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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콩깍지] 16 - 내 인생의 콩깍지
S1 춘천집 인써트(밤)
S2 은영 춘천집 거실 (밤)
TV 뉴스화면. 검찰청사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는 장상두. 포승줄
에 묶여 구치소로 향하는 차에 수감되는 장면이다. 많은 기자들의
질문에, ‘전 결백합니다. 믿어주세요. 은영씨 사랑해요.’라고 급히
말하며 차에 끌려 들어가는 장상두.
뉴스를 보고있는 은영과 가족들. 결혼식장에서 돌아온 차림들로,
충격에 휩싸여 아무 말도 안나온다. 상두의 사랑해요 대목에서 괴
로운 듯 얼굴을 가리는 은영.
기 자 결혼식장에서 긴급 체포된 장상두회장은 주가조작과
공금횡령,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편 장회장으로부터 정관계 로비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받은 것으
로 알려진 김모의원 등 관련 국회의원들은 돈을 받은 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전격 구속 수감된
장씨는 결혼예복을 입은 채 체포 돼, 더욱 눈길을 끌었습니다. 검
찰청에서 엠비에스 뉴~스 남달굽니다.
은 영 (괴로운 듯) 티비 좀 꺼줘.
얼른 리모컨 들어 끄는 은호.
은영모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은영부 (자신도 몰래) 허! 저런 놈이었다니...
은영모 아직 모르는 거 아니에요. 본인은 죄가 없다는데?
은영부 저런 데 나온 것만도 문제야. 저러고 무죄로 밝혀지는
거 봤어? 긴급체포라잖아, 긴급체포! 그냥 체포도 아니구...
은영모 어떡하죠...? 그래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당신이라
두 가서 좀 알아보고 손을 써야지?
은영부 내가 무슨 힘이 있나? 죄가 한두 가지가 아니던데?
은영모 무슨 무슨 죄라 그랬죠...?
은 호 (끼여들며, 손가락 꼽아가며) 주가조작, 사기 및 공금
횡령, 뇌물공여, 알선 수재요.
소 라 그게 다 뭐예요?
가족들 뜨악하게 은호를 본다.
은영모 지금 내가 몰라서 묻니? (은영에게) 아니 넌 도대체
뭘 알고 만난 거야? 이제 이거 어떡하나? 이 결혼, 이거...?
은영부 어떻게 하긴 어떡해? 그냥... 없었던 일로 해야지.
은영모 (조심스레) 은영아, 너 혹시... 장서방, 아니 그놈하고
무슨 일은 없었지...?
은영부 그래, 은영아, 말해봐라. 우린 괜찮으니까, 숨기지 말
고 얘기해봐.
은 영 일은 무슨 일... (참담한데)
은영모 그래?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아휴, 그럼 됐다...
은영부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냐. 결혼식 직전에 잡혀갔으니.
은영모 (은영에게) 그래, 혼인신고도 안 했겠다, 너는 서류상
으로 아주 깨끗한 거다? 아휴, 나는 은영이 너만 보면 어떻게 물가
에 내논 애 같이 아슬아슬해서 못 보겠다.
은 영 내가 뭐...
소 라 어모니~ 지금 언니한텐 자꾸 그렇게 스트레스를 줘선
안되요. 언니는 지금 휴식이 필요해요.
은영부 그래, 은영아 너 좀 올라가서 쉬려무나.
힘들게 일어나 이층으로 올라가는 은영. 소라가 얼른 부축을 하며
따라간다.
위층을 향하는 은영 뒤로 들려오는 소리.
은영부 그 자식 그거 어쩐지 눈빛이 안 좋다 했어.
은영모 맞아요. 젊은 나이에 그렇게 성공한다는 게 그게 정상
이에요? 그 좋은 머리를 왜 그런데다 썼을까?
은 호 그러게 말이에요.
정신이 아득하고 괴로운 은영의 표정.
S3 은영의 방 (밤)
어둠 속. 침대에 모로 누워있는 은영.
(상두를 사랑한 것은 아니므로 그날 밤은 울지는 말고)
자신이 한스럽고 원망스럽다. 멍한 공황상태.
S4 소제목
16. 내 인생의 콩깍지
S5 정미집 거실 (아침)
욕실에서 나오는 경수. 세수를 했는지, 머리끝이 젖어있다.
정미가 소파에서 뉴스를 보고 있다.
앵 커 (장상두의 사진이 화면 위로 보이고) 결국 벤처에 대
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비춰졌던 장상두
회장은 사이비 비리 벤처인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경수, 장상두라는 말에 뭐지? 하며 TV 앞으로 오는데,
이때 정미가 리모컨으로 TV를 꺼버리며 일어난다.
정 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씻었어? 배고프다, 밥 먹자.
경 수 뭐야...? 왜 꺼? 켜봐.
경수 정미의 손에 들린 리모컨을 뺏어 TV를 켠다.
정미 섭섭하다는 듯 경수를 보는데,
계속 이어서 나오는 장상두 관련 뉴스. ‘장상두 게이트’ 라는 자막
까지 보인다.
앵 커 한편, 장씨는 그 동안 동업자들 몰래 회사 돈을 횡령했
을 뿐 아니라, 회사담보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까지 밝혀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놀라서 멍하니 서서 보고 있는 경수.
정 미 (경수의 기색 살피며) 은영이 걔는 이제 어떡하나...?
결혼은 그럼 어떻게 된 거지? 결혼을 한 건가? 무횬가...?
TV는 다음 뉴스로 바뀌고,
여전히 선 채로 멍하니 생각이 복잡해지는 경수.
정 미 (TV 끄고 돌아서며) 뭐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고산다
니까, 금방 나오겠지. 저런 사람들은 또 금방 나오잖아. 밥 먹자.
(하면서 경수를 보면)
경수 혼란스러운 듯 생각에 빠져있다.
정 미 왜 그래...? 은영이 땜에 그래?
경 수 저기 정미야... 나 좀 가봐야겠다.
정 미 (순간 자존심이 상하며) 안돼, 못 가. 우리 집이 오빠
필요하면 들르고, 아니면 그냥 가버리는 데야?
경 수 (난감한) 정미야... 미안한데...
정 미 미안한 짓을 왜 해? 내가 그렇게 만만해? 이리 와. 와
서 같이 밥 먹어.
정미 화가 나서 먼저 부엌으로 향하는데,
아랑곳없이 웃옷 걸쳐 입으며 현관으로 나가는 경수.
정 미 (다시 따라나가며) 오빠, 오빠!
경수가 나가버린 현관에 속상한 듯 서있는 정미.
S6 거리 (아침)
생각이 복잡한 경수.
핸드폰을 꺼내 몇 번인가 망설이다 전화를 건다.
이 전화는 사용자의 요청에 의해 사용이 중지된 전화라는 안내음
이 흘러나온다.
그대로 핸드폰을 끊고는 멍하니 있는 경수.
S7 경수 사무실 (낮)
보고서를 작성하던 경수, 물끄러미 손을 놓고 앉아있는데,
선 배 (경제신문 보며) 장상두 게이트 이거 사건이 커질 모양
이던데?
직 원1 그래요?
선 배 우리 회사하곤 관련이 없어서 다행인데, 검찰내사가
확대 될 모양이야.
직 원1 어쩐지 사업이 너무 잘 나가더라구요. 누가 뒤를 봐주
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있었겠어요? 겨우 이제 서른 셋이라는데?
