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텅구리’라고 하면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자기 주변에 있는 아둔하고 어리석은 ‘멍청이’가 아닐까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멍청이’와는 다른 것을 떠올릴 수도 있다.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라면 ‘뚝지’라는 물고기나 새우잡이 ‘멍텅구리 배’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고, ‘고스톱’에 이골이 난 사람이라면 열 끗짜리 화투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낚시를 취미로 하는 사람은 낚시의 하나인 ‘멍텅구리 낚시’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이렇듯 ‘멍텅구리’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과연 이와 같은 의미들이 서로 연관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무관한 것인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서로 관련이 있다면 그 본래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그런데 이들 여러 의미가 서로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울러 ‘멍텅구리’의 본래 의미가 ‘뚝지’라는 물고기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멍텅구리’가 본래 ‘뚝지’라고 불리는 물고기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고기’를 가리키는 단어가 어떻게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는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뚝지’라는 물고기의 속성을 이해하면 그러한 의구심은 말끔히 가신다.
‘뚝지’는 도칫과의 바닷물고기이다. 몸이 통통해서 아주 못생긴 데다 동작마저 굼뜨고 느리다.
그래서 아무리 위급한 때라도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한번 바위에 붙으면 ‘날 잡아 잡수시오’ 하고 떨어질 줄 모른다.
그러니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어부가 실수로 바위에 떨어뜨려도 몸을 움직여 살 궁리를 하지 않는다.
세상에 이보다 모자란 물고기는 없을 것이다.
이 물고기를 가리키는 ‘뚝지’라는 이름만 보아도 이것이 얼마나 무뚝뚝해 보이고 미련한 물고기인지 알 수 있다.
‘뚝지’의 ‘뚝’은 ‘뚝머슴(무뚝뚝하고 융통성이 없는 머슴)’, ‘뚝심(좀 미련하여 불뚝 내는 힘)’, ‘뚝집(성격이 무뚝뚝한 사람)’ 등에서 보듯
‘무뚝뚝하고’, ‘미련하고’, ‘융통성이 없는’ 대상을 지시하는 데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멍텅구리’라는 단어를 통해서도 이 물고기가 아둔한 속성을 가진 물고기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 ‘멍텅구리’라는 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일찍부터 ‘멍텅구리’의 어원을 한자어 ‘朦聽骨(몽청골, 듣는 데 어두운 골격)’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아울러 ‘멍청이’의 ‘멍청’도 한자 ‘朦聽(몽청)’에서 변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했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한자부회(漢字附會)에 의한 민간어원이어서 믿을 수 없다.
한편, ‘멍’을 의태어, ‘-텅’과 ‘-구리’를 모두 접미사로 보는 어원설도 있다.
그러나 의태어와 여러 접미사가 결합되어 물고기 이름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이 어원설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멍텅구리’에 쓰인 ‘멍텅’은 ‘흐리멍텅하다’의 ‘멍텅’과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흐리멍텅하다’는 비표준어이고, 그 표준어는 ‘흐리멍덩하다’이다.
‘흐리멍덩하다’는 17세기 문헌에 ‘흐리믕등다’로 나온다.
그렇다면 ‘멍텅’은 ‘멍덩’에서 변한 것이 되고, ‘멍덩’의 이전 어형은 ‘믕등’이 된다.
그런데 이 ‘믕등’이나 ‘멍덩’, ‘멍텅’의 어원은 알 수 없다.
다만 ‘흐리멍덩하다’나 ‘흐리멍텅하다’의 의미를 통해 볼 때 이들은 ‘맑지 못하고 똑똑하지 못한 것’을 지시하는 데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멍텅구리’에 쓰인 ‘멍텅’의 의미도 그 물고기가 갖는 속성을 고려하면 ‘맑지 못하고 똑똑하지 못한 것’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한편, ‘구리’의 정체는 더 아리송하다. 다만 ‘몽구리(중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라는 단어에 쓰인 접미사 ‘-구리’와 같은 성격의 것으로 짐작된다.
접미사 ‘-구리’는 놀림을 받을 만한 대상을 지시할 때 쓰이는 말로 여겨진다.
이렇게 보면, ‘멍텅구리’는 ‘똑똑하지 못하고 아둔한 대상’을 놀림조로 부르는 말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멍텅구리’라는 말을 통해서도 이 물고기가 게으르고 아둔한 물고기임을 짐작할 수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보았듯, ‘멍텅구리’라는 물고기는 못생기고 동작이 굼뜨고 느려 터진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러니 위험이 닥쳐도 거기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고 또 벗어나지도 못한다.
이 물고기가 갖는 굼뜨고 우둔한 속성이 인간에 투영되어 ‘판단력이 없어서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할 줄 모르는, 바보 같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생겨난 것이다.
이는 ‘멍청이’가 갖는 의미와도 같다.
여기서 더 나아가 ‘멍텅구리’는 ‘고스톱’에서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열 끗짜리 화투를 가리키게 되고,
한곳에 정박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새우잡이 배까지 가리키게 된다.
점수 나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열 끗짜리 화투나 돛도, 키도, 노도 없이 닻만 바다 깊숙하게 박은 채 온갖 풍파를 겪는 새우잡이 배는 어찌 보면 미련하고 바보 같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도 ‘멍텅구리’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출처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동사리ㅡ우리바다 어류도감
뚝지ㅡ국립수산과학원 수산생명자원정보센터
첫댓글 이런 물고기가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