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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수정교회 주일설교]
2026.2.8(주일) 사사기 17:1~13 “왕이 없으면, 내가 왕이 됩니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 C.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뿐이다. 하나님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하나님으로부터 '그래, 네 뜻대로 해라'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사기 17장은 후자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겉으로 보면 종교적인 열심이 가득합니다. 은을 헌물하고, 신상을 만들고, 제사장을 고용합니다. 하지만 그 풍경 어디에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내 소원을 들어주는 기계'로 전락해 있습니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날까요? 사사기 기자는 6절에서 그 원인을 단 한 문장으로 진단합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할 때, 인간은 반드시 '나'라는 우상을 왕좌에 앉힙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의 왕좌에 누가 앉아 있는지 정직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이 왕이 아니면, 내 생각이 왕이 됩니다 (1–4절)
본문의 시작은 황당합니다. 미가는 어머니의 돈을 훔쳤다가, 어머니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 겁이 나서 돈을 돌려줍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반응이 더 가관입니다. 도둑질한 아들을 혼내기는커녕,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2절)며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은으로 무엇을 합니까? 여호와를 위하여 신상을 만듭니다. 본문 해석: 이것은 명백한 제2계명(우상을 만들지 말라) 위반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붙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방식대로' 믿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아니면 말씀이 기준이 아니라 '내 감정과 상황'이 기준이 됩니다. 미가의 어머니에게는 아들의 도둑질보다 아들의 안위가 더 중요했고, 하나님의 율법보다 자신의 종교적 만족이 더 컸습니다. 적용) 여러분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말씀이 그러하시니 내가 멈추겠습니다"입니까, 아니면 "상황이 이러하니 하나님도 이해하시겠지"입니까?
2. 하나님이 왕이 아니면, 신앙도 사유화됩니다(5–9절).
미가는 집에 개인 신당을 차립니다.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웁니다(5절). 이것은 신앙의 '사유화(Privatization)'입니다. 성경적 예배는 하나님이 정하신 장소에서, 정하신 방법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미가는 이 모든 질서를 무시합니다. 왜일까요? 내가 편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집 거실에서, 내 아들을 제사장 삼아, 내 마음대로 예배드리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기분 좋기 때문입니다. 왕이 없는 신앙은 '거룩한 불편함'을 거부합니다. 말씀 앞에 나를 쳐서 복종시키기보다, 내 입맛에 맞는 말씀만 골라 듣고 내 형편에 맞는 방식으로만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중심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예배의 기준을 살펴볼 때,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기분이 좋아지고 내 위로가 우선인 '나를 위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순종의 영역에 있어서도 "이것만은 포기 못 해요", "제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어요"라며 하나님이 간섭하시지 못하도록 금을 그어놓은 '나만의 신당'은 어디입니까? 적용) 신앙을 나 혼자 편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의 질서 속에서 나를 훈련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3. 하나님이 왕이 아니면, 복이 왕이 됩니다(10–13절).
미가는 떠돌이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고용한 뒤 당당하게 외칩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13절). 미가에게 이 레위인은 '하나님의 메신저'가 아니라 '복을 불러오는 부적'에 불과했습니다. 미가의 관심은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복을 끌어당길 것인가?'에만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기복주의 신앙입니다. 기복주의 신앙의 핵심은 ‘주객전도’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복'이 왕이 되고 하나님은 그 복을 배달하는 '수단'이 됩니다. "열심인가, 전심인가?" 내가 오늘 드린 기도와 봉사의 목적이 '하나님 그분'입니까, 아니면 '그분이 주실 보상'입니까? 내가 원하는 복이 주어지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왕이십니까? 아니면 복이 오지 않으면 하나님을 향한 열심도 식어버립니까? 적용)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열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통치 자체를 즐거워하는 '전심'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조건 없는 순종이 진정한 왕 대접입니다.
결 론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설교 중 드신 예화입니다. 어느 나라의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한 농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농부는 그가 왕인 줄 모르고 그를 구석방에 재우고 딱딱한 빵을 대접했습니다. 다음 날 그가 왕임을 알게 된 농부는 사색이 되어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때 왕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대는 나를 손님으로 대접했지만, 나는 그대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다. 나를 손님 방에 가두지 말고, 그대의 통치자로 인정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내 인생의 '귀한 손님' 정도로 대접할 때가 많습니다. 필요할 때만 부르고, 평소에는 내 인생의 구석방에 모셔둡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손님이 아니라 왕이십니다. 내가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그 분을 왕으로 모실 때, 참된 평안이 시작됩니다. 내 생각, 내 방식, 내 유익을 내려놓고 예수님이 내 인생의 핸들을 잡으시게 하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은 종교 놀이를 넘어 살아있는 생명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는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