선 배 그럼 그 여자는 어떻게 되는 거야? 결혼식도 못하고?
직 원2 언론엔 그렇게 나왔는데, 실은 신혼여행 갔다와서 잡
혀갔다는데요?
선 배 아냐, 결혼식장에서 체포됐대.
직 원1 어차피 결혼식장이나 신혼여행이나, 결혼까지 하기로
했던 사이면, 볼장 다 본 거지, 뭘 그래요...
대화소리에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경수, 사람들을 획 돌아보는
데,
선 배 (마침 경수에게 물어보려는) 참, 그 여자랑 좀 안다
며? 그 여잔 어떻게 지내?
경 수 (버럭 화를 내며) 그게 그렇게들 재밌어요? 할 일들이
그렇게 없어요?! 지금 그 여자 심정은 어떨지 생각이나 해봤어
요?!
선 배 아니, 왜 화는 내고 그래...? 우린 그냥...
거칠게 의자 박차고 나가버리는 경수.
S8 은영 춘천집 (낮)
거실 한쪽 바닥에 커다란 2만 피스 짜리 퍼즐이 놓여있고,
비슷한 색끼리 조각들을 분류해놓은 접시들이 보인다.
무표정하게 퍼즐조각을 맞추고 있는 은영.
퍼즐조각을 골라 대보고, 맞지 않자 차분하게 다른 조각을 찾는
다.
은영모 그만 좀 해라. 머리도 안 아프니?
소 라 (아기 기저귀 갈아주며) 그냥 두세요. 존 에프 케니디
도 머리가 복잡할 땐 화이트하우스 집무실에서 퍼즐을 했대요.
은영모 넌 참 아는 것도 많다... (한숨 쉬고는, 은영에게) 인경
이라도 오라고 할까?
은 영 아냐, 놔둬. 걔도 바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요...
은영 잠시 물끄러미 넋 놓고 앉아있더니,
다시 퍼뜩 생각에서 깨어나며 퍼즐조각을 대본다.
이때 초인종이 울린다.
은영모 (인터폰 받으며) 누구세요? 어머, 인경이 왔구나. 어
서 들어오너라. (자동문 열어준다.)
은영이 물끄러미 현관문을 돌아보면,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경.
인 경 ...안녕하셨어요?
은영모 그래, 잘왔다. 안 그래도 니 얘길 하고 있었다.
소 라 어서 오세요...
인경 소라와 고개인사하고는, 은영을 본다.
은영. 인경을 보는 순간 문득 눈물이 고이고 만다.
인 경 (와서 앉으며) 은영아...
은 영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인경아...!
인 경 (은영을 안아주며) 에이, 바보같이...
은 영 인경아...
인 경 괜찮아, 괜찮아...
은 영 (안겨서 울며)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사람
을 알아보지도 않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거에만 혹해 가지
고... 한 동안 뭐에 홀렸던 것도 같고... 너무 챙피해... 가슴이 아
픈 게 아니라 챙피하다는 게 더 챙피해...
인 경 괜찮아. 이제 아무 것도 생각하지마...
은 영 잘못은 내가 했는데... 사람들이 싫어...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다 싫어...
인 경 그러지 마... 장상두 그 사람이 나빴지, 니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은 영 아냐... 내 인생 최대의 실책이었어... 나 앞으로 어떻
게 살지...?
인 경 잊어버려, 빨리... 그만 울고... 응?
은영모와 소라도 안타깝게 보다가 시선을 돌리고,
눈물을 그치는 은영, 그대로 안겨 무표정하게 큰 숨을 들이쉰다.
S9 구치소 면회실 (다른 날. 낮)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상두. 수갑을 차고 있다.
서있는 은영을 발견하고 다가와 마주 서는 상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서로의 얼굴을 힐끔 볼 뿐, 말이 없는
두 사람.
상 두 여기까지 뭐 하러 왔어...?
은 영 괜찮아요?
상 두 괜찮아.
다시 말이 끊기는 두 사람. 은영은 교도관들 시선도 좀 의식이 되
고...
은 영 정말... 신문에 나온 것처럼 그 일들이 다 사실인가요?
상 두 아니야, 난 이용당했을 뿐이야. 다 밝혀지면 알겠지
만, 난 깨끗해.
은 영 (실망해서) 제발 나한테는 솔직하게 말해줘요. 그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상 두 여기서 금방 나갈 거니까... 은영씬 아무 걱정 말고 우
리 신혼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고개를 젓는 은영.
은 영 (잠시 후) 저기... 우리 결혼 말이에요. 없었던 걸로 하
는 게 좋겠어요.
상 두 뭐? 안돼! (사투리 억양 튀어나오며) 다 잘 될 거야.
날 왜 못 믿니? 조금만 기다려 주면...
은 영 (말 끊으며) 미안해요, 상두씨...! 그 말 하려고 왔어
요. 난 상두씨가 이런 사람인지 몰랐어요.
상 두 (다급하게) 은영아!
은 영 (얼른 덧붙이며) 미안해요.
그대로 나가는 은영.
상 두 은영아! 은영씨...!
절망적인 상두의 표정.
S10 구치소 앞 (낮)
구치소 문을 열고 나오는 은영.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은영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모여
든다.
재빨이 은영을 보호하며 데리고 가는 은영부와 은영모.
은영, 준비한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간다.
기 자1 결혼은 어떻게 된 겁니까?
기 자2 장회장의 혐의가 모두 사실로 드러났는데, 알고 계셨
습니까?
기 자1 형이 확정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은영부와 은영모 차에 얼른 은영을 태운다.
소 라 (차문 열고 기다리고 있다가, 재빨리 문 닫으며) 노 코
멘트에요~, 노 코멘트~!
모두 재빨리 차에 나눠 타고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승용차.
S11 동 청사 앞, 달리는 차 안 (낮)
뒷좌석에 은영부와 은영모 사이에 끼어 앉아있는 은영.
세 사람 모두 동시에 한숨을 내뱉는다.
모자를 벗는 은영. 선글라스 낀 무표정한 은영의 얼굴 너머로
자동차를 따라오며 사진을 찍어 대던 기자들 멀어지는데,
은 영 (N) 그해 여름 내가 썼던 선글라스가 전국적으로 유행
을 했다. 생각해보니 난 백마 타고 오는 왕자를 바랬던 거였다. 나
이만 서른을 넘겼지 생각은 스무살 그대로였다. 백마 탄 왕자는 세
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은 영 (선글라스도 벗으며) 엄마, 나 고기 먹고 싶어.
은영모 그래, 그 동안 너무 채식만 해서 기운이 없는 거다. 여
보 우리 어디 조용한 고깃집으로 갑시다.
은영부 그래, 그러지.
무표정하게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은영.
은 영 (N) 그날 난 3인분의 고기를 먹어치웠다. 다 잊고 기운
을 내고 싶었다.
S12 경수집 대문 앞 (밤)
두팔이 주변을 둘러보며 서있고, 경수가 집에서 나온다.
간간이 개짖는 소리 들린다.
경 수 (두 팔의 손을 잡으며) 아니, 자네가 어떻게 왔나? 들
어가지.
두 팔 아닙니다, 형님. 제가 장모님을 무슨 낯으로 뵙습니
까...
경 수 경선이는?
두 팔 다 잘 있습니다. 이번엔 저 혼자 나왔습니다. 금방 또
가봐야 돼서요. (주변을 계속 살피며) 집안에 별일 없으시죠?
경 수 별일은 없네.
