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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상 ‘화훼초충도’ (58.0x31.5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의 美_꽃
소박해서, 은은해서, 아름다워서
꽃은 존재만으로도 인간에게 무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오랜 시간 우리 곁에서 사랑과 번영, 존경과 고귀, 재생과 영생을 상징해왔다. 그러나 꽃은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여인의 고혹적인 자태는 언제나 꽃에 비유되고, 시대를 주무른 미인의 이름에는 응당 꽃이 들어간다. 1918년에 발행된 <조선미인보감>에는 당시 서울 4개 조합에 소속된 기생들이 소개됐는데, 기생 총 487명 중 꽃에 관한 여인은 언제나 꽃이고자 하고, 세인은 이 아름다움을 경계하면서도 즐기고 탐하려 함이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다. 우리 민족은 여기서 나아가 꽃에 이상향과 윤리 의식을 담아 메시지를 전했다.
‘백자 상감연화당초문 대접’ (높이 7.6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꽃에 더한 윤리성, 화품
어떤 꽃은 화려하지만 지고 난 뒤의 모습이 추해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부에 비유되고, 어떤 꽃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지만 오래 피어 있어 높게 평가받는다. 이는 꽃을 사랑의 전령으로 여기고 무수한 꽃말을 만들어낸 서양의 인식과 좀 다르다.
그 때문에 시각적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인간에게 삶의 지표를 전할 수 있는 꽃이 오히려 사랑받았고, 귀하게 대접받았다. 이는 한국인의 독특한 미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매화와 국화다. 조선 중기 의병장을 지낸 유학자 정희맹이 쓴 글을 보자.
"돌이 갈라지고 얼음이 언 언덕에 모든 꽃이 시들어지고, 서리가 천지에 가득 내려 모든 생물이 초췌하게 되어도 매화와 국화는 추위를 무릅쓰고 홀로 아름답게 피어난다. 이 또한 군자의 절개를 상징하는 것이다. 군자는 그 절개를 굳게 지키고 가난하고 천한 곳에서도 바꾸지 아니하고 무력으로 위협을 당하는 경우에도 결코 굴하지 않으니, 즉 정정(亭亭)하여 늦게 시들고 울울(鬱鬱)하여 변치않는 자와 같은 유(類)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아, 확연히 스스로 난세에도 변하지 아니함을 견지하나니 고로 강한 바람에도 굳센 풀을 알 수 있고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충신을 알 수 있나니….
이런 시각은 ‘화품(花品)’을 만들어냈다. 앞서 말한 <화왕계>에서도 꽃의 등급이 등장하는데, 본격적인 화품론은 강희안의 ‘화목구품(花木九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품: 솔, 대, 연, 국화, 매화
1474년에 강희안이 쓴 원예서 <양화소록>에는 꽃을 취하는 법이 기록돼 있는데, 이를 보면 그가 나눈 화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무릇 화훼를 재배하는 것은 오직 마음과 뜻을 더욱 닦고 덕성을 함양하고자 함이다. 그 운치와 격조, 절조가 없는 꽃은 관상할 것이 못 되니 울타리나 담장 밑 아무 곳에나 심어 가까이하지 않을 것이다. 가까이하면 열사(烈士)와 비부(鄙夫)가 한집에 사는 것 같아 품격이 전혀 없다.’"
작가 미상 ‘모란도’ (242.0x74.0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시대 대표 화훼서로 <양화소록>과 짝을 이루는 <화암수록>에도 꽃의 구등품제가 등장한다. <화암수록>을 편찬한 유박은 벼슬에 오르지 않고 오로지 원예에만 심혈을 기울인 인물이다. 그는 ‘기쁠 때도 화날 때도 시름에 겨울 때도 즐거울 때도,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도 언제나 화병의 꽃에 기대어 내 몸뚱어리를 이렇게 인생을 꽃에 바친 사대부가 저술한 <화암수록>에도 1품은 솔, 대,연, 국, 매로 강희안이 매긴 품과 같다. 당시 선비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꽃을 즐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꽃을 염(艶), 명(名), 은(隱), 선(禪)의 4가지 품격으로 구분했다. 염화는 깊은 산골짜기에 나서 이름은 들어봐도 쉽게 볼 수 없는 것, 명화는 모란이나 작약처럼 탐스럽고 고귀한 품격을 지닌 것, 은화는 무성한 수풀 속에 있어 가까이는 할 수 있어도 친하게 대할 수는 없는 것, 선화는 진흙에서 나오는 연꽃뿐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피었다 시들며 쉴 새 없이 피는 목근(무궁화)이나 아침에 벌어졌다가 밤이면 오므리는 금훤화(노란 원추리) 같은 것을 뜻한다. 이는 꽃의 생태를 인간사에 비유해 평가한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쉽게 취하지 않고, 삶의 이치에 부합하지 않는 꽃은 부러 멀리하기까지 하며, 청렴한 삶을 살고자 한 선비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금동제두발장식’ (길이 8.5cm, 고려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움직일 때마다 꽃과 잎 장식이 파르르 흔들리며 화려함을 더하는 떨잠으로, 고려 시대의 수준 높은 세공 기술을 엿볼 수 있다.
