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불교신문 연재)
한국미술의 틀린 용어 바로잡기 (4회)
2-①. 연화화생(蓮花化生)→만병화생(滿甁化生)

도 1. 금동여래좌상, 4세기 초, 중국
꽃병을 만병이라는 용어로 올바로 자리매김하는 것으로 단순히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만병에서 변형된 꽃(영화시킨 꽃) 같은 것이나 현실에서 보는 꽃이 나오므로 사람들은 만병에서 꽃 같은 것만 나오는 줄 알 것이다. 만병에서는 꽃, 즉 통틀어 영기꽃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만병에서는 용이나 여래나 여러 가지 영기문들, 더 나아가 만물이 생겨난다. 여태껏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항아리에서 여래가 나온다니 그럴 수가 있는가! 지극히 형이상학적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불교경전, 즉 『법화경』에 <蓮花化生>이라는 말이 나오고,『무량수경』에는 <蓮花化生>이란 말과 함께 <自然化生>이란 말이 나온다. 이 <자연화생>이 기막힌 말인데 사람들은 그리 쓰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연화화생>이란 말은 많이 쓰고 있지만, 실은 미술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연화화생에 관하여도 진지하게 연구한 경우는 거의 없으니 다양한 영기화생의 도상은 더 이상 말해 무엇 하랴! 연꽃에서 여래나 보살이 나타나는 것을, ‘탄생’한다는 말은 하지 않고 ‘화생(化生)’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그런데 화생이란 용어를 분명이 파악하려면 간단하지 않다. 단지 ‘홀연히 나타난다는 것을 화생이라 한다.’고만 흔히 말하고 있으니 화생의 참뜻을 알 수 없다. 매우 어렵지만, 화생이란 용어를 간단히 설명해보기로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생명의 탄생방법을 불경(佛經)에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등이다. 그런데 화생은 나머지와는 달리 어떤 과정도 거치지 않고 홀연히 나타나는 것을 뜻하며, 여래나 보살, 여신(女神) 등 신성한 존재가 탄생하는 경우에만 화생이란 말을 쓴다. 바로 연꽃에서 탄생하는 것을 <연화화생>이라 부른다. 그런데 연꽃에서 무엇이 어떻게 탄생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연꽃에 갖가지 영기문을 부여하여 영화시킨 다음에야 여래나 보살이나 신(神)들이 화생하는 것이다. 그 세계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고차원의 형이상학적 세계이며 영적(靈的)인 세계이다.
여러분이 살면서 공덕을 많이 쌓으면 죽은 후에 아미타여래나 관음보살의 도움을 받아 아미타 서방세계의 연못에서 연꽃을 통하여 부처님 앞에서 <연화화생>한다고 말한 데서 연화화생이라는 말을 누구나 쓰고 있지만, 여래나 보살이 연꽃에서 탄생한다는 말은 어느 경전에서 아직 접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조형미술에서는 반드시 연꽃 형태에 갖가지 영기문을 부여해가며 영화된 연꽃, 즉 영기꽃에서 고귀한 존재가 화생하는 도상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왔다. 그러므로 바로 이 경전에 나오는 <연화화생>이란 말 때문에 연꽃이 영화된 까닭도 알 수 없었고, 그 밖에 ‘무한히 다양하게 전개하는 화생하는 방법’을 나타낸 도상이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 경전의 용어가 화생을 파악하는데 오히려 큰 걸림돌이 된 것이다. 조각이나 회화에서는 여래나 보살 등은 반드시 연꽃 위에 앉아 있거나 서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고 ‘여래나 보살이 연꽃에서 화생하는 광경’이라고 논문에서 써야 한다. 나 자신도 10년 전에는 연화화생의 의미를 확실히 몰라 그렇게 써왔었지만 그렇게 쓰면 틀린 말이다.
그러면 연꽃이란 무엇인가? 연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경전에 수많이 등장하고, 조형미술에도 수많이 등장하고 있으니 연꽃을 보고 불교를 떠올릴 만큼 불교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바로 이 고정된 관념이 불교미술을 이해하는데 역시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즉 연꽃만 보이지 다른 꽃은 처다 보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연꽃만이 성스럽고 물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연꽃뿐만 아니라 모든 꽃은 아름답고 물이 없으면 자라지 못하고 꽃도 피우지 못하므로, ‘모든 꽃에서 여래나 보살이 탄생’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고 무한히 다양한 도상의 창조가 가능하다. 좀 더 꽃의 본질을 설명해보자. 아름다운 색이나 형태의 꽃잎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꽃에는 씨방이 있다는 것’이고 ‘씨방 안에는 무량한 씨앗들’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씨앗이 생명의 근원이어서 이 우주에서는 씨앗(식물)이나 씨알(동물)에 의하여 생명을 영원히 생성하여 지구나 우주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씨앗이나 씨알이 아닌 <형이상학적인 생명의 근원>을 우리는 도(道)라고 부르고 태극(太極)이라 부르고 영기(靈氣)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씨앗이나 씨알이 생명의 근원이듯이 도(道), 태극, 영기 등이 생명의 근원이어서 거기에서 만물이 생겨나는데 여래나 보살과 신(神) 등은 도(道)나 태극, 이(理) 등, 보이지 않는 근원적인 형이상학적 무(無)를 조형적으로 표현한 유(有)를 영기문(靈氣文)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원래 이름이 없어서 나 자신이 만든 이름이고 용어이므로 여러분은 합당하다고 생각하면 그 용어를 써도 좋다. 그동안 영기문이라고 하는 무량한 조형이 있음을 처음으로 밝혔지만, 이름도 없고 이름이 있다손 치더라도 틀린 용어가 대부분이다. 즉 <영기-영기문-영기화생>이라는 <영기화생론>이라는 사상을 차차 정립하여 가면서 비로소 우리가 그동안 써온 용어들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영기화생이란, 영기를 조형화한 영기문에서 여래가 화생하는 것’을 뜻한다. 무량한 영기문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만병이며, ‘만병에서 화생하는 것을 만병화생’이라고 역시 용어를 새로 만든 것이다. ‘항아리나 병에서 솟아오르는 영기문 전체 모양을 나는 만병이라 부른다.’

도 2. 대좌 부분, 만병

도 3. 만병의 채색분석
바로 그 만병에서 여래가 화생하는 조각품을 중국에서 가장 오랜 간다라 양식의 조각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간다라 양식을 따른 4세기 초의 금동불로 유명한 초기 중국 불상이다.(도 1) 높이는 33센티. 어깨에서 돋아나는 긴 돌기 같은 것들은 불꽃무늬라고 흔히 말하지만 여래의 몸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이다.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여래는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지 않고 사자좌(獅子座)에 앉아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포그 박물관’에서 나는 여러 번 그 작품을 손에 들고 조사했지만 그 당시에는 대좌에 표현된 만병이 물론 눈에 띨 리 없었다.(도 2) 나이 70세에 이르러 만병에서 여래가 화생한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 만병을 선으로 그려보니 연꽃 같으면서 연꽃이 아닌 영기꽃이 작은 둥근 항아리에서 사방으로 솟아올라 퍼지고 있다. 추상적영기문을 이렇게 구상적인 연꽃처럼 표현하되 자세히 보면 연꽃이 아니다. 인간이 창조한 영기꽃이다. 그 만병을 채색분석해 보았다.(도 3) 실제 연꽃에서는 아무 것도 탄생하지 않지만, 영화시킨 영기꽃에서는 만물이 화생한다. 연화화생이 아니고 만병화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