두 팔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경수 손에 쥐어주며) 형
님, 이거... 우선 급한 대로 마련은 해 봤는데...
경 수 우린 괜찮으니 다른 빚부터 먼저 갚지 그러나...?
두 팔 아닙니다. 저 때문에 형님이 고생이 많으실 텐데... 일
단 받아두시구요... 저도 열심히 살아볼라구 그러는데 잘 안되네
요. 죄송합니다.
경 수 아닐세.
두 팔 (주변을 살펴보며, 갑자기 급해지며) 저기, 그만 가봐
야 될 것 같네요.
경 수 왜 벌써 가나? 들어가서 밥이라도 먹고 가야지.
두 팔 (말 빨라지며, 불안에 떠는) 아닙니다. 인천항에 제가
들어 왔다는 소문이 벌써 쫙 퍼진 모양입니다. 요즘은 후배들이
더 무서워요. 새로 진출한 놈들은 선배고 뭐고 봐주질 않네요. 그
래도 제가 옛날에 돈 받으러 다니던 노하우가 있어서, 어떻게 도망
은 잘 다니니까 걱정은 마세요.
이때 골목 저편에서 남자들 서넛이 나타난다.
남 자1 (두팔을 보고 소리치는) 어? 저기다. 박두팔!
남자들이 쫓아온다.
순간 두팔, 인사도 못하고 부리나케 골목 밖으로 도망친다.
남 자1 박두팔 너 거기 안 서!
남자들, 두팔을 쫓아 경수의 앞을 후다닥 스쳐지나간다.
경수, 얼른 돈봉투를 감추며 모르는 척 벽을 향해 소변 누는 양 돌
아섰다가,
멀리 필사적으로 도망하며 사라지는 두팔의 모습을 안쓰럽게 쳐다
본다.
S13 카페 (낮)
정미와 마주 앉아 있는 경수.
경수 봉투를 꺼내 정미의 앞으로 밀어준다.
정 미 뭐야, 이게...?
경 수 니가 받을 돈.
정 미 (순간 감 잡고, 차분해지며) 그럼... 이제 오빠 못 보겠
네? 이제 나 안 만날려고 이러는 거지?
경 수 정미야...!
정 미 (갑자기 정신이 아득한, 허둥대며 돈 밀어내며) 차라
리 나 이 돈 안 받을래. 내가 너무 비참해. 오빨 돈으로 붙잡고 있
었던 거 같잖아! 그건 더 참을 수가 없어...
경 수 정미야...! 너 왜 이렇게 사니...! 이혼한 것도 좋고 다
좋은데, 혼자 됐으면 당당하게 잘 살아야지! 너까지 왜 내 마음을
아프게 해?
정 미 오빠...! 이혼이야 어차피 한 거 나도 멋진 이혼녀가 되
고 싶어. 근데 왜 오빤 날... (눈물 고여 말 흐려진다.)
경 수 나도 널 어떻게 해줄 수는 없어. 그냥 나 좀 놔주라, 정
미야... 제발 부탁이야. 나도 힘들어...! 내가 너한테 잘해준 건 없
지만... 우리 각자 자기 길을 가야지. 서로 붙잡고 있어봐야, 더 추
해지기만 해!
정 미 (눈물 그렁한 눈으로, 충격) 추해진다구...?
경 수 (시선 거두며) 그래... 우리가 한때 가졌던 감정들 그
냥 소중하게 간직했으면 해... 그걸 왜 굳이 끄집어내서 추하게 만
드니...? 안 그래...?
정 미 (황망해서) 그래... 추하다니... 할 수 없지... 헤어져 줄
게... (울며) 하지만 정말 너무해... 은영인 왜 오빠한테 사랑 받고,
난 왜 못 받을까...? 내가 오빠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경 수 ....
정 미 신이 원망스러워... 사람한테 왜 마음을 줘서... 마음
을 줬으면, 사랑하는 사람도 같이 선물로 줘야지... 왜...? 사람한
테 마음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수 정미 옆으로 가 정미의 어깨를 안아준다.
정 미 (마지막 자존심, 경수를 뿌리치며) 가. 저리 가. 가버
려.
경 수 (물러나지만 냉정하게 가지는 못하고) 미안해. 정미
야...
정 미 가라면 좀 가란 말이야!
이내 일어나 가방과 돈도 챙겨들고 급하게 나가버리는 정미.
멍하니 남아 그런 정미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경수.
착잡하게 시선 거두며 고개를 숙인다.
S14 인경의 의상실 (낮)
경수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다른 직원과 함께 장부에 기록을 하며 재고 수량을 체크하던 인경
이 경수를 발견하고 다가온다.
인 경 어머, 경수씨...?
경 수 저... 뭐 좀 물어볼려구요...
인 경 저한테요...?
경 수 혹시 은영이 춘천집 주소 좀 알 수 있을까요?
인 경 (심각해지며) 은영이요...?
S15 고속버스 안 (낮)
달리는 고속버스 안의 경수.
창 밖으로 ‘춘천’이라는 이정표가 스쳐지나 간다.
S16 은영 춘천집 앞 (해질녘)
주소가 적힌 메모를 보며 집 앞에 와서 서는 경수.
잠시 머뭇거리며 생각을 하고는 초인종을 누른다.
잠시 후 인터폰으로 소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 라 (E) 누구세요?
경 수 최은영씨 계십니까? 저는 서경수라고 하는데요...
S17 거실 (해질녘)
소 라 (인터폰을 받고 있는) 누구요?
경 수 (E) 서경수요.
소 라 서경수씨요? 잠시만요.
이때 2층에서 내려오던 은영이 서경수라는 말에 문득 소라를 본
다.
소 라 언니, 서경수란 사람이 찾아왔는데...?
은 영 (당혹감이 밀려들며 잠시 생각) 없다 그래... (이내 도
망치듯 다시 2층으로 올라간다.)
소 라 어머, 언니...! (난감하다.)
S18 은영 춘천집 앞 (해질녘)
기다리는 경수.
소 라 (E) 저기 언니 지금 없다 그러는데요?
경 수 저 꼭 만나야 되는데... 잠깐만 나와달라고 해주세요.
소 라 (E) 없는데...? 잠깐만요.
S19 거실 (해질녘)
소 라 (안방을 향해) 어머니~ 어머니가 나와셔서 말씀 좀 해
보세요.
은영모 누군데 그러니?
소 라 은영언니 찾아 온 사람인데, 언니가 만나기 싫다는
데...?
은영모 (인처폰 받으며) 누구세요?
S20 은영 춘천집 앞 (해질녘)
경 수 안녕하세요? 저 은영이 친구 서경숩니다.
은영모 은영이 지금 없어요.
경 수 저 경수라고 얘기하면...
은영모 아무도 안 만나요. 지금 없습니다. (끊긴다.)
집 앞을 서성이는 경수.
S21 은영방 (해질녘)
창문 밖으로 내다보는 은영.
대문 앞을 서성이던 경수가 고개를 들면, 재빨리 커튼 뒤로 숨는
다.
S22 은영 춘천집 앞 (밤)
그대로 대문 앞에 서있는 경수. 이따금씩 집을 바라본다.
S23 은영방 (밤)
어두운 방안. 침대에 엎드려 있다가 일어나 창 밖을 내려다보는 은
영.
경수가 대문 앞에 서있다.
고개를 돌리고 생각하는 은영.
다시 창 밖을 보면, 서성이다가 힘없이 발길을 돌리는 경수가 보인
다.
