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 동천동에 자리한 영남네오빌 아트는 현재 어느 아파트보다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2005년 8월까지만 해도 이 아파트 주민들은 동분서주 뛰어다녀야 했다.
입주하자마자 시공사인 영남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이란 날벼락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소유권을 이전받지 못하게 되었고 입주민들은 6개월이 넘는 기나긴 투쟁을 펼쳐야 했다. 이들은 포근한 보금자리여야 할 아파트를 박차고 거리로 나서야 했다.
원칙대로라면 2004년 10월 첫 입주한 주민들이 시공사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아야 할 때.
하지만 시공사 영남건설의 기습적인 법정관리 신청으로 주민들은 예기치 않은 불행을 겪었다. 국민주택기금 230억 원을 대출받은 영남건설은 이를 갚을 능력이 없다며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당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맡았던 손규성(39)씨는 “영남건설에서 입주민들이 대출을 많이 받을 거라 예상했지만 우리는 거의 대출을 받지 않고 분양금을 완납했다”라고 설명했다. 국민주택기금을 빌려준 채권 은행이 아파트 건물에 대해 가구당 3천3백만 원 정도의 근저당을 2월에 설정했다. 주민들은 소유권을 넘겨받지 못하고 옴짝달짝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평안한 아파트 생활을 꿈꾸던 주민들의 충격이 컸다. 여기저기서 절망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다고 주민들은 그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2005년 2월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고 비상총회가 열렸다. 총회에서 직접 주민들이 거리로 나서 억울함을 토로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청와대는 물론 국회나 대구시에 끊임없이 탄원을 하면서 도움도 요청하는가 하면 다음 카페를 통해 주민들끼리 여러 의견도 나누고 정보도 공유하기로 했다.
주민들은 7개월 가량 대구시청을 비롯해 경기도 과천에 있는 건설교통부, 채권 은행 등 가릴 것 없이 집회를 열었고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주민들의 단합된 노력은 결국 빛을 발했다. 2005년 8월 말 영남건설 측이 230억 원의 빚을 갚기로 한 것이다. 손씨는 “물론 노력도 있었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동안 주민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건축업을 하는 손씨는 7개월 동안 거의 자기 일을 못할 정도였다. 손씨는 “매일같이 자정이 넘어 귀가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토로했다. 그로 인해 부인에게 잔소리도 많이 들어야 했다. 전대호(45)씨는 “한때 유언비어가 많이 나돌아 주민들의 동요가 많았다. 그럴 때는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라고 당시를 술회했다.
하지만 ‘비 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라는 옛말처럼 이 아파트는 그런 홍역을 치른 뒤 더욱 건실해졌다.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칠곡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 대우받고 있다. 첫 분양가 1억2천만 원이던 33평형이 현재는 2억2천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또한 2005년 9월 한마음주민축제를 크게 벌여 주민들은 지금까지의 고생을 훌훌 털어버렸다.
1천200여 명이 참석한 그 자리에선 서로 단합된 힘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자부심 깃든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이임숙 부녀회장은 “우리 아파트만큼 주민들끼리 단합이 잘 되는 곳은 드물 것”이라고 자신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