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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라고9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화구
나의 풍수기행 이야기(회안대군 묘소)
나는 금년 설 연휴에 고향엘 다녀왔다. 내려가서 임실 관촌 선영에 모신 조상님께 성묘를 하고 올라오는 길에는 회안대군 묘소를 참배하였다.
회안대군 묘소는 풍수를 하는 사람들에겐 유명한 풍수학습장이다. 그래서 나도 설날을 맞이하여 조상님께 참배도 드리고 그곳에서 현장학습도 할 겸해서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정식으로 풍수를 공부하진 않았지만 『청오경/금낭경』, 『정통풍수지리』, 과학으로 증명하는『현장풍수』, 『명당』, 『사는 곳이 운명이다』, 『풍수지리(집과 마을)』 등 여섯 권의 책을 통하여 나 홀로 스승도 없이 취미삼이 독학으로 공부한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내가 돌팔이 수준이란 것은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내가 공부한 책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먼저 『청오경/금낭경』은 풍수지리학의 최고 경전으로 꼽히는 중국의 풍수서로서 풍수전문가인 최창조 교수께서 국역한 책으로 청오경/금낭경은 현존하는 풍수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해져 오는 수많은 풍수 관련 책들 중에서도 풍수의 입문서로서 교과서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둘째. 『정통풍수지리(저자 : 정경연)』는 중국 고서인 지리육법대전, 청오경, 금랑경, 지리오결 등 수십 권과 수십 종의 산도를 번역하여 한 권의 풍수지리서로 통합한 책이다.
셋째, 과학으로 증명하는『현장풍수』는 풍,수,지의 순서로 중요성을 설명한 박봉주 선생의 저서이다. 이 책은 풍수지리의 궁극적 목적을 말하며, 명당을 얻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 책만 완전히 터득하면 현장에 나가 남의 묏자리 정도는 충분히 봐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어렵다. 풍수에서도 형세론은 이해하기가 쉬우나 이기론 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
넷째, 『명당』이란 책은 돈과 권력의 운명을 풍수과학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이문호 교수의 저서다. 이 책은 이문호 교수가 국내 최초로 관념의 풍수와 생활과학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40여 년간 몸담아온 자연과학 분야의 기초 위에 기존의 풍수이론을 설명하고 그간 개발한 전자 장비를 사용하여 1만여 기의 음택에 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다섯째, 『사는 곳이 운명이다』란 책은 주역 전문가인 김승호 선생께서 저술한 책으로 ‘좋은 운명을 끌어당기는 공간의 조건’을 원리부터 응용까지 모두 알려준다. 나와 잘 맞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 내가 사는 곳은 나와 궁합이 잘 맞을까? 재물운이 좋아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운명과 기운, 사는 곳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책이다.
여섯째, 『풍수지리(집과 마을)』이란 책은 김광언 선생이 저술한 책으로 어설픈 묫자리 명당 풍수 타령을 얘기하는 책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사료를 모아 저술한 책으로 묘자리, 집터 잡기를 알려주는 책은 아니고, 우리 생활 속의 풍수지리를 모아놓은 일종의 사료로 보면 좋을 듯 싶은 책이다.
풍수(風水)란 바람을 갈무리(藏)하고, 물을 얻는다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인 말이다.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멈추기 때문에 바람을 막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 데서 생기(生氣)가 응결(凝結)한다는 뜻에서 풍수라는 말이 생겼다.
물과 공기는 풍수지리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물은 풍수지리 이론 체계를 구성하는 사대요소인 용혈사수(龍穴沙水)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며 비중이 매우 크다.
용혈사수(龍穴沙水)란 용(龍=山을 말함), 혈(穴=죽은 사람이 묻히는 곳), 사(沙=묫자리를 중심으로 전후좌우에 나열된 산, 암석, 수목 등 모든 환경조건), 수(水=강, 바다, 호수, 못, 냇물, 개울물, 비가 오면 흘러갈 수 있는 곳 등)를 말한다.
그럼 지금부터 풍수기행을 떠나본다.
【아래 그림】저 멀리 평지에 자리한 나지막한 산의 우측으로 회안대군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땅 속에는 일정한 경로로 지기(地氣)가 흐르는데 사람은 이러한 땅의 생기 위에서 삶을 영위하면서 기운을 얻는다.
【아래 그림】저 곳이 전주시 덕진구 금상동 법수뫼 마을이다.
반면 죽은 사람은 땅속에서 직접 생기를 받아들이며 이 때문에 죽은 사람이 얻는 생기는 산 사람이 얻는 것보다 더 크고 확실하며 이것은 후손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저 나지막한 산이 법사봉이다.
따라서 땅속의 시신이 길기(吉氣)에 감응하면 그 자손이 복을 누리고 그렇지 못하면 자손은 쇠미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생기가 많은 곳, 즉 명당을 찾아 조상을 모시고자 하는 것이다.
【아래 그림】법수뫼 마을에 있는 재실
【아래 그림】재실 앞길을 따라가면 비석들이 있다.
【아래 그림】재실 앞길의 모습.
【아래 그림】재실 앞길을 따라가면 회안대군 비각이 있다.
【아래 그림】회안대군 묘소 앞 앞에서 보면 묘소가 안 보인다. 명당자리는 양택(주택)이건 음택(묘지)이건 밖에서는 안이 안보이고 안에서는 밖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 안정감이 있어 명당자리다.
【아래 그림】회안대군묘는 2005년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풍수지리란 자연환경과 사람의 길흉화복을 연관지어 설명하는 전통적 지리 이론이다.
기본 논리는 일정한 경로를 따라 땅속에 돌아다니는 생기(生氣)를 사람이 접함으로써 복을 얻고 화를 피하자는 것으로, 도성/절/집/무덤 등을 만드는 데 있어 지상(地相)을 판단하는 이론이다.
