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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늙어봤냐?” DJ와 YS가 한국 야당정치의 양대 거목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80년대와 90년대, 나는 취재 차 귀국하면 버릇처럼 동교동과 상도동을 찾았습니다.
동교동과 상도동에서 재떨이나 닦던 사람이 금배지를 달았다 해서 삐딱한 눈으로 바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정치9단이라는 주군의 지근(至近)거리에서 정치와 정무 감각을 익힌 이들은, 운동권 데모경력 하나로 야당의 비례대표 의원이 돼 온갖 해괴망칙스런 짓을 해쌓는 요즘의 망나니 금배지들에 비하면, 그래도 ‘수준급’인 편입니다.
이들 중엔 중견정치인과 고위공직자로 성공한 이들도 여럿입니다.그런가 하면 일부지만, “깜냥이 아니다” 싶은 위인이 동교동-상도동의 ‘쓰레빠(슬리퍼)경력’ 하나로 정치에 입문해 쌩쌩 내닫는 꼴도 보아 왔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동교동의 ‘막내 가신’이라는 설훈이지요. 3선의원에 국회 교육문화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설훈의 입신출세는, DJ 가신 인사 중 대표적 ‘끝판 인사’로 꼽힐 만합니다.설훈 의원 노인폄하, 어르신들 뿔났다설훈의 설화(舌禍)가 끝 간 데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달 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연애 사건’을 공식석상에서 거론해 정치적 파란을 일으키더니, 한 달도 안 돼 이번엔 “늙으면 죽어야”식 막말 노인폄하 발언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습니다. 전국의 수백 만 ‘어르신’들이 헛기침 하며 ‘호로자식 설훈’과 ‘패륜정당 새정련’에 회초리를 들고 나서자, 지지율 폭락으로 울상인 새정련이 다급해졌습니다.
설훈의 문제의 망언은 지난 17일 관광공사 국정감사장에서 터져 나왔지요. 설훈은 관광공사 상임감사 자니윤(윤종승)을 향해 “나이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져 쉬어야 한다. 79세면 은퇴해서 쉴 나이가 아니냐”고 힐난하듯 물었습니다.
자니윤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신의 자유지만 최근 신체검사에서 내 신체나이가 64세로 나왔다. 팔굽혀펴기, 돌려차기, 앞차기로 한 번 겨뤄보자”고 응수해 17세 연하의 설훈을 머쓱하게 만들었습니다.
낙하산인사 공격에 시달리던 자니윤은 이날 설훈의 망언 덕(?)에 전국의 노인들로부터 파이팅! 응원을 받고 있다니, 망외(望外)의 반전(反轉)입니다.
공작정치 전문가가 교육문화위원장?80년 대 동교동에서 재떨이를 닦던 설훈은 DJ 가신 중 유일한 영남(창원) 출신입니다. 희소가치 때문인지 DJ는 30대 초반의 그를 비서와 보좌관으로 중용하고 호남인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도봉에 공천을 줘 국회의원 배지도 달아줬습니다.설훈은 동교동의 ‘새줄랑이’였습니다. “겸손할 줄 모르는 직정적 성격에, 자기주장 세고 경솔하며, 목소리가 큰” 부박스런 인물이었지요. 가신그룹 중에서는 비교적 학벌(마산고-고려대)이 좋고 영남출신인데다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는 등 DJ의 신임도 두터워 한 때는 동교동의 차세대 감으로 회자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면서 설훈은 공작정치 전문가로 변신해, 숱한 언어폭력과 거짓폭로로 한국정치를 왜곡시키는 ‘여의도의 악동’이 됐습니다. 설훈은 2002년 16대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최기선 게이트의 주인공인 최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최악의 네거티브 공세를 조작해, 이회창의 청와대 행을 저지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공작은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와 설훈, 검찰의 3자 공모로 치밀하게 이뤄졌습니다. 설훈은 대선 8개월 전 의혹을 제기했고 검찰은 수사를 대선 후로 미뤄, 이회창 진영이 거짓의혹들을 해명할 기회를 원천봉쇄했습니다. 설훈에게 거짓폭로를 사주한 청와대 민정비서관 김현섭은 미국으로 도피했습니다.대선 후 치러진 재판에서 설훈은 명예훼손과 선거법위반 등으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3년의 유죄선고를 받고 10년 간 피선거권이 박탈됐습니다. 공작정치 전문가 설훈이 정권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 역사까지 바꾼 사건이었지요.
<너 늙어봤냐> 뮤비가 뜨는 까닭한국은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평균수명 100세를 내다보는 고령화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은퇴연령은 5~60세로 선진국 중 가장 낮아 6~70대, 심지어 80대 노인들도 ’생계형 일자리‘를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은퇴 후에도 3~40년은 더 일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과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설훈의 새줄랑이 입방정은 바로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간과한 채 돌발적으로 터져 나왔지요. 고령화로 젊은이들을 능가하는 보팅 파워를 행사하게 된 전국의 노인들이 분노하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에서는 가수 서유석이 작곡한 <너 늙어봤냐>라는 노래를 4명의 노인이 만든 자작 뮤직비디오가 50만에 육박하는 폭발적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30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튀어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설훈의 올해 나이는 은퇴연령을 넘긴 62세입니다. “너도 이젠 쉴 나이”라며 노인들이 막강 보팅 파워를 행사하면,
설훈에겐 아마도 내후년 총선이 힘들어 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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