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쌀쌀함을 넘어 겨울의 추위를 느끼게 하는 겨울의 문턱, 연중 제 33 주일을 맞는 오늘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6년 11월의 자비의 특별 희년을 폐막하면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연중 제 33 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선포하셨습니다. 연중 시기의 마지막, 겨울로 접어드는 이 시기 우리 곁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특별히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황님은 그 날을 제정하시고 전 세계 모든 교회가 교회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인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신자들이 이 날의 의미에 함께 동참하기를 촉구하십니다. 이 같은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날을 합당히 준비해야 할 신앙인의 믿음의 자세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가 들려주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선언입니다. 하느님이 모든 이를 심판하실 최후의 날, 미카엘 대천사가 나서고 나라가 생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재앙이 다가올 것이라고 예고하는 다니엘 예언자는 그 때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지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때에 네 백성은,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또 땅 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수치를,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다니 12,1ㄴ-2)
세상의 마지막 날,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반대로 어떤 이들은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는 다니엘 예언자의 이 말씀은 그 말씀을 듣는 이들로 하여금 두려움과 공포를 자아냅니다. 과연 나는 어느 편에 속할 것인가라는 불안함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화답송의 시편 말씀 역시 이 같은 불안한 마음으로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이의 심정을 대변하듯 느껴집니다. 화답송의 시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시편 16(15),1)
심판의 날을 앞둔 이들의 불안한 마음이 여실히 표현된 오늘 말씀의 흐름은 오늘 복음 말씀으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오늘 복음 역시 예수님의 입으로 전해지는 마지막 심판의 날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날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마르 13,24-25)
해와 달이 제 빛을 내지 못하고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며 세상의 모든 것이 뒤흔들릴 그 날,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오시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오는 날, 오늘 제 1 독서의 다니엘 예언자가 예고한 그대로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영원한 치욕을 얻게 될 그 순간, 그 날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은 그 날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마르 13,28-30)
자연의 변화를 보고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듯이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로부터 예고된 최후의 날, 사람의 아들이 올 그 날에 대한 그 모든 예언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제 1 독서의 다니엘 예언자의 예언의 말씀, 오늘 화답송의 시편이 이야기한 그 날을 준비하는 이들의 마음의 표현 그리고 오늘 복음의 예수님에 이르러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 때가 정말 가까이 다가왔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은 오늘 복음의 마지막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의미심장하게 남기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마르 13,32)
정말 가까이 다가온 그 날은 그러나 정작 정확한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오직 하느님 아버지만이 알고 계신 그 날과 그 시간이기에 우리는 그 때를 준비해야 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그 준비의 모습은 과연 어떠해야 할 것인가? 이제 곧 다가온 그 날을 준비하기 위해, 영원한 치욕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같은 실천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이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의 말씀을 인용한 오늘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는 날, 세상 모든 이들이 그 분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그 날, 하느님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 방법은 다름 아닌 ‘늘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 날과 그 시간을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잠들어 있는 삶이 아닌 늘 깨어 있는 자세로 그 날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깨어있음이란 단순히 잠들지 않는 육체적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삶’, 다시 말해 끊임없이 하느님께 다가가고 그 분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영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모든 예언자들이 예고한 그날, 예수님이 이제 그 때가 곧 다가올 것이라고 예고한 그 날, 사람의 아들 앞에 떳떳이 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 하루의 수고를 기꺼이 감내합니다. 희생된 오늘을 바탕삼아 보장된 미래를 꿈꾸는 삶, 그 삶은 어찌 보면 미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갖고 있는 우리들의 인간적 본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는 마음,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현재를 포기한 채, 그 포기의 대가로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과연 많은 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현재를 희생하여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지금을 포기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내 삶을 투자한다면 과연 내가 바라는 대로의 미래가 약속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미래는 결코 현재의 희생을 통해 보장받는 것이 아닌 충실한 오늘의 삶이 곧 보장된 미래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미래를 준비하는 삶, 다가올 그 때를 준비하는 삶은 그저 지금의 삶을 희생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금 이 순간, 언제가 될지 모를 그 시간을 초조한 마음으로 불안하게 보내느라 현재를 허비하고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이 바라시는 참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한다면 그 삶이 바로 보장된 미래, 언제 올 지 알 수 없으나 언젠가는 올 그 날을 준비하는 가장 합당한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 2 독서의 히브리서 말씀은 영원한 대사제 그리스도 예수님,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시고 영원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계신 대사제 그리스도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의 법을 넣어주시고 우리 생각에 하느님의 법을 새겨 주심으로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삶. 그 삶이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합당한 삶이며,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송동 교우 여러분, 오늘 화답송의 시편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느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그 길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그 기쁨에 넘치는 행복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이 가르치는 헛되고 허망한 죽음의 길이 아닌 하느님이 일러주시는 참 생명의 길, 세상이 말하는 허황된 장밋빛 미래가 아닌 하느님이 보장해 주시는 참 행복의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 길은 오늘 복음환호송이 말씀하듯이 늘 깨어 기도하는 삶, 매 순간 좋으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마련하신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깨어있는 분별력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어제부터 11월 위령 성월 동안 본당에서는 석지랑 작가 분들이 돌 하나하나에 새긴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의 이름과 약전이 기록된 작품을 전시중입니다. 10년 전 4월, 어처구니없는 인재로 소중한 생명을 잃은 세월호 참사 모든 희생자들의 영혼이 참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으로부터 따뜻한 위로와 안식을 얻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울러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계신 모든 유가족분들에게도 하느님의 위로와 평화가 내려지길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오늘, 가족을 잃은 슬픔에 가장 가난한 마음으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모든 유가족분들에게 오늘의 미사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소망할 뿐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는 오늘, 여러분 모두가 오늘 들은 이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언제나 깨어 기도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실천을 통해 하느님 안에서 기쁨 가득한 나날을 보내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