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의종시대 1170년 8월 마지막 날 보현원에서 갑작스러운 쿠데타 즉 무신정변이 발생했습니다. 무신인 이의방과 정중부는 보현원에서 의종의 측근을 살해하고 의종의 신병을 확보했습니다. 급작스러운 무신정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고려 광종이 과거제도를 들여올 때 문과만 실시해서 문신이 고려 통치 질서를 틀어쥐었습니다. 하지만 개혁적인 정치를 하던 예종(의종의 할아버지) 들어서 문무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무과시를 실시했지만, 기득권이었던 문벌귀족의 반발로 인종(의종의 아버지) 때 폐지됩니다. 이후 정상적인 관직 진출의 통로를 잃은 무신은 관직을 받는데 차별을 받게 됩니다.
둘째로 차별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고려 무신과 그 휘하 병사들은 특별한 신분층입니다. 그들의 생계는 국가가 군인전 지급으로 보장되었습니다. 문제는 고려 중기가 넘어가면서 군인전은 권력층(아마도 문벌귀족)이 빼앗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문벌귀족은 월급(군인전)은 주지 않고 전쟁터에서 앞장서라고 하고 전쟁이 없으면 사역하라고 합니다.
무신들이 칼을 외적들에게 뽑겠습니까? 아니면 문벌귀족에게 뽑겠습니까?
(고려가 군반씨족을 군역제도의 근간으로 전제한 내용입니다)
셋째로 기득권의 분열과 나태가 결정타였습니다. 당시 고려는 100년 이상 지배했던 고려문벌귀족에 대한 개혁이 요구되던 상황이었습니다. 사회가 안정되자 문벌귀족의 숫자는 늘어나는데 관직의 숫자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관 과거 합격자까지 지배층에 들어오면서 치열한 관직 쟁탈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관직이 모자르자 무신의 관직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무과시 폐지와 군인전 탈취가 그래서 시작된 것입니다. 군인전을 받지 못한 병사들이나 문벌귀족 팽창으로 부역에 더욱 시달린 농민들이 유망인으로 고려 내부를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예종 때 감무관을 파견해서 유망인들은 어떻게든 정착시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문벌귀족의 탐욕과 유망인을 정착을 위해서는 어찌 되었든 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영토를 확장하고자 여진 정벌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진 정벌은 실패했습니다.
이제 내부 개혁으로 고려는 토지를 분배 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기득권이 침탈한 토지를 빼앗아서 유망인들에게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종 다음 왕인 인종 시대에는 개혁은커녕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이 연달아 터지면서 자중지란에 빠졌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더욱 쌓여가던 모순은 의종 때 대폭발하게 됩니다.
넷째로 최고 통치자인 의종의 책임도 있었습니다. 개혁을 위한 건지 기득권인 문벌귀족이 더 강해지면 감당이 안 된다고 판단한 건지 의종은 세력 교체를 시도했습니다. 내시를 중용한 것이죠. 하지만 문벌귀족들은 기존 나라의 시스템을 활용하여 세력 교체를 막았습니다. 그러자 의종은 자포자기했습니다. 약간 대립했던 문벌귀족과 화해하고자 잦은 외유를 떠나면서 향락에 빠졌습니다. 그 뒤치다꺼리는 당연히 그들의 경호를 책임진 무신이죠.
안에서는 신나게 술판 벌이고 있는데 밖에서 경비하는 무신들 마음은 어떨까요?
쿠데타 당일 의종은 무신들의 불만이 느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이의방과 정중부는 쿠데타 계획을 논한 뒤였습니다. 의종은 다음 목적인 보현원에 당도하기 전에 무예 대회인 오병수박희를 열어서 무신들을 위로하려고 했습니다. 무신들에게 적절한 포상을 하겠다는 거죠. 하지만 격투장에서 장군인 이소응이 상대를 이기지 못하고 물러섰습니다. 그때 중급 문신 한뢰(종5품)가 고위 무신 이소응(종3품)의 뺨을 때린 것입니다.
뭐 스포츠 경기에서 흥분한 관중의 돌출 행동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신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는 쿠데타의 뇌관을 건드린 셈이죠.
쿠데타 당일 보현원에서 살육을 저지른 이의방은 개경으로 달려가서 당직을 서던 문신을 죽이고 궁궐을 장악했습니다.
이때 무신과 휘하 병사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문신의 관을 쓴 자는 비록 서리(胥吏)라고 할지라도 모조리 죽여서 씨를 말려라]
다음날인 9월 1일 쿠데타군은 반 쿠데타 세력을 제거했습니다.
셋째 날 의종을 폐위하고 의종의 둘째 동생 허수아비 역활을 할 명종을 즉위시킵니다.
그리고 무신들은 요직을 차지고 권력을 틀어쥐기 시작합니다.
이후 100여 년간 한국사 역사 유례가 없는 무신 집권 시대가 이렇게 열린 것입니다.
출처
고려 무인이야기 – 이승한님지음
무과를 왜 만들었을까? - 유튜브 임용한의 인문채널휴
네이버 부흥카페 돌아버리는 고려사 시리즈 –려운님 지음
첫댓글 무신 정변이 문벌귀족의 착취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건 부분적인 요인에 불과하고 인종대에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으로 무신세력들이 국왕과 문벌귀족간의 권력투쟁에 개입 동원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무신세력들의 정치적 욕구를 커진 구조가 근본적으로 초래한 면도 많습니다 이자겸 집권때 최홍재와 척준경 같은 정치군인들이 정권의 2인자들로 군림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이자겸 실각후 척준경이 정권을 잡아 정지상 등 서경파들에게 실각할때까지 일시적인 무신 정권을 수립시키기도 했지요 무신정변의 주동자 정중부는 원래 인종의 측근으로 성장한 인물로 김부식 등 문벌귀족들에게 눌려 지내던 인종은 정중부 같은 무신을 자신의 측근으로 기용하는등 무신들의 정치세력화를 열어주었고 그 뒤를 이은 의종은 부왕의 무신세력 중용을 계승하여 정중부 이의민 이의방 무신들을 크게 중용하였지요 그러나 또다른 측근 세력인 내시 관료들의 무신들 핍박에 의종은 계속 방치하기만 하여 무신들의 불만을 초래하고
특히 유시의 변때 원인 제공한 김돈중을 처벌하지 않고 무신들만 처벌하는 퇴행적인 편향적 조치로 무신들의 이반을
초래하였지요
정중부는 촛불 방화로 정적관계가 된 김돈중을 의종이 내치지 않고 타협하여 정치를 이끌어 갈려고 하자 그에 대한 실망감으로
무신정변에 가담했던 것이지요 무신 정변은 알고보면 인종 의종부자가 무신들을 정치에 끌어들인것이 근본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민하다가 쓰지는 않았는데 고려무인이야기 1편을 보면 의종은 측근 세력으로 무신들을 키운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글이 한 페이지 넘어가서 그냥 뺐습니다. 글을 짧고 쉽게 쓰자는 것은 제 목표거든요. 이 포인트가 좀 약한데 느끼고 있었는데 인종 시대까지 포함해서 설명해셨군요. 좋은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