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펀드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S(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 소송의 선고만을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외환은행 ‘먹튀’ 사건의 비밀주의를 유지하는 데에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가 나서서 ‘론스타 먹튀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차단해왔다는 지적이다.
시민사회계는 ISDS가 국민 혈세를 담보로 하는 만큼, 정부가 이 사건의 책임을 인정하고 손해를 최소화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늑장대응으로 번번이 주요 피의자를 놓쳤던 검찰 또한 론스타 경영진에 대한 실질적인 범죄인인도요청으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민변 국제통상위원회,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 협의회(민교협), 학술단체협의회는 2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론스타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진행형”이라며 여론의 관심을 촉구했다.
심상정 대표는 “론스타 사건은 진실과 책임 규명이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유하라
미국계 투기자본인 론스타가 헐값에 외환은행을 사들이고 되팔아 한국 땅을 떠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엔 금융당국과 모피아(재정경제부 인사와 마피아 합성어)가 있다. 금융당국과 관료들이 론스타와 손잡고 외환은행을 팔아넘겼다는 뜻이다.
10여년이 지난 론스타 사건이 다시 여론의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ISDS 소송 결과 임박과 함께 최근 개봉한 영화 <블랙머니>가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론스타는 2003년 조작된 BIS비율을 근거로 잠재적 부실은행으로 둔갑한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들였다. BIS비율은 국제결제은행이 정한 은행의 위험자산(부실채권)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뜻한다. 특히 론스타는 ‘산업자본은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다’는 국내 은행법을 돌파하기 위해 해외 계열사를 숨기고 산업자본이라는 정체성을 속여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직후인 2004년 외환은행 자회사였던 외환카드의 주가를 조작해 헐값에 흡수 합병하는 일까지 벌였다. 론스타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2011년 유죄 확정 판결에도 금융위원회는 론스타의 주가조작에 대해 징벌매각명령이 아닌 조건 없는 단순매각명령을 내렸다. 금융위는 2012년 진행한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에 대한 심사에선 “론스타가 산업자본의 요건에 해당하지만 산업자본이 아니다”는 희괴한 논리로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 자회사 편입을 승인해줬다.
금융위원회의 이러한 결정으로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대주주로서 챙긴 거액의 배당금과 함께 단순매각명령을 통한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인정받으며 4조 7천억원을 챙겼다. 금융당국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주가조작 범죄까지 저지른 론스타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수조원의 이익을 챙겨 한국 땅을 떠날 수 있게 도운 것이다.
론스타와의 소송, 정부는 왜 숨기나
한국 정부와 론스타는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수조원 대를 먹튀한 론스타가 정부를 상대로 ICSID(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에 ISDS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의 매각 승인 지연으로 외환은행 매각이 늦어져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정부에 최대 5조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 소송은 현재 선고만을 남겨둔 상태다.
심상정 대표가 론스타와의 ISDS 소송 결과에 대한 질의에 법무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서면 공방과 증인심문 등 변론 절차를 진행하고, 현재 절차 종료 선언을 기다리고 있다”고 답변했다. 종료 시점에 대해선 “예상할 수 없다”고 답했다.
시민사회계도 ISDS 소송 과정에 대해선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민변에서 심리 절차 때마다 참관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정부의 반대로 참관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국 투기자본에 최대 5조원의 혈세를 쏟아내야 하는 상황임에도 사건 진행 과정을 비밀리에 부치고 있는 셈이다.
민변 국제통상위원회 위원장인 김종우 변호사는 “ISDS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대해 정부는 일관되게 비밀주의를 지키고 있다. 최대 5조원이 걸린 사건에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ISDS 소송에 대응하는 곳이 금융위라는 점이다. 금융위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헐값 매각으로 수조원의 이익을 챙겨 한국 땅을 떠나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한 ‘공범’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는 곳이다.
김종우 변호사는 “(론스타 사건의 중심에 있는) 김석동 부위원장 등이 ISDS 소송에 초반부터 대응해왔다. 실무자들 또한 (론스타 사건 당시) 로비를 받았는지, 부적절 처신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 의혹을 받는 이들이 ISDS에 대응하고 있는 상황은 정말 믿기 힘든 현실”이라고 말했다.
민교협 교육학술위원장 천정환 교수는 “사회 양극화와 일자리 부족으로 서민들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투기자본의 국부침탈에 대해 왜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느냐”며 “왜 우리 국민들이 론스타 사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차단됐는지 깊이 성찰해야 하다”고 밝혔다.
김은정 참여연대 팀장은 “론스타가 천문학적인 배당이익을 챙겨 한국을 떠나는 과정은 금융당국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며 “ISDS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금융당국이 책임을 인정하고 론스타는 처음부터 대주주 자격이 없다는 점을 피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수조원의 국민 세금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국민 손해를 최소한으로 하는 길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론스타 주요 범죄자 검거에 손 놓은 검찰? 실질적 범죄인 인도요청으로 처벌해야
론스타와 정부, 모피아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이뤄진 것이 없다. 당시 론스타 먹튀 사건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변양호 재경부 금융정책국 국장, 이강원 외환은행 전 행장,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줄줄이 검찰에 기소됐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 마이클 톰슨 법률고문, 스티븐 리 론스타 한국 대표 등 주요 혐의자들도 수년째 해외도피 중이다. 검찰은 증권거래법위반 혐의 등으로 2007년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으나 우리 정부가 사실상 이들에 대한 검거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론스타 사건의 주범격인 스티븐 리가 2017년 이탈리아에서 검거된 바 있으나 우리 법무부의 늑장대응으로 열흘 만에 석방되는 일이 벌어졌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론스타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ISDS 진행하고 있는데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고 12년째 형식적인 수준에서 범죄인 인도 절차만 진행 중에 있다”고 비판했다. 심 대표에 따르면, 법무부는 이들에 대한 범죄인 인도요청 진행 상황을 묻는 질의에 “외교 관례상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스티븐 리는 횡령죄로 론스타에도 고발을 당한 상태라 미국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범죄인 인도 요청으로 잡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론스타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가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결사해지 차원에서 스티븐 리를 검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론스타공대위 법률단장을 맡았던 권영국 변호사는 “스티븐 리가 외한은행 인수 단계에서 공모한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는 여전히 살아있다”며 “우리 정부와 검찰은 기소 중지돼있는 론스타 사건의 대표적인 3인방에 대해 실질적인 범죄인 인도요청을 통해 불법, 비리 범죄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하고 진상 가려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