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먼저지...... --어느 동기동창 이야기 (2)
늦가을 찬비가 바람과 함께 휘몰아 쳤다. 오싹한 한기를 참으며 아침 8시반 예약, 평촌한림대 병원을 ?아가 의사를 면담하고 돌아와 점심을 때우고 또 잠을 자고 있었다.
요즘 나는 5년반전 암수술 받은 후유증에 몹시 시달리고 있다. 두어시간 자면 통증이 어김없이 ?아와 일어나야 하고 한두시간 책이나 들고 앉았다가 다시 자기를 반복한다. 이제는 이력이 나 자다 일어나고 또 자다가 일어나고 어느 정도 일상으로 굳어간다. 오늘은 새벽2시반에 깨 아침 병원예약 때문에 또 잘 엄두를 못냈다. 책을 들고 앉았다가 장대비속을 뚫고 병원을 다녀왔다. 한참 곤하게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일산사는 꼴통 동창 Y군이다. 그런데 목소리가 한잔 한것 같다.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비는 걷히고 바람만 몹시 새차게 불고 있었다.
“나야, 여기 과천이야” “과천에 왠일 이니” “오늘 거북이 등산회 모임 있는날 아니니, 지난번에는 경복궁에 단풍 보러 갔다가 明박사가 기절하는 통에 앰블란스가 오고 혼비 백산했고 오늘은 비가 세차게 때리니 이노인들 네명 밖에 안나왔어. 야 비오는 대공원 끝내주더라.” 초문이다. 두산 연구소장을 지낸 明博이 쓸어 지다니. 이젠 나이를 못 이기나?.
“그래 사진 많이 찍었어?” “아니야 비가 휘몰아 치기에 카메라 집에 놔두고 나왔어. 야 그거 아들이 백사십만원 주고 사준건데 비 맞게 들고 나올수 없잖니.”
“내가 여기까지와서 그냥 갈수 없지. 너 며칠 뒤면 치료 받으러 미국 간다는데. 얼굴이나 보고 갈란다. 여기서 몇 정거장 내려가면 범계역 아니냐? 글로 와라. 내 저녁 살께.”
부랴 부랴 옷을 꿰입고 범계역으로 갔다. 범계역에 오랜만에 가서 그런지 엄청 변했다. 서쪽으로 롯데 백화점이 팬시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어디 있을까? 나는 전화를 꺼내들었다.
“어딨어?” “여기 4번출구로 나오니 롯데 지하1층 이야. 밖에서 담배 한 대 꿉고 있어.” 스위스서 샀다는 깃털이 꽃힌 에델바이스 등산모에 스틱까지 갗추고 역시 그는 멋쟁이였다. 백화점 밖이라 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왜 여기 이러고 있어. 안에서 기다리지.” 가만 행색을 보니 오취미성(午醉未醒)같다. 낮술 몇잔을 드리켰는지 덜깬 눈치다. 탁자 위에는 크림빵 두 개를 놓고 앉아있었다.
찬바람이 휘몰아쳐 안으로 들어 갈려다가 순간 여기가 낫겠다 싶었다. 이 친구 목청이 어찌 큰지 커피?에 갔다가는 아무래도 옆 사람 눈치를 봐야 할것 같다. 더구나 한잔 걸쳤으니 횡설수설 할거고.
벌써 두달전인가? 파주출판단지에 가을 세일이 있다고 오라고 성화를 해서 일산 이친구 아파트를 ?아 갔더니 홀애비 신세였다. 온집안이 정리라곤 안되어 있고....
“와이프 어디 갔니?” “응, 요즘 나혼자 있어. 지난번에 프랑스 있는 아들이 와 분당에 아파트를 하나 샀잖니. 대구댁은 요즘 거기 가 있어.”
이친구 늙으니 외소박이다. 끊으라는 담배는 죽어도 안 끊지. 컴퓨터는 아무리 가르켜주어도 아직 켤줄도 모르지. 영어공부는 그렇게 하라고 권해도 서천 뒷전이다. 대구댁은 몇십년 매달려 영어가 좔좔이다. 두 박사 며느리에 기죽기 싫어 기를 쓰고 노력했다. 이친구는 롯데 계열사 부사장까지 지내고도 영어는 꽝이다.
하도 답답했던지 4년선배 윤명조박사가 집까지 ?아와 컴퓨터 개인교습까지 하루 해 주고 가셨는데도 아직도 켤줄도 모른단다. 그러니 대구댁은 분당 아들집 싹 리모델 해놓고 거기가서 안오고.
“혼자 있으니 쓸쓸해 얼마전에 강아지 두 마리를 데려 왔잖니. 그런데 그중 잡종 녀석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다른녀석을 못살게 굴어. 할 수 없어 그녀석 되 갖다가 주어 버렸어. 지금 데리고 있는게 그래도 좀 순종이야. 요즘 홍역을 앓고 있어. 나는 그것도 몰랐지. 한날 맏손녀가 애비 하고 오더니 ‘할아버지 이 포피 아프잖아’ ‘아빠 카드 줘 동물병원 가게’ ‘할아버지 운전 해’ 동네 동물병원 갔더니 홍역 이란거야. 이런 XX랄 개홍역은 약이 없다네. 수의사 왈 어르신네 가서 며칠 지나면 생기 채릴겁니다라네. 화가 나서 서울수의대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초진의 의뢰서를 지참하고 열흘뒤 오라는거야. 화딱지가 나서 수의대나온 XX이 한테 전화 했더니 쌔카만 후배들이 학장하고 병원장 하는데 이름도 모른다는거야. 지금 집에 가면 강아지가 엉망으로 해놓고 날 기다릴거야“
"이 나이에 개를 어떻게 키우니?“ “말 말어, 그거라도 집에 있으니 내가 집에 들어 가는거야” “그런데 말이야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어. 가만 생각하니 내가 이 강아지 어른 모시고 사는거야” “하루 한번 산책 시켜야지, 밥 챙겨 드려야지. 더구나 산책 나갔다가 실례하면 뒷처리 해드려야지” “그걸 알면서 뭐 하러 개는 키워” “그래도 어떻하니 강아지 마져 없으면 나는 적막강산이야”
롯데 6층 식당가로 올라가 뭘 먹겠느냐고 물어 일식집 회정식 한그릇 사주고 굳이 지가 내겠다는걸 내가 여기는 우리동네라고 우겼다. 한시간은 족히 가야 하니 늦기전에 백화점을 나섰다. 다행히 바로 백화점 앞에서 일산 이친구 집앞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백화점 문밖을 나서니 대선 철이라 그런지 빨간 옷을 입은 박근혜운동원들이 일제히 인사를 꾸벅한다. 길건너에는 노란옷을 입은 문재인 운동원들이 마이크를 잡고 차위에서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뒤에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글귀가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XX랄 이세상은 개가 먼저지...'
Dec 1 2012 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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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씨야 memorandum 원문보기 글쓴이: e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