S24 은영 춘천집 앞 (밤)
길게 한숨을 토해내더니, 힘없이 발길을 돌려 돌아가는 경수.
S25 경수집 마당 (밤)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경수.
경수모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루에서 펄쩍 뛰어 나온다.
경수모 아이구, 경수야. 큰일났다.
경 수 왜 그러세요?
경수모 글쎄 지금 방금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정미가 글
쎄...
경 수 (놀라며) 정미가 왜요?
경수모 니 앞으로 유서를 쓰고 약을 먹었단다.
경 수 (더 놀라며) 네?
경수모 너 정미하고 무슨 일이 있었니? 걔가 왜 약을 먹어?
경 수 어디 병원이래요?
S26 응급실 안 (밤)
두리번거리며 급하게 뛰어드는 경수.
침대에 누워있는 정미를 발견하곤 다가온다.
경 수 정미야...?
하지만 정미는 의식이 없다.
경 수 (마침 옆 환자를 보고있는 의사에게) 아니, 어떻게 된
겁니까?
의 사 (경수를 돌아보며) 아, 보호자 되세요?
경 수 네...
의 사 다행히 일찍 발견돼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병실로 옮겨도 될 거 같으니까, 혼자 두지 말고 옆에서 잘 지켜보
세요. (경수를 약간 냉정하게 보며) 퇴원을 하더라도 이런 환자는
우울증이 심해질 수도 있고, 절대 혼자 두면 안되는 거 아시죠?
경 수 아, 예...
의 사 (정미 머리맡에 편지봉투 가리키며) 유선 거 같던데,
읽어보세요.
의사 다른 곳으로 가면,
정미의 옆에 앉으며 봉투를 집어드는 경수.
아줌마 (근처에서 경수를 보며 수근거리는) 도대체 어떻게 했
길래, 여자가 약을 먹나...?
경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들.
경수 시선을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쌕쌕 거친 숨을 쉬는 정미를 안쓰럽게 보다가 봉투에게 편지를 꺼
낸다.
편지를 펼쳐 읽는 경수.
편지는 눈물로 두어 군데 얼룩이 져있고, 벌써 몇 사람들이 읽었는
지 구겨져 있다.
맨 위 여백에, 이 편지를 서경수씨에게 전해주세요. 경수집 연락처
가 적혀있다.
정 미 (E) 경수오빠...오빠에게 작별을 고하는 게 지금 나에
겐 가장 힘든 일이야. 산다는 게 뭐 특별하지도 않은데, 오빠까지
힘들게 하면서 내 행복을 바랄 순 없지... 우리가 계속 만나봐야,
추해지기만 한다니... 사랑도 추해질 수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오빠를 다시 찾아가 만난 일이 가장 후회가 돼. 추해지면 사랑이
아니지. 오빠나 나나 힘들기만 할 뿐... 그 동안 힘들게 했다면 정
말 미안해... 차라리 아주 오래 전 스무살 그때에 오빠를 만나지 않
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행복하게 잘 살아.
편지를 읽다가 잠들어있는 정미를 괴로워하며 보는 경수.
파르르 손끝이 떨리는 정미의 손을 마음 아프게 잡아준다.
S27 병실 (아침)
정미의 침대 옆에 엎드려 잠이 들어있는 경수.
정미가 눈을 뜬다. 둘러보고는 병원임을 알고,
경수를 발견하고는 괴로운 듯 고개를 돌리는 정미.
인기척을 느낀 경수가 퍼뜩 깨어서 정미를 본다.
경 수 정미야... 괜찮니?
정 미 어떻게 된 거야...?
경 수 바보 같이... 왜 그랬어...?
정 미 지금 몇 시야?
경 수 (시계 보고는) 10시 20분...
정 미 나 때문에 출근도 못했네...? 밤새 여기 있었어?
경 수 응.
정 미 미안해. 오빨 또 힘들게 했네? 나 참 바보 같지...
경 수 왜 그랬어, 왜?!
정 미 (다시 깨어난 세상은 낯 설은 기분이랍니다.) 몰라...
오빨 영원히 잊을 수 있는 건 그 길뿐이라고 생각했어... 수면제를
먹으면 금방 잠에 빠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경수 말하는 정미를 본다.
정 미 근데, 이상하지...? 정말 이상해... 분명히 나는 오빠 생
각을 하면서 약을 먹었는데... 죽어 가는 그 순간에는 남편과 아이
가 떠오르더라...
경 수 ....?
정 미 (계속) 그러면서 갑자기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 그런
데 약은 이미 삼켰고...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구...
경 수 ....
정 미 오빠 미안한데 남편한테 연락 좀 해줄래. 나 약 먹고
그랬다고는 하지 말고 그냥 조금 아프다고만 해. 그 사람, 심장이
좀 약하거든. 진영이도 꼭 데리고 오라고 하고...
경 수 애 이름이 진영이야?
정 미 (입가에 미소가 설핏 스치며) 응... 어서 가서 전화 좀
해줘.
경 수 (어리둥절 일어나며) 어, 그래... (정미 핸드백에서 핸
드폰 꺼내 돌아서려는데)
정 미 참, 오빠...
경 수 (돌아보면)
정 미 한가지만 솔직히 말해봐. 나 좋아한 적 있어?
경 수 그럼.
정 미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그럼 됐어.
경수도 애매하게 미소짓고는 허둥지둥 나가고,
그대로 눈을 감는 정미.
S28 병실 복도 (낮)
복도 의자에 앉아있는 경수.
멀리 정미의 전남편이 어린 남자아이를 안고 쏜살같이 뛰어들어온
다.
병실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뛰어온 남편을 모른 척 보는 경수.
남편, 아이를 내려놓고, 함께 손을 잡고 병실로 들어간다.
열린 병실 문틈으로 남편이 정미에게로 다가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 이 (침대로 달려가며) 엄마!
정 미 진영아! (손을 뻗어 아이를 안으며) 얼마나 보고 싶었
는데... 우리 진영이 잘 있었어...?
남 편 여보... 그렇게 괴로웠으면 나한테 얘길 하지, 왜 약을
먹었어?
정 미 자기야... 내가 잘못했어...
다가가 정미와 아이를 한꺼번에 안는 남편.
남편의 품에 안기는 정미.
경수 말없이 일어나 복도를 걸어나온다.
다소 홀가분해진 표정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드는 표정
으로.
카메라, 쭉 걸어 나오는 경수를 비추며 함께 빠져 나온다. (화이트
아웃.)
S29 대학원 교무처 (낮)
상담 창구에서 서류를 제출하는 은영.
은영은 옷과 헤어스타일 수수하게 바뀌었고, 차분해진 느낌이다.
은 영 저... 경영 대학원 가을학기 원서접수 좀 하려고 하는
데요...
여직원 그러세요. (문득 은영을 보더니) 혹시 어디서 뵙지 않
았나요?
은 영 (시선 피하며) 아니요. 처음 뵈요...
여직원 이상하네...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서류 받아
접수시키며) 인지대 3만원 주시구요...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네주는 은영.
다른 곳을 보면, 사람들 그저 일할 뿐 은영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은 영 (N) 뜻밖에 사람들의 기억력은 그렇게 좋질 못했다.
영원히 안 잊혀 질 것만 같았던 스캔들도 어느덧 잊혀져 갔다.
은영 선글라스를 끼는데,
여직원 (응시 수험표를 잘라 내주며) 됐습니다. 선글라스가
참 이쁘네요. 그거 요새 유행하는 거죠?
