 하늘에서 내린 만나도 먹고 있었으며 반석에서 나온 물도 마시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생애 가운데 큰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비결도 하나님의 손을 힘입는 것이었습니다. 눅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12:28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손과 같이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에스라8:22절에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전도서2:24절에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필요한 것을 무엇이나 만들어 낼 수가 있으며, 또 예비해 두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 우리 인류가 필요한 모든 에너지는 다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순간순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기에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문제들이 찾아오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죽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어떤 상황 가운데 처하고 그 어떤 문제를 만나게 되더라도 전능하신 여호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류파동이 일어날 때마다 미국이 큰일이나 일어난 것처럼 난리법석이지만 사실은 지하에 아직 100년 이상 쓸 석유가 있는데, 장래를 위해서 일부러 아껴두고 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책임한 분이 아니십니다. 세상의 종말까지, 인류가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해 두신 것입니다. 설혹 석유가 다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무한한 태양열이나, 원자력을 이용해서라도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무가 열매 하나를 만들어 내려면 30내지 50개의 잎이 있어야 필요한 수분과 영양분을 빨아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과수에는 1,000개 열리는 나무가 평균 10만개의 잎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3만 내지 5만개의 잎이면 되지만 하나님께서 비바람에 떨어질 것 등 다 예상하시고 넉넉히 예비하신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필요한 것을 넉넉히 예비해 두시지 않았겠습니까? 꿩이 새끼를 겨우 몇 마리씩 키우는데 알은 보통 10-30개의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른 짐승에게 알이나 새끼 떼를 잡혀 먹히는 암당한 상황이 벌어질지라도 여전히 꿩이 번성할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 동질의 영적 생명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결코 굶어 죽게 하거나 얼어 죽게 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씀합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찌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34:7) 아멘.
예수께서도 "너희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음식보다 중한 목숨을 주신 하나님이 음식을 안 주겠으며 의복보다 중한 몸을 주신 하나님이 몸에 필요한 의복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마태복음 6:33에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그 불가능한 상황을 능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9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2. 긍정적인 신앙과 믿음의 말을 가져야 합니다.
역경과 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때, 우리의 생각과 말이 부정적으로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긍정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울며불며 원망과 불평 탄식 투성이의 말만 했습니다. 게다가 종살이하며 벽돌 굽던 애굽 땅이 그립다고까지 했습니다. 10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들의 말을 들을 때 심히 진노하셨다고 했습니다. 불평, 원망, 탄식하면 점점 더 절망의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노아는 홍수심판 때에도 하나님만 믿고 의지했으며 방주에 타서도 무서운 홍수를 내다보지 않고 삼층 꼭대기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는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는 10명 가나안 땅 정탐꾼들의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말을 듣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불신앙의 말을 하고 울며 탄식하던 사람은 그들의 말대로 광야를 배회하면서 다 죽어버렸고, 끝까지 긍정적인 말을 하며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문제없다. 괜찮다"고 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어떠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말을 해야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0-21)고 했습니다.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잠21:23)고 했습니다. 입술과 혀를 지켜 긍정적인 믿음의 말고 복된 말을 선포하며 행동하는 민족은 어떤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라도,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무슨 문제이건 문제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해결의 열쇠도 있는 법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으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소망을 둔 긍정적인 믿음만 가지면 모든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1930년 불황이 세계적으로 휩쓸 때 미국에도 극심한 불황을 겪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미국이 그렇게까지 불황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사람들이 "불황이다. 불황이다"하고 "큰 일 났다. 큰 일 났다"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찾아가게 되서 은행이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은행이 문을 닫으니, 기업체와 회사들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 대통령으로 당선된 루즈벨트 대통령이 매일 저녁 라디오 방송 "노변담화"라는 시간에 나와서 루즈벨트 정부는 이 불황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다는 신뢰감을 국민들에게 넣어주자 국민들이 다시 정부를 신뢰하여 돈을 은행에 예금하게 되어 은행이 일어나고 공장이 다시 돌아가고 회사가 번창하게 되자 불황은 극복되었습니다.
