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엔 아버님께서 주님의 품에 선종하셨습니다.
경황도 없었지만 제겐 또다른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십여일 전에 서울 큰 댁에 계시던 아버님이 편찮으시다고
남편은 퇴근길에 다녀와야겠다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서울에 갔습니다.
종일 꽃꽂이 강의를 한 저를 배려하느라 혼자 갔는데
며칠 전까지도 괜찮던 아버님께서 혈변을 보시더니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셨다는 겁니다.
다음날 남편과 서둘러 올라가며
"여보! 큰댁에서 아버님 그렇게 돌보기 힘드실테니 모셔와야겠어요. "
하고 병원에 갔더니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로
열이 올라 말도 못하셨지만 아버님은 의식은 명료하셨습니다.
병원에 옮겨 검사를 했더니 패혈증이셨고
온몸에 이미 세균이 다 퍼져
장기들이 제 기능을 잃어 손 쓸 길 없다고 했습니다.
여태껏 바쁘다는 핑게로 다 못해드린 일들이 마음에 걸려 후회가 막급이었습니다.
일단 사경을 헤매신다고 생각하니 경황이 없는 중에도
병자성사를 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낯선 병원 창구로 뛰어가 물어
인천시 구월1동 이라는 간호사의 안내로
우리 본당 수녀님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나서
인천 구월1동 본당 신부님께 전화를 걸어 막무가내로
"신부님!
저는 용인 본당 박젬마라고 합니다.
저희 아버님 병자성사를 청하고 싶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결례인줄은 알지만
저희 아버님. 너그러운 신부님 덕택에
교리 한번 안받고 엉터리 신자가 되었고
성당 문턱에 가 보지도 못했으며
당신 본명에 대한 개념도 안 생기셨는데요,
언제나 다음에 성당 가겠다고 미뤄둔 분이셨습니다.
신부님! 어차피 신자가 되었고
주일 한번 지키지 못한 저희 아버님을 그대로 선종하게 할 수는 없어
이렇게 무례하게 억지를 씁니다.
제발 도와 주세요.
신자도 저 때문에 되었고
제 게으름으로 성당에 관심을 두지 못했답니다. "
신부님께서는 흔쾌히 오시겠다고 말씀 하셨고
전 병실에 뛰어 들어가 아버님께
"아버님! 많이 편찮으셔서 신부님께 아버님 병 나으시라고 기도를 청했습니다.
기도 받으시겠어요?"
아버님은 의식은 또렷했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님을 초대했습니다.
수녀님 두분을 앞세우시고 그 늦은 시간에 병자 성사를 인자하고 자상하게
베푸신 신부님은 아버님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하시고
"할아버지 이제 아무 죄도 없습니다.
마음 편히 하느님 만나셔도 됩니다. "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입니다.
이미 말씀을 하실 능력을 상실하신 아버님께서 오른손을 서서히 드셨습니다.
모두 어리둥절하는 사이 눈가에 손을 반듯하게 대고
아버님께서 신부님께 거수경례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만 그 자리가 은총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눈물을 훔치던 시누이들조차 모두 함박 웃음을 터뜨리셨습니다.
신자가 아닌 아주버님조차 모두 경외심을 가졌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리고는 두손을 내어 밀었습니다.
성서에서 하혈을 하던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부여잡듯 바로 그 자세입니다.
신부님도 수녀님도 늦은 시간 귀찮다 여기지 않으시고
뛰어오신 보람을 느끼셨을 겁니다.
모두의 가슴에 주님의 사랑이 전해지고 있을 때 제가 남편에게 가서
"여보, 신부님 예물을 좀 봉헌 하세요."
했더니 그제서야 정신이 든 남편이 봉투를 조심스레 내어 놓자
"이러지 마세요. 제가 할 일이었는걸요. "
기어이 사양을 하신 신부님과 수녀님을 배웅하고 돌아오니
잠시후 아버님은 상태가 안정되어 갔습니다.
전 그간의 불효가 마음에 걸려서 아버님께 다가가
"아버님 제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하세요.
말씀이 어려우면 글씨로 쓰세요."
제 손에 아버님 손을 갖다대자 아버님은 안간힘을 다해
ㄴ자와 ㅇ자를 쓰셨습니다.
전 수수께끼를 풀기 시작 했고
"나, 오줌 마려워요?
나 뭐라구?......
나, 용인 가고 싶다고?"
아버님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밤 우리는 산소 호흡기를 달고 계신 아버님을
용인의 아는 병원으로 서둘러 모셨습니다.
그렇게 일 주일을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몇 해전 어머님 살아 계실 때 내려와 사시던 용인을 늘 그리워 하셨는데
늘 밖으로 돌아 치느라 흔쾌히 "예"하지 못했었거든요.