은 영 네... (받아서 돌아선다.)
S30 대학 교정 (낮)
모처럼 상쾌한 기분으로 교정을 걸어 내려오는 은영.
싱그러운 활력이 넘치는 대학교정을 둘러본다.
학생들끼리 모여 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고있는 모습 등 바라보는
은영.
은 영 (N) 비행기도 때론 항로를 바꾸기도 한다. 나는 잠시
불시착했던 거다. 다시 목적지를 향해 이륙해야만 한다. 멋진 비행
이 아니라도 끝까지 힘차게 날아보리라. 난 다시 나 자신을 사랑하
고 싶어졌다.
도서관 계단을 경쾌하게 뛰어올라가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은영.
S31 은영집 마당 (밤)
은영이 나오면, 은영부가 마당에서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고 있다.
은 영 아빠, 뭐하세요?
은영부 야, 이거 참 좋다. 별이 아주 잘 보인다. 너도 한번 볼
래?
은 영 (들여다보고는, 망원경 움직여 뭔가를 찾으며) 아빠 제
가 토성 찾아드릴게요. 찾긴 쉽지 않은데... 노란 띠를 두르고 있
는 게, 토성이 참 예쁜 별이에요...
은영부, 다시 밝아진 은영의 모습을 보며 빙긋이 웃는데,
은 영 (망원경 잡고 얼굴을 떼며) 찾았다. 보세요.
은영부 (망원경을 들려다보며) 어, 정말 참 예쁘구나...
은영은 문득 경수와 함께 별똥별을 보러갔던 때를 떠올린다.
@@@@@@@
S32 인서트 (13부 27씬)
두 사람 너머 밤하늘로 별똥별이 떨어진다.
은 영 경수야, 정말 아름답다!
경 수 그래, 은영아... 진짜 장관이다!
은 영 세상에... 우리가 이런 걸 함께 보다니...
S33 은영집 마당 (현재)
미소를 머금고 있는 은영.
은 영 (E)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말자...
미소가 사라지며 쓸쓸하게 현실로 돌아오는 은영의 표정.
S34 포장마차 (밤)
영진과 경수가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경 수 어쨌든 정미는 가정으로 잘 돌아갔지만, 부끄럽다. 돈
앞에서 약해진 내 모습... 그리고 여자 앞에서 헤맨 게...
영 진 누구나 실수를 해. 남들은 몰라서 그렇지... 어떤 땐 자
기자신도 속이면서 실수를 덮을라 그러잖니. 굳이 들추려 애쓰지
마라.
경 수 실수... (술 들이키더니) 실수는 지금보다 20대 때에 훨
씬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한번의 실수로 이렇게 인생이 어
긋나거나 큰 혼란을 느끼지는 않았던 거 같애...
영 진 그때는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가 있었잖아. 어떤 실
수도 다 용서가 됐고...
경 수 그래... 이제는 정말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되는 나이
가 돼버렸어. 난 반 발짝 잘못 디뎠다고 생각했는데, 원래 생각했
던 인생에서 확 멀어진 느낌을 받았어. 갑자기 사는 게 무섭더라.
영 진 나도 애 아빠가 되고 보니, 뭔가 사소한 걸 하려고 해
도 옛날보다 여러 번 생각을 하게 돼. 룸살롱 가는 거... 과속운전
하는 거... 부하직원한테 성질 내는 거... 우린 이제 어른이 돼버린
거야. 아무 행동이나 함부로 하면 안되는...
혼자서 끄덕이는 경수.
두 사람 자연스럽게 물끄러미 마주보더니, 미소지으며 술잔을 부
딪친다.
영 진 우리 한번 잘 살아 보자. 다 잘 될 거야.
경 수 그래... (물끄러미 영진을 보며) 오늘 보니까 너도 많
이 늙었다.
영 진 난 임마 결혼했으니까 괜찮아. 너 아까 보니까 흰머리
많이 보이더라.
경 수 (괜히 자기 머리 쓰다듬으며) 새치야, 임마.
웃으며 술을 마시는 경수와 영진.
S35 버스 정류장 (밤)
모처럼 편안하게 술에 취해 걸어와 서는 경수.
버스를 기다리는데,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한 쌍의 남녀가 벤치에 앉아 장난을 치고 있
다.
여 자 (일어서며) 버스 왔다.
남 자 (여자의 팔을 잡고) 다음 거 타.
여 자 막차야.
남 자 아냐. 조금 만 더 있다 다음 거 타.
여자는 다시 남자 옆에 앉고, 두 사람 어깨를 안고 말없이 밤거리
를 보며 서로 기댄다. 말이 없어도 그저 행복한 연애의 느낌.
미소 지으며 돌아서 버스를 기다리는 경수.
이때 뒤에서 연인들이 키스를 나누는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
다.
여 자 (E) 왜이래? 누가 봐...
남 자 (E) 뭐 어때? 우리가 좋으면 됐지.
문득 생각에 잠기는 경수.
S36 인서트 (9부. 회사 앞에서 키스씬. 밤)
경수가 행복한 듯 은영을 안는다.
경 수 은영아. 난 니가 참 좋다.
은 영 .... 왜 그래? 사람들 지나가잖아.
경 수 뭐 어때? 우리가 좋다는데? (더 꼭 안으면)
그제야 은영도 경수를 안는다.
경수, 우산으로 사람들을 가리고 은영에게 키스한다. 아주 감미롭
게.
S37 버스 정류장 (현재. 밤)
생각에서 빠져 나오는 경수.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돌아서 뛰어 간다.
S38 길가 꽃 집 (밤)
밤이 늦어 셔터가 무릎까지 내려와 있는 꽃 집.
셔터 밑으로 새어나오는 환한 불빛이 막 꺼지는데,
경수가 급히 달려와 셔터를 두드린다.
경 수 저기요, 꽃 좀 주세요. 꽃 좀 살게요!
이때 셔터 아래로 안에서 얼굴을 내밀고 보는 아저씨.
아저씨 오늘 다 끝났는데요?
경 수 저한테 한 다발만 파시고 끝내세요.
아저씨 (하품을 하며) 지금이 몇 신 줄이나 알아요?
경 수 저기, 오늘 꼭 사야돼서요...
아저씨 얼굴이 안으로 사라지자,
실망하는 경수.
이때 안에서 셔텨문을 올리며, 불이 켜지자, 환한 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경 수 (싱글벙글) 감사합니다. 아저씨.
S39 꽃집 앞 거리
꽃다발을 들고 차도로 나와 택시를 잡는 경수.
빈 택시는 서며 차창이 내려온다.
경 수 아저씨, 춘천이요!
기 사 춘천? 이 시간에 요?
경수 히죽 웃으며 택시에 오르고, 택시 떠난다.
S40 은영 춘천집 앞 (밤)
꽃다발을 들고 나타나는 경수.
막상 오긴 왔지만 너무 늦은 시각이다. 은영의 집은 불이 꺼져 있
다.
약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벨을 누르는 경수.
S41 은영방 (밤)
스탠드를 켜놓고 공부를 하고 있는 은영.
무슨 소린가를 들었는지, 멈칫 방문을 돌아보고는 다시 공부하려
는데,
나직하게 초인종 소리가 또 들린다.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일어나 스웨터를 걸치며 나가는 은영.
S42 춘천집 마당 (밤)
현관문이 열리고 나오는 은영.
은 영 (현관 근처에서) 누구세요?
