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내 아이'를 맡기거나, '남의 아이'를 보호해 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뜻을 가지고 부모와 교사가 육아의 책임 담당자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곳이다. 공동육아에 대해 1도 몰랐던 나는 두 아이가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시나브로 알아가게 되었다.
2019년, 1년 차
‘아이는 혼자 키우는 게 아니라, 함께 키우는 것’이라는 가치에 끌려서 선택한 공동육아. 혼자보다는 같이, 내 아이만 아니라 내 아이와 함께하는 아이도 같이. 막연한 따스함이 마음을 채우고 기대감을 더했던 시작이었다. 일반 어린이집에서의 생활을 힘들어했던 첫째가 즐겁게, 신나게, 편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도 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첫째 7살, 둘째 5살에 '작은나무숲'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났다. 첫해는 두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만큼 나도 남편도 하나하나 경험하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이들만큼이나 부모인 우리도 새로운 만남이 계속되었다. 방모임, 운영회의, 부모 교육 모임, 부모 공연 준비, 가족 들살이, 단오 잔치, 주말 청소, 밤 모임…. 참 자주 만났다. ‘뭐 이렇게 모임이 많아.’ 그러면서도 모일 때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이 들어 친구를 사귀는 일은 쉽지 않은데 아이들 덕분에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알아가며 함께할 수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았던 시간, 서로의 이야기에 함께 웃고 울었던 순간들, 마주 잡았던 손의 온기와 떨림을 떠올리면 지금도 따스하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다. 봄에는 진달래 화전, 쑥떡 해 먹고, 여름에는 땀 뻘뻘 흘리며 곤충 잡느라 뛰어다니고 첨벙첨벙 물놀이도 하고. 가을에는 도토리며 밤이며 한 주먹씩 주어와 선물이라며 내밀고, 겨울에는 산길 내리막에서 낙엽 썰매 눈썰매 타며 활짝 웃었다. 모두가 꽃처럼 환하고 예뻤다.
2020년, 2년 차
두 번째 해는 그야말로 공동육아의 진수(眞髓)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1년 차가 선배들이 차려 준 밥상을 맛있게 먹는 시간이었다면, 2년 차는 밥상에 무엇을 올릴지, 어떻게 맛을 낼지 하나하나 준비하고 정성껏 차려내는 시간이었다. 어린이집의 한해살이를 교사들과 함께 고민하며 계획하고 준비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을 함께 운영하며 한 자리씩 맡아보았다. 한 자리 맡았으니 당연히 따라오는 무게감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부모들이 즐겁게, 교사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데 집중할 수 있게 운영진으로서 일했던 한 해.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며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특별히 코로나 상황에서 어떻게 어린이집을 운영해야 할지 막막했다. 거듭되는 회의에도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하라고 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운영진은 매번 앞서 고민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했다.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조정하기를 반복했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을 배웠다. 소통하고 함께하는 것의 중요성을 몸소 익혔다.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같이 맛있는 거 배불리 먹고 수다 떨면서 풀어냈다.
형이랑 꼭 붙어 다니던 둘째는 형이 졸업하고 6살이 되어 혼자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7살 형들을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놀았다. 산에서, 계곡에서, 어린이집 여기저기서 신나게 놀았다. 5살 동생들 앞에서는 의젓한 형, 다정한 오빠이기도 했다.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학교 가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그때, 둘째는 그래도 작은나무숲(아이들이 다녔던 공동육아 어린이집)이었기에 안전하게 즐겁게 지냈다.
2021년, 3년 차
벌써 3년이라니. 형들 따라다니느라 바빴던 5살 꼬꼬마 둘째가 이제는 7살 왕형님이 되었다고 대장 노릇을 하곤 했다. 정말 쑥 자랐다. 아이와 함께 작은나무숲에 온 나는 얼마나 자랐을까. 생각이 더해지는 시간이었다. 둘째까지 졸업하고 나면 3년을 매일 같이 오갔던 이곳에서 한 발짝 물러서게 될 텐데…. 졸업하고 나서도 습관처럼 어린이집 주변을 지나가게 된다는 졸업생 엄마들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매일 수도 없이 울렸던 카톡 알람이 너무 조용해 이상하고, 매일 만났던 얼굴들, 나눴던 인사들, 수다들이 그토록 그리웠다는 이야기도 기억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나는, 우리는 또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며 살게 되겠지만, 작은나무숲에서 보낸 3년이 불쑥불쑥 생각나겠지.
9살이 된 첫째는 동생을 데리러 가는 길에 이따금 함께했다. 작은나무숲을 다녔던 7살이 제일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첫째. 5살 때 이사했으면 3년 동안 다닐 수 있었을 텐데 좀 아쉽다고. 그래. 엄마도 그게 참 아쉽다. 동생이 졸업해도 가끔 작은나무숲에 가서 그네도 타고 놀고 싶다는 아이의 이야기에 왠지 가슴이 찡하기도 했다. 우리집 예민남 첫째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이곳이 참 좋았구나 싶다. 둘째는 한술 더 떠 자기도 아이를 낳으면 작은나무숲에 보내겠단다. 그때까지 꼭 작은나무숲이 있어야 한단다. 무슨 말을 더하랴.
작은나무숲에서 우리가 보낸 시간은 3년이지만 이곳에서 시작된 만남은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기나긴 육아를 앞으로도 공동으로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돌아보니 ‘공동육아’는 정말 ‘공동’(共同, 둘 이상의 사람이나 단체가 함께 일을 하거나, 같은 자격으로 관계를 가짐) ‘육아’(育兒, 어린아이를 기름)다. 아빠, 엄마, 형, 누나, 동생 가족 모두가 함께하니 공동육아. 교사랑 부모가 함께 하니 공동육아. 내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도 함께 돌보니 공동육아. 더 많은 이들이 ‘독박육아’ 말고 ‘공동육아’를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