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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감사하라(골 3:15-17)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행복하셨니까?
예수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은 평안한 삶을 살았을까요?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즉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전파했습니다. 그러자,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들이 당황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왔던 사울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전하자,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기로 공모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다메섹 성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이, 유대인들로부터 사울을 구하기 위하여,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의 외적인 삶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때로는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급히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가난한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했고, 반대와 핍박을 받아야 했고, 빌립보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결국은 로마 감옥에 갇혀, 순교자로서, 그의 삶을 마무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내적인 마음은 항상 평안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안이 그의 마음을 지배했기 때문에, 가난하여도, 먹을 것이 없어도, 감옥에 들어가도, 때로는 쫓겨 다녀도,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도,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여행을 하다, 낯선 숙소에서, 하룻밤 잠을 자게 되면, 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편하지가 않습니다. 내가 베고 자는 베개가 있고, 이불이 있고, 내 가족이 있는 내 집이 가장 편합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 있다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포근해지고, 편해집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혼의 쉼터는 어디입니까? 예수님의 품이 내 마음의 고향이며, 내 영혼의 쉼터이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참된 쉼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품 안에 있을 때, 예수님에게 우리의 모든 염려와 수고의 무거운 짐을 맡길 때, 우리는 참된 쉼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 것과 바꿀 수도 없고, 세상 것으로 살 수도 없고, 세상 것으로는 얻을 수 없는 예수님의 평안이 우리의 영혼과 삶을 지배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어떤 형편이든지간에, 예수님 품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4:6-7절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수 있도록, 우리의 염려와 기도의 제목들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면서,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그 평안을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기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에도, 감사하고, 하루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할 때에도, 감사하고, 하루를 마감할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하루를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고, 하루를 잘 살았음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해주시기에, 우리는 너무나도 평범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책을 직접 읽기도 하고, 교회에 나와, 설교를 듣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방송을 통하여, 내노라 하는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말씀 안에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거하여”라는 말은 “자리 잡게 하라”, 또는 “말씀을 실천하라”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아주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암송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듣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지배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이정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나침반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내비게이션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가고,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풍성하게 거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자주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 들어야 합니다. 올바르게, 분명하게, 잘 들어야 합니다.
마음의 눈을 열고, 귀를 열고, 집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재해석해 주는 설교를 잘 들어야 합니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듣지 않아야 합니다. 올바로 들어야 합니다.
귀하고 복된 주일날, 하나님의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자,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그 사랑과 은혜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집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집중하여 들을 때, 내 마음에 와 닿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어느 날,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때에,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성전 문 앞에 앉아 있는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했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우리를 보라”라고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베드로를 바라볼 때, 베드로는 그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이름으로,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을 일으켜 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고,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15절을 보면,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라고 했고, 16절을 보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했고, 17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삶을 보면, 감사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메섹 가는 길에, 극적으로 부름 받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고생이 첩첩산중처럼 몰려왔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8절을 보면, 바울의 고생담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고를 넘치도록 했고, 감옥에도 들어갔고, 매도 수없이 맞고, 죽을 뻔했고, 39대씩 다섯 차례 매를 맞았고, 태장으로 세 번 맞았고, 한 번 돌로 맞았고, 세 번이나 타고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했고, 일주일간을 바다에서 풍랑과 싸워야 했고, 강을 건널 때, 여행할 때, 죽을 고비를 겪었고, 유대인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강도의 위험, 광야와 바다의 위험을 겪었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날마다 교회들을 걱정했습니다. 한마디로, 바울에게는 감사할 조건이 한 가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고린도후서 1:3-4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고난과 역경과 고통과 절망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환난 속에, 하나님의 위로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감사를 가장 많이 고백한 사람은 다윗과 사도 바울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환난과 역경 속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를 고백했습니다. 시편은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57:9)
사도 바울의 삶도 가난과 굶주림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일생을 나그네이자, 감옥에 갇힌 죄수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흘러나오는 감사를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를 기록한 곳은 푹신한 침대나 안락한 저택이 아니라, 로마의 감옥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힌 죄수의 몸으로,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하라”라고 권면했습니다.
여러분! 세상 한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달라야 할까요? 어떤 것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세상 사람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 힘과 지혜와 노력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기에,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원망과 불평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해와 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솜씨와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화려한 집에 살면서도, 뭐가 그리 불만스러운지, 원망과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패니 크로스비(1820-1915)는 태어난 지 6주가 되었을 때, 의사의 실수로, 시력을 잃게 되어, 평생을 맹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녀는 8,000곡 이상의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저술했습니다. 그녀가 쓴 글 중에, 가장 잘 알려진 노래들로서는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예수 나를 위하여”, “예수께로 가면”, “인애하신 구세주여”,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의 영원하신 기업” 등으로, 한국 찬송가에도 23곡이나 수록되어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쓴 시는 구절구절마다, 감사의 글이라는 것입니다.
불행한 환경이라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감사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시, 맹인이었던 헬런 켈러(1880-1968)가 쓴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3일 동안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3일 동안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헬런 켈러이 보고 싶다고 소망하는 것들을 전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넉넉하거나 풍족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마당이 있는 넓고 큰 집은 없을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남들처럼 뛰어나지는 못해도, 높은 자리에 있지는 못해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잘 풀릴 때에만,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일을 빨리 이루어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일을 더디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서,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형통하고 평탄할 때에만 감사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감사할 수 없는 것일까요?
여러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체험하며, 날마다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예비해 놓으신 복을 풍성하게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의 삶 속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항상 넘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