경 수 (뒷춤에 꽃 감춘 채) 나야! 경수!
은 영 (놀라며) 아니... 니가 이 시간에 웬일이니...?
경 수 너 만날려고 왔지. 잠깐만 나와봐.
은영, 약간 망설이다 대문 밖으로 나온다.
잠시 미소를 머금고 은영을 바라보는 경수.
은 영 (시선을 피하며) 오랜만이다.
경 수 그 동안 잘 지냈어...?
은 영 응... 근데 이 시간에 여긴...
이때 경수가 뒷춤에 감춘 꽃을 내민다.
경 수 자, 갑자기 집에 가는데 니 생각이 나서...
은 영 그렇다고 이 시각에 여길 와?
경 수 받아.
은 영 저기, 경수야... 이런 거 나한테 주지마. 그리고 나...
경 수 어서 받기나 해.
은 영 (받지 않는데) ...
경 수 나 정말 많이 생각했어. 이젠 너를 제대로 만날 수 있
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온 거야. 받아 줘. 내 마음이야.
은 영 (여전히 받지 않는데)
경 수 오늘 버스를 타고 집에 갈려는데, 갑자기 우린 만나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더 이상 너를 가만히 두면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 누가 나타나서 널 채가기 전에 니 마음을 붙들
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은 영 그냥 돌아가. 내가 어떻게 니가 주는 꽃을 받을 수 있
겠니?
경 수 왜 못 받아? 내가 주고 싶다는데?
은 영 받을 수 없어. 고맙다, 경수야. (괴로운) 니 마음은 잘
간직할게...
그대로 돌아서서 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은영.
경 수 은영아!
현관으로 들어가는 은영.
경수 힘이 빠진다.
S43 현관 안 (밤)
들어선 은영이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있다.
S44 대문 앞 (밤)
경수, 힘없이 서 있다가 꽃다발을 대문 앞에 놓고는 돌아선다.
가려다가 다시 돌아와 꽃다발을 들고 가는 경수.
S45 동 골목 안 (시간경과. 밤. 몽타주)
가로등 아래 쪼그리고 앉아 가방을 받치고 노트를 찢어 편지를 쓰
는 경수.
경 수 (E) 은영아, 여기 앉아서 가로등 불빛에 편지를 쓰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르는구나.
S46 은영방 안 (밤. 몽타주)
어둠 속에서 창 밖을 내려다보는 은영.
골목 안 가로등 불빛 아래에 앉아서 편지를 쓰고 있는 경수가 보인
다.
경 수 (E) 바로 옆엔 은영이 니가 사는 집이고... 나도 참 바
보 같지. 10년 동안이나 너를 만나놓고 니네 집 앞을 이제야 와보
다니...
S47 대문 앞 (밤. 몽타주)
꽃다발 속에 접은 편지를 끼워 놓고 대문 옆에 예쁘게 세워놓는 경
수.
경 수 (E) 니가 사는 곳, 니가 아침저녁으로 밟고 다녔을 이
땅들... 난 지금 참으로 행복하다.
S48 은영방 안 (밤. 몽타주)
꽃다발을 놓고 가는 경수의 모습.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은영.
경 수 (E) 생각해보니 난 처음 널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조차
잘 모르겠다.
S49 대문 앞 (밤. 몽타주)
꽃다발을 집어드는 은영. 잠시 망설이듯 바라본다.
꽂혀있는 편지를 꺼내 풀어보는 은영. 편지를 읽는다.
경 수 (E) 그냥 언제부턴가 난 늘 니 생각을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회사에 가고, 퇴근하고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은영아, 사랑한다. 나와 결혼해줘.
S50 달리는 택시 안 (밤. 몽타주)
뒷좌석에 혼자 앉아 돌아가는 경수. 피곤하지만 행복한 미소를 머
금고 있다.
경 수 (E) 난 비록 가진 것도 없고, 다른 남자들처럼 근사한
말도 잘 못하지만, 널 사랑하는 마음만은 지구상의 어떤 남자가 어
느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클 거다.
S51 꽃집 (다른 날. 밤. 몽타주)
아저씨에게 계산을 하고 꽃다발을 받아서 돌아서는 경수.
경 수 (E) 나도 내가 이토록 미련하게 누군가를 좋아할 줄은
몰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무지하게 행복하다.
S52 은영방 (또 다른 날. 밤. 몽타주)
창 밖을 내다보는 은영.
가로등 밑에 앉아 편지를 쓴 경수가 일어나 대문 앞으로 온다.
대문 앞에 꽃다발을 놓고 돌아가는 경수가 보인다.
경 수 (E) 옛날에 너와 함께 별똥별을 보면서도, 난 너하고
잘 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그 소원 니가 이루어지게 해줘야 되
지 않겠니?
은영, 망설이는 듯한 기분으로 돌아서면,
방안엔 이미 6~7개의 꽃다발이 보인다.
시들어있기도 하고, 벽에 거꾸로 걸려있기도 하고, 화병에 꽂아있
기도 하고...
S53 은영집 앞 골목 (낮. 몽타주)
손아귀에 돌을 잔뜩 들고 있는 은영.
은영이 여러 차례 돌을 던져 가로등을 깨버린다.
S54 경수집 안방 (아침. 몽타주)
상자를 꺼내 아버지의 광부유품들 속에서 전등모자를 찾아내는 경
수.
조 부 그건 뭐 할려고 그러냐? 니 애비 꺼를?
경 수 쓸데가 있어서요.
챙겨들고 나가는 경수.
S55 은영집 골목 안 (밤. 몽타주)
불이 켜지지 않은 가로등 밑.
약간 다른 자세로 무릎을 세우고 앉아 편지를 쓰고 있는 경수.
전등모자를 쓰고 편지지를 비춰가며 편지를 쓰고 있다.
경 수 (E) 언제쯤 니가 나를 만나줄까...? 그때가 올 때까지
난 계속해서 내 마음을 보내는 일을 멈추지 않을 거야. 넌 나에겐
정말 특별하니까. 너를 대신할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
문에...
S56 은영방 (밤. 몽타주)
꽃다발을 가지고 들어와 편지를 꺼내들고 읽는 은영.
경 수 (E) 난 이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견뎌낼 준비
가 되어있다. 사랑해. 은영아.
S57 꽃집 (또 다른 날. 밤. 몽타주)
또 다른 꽃다발을 포장하는 아저씨의 손길.
이제 아저씨와 농담까지 주고받는 경수.
아저씨 나야 맨날 꽃 파니까 돈 벌고 좋지만, 그 아가씨도 참
고집도 쎄지. 그만 포기하지 그래?
경 수 (펄쩍 뛰며) 안돼요. 아저씨가 그 여자를 몰라서 그래
요.
뺏듯이 꽃다발 받아 가지고 나가는 경수.
S58 달리는 택시 안 (밤. 몽타주)
꽃다발을 들고, 운전기사와 실갱이를 하고 있는 경수.
경 수 좀 싸게 안될까요? 매일 이용하는데?
기 사 춘천까지 매일 택시를 타고 다녔다구요?
경 수 예.
기 사 그러느니 차라리 중고차라도 한 대 사지 그래요? 차비
가 차 한 대 값은 나왔겠네?
S59 춘천가도, 중고차 안 (다른 날. 밤. 몽타주)
비가 내리고 있고, 다 찌그러져 가는 폐차 직전의 차를 몰고 가는
경수.
운전석 옆에는 또 다른 꽃다발이 보인다.
