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반지하 집에 사는 두 사람에 대한 기도문이 있다.
생활고를 겪으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사는 모자의 이야기다.
어머니는 암에 걸려 삶과 죽음에 기로에 있고 아들마저 파키슨병에 걸려
사는 모양이 처량하다. 남편마저 교통사고로 먼저 돌아갔다.
이 비참한 상황에서 그 이가 남편이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묻자
모친의 말이 남편이 그립다고 전한다.
죽음이 두려움이 아니라 그리움일 수 있는 것이 예수님의 은혜 때문이라면
이 작은 반지하 가냘픈 두 모자에게 그 은혜 가득하기를 바란다는
슬프고도 아픈 어느 작가의 기도문을 통해서
사람은 그 분의 은혜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삶을 향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서는 교대 되고 생사는 교체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생사에 연연하여 삶을 놓치고 죽음 앞에 서서 마음 조아리는 생이 아니라
가는 길 가게하고 오는 길 오게하는 담대한 길을 그리워 한다.
나는 이 이사야 25장을 통해서 니코스 카쟌챠키스를 생각해 본다.
그리스의 문화부장관으로 문호로 널리 알려진 이 사람은 자신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뜨겁고 애틋한 묘비명의 주인공이 된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죽음이 저주이고 고통이며 인간의 가장 큰 슬픔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야
이세상을
벗어 우주를 소요유할 수 있고
하나님께 자장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길이 삶과 또 죽음과 함께 있음을
민족의 생멸과 수많은 죽음을 바라보면서 은혜를 경험한 대예언자의
말씀을 통해서 생에 있어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보고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