민족의 삶 속 깊숙이 밴 꽃의 향기 우리나라의 수많은 예술 작품을 보면 우리 선조가 은은하고 소박한 미를 사랑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꽃 감상도 마찬가지다.화려한 꽃에 취한 사람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매화나 국화, 이화,수선화 사랑은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을 대변한다. 한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꽃 역시 매화나 연꽃, 국화, 도화 같은 것들이다.
"‘무릇 심어놓은 나무의 꽃은 모름지기 그 피어날 때의 천진스러운 기틀과 아리따운 모습을 관상할 것이요, 꼭 멀리서 진귀한 품종을 구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도리어 돈을 낭비하게 하고 마음에 누를 끼치게 할 뿐이다.’ "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랑받는 꽃은 봄소식을 알리는 영춘화와 야생에 피는 민들레, 앵두꽃 같은 것이다. 특히 영춘화는 기나긴 기다림 끝에 만나는 첫 꽃이라는 이유로 그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어느 부잣집에 중이 시주를 청하러 갔는데 주인은 ‘개똥도 없소!’라며 박대했다. 반면 이웃의 가난한 사람은 정성껏 시주했다. 중은 짚으로 그릇을 하나 만들어주고 사라졌는데, 그 속에서 쌀이 계속 쏟아져 나와 가난한 사람은 곧 부자가 됐다. 주인이 놀라 그것을 울타리 밑에 묻었는데 거기에서 개나리가 자라 꽃을 피웠다고 한다. 한국이 원산지라 봄이면 지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개나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만큼 얽힌 설화도 많다.
어느 어촌에서 해마다 목이 셋 달린 이무기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 김 첨지 딸의 차례가 되어 모두 슬픔에 빠진 사이, 용사가 나타나 자신이 이무기를 처치하겠다고 나섰다. 용사는 자신이 100일 후에 돌아올 것이며 배에 단 깃발이 흰색이면 승리해 돌아온 것이요, 붉은색이면 패배해 죽은 것으로 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처녀는 100일 동안 높은 산에 올라 수평선을 바라보며 매일 기도했다. 이윽고 100일 후 용사의 배가 나타났으나 배에는 붉은 깃발이 펄럭였다. 처녀는 절망한 나머지 자결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무기의 피로 인해 깃발이 물든 것이었다. 처녀가 자결한 자리에서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나 군락을 이뤘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백일홍이라고 했다. 백일홍 같은 붉은꽃에는 유독 누군가 죽어 환생했다는 전설이 많다.
경북 경산군 일대에서 전승하는 한장군놀이의 꽃관이 대표적인 예다. <경산군지>에 따르면 도천산 밑에는 버들못이 있는데, 장군은 여자로 가장해 그의 누이동생과 화려한 꽃관을 쓰고 못둑에서 춤을 췄다고 한다. 이놀이에서 꽃관은 여장 남자 2명이 쓰는데, 기록에는 꽃관의 높이가 10척이나 된다고. 신성한 물건이기 때문에 단오제를 지내기 전에 사람들은 꽃관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다 단오굿이 끝나면 앞다퉈 꽃송이를 따간다. 이 꽃송이를 몸에 품으면 불행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꽃싸움 / 한용운
당신은 두견화를 심으실 때에 ‘꽃이 피거던 꽃싸움 하자’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안중식 ‘도원행주도’ (143.5×50.7cm, 일제 강점,국립중앙박물관) 桃源行舟圖 安中植
봄을 보내는 전춘(餞春)놀이
이를 전춘놀이라고 한다.
못 다핀 도리화는 어이하고 가려난다/ 아희야 괸 술 걸러라 가는 봄을 전송하랴’
와 같은 작가 미상의 시조가 전춘 때 불린 것이다.
기생을 뜻하는 꽃,
한편, 춘향은 변사또에게 자신은 이몽룡과 가약을 맺은 몸이니 노류장화(路柳牆花)로 취급하지 마라고 한다. 노류장화는 길가의 버들이나 담장밖의 꽃처럼 누구나 꺾을 수 있는 꽃이란 뜻으로, 주로 기생을 일컫는다.
글 김선미(자유기고가) 자료협조 국립중앙박물관 참고도서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1> (이상희 지음, 넥서스BOOKS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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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