경 수 (N) 그래서 나는 결국 중고차도 한 대 샀다. 비오는
날 와이퍼가 작동이 안돼서 그렇지, 그런 대로 쓸만했다.
뿌연 전면 유리창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불안한지 앞 유리에 바짝 코를 박고 운전하고 있는 경수.
와이퍼를 작동시켜보지만 잘 되지 않자, 옆 창문을 내리고는 왼손
을 밖으로 뻗어 와이퍼처럼 손바닥으로 유리창을 닦으며 운전을
하고 있다.
마주 달려오는 차가 경적을 울리며 스치듯 지나가고, 위험천만해
보인다.
S60 은영집 현관 안 (같은 날 밤)
현관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는 은호와 소라.
은 호 어? 또 왔어, 또 왔어!
소 라 어머, 로맨틱~ 해라.
S61 은영집 대문 앞 (밤. 현관에서 보는 시야.)
경수가 우산을 쓰고, 대문 앞에 꽃을 들고 서있다.
S62 은영집 현관 안 (밤)
은 호 맨날 저렇게 서있으면 다리 아프겠다, 누나.
소 라 비까지 오는데, 잠깐 들어오라고 할까요?
은 영 그냥 둬. 저러다 말겠지... (2층으로 올라가면)
소 라 언니, 왜 남자 마음을 그렇게 몰라주세요?
S63 은영집 대문 앞 (낮)
화창하게 맑은 날. 은영부의 승용차가 들어와 멎고,
은영부가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대문 앞에 꽃다발을 들고 서있던 경수가 꾸뻑 인사를 한다.
경 수 안녕하세요.
은영부 아이구, 오늘은 좀 일찍 왔네?
경 수 네... 토요일이라서요...
은영부 줘. 내가 전해줄게.
경 수 아닙니다. 은영이가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
다.
은영부 (말릴 수도 없고 난처한) 거, 참... 그래, 그럼 수고하
게. (안으로 들어간다.)
은영부를 향해 인사를 하고는 그 자리에 서있는 경수.
S64 경수집 마루 (밤)
경수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들어오면,
경수모 (자다가 나와보는) 어딜 그렇게 매일 갔다가 이렇게 늦
게 오니?
조 부 (역시 자다가 나온) 그러게, 요즘엔 손주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보기보다 힘들어?
경 수 주무세요. (방으로 들어가는데)
경수모 (걱정스레) 이제 들어왔으니, 두어 시간밖에 못 자고
또 나가야겠네?
S65 춘천집 은영방 (낮)
방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가족들이 살금살금 들어선다.
은영방은 여기저기 온통 각종 꽃다발들로 가득하다.
편지를 한 장씩 들고 각자 읽고 있는 가족들. 다 읽은 건 돌려가며
읽는다.
은영부 편지는 제법 쓰는데? 글씨도 명필이고.
은영모 그러게 말이에요. 그 청년 보기보다 끈기가 있네요.
은 호 웬만하면 그만 둘 줄 알았는데? 오늘이 며칠 째지?
소 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오십~세 번째요.
은영부 이러다 그 청년 병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은영모 세상에! 우리 은영이를 10년이나 좋아했다네?
이때 아래층에서 인기척소리가 들리자,
은영모 어머, 은영인가 봐요.
은영부 아이구, 큰일났네?
모두 허둥지둥 편지를 책상서랍에 쑤셔 넣고는 밖으로 나가려는
데,
방문이 열리면서 은영이 들어선다.
은영과 마주치자 모두 돌아서며 머리 긁고, 기지개 켜고, 노래 흥
얼거리고, 더운지 남방 들썩거려 바람 통하게 하고... 딴청을 하는
가족들.
은 영 내 방에서 뭐해?
은영부 아니, 뭐... 가, 나가자.
S66 춘천집 마당 (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집안에서 우산을 쓰고 나와보는 은영모.
대문 앞에는 아무도 없고,
은영모 대문 밑까지 꼼꼼히 살펴보는데,
대문 밑에도 아무 것도 없다.
은영모 (골목도 살피고는) 이상하네...? 오늘은 왜 안 오지? 이
제 그만뒀나?
S67 춘천집 거실 (밤)
은영을 뺀 온 가족이 서성거리며 경수를 기다리고 있다.
은영부 거 이상하네? 그 친구 어디가 아픈가?
은 영 (자기도 왠지 걱정은 되지만 시선 돌릴 뿐)....
은 호 그러게요 어디 병이라도 났나...? 와도 벌써 와서, 편
지 세 장 쓰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은영모 아프긴, 체력은 좋은 거 같던데. (은영을 흘겨보며) 아
무래도 이제 안 올 모양이다.
은 영 (괜히 서운한 표정인데)
소 라 제 생각도 왠지 그래요. 언니가 정말 너무 했어요. 그
런 남잔 한번 포기하면 칼 같이 무섭게 돌아선다는데...
은영모 (은영에게) 넌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니? 진작에 한번
나가서 얘기라도 한마디하던지, 들어오라 그래서 차라도 한잔 마
실 것이지. 아휴, 내가 속이 터져...
은영부 (은영에게) 그러지 말구, 전화라도 한번 해봐라.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잖아.
은영 말없이 일어나 2층으로 향하는데,
은영모 아휴, 저 고집을 누가 말려. 니가 이제 어디 가서 그런
괜찮은 총각한테 구애를 받아보겠니? 시집도 못 가게 생긴 너를 찾
아준 것만도 고맙지.
S68 은영집앞 (새벽)
아무도 없는 텅 빈 대문 앞. 비가 내리고 있다.
은 영 (N) 그날 온 가족이 잠을 못 이루며 눈이 빠지게 기다
렸지만, 결국 경수는 오지 않았다.
S68-1 춘천집거실
가족듣다
S68-2 은영방
창 밖을 내려다보고는 말없이 돌아서는 은영.
왠지 걱정도 되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느낌이다. 잠시 서성거리다
가,
잠시 후 무선수화기를 집어들고 전화를 거는 은영.
S69 경춘가도 (새벽)
비가 내리고 있고, 교통사고가 났는지, 사이드카의 경광등이 번쩍
인다.
렉카차가 도로 밖으로 구른 경수의 중고차를 끌어올리고 있다.
도로 바닥에 구르는 경수의 핸드폰이 계속해서 울려대지만, 아무
도 받지 않는다.
우비를 입은 경찰관과 119구급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경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S70 은영방 (새벽)
그냥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더 안절부절못하는 은영.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옷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간다.
S71 대문 밖 골목 (새벽)
비가 내리고 있고, 서서히 먼동이 터 온다.
은영, 허둥지둥 나와 대문 밖으로 나온다.
골목 밖까지 내다보며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은영.
가만히 멈춰 서서 생각이 복잡한데,
이때 골목 저쪽 끝에서 경수가 절뚝거리며 비틀비틀 걸어온다.
피가 묻어있는 옷에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꽃다발을 들고있다.
은영 돌아보면,
경수, 은영을 발견하고는 은영아~ 부르며 절뚝절뚝 걸어오다 쓰러
진다.
은 영 (놀라서 달려가며) 경수야! 경수야!
달려가 경수를 끌어안는 은영.
은 영 경수야, 왜 그래? 어디서 이랬어? 어디 다쳤니?
경수 꽃송이가 너덜너덜 꺾이고, 엉망인 꽃다발을 힘없이 내밀며,
경 수 (애써 웃으며) 오다가 차 사고가 나서... 병원에 실려가
서 치료받고 오느라고... 어떡하지? 꽃이 다...
