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발표작
느린 날의 동행
이숙경
묵호 가자 한마디에 동해가 출렁거려
하던 일 다 제치고 무조건 따라간다
혼자서 나서지 못해 깊숙이 묻어둔 곳
가다 쉬고 쉬다 가는 모처럼 찾은 여유
막무가내 떠들썩 파랑으로 굽이치는
한물간 우리의 노래 해안선 휘몰아 간다
질척한 삶 짊어지고 오르는 논골담길
바다를 끌어안은 바람의 언덕 위로
당차게 가닥을 잡은 파도같이 넘쳐 본다
신작
때때로 주의보
열릴 곳 다 열렸는지 자꾸만 쳐다보면
닫힌 곳 하나 없이 사로잡는 그 열기
갈수록 벽창호같이 폭염으로 옥죄네
닫힐 곳 닫혔는지 채근에도 불구하고
열린 곳 전혀 없이 파고드는 이 한기
한사코 강다짐하는 혹한이 오고 마네
툭하면 변덕스레 사방을 움켜쥐려
햇살을 걸고넘어지는 비바람 눈서리
불온한 어둠에 숨어 한바탕 치고 가네
버려지는 동안
풀숲을 거니는데 슬몃 기어들어 와
한눈팔기 기다려 옷 솔기 매복한 채
골똘히 노려본 종아리 널따란 한복판
물리고 말았으니 손쓰기도 늦은 일
내가 아니었다면 누굴 또 해쳤겠지
고까짓 진드기 하나에 소름 돋는 잠시간
해만 끼치는 것 없앨까 망설이다가
움츠린 작은 생명 처지가 딱해 보여
툭 던져 어질증 나게 혼쭐내고 마는 벌
<대구시조> 2023. 제 27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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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날의 동행 외 2편 / 이숙경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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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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