마지막 봉양을 할 기회를 주님께서 배려 하셨습니다.
돌아 가시기 이틀 전 저는 아버님과 둘이서 이별식을 했습니다.
수건을 빨아다가 얼굴을 닦고 말라붙은 입안을 물로 적셔 드리며
"아버님 죄송해요, 제가 마음이 좁아 아버님께 효도 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이제 마음 편히 그냥 여기 계셔요, "
아버님은 소리 없는 입으로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를 하셨고
"아버님! 미안해 하시지 마세요 자식을 잘 두셨으니
이 정도 대우는 당당히 받으셔도 돼요.
많이 아프시면 '아이구 아퍼'말 하세요
저도 애기 낳을 때 너무 아프면 소리내서 아프다 하면 좀 낫더라구요. "
하자 아버님은 옹알옹알 아파를 말했습니다.
남편이 귀가하다 병원에 들러 울고 있는 저를 보더니
깜짝놀라서
"왜?"
했는데 전 아버님과 마음에 걸렸던 말들을 했노라고 부끄러워 말 못했습니다.
아버님은 병자성사를 보신 후 마음에 안정을 찾고 고통을 견뎌내셨지만
끝내 돌아 가셨습니다.
제 곁에 오신지 딱 일주일, 추석아침이었습니다.
새벽 네시 십 칠 분!
호흡이 먼저 멈췄고, 심장박동이 그쳤습니다.
남편이
"돌아 가셨다. "
하며 눈을 감겨 드리고 우리 둘은 아버님 손을 잡고 있다가 제가
"아버님! 편안히 가세요."
하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버님이 입을 찡그리며 우시는 겁니다.
귀가 돌아가시고도 열려 있다더니 들으신 겁니다.
한 동안 그곳에 아버님의 영이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말을 더 이상 나누지 못하겠더군요.
아버님은 어머님 삼우제날 세례에 대한 인심이 좋은 신부님께
오직 주님의 은혜로 교리도 안받고 세례를 엉겁결에 공짜로 받으셨고
제가 대신 죄를 고백하고 받은, 위급한 상황에서 대신 청한 병자성사의 은총도
온전히 받으셨으니 비록 살아 생전 열심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법 없이도 살 만한 어르신이었던 우리 아버님이 주님을 마주설 때는
열심히 신자 생활한 분들과 동일한 가치로 놓여 있기를 빕니다.
한편 어쩌면 주님의 온전한 거저 사랑을 몸소 체험하신 우리 아버님이야말로
교회에서 가르치는 '주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의 표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가 어제 남편은 당신 발로 교회에 가서 주일 미사를 봉헌 했습니다.
나란히 온 가족이 앉아 미사를 봉헌하며
남편에게
"나 이제 아무도 안 부럽다. "
했습니다.
어제 미사의 강론은 혼인의 의미와 특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들 둘을 데리고 미사를 봉헌하니
자식을 낳아 주님의 창조 사업에 협조하였고
둘이 한 몸을 이루어 나란히 앉아서 주님께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우리는 부부이니 단일성이요, 갈라서지 않을테니 불가해소성입니다.
"주님! 그를 남편으로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버님의 영혼이 하느님의 은총아래 평화의 안식을 누리기를 빕니다. 아멘"
첫댓글 저도 지금 나의 짝꿍을 나의 남편으로 허락하신 주님께 늘 감사 드린답니다. 하느님 사랑안에 성가정 이루소서.
가장 큰 효도를 하셨네요.... 저에게도 천주교세례를 받지 못한 친정 식구들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안배하심에 의탁할수 밖에 없는 처지랍니다. 저를 겸손하게 하는 식구들이지요.... 주님께서 때를 주시리라는 믿음하나로 마냥 사랑만 하고 있어요..
너무나 은혜로운 은총의 시간이셨겠어요...올 추석은 그렇게 보내셨네요.형님...
추석을 그렇게 보내셨군요,,,,고생 하셨습니다 ,,,아버님에 영원한 안식을 빌면서,,,
주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큰일 치루시느라 힘드셨을텐데 젬마님의 건강도 기원합니다.
지혜로운 며느리 덕분에 어르신께서 편히가셨네요..좋으신 주님..언제나 우리를 사랑케 하시는 놀라운 힘을 주십니다..아멘..
묵은 가지보다 새가지가 더벋어 나감을 봅니다. 세월에 끌려 구교인이 되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순간도 지나침없이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 젬마!! 나도 사랑해요!!.......
젬마님의 글로 예비신자에게 교리를 하였습니다. 많은 예비신자들이 숙연하게 들으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느꼈습니다. 같이 공부하면서 아버님의 연원한 안식을 빌었습니다. (허락도 없이 예화를 쓰게되어 죄송합니다.) 젬마님 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