은 영 괜찮아. 받을게. 줘...!
꽃다발을 받아들고 울면서 경수를 끌어안는 은영.
은 영 어디 봐... 많이 다쳤어?
경 수 아니... (가슴께를 가리키며) 여기... 좀 찢어져서...
은영 경수의 겉옷을 들춰보면, 붕대로 감은 가슴이 보인다.
은 영 이 바보야, 그럼 병원에 누워있어야지, 여긴 왜 와?
경 수 죽더라도 널 한번 보고는 죽어야지... 안 그래?
은영을 보며 희미하게 웃는 경수.
은영 울다가 웃고 만다.
어느 새 비가 그쳐있다.
은 영 일어날 수 있어? 가서 누구 불러올까?
경 수 아니, 일어날 수 있어.
경수, 은영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는데,
은 영 (쑥스러운 듯) 저기, 경수야... 내가 잘못했어... 우리
이제 어떤 이유로도 헤어지지 말자, 평생.
경 수 너 지금 나한테 청혼한 거니?
은 영 응.
경 수 청혼은 내가 해야 되는데....
은 영 니가 그럼 다시 해...
경 수 아... 어떻게 하지...? 거기까진 아직 생각 못했는데...
그냥 우리 결혼 빨리 하자. 누가 훼방놓기 전에 얼른 얼른...
두 사람 활짝 웃으며 서로를 끌어안는다.
S72 술집 (밤. 몽타주)
인경과 영진이 청첩장을 보고 있다.
그 앞에 나란히 팔짱을 끼고 아주 닭살커플로 앉아있는 은영과 경
수.
경 수 이날 천재지변이 나도 우린 결혼 할 거다. 꼭 와라!
은 영 우리 결혼 한다구 여기저기 소문 좀 많이 내줘...!
벙 쪄서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인경과 영진.
S73 경수 사무실 (낮. 몽타주)
경수가 청첩장을 돌리고 있다.
사람들 축하 맨트들 날리는데,
경 수 (계속 청첩장 돌리며) 어떤 재앙이 닥쳐도 우린 결혼합
니다. 꼭 오세요. 꼭 오셔야 됩니다. 오셔서 축하해주세요.
S74 마케팅실 (낮. 몽타주)
은영이 청첩장을 돌리고 있다.
직 원1 어머, 축하드려요.
여직원 이번엔 정말 하시는 거죠?
직 원2 (옆에 있다가 여직원을 꾹 찌른다.)
은 영 그럼.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꼭 할 거야...
실 장 (봉투를 주며) 자,
은 영 어머, 실장님두...? 부조금은 결혼식에 오셔서 주셔야
죠...
실 장 부조금은 무슨. 은영씨가 냈던 사표, 수리 안하고 다
시 돌려주는 거야. 최팀장 없어서 우리회사 쓰러질 뻔한 거 알지?
은 영 (약간 감동) 어머, 정말이요...?
직 원1 다시 나오실 거죠?
은 영 그러면 나야 좋지...
S75 경수집 마당 (아침)
경 수 (N)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혼식 날이 밝았다.
비가 내리고 있다.
방금 일어난 차림으로 비를 보고는 튀어나오는 경수.
경 수 어? 어떡하지? 비가 오네?
조 부 (마루 끝에 서서) 아휴, 태풍주의보랜다, 태풍주의보!
경수모 왜 하필 야외 결혼식이냐? 그냥 아무 예식장에서나 하
지 않구?
경 수 아냐, 엄마. 우천시에도 강행해야 돼, 강행! (조부에
게) 어서 준비하세요. 그대로 밀고 나갈 거니까.
집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경수.
S76 은영집 마당 (아침)
예식장에 갈 차림으로 전화를 받고 있는 은영모.
은영부와 은호, 소라도 예복차림으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은영모
를 보고 있다.
은영모 아닙니다. 결혼식은 예정대로 합니다. 꼭 오세요. 야외
에서 하긴 하는데요... 이 정도 비야 뭐...
하는데 이때 번쩍 번개가 치며, 동시에 콰르릉! 천둥소리가 울린
다.
깜짝 놀라는 은영모와 가족들.
S77 야외 결혼식장 (낮)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
커다란 천막 밑에 신랑 신부인 경수와 은영이 비를 피하고 있다.
인경과 소라가 은영의 웨딩드레스를 붙잡고 있고,
은호는 천막이 쓰러질까봐 기둥 붙잡고 서있다.
은영네 가족과 경수네 가족, 하객들도 천막 밑에 비를 피하고 서있
다.
은 영 어떡하지...?
경 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곧 그치겠지...
이때 번쩍! 콰르릉 쾅쾅! 번개와 천둥이 친다.
깜짝 놀라는 가족들과 하객들.
은영모 (옆의 누군가에게) 어머, 밀지 마세요. (하고 보면, 경
수모다.) 죄송합니다.
경수모 아닙니다.
조 부 옛부터 장마철엔 원래 혼례를 안 잡는 건데...
은영부 뭐 요즘도 장마철은 웬만하면 피하는 게 좋지요. 하객
들도 많이 안 오고, 흥행에서 실패하기 쉽상이거든요.
은영 그런 은영부를 보며 더 안절부절인데,
이때 영진이 우산을 받고 달려 들어오며,
영 진 주례 선생님이 아무래도 못 오실거 같은데? 지금 길이
끊어졌대. 다리도 침수되고.
은 영 그럼 어떡해...?
경 수 그냥 우리끼리 하죠, 시간도 없는데.
경수모 아니, 그래도 주례선생님이 있어야지...
소 라 (경수모에게) 뭐... 주례 없다고 결혼 못하겠어요? 사
랑하는 사람들끼리 서약만 하면 되죠? 미국에선 다 그렇게 해요.
경수모 (뜨악한데)
조 부 뭐, 사돈 말씀이 맞긴 맞네요. 옛날엔 물그릇만 하나
있으면 결혼했거든.
은영부 가만... 그럼 누가 주례하실 분 안 계신가? (주변 보다
가) 아, 김씨 아저씨! 김씨 아저씨가 주례를 좀 서주세요.
김 씨 (1부에 은영에게 아는 척 했던 똥차인부) 제가요...?
은영부 네, 원래 말씀을 잘 하시잖아요.
은영모 (은영부를 말리며) 아이, 그래두 그렇지... 이이가?
김 씨 제가 어떻게... 똥차만 30년 몰았는데, 무슨 주례를
요?
은영부 아, 김씨 아저씨가 금슬도 좋고 행복하게 잘 사시잖아
요. 원래 주례는 행복하게 잘 사시는 분이 하시는 거예요.
경수모 (갑자기 반기며) 어머, 그러세요? 그럼 빨리 나오세요.
(시간경과)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고,
김씨 아저씨가 주례사를 하고있고, 결혼식이 진행중이다.
김 씨 거.. 뭐냐... 사람은 혼자서는 살수가 없는 겁니다. 오
죽했으면 사람 인(人)자가 이렇게 (두 팔로 人모양 만들어 보이
며) 서로 기대게 돼있겄습니까? 서로 평생 기대면서 살아가는 게
부붑니다. 아무쪼록 여기 이 두 사람은 검은머리 파뿌리 되고, 벽
에 똥칠할 때까지, 서로 기대어 잘 살기를 바랍니다.
하객들 박수 치고... 은영과 경수 마주보며 웃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