더욱이 우리 성도들은 긍정적인 신앙을 불가능한 상황일수록 더욱 굳게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3:5-6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3. 지난날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도 기적적으로 건너고, 기적 가운데 매일 만나를 받아먹으면서도 지난날의 은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겠다는 탄식과 저주의 말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32:7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가 1950년대 6·25를 겪을 때만해도 먹을 것이 다 떨어져 풀을 뜯어다 쌀 한 줌 넣어서 풀죽을 끓여 먹고, 겨울에 땔감이 없어 마지막에는 나무뿌리, 풀 뿌리까리 뽑아다 때니, 산이 다 벌거벗은 민둥산이 되었고 어디를 가나 도적질이 횡횡하던 시기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먹을 것이 없으니 겨죽을 끓여먹고, 밀귀리를 익혀 먹고 심지어 술찌꺼기 까지 물에 풀어 먹던 시절이 있었음을 잊지 맙시다. 오죽 못먹고 못살았으면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못산다.”는 말이 나왔고 -이 말은 먹을 것이 없어서 나무껍질이나 풀뿌리 등을 캐먹었을 때 그런 것들이 소화가 안되고 나오기에 항문이 찢어졌던 사태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런 극심한 기근과 불황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왔고, 이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우리나라가 이 만큼 잘 살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앞으로 우리를 버리시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1950년 6·25 사변 당시 우리 남한 군인이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가서 우리나라는 완전히 공산화되고 멸망하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셔서 장마철인데도 비행기가 뜰 수 있게 되고 전황이 바뀌게 되어 다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6·25 동란 때 U.N.군이 한국에 참전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 U.N.군의 한국 참전 여부를 결정할 때,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U.N.군이 한국을 도울 수가 없는데, 그날 아침 소련 대표가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해서 거부권을 행사하려고 캐디락(Cadilac)을 타고 가는데 이상하게 엔진이 꺼져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만져도 안 되서 결국 고쳐가지고야 도착했을 땐 이미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한국 참전을 만장일치로 결정한 뒤였습니다. 그래서 기적 가운데, 16개국 유엔군이 들어와서 이 땅을 다시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이 개인이나, 국가나 우리의 힘과 재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살아 온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는 한 우리는 어떤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능히 이겨나가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께 근거를 둔 경제생활
이스라엘 나라에 가장 큰 경제불황은 그들이 우상의 신당을 짓고 우상 숭배를 많이 했던 아합 왕 때,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아니한 때였습니다. 이 때 그 국가적인 불황을 가장 잘 극복하고 안전하게 생활한 사람은 어느 부자나 권세가가 아니라, 그 당시에 가장 가난했었던 사렙다의 과부였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고 했던 것을 하나님의 종, 선지자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하여, 엘리야에게 가져다 바치고 그 흉년의 기간이 끝날 때까지 밀가루통의 밀가루가 마르지 아니하고, 기름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여, 전 국가적인 경제불황을 잘 견디고 평안하며 풍족한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경제불황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믿음의 씨앗을 심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열매들을 거두고 그 결과 평탄하고 형통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불황일 때 더욱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생각하십시오.
말라기 3:10절에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어려운 때 일수록 더욱 철저한 순종의 생활을 해야 축복과 기적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가뭄이 와도 시들지 않는 것과 같이 불황 중에도 기적과 축복을 더욱 체험할 수가 있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6: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린도후서 9:6-11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예레미야 17:5-8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1:1-3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했습니다.
<결론>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나더라도
창조의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손이 짧아지지 아니하였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며 힘입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긍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믿음의 말을 선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며, 지금까지도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근거를 둔 경제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강변에 그 뿌리를 뻗친 나무처럼, 환경을 초월하여 부흥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