【아래 그림】까치도 이곳이 명당자리인 줄은 알고 메타세콰이어 나무 위에 까치집을 지었다.
【아래 그림】잣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회안대군 묘소 전경
장명석이 중앙에 서있고 그 뒤로 망주석, 문인석, 동자석, 석양이 좌·우에서 마주보고 서있다.
【아래 그림】우측 아래로부터
망주석(望柱石 : 무덤 앞 양 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으로 한자의 의미로 봐서는 멀리서 바라보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표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문인석(文人石 : 문관 형상으로 만들어진 돌) 동자석(童子石 : 사내아이의 형상을 새겨서 무덤 앞에 마주보게 세우는 돌) 석양(石羊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아래 그림】좌측에 있는 석등은 장명등(長明燈)으로 본래 기능은 묘역이나 건물의 외부공간을 밝히는 데 있으나, 분묘의 장명등은 이외에도 망자의 신분을 표상하기도 하였다.
【아래 그림】좌로부터
상석(床石 : 장방형의 돌로 된 상) 묘표(墓表 : 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 소전대(소전 축문을 태우는 받침)
【아래 그림】묘표(墓表)는 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로 죽은 사람의 이름, 생년월일, 행적, 묘주 등이 새겨져 있다 내용으로 보아 회안대군과 부인 금씨의 묘가 함께 있는 것 같다.
【아래 그림】옆에서 보니 묘가 두 기가 있다.
회안대군의 묘는 금릉부부인 금씨(金陵府夫人琴氏)의 묘와 함께 앞뒤로 놓여 있는데, 일반적인 부부 묘와는 달리 부인 묘가 앞쪽에 있다.
들리는 얘기로는 부인의 공이 커서 회안대군께서 부인을 높여 주기위한 마음이 담겨 유언으로 남겼다는 얘기가 있다.
【아래 그림】회안대군의 묘소는 셋째 부인인 금릉부부인(金陵府夫人) 금씨(琴氏)와 상하장(上下葬)으로 조성되었는데, 배위(配位, 배우자 위치)가 아래에 있다.
【아래 그림】나도 회안대군의 후손으로 조상님 묘소에 큰절을 올리고
【아래 그림】나는 전주이씨 회안대군파 남창부정공 15세손(회안대군 19세손)이다.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말이 있다. 승자는 역사만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걸 가져간다. 당대의 권력과 명예는 물론, 후세의 기록까지도 다 승자가 가져간다.
그렇다면 패자에는 무엇이 돌아갈까? 패자에게도 돌아가는 것이 있다. 죽음과 불명예, 그리고 후대까지 이어지는 온갖 오명들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조상이신 회안대군 방간은 이성계 태조대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다섯째 방원과 함께 개경으로 유학와 신덕왕후 강씨 밑에서 공부를 했던 인물이다.
1차 왕자의 난 때 사이좋게 손잡고 정권을 쟁취했던 방간과 방원. 그러나 용상의 자리는 하나였다.
결국 방간은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아우 방원에게 패하게 되어 역적이 된다.
역적인 되면 왕자도 피해갈 수 없었던 한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선원록(왕실족보)에서 빠지는 일이다.
역적은 아무리 일가친척이라도 역적이었다. 왕실족보인 선원록에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은 사람들은 왕족이 아니다.
그래서 회안대군 후손들은 300여년에 걸쳐 수십 차례 선언록에 끼워달라고 끈질기게 상소를 올린다. 그러나 받아들여질 것 같은 상소는 후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몇 번을 쓰러져도 후손들은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회안대군 후손들에게 있어 ‘족보로의 복귀’는 이미 삶 그 자체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후손들은 ‘왕실식구’의 지위를 얻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숙종 시절이 되어 다시없는 기회를 얻게 된다.
당시 임진왜란 통에 불타버린 왕실족보들(선원록, 유부록, 종친록)을 하나로 묶어 ‘선원계보기략’이라는 통합된 족보를 만들려는 숙종 임금에게 달라붙은 것이었다.
숙종 임금은 3백여 년 간 끈질기게 매달린 회안대군 후손들의 저력에 감동을 받았는지 회안대군 후손들의 ‘족보로의 복귀’를 허락하게 된다.
2차 왕자의 난 이후 3백여 년 만의 일이었다. 이로서 회안대군 후손들은 3백년 만에 당당하게 ‘왕실가족’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아래 그림】묘소 뒤에는 ‘산지신위(山地神位)’라고 쓰인 조그만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 산지가 죽은 이의 영혼이 의지할 자리라는 의미 같다.
【아래 그림】묘소 뒤로는 잣나무 숲이 묘소를 둘러싸고 있다
【아래 그림】묘소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간다.
【아래 그림】올라가 보니 순천완주고속도로가 나 있고 법사봉으로 덕진터널이 뚫려 관통하고 있다
【아래 그림】그림 좌측으로가 회안대군 묘소의 주산으로 보이며 사진 정면이 좌청룡 자락으로 보인다.
【아래 그림】묘소 뒷길을 타고 올라오는데 좌측으로 산 전체가 푹 꺼진 곳이 있어 내랴가 보니 이곳이 혈맥을 끊은 곳이다.
【아래 그림】사연은 이렇다
형님 회안대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태종은 국장의 예우를 지내도록 하고 지관을 불러 길지를 택하도록 했다.
그런데 회안대군이 묻힌 이곳이 대대로 군왕이 나올 자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태종이 깜짝 놀라면서 회안의 자손이 대대로 군왕이 된다면 내 자손은 어떻게 된다는 말이냐며 지맥을 자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600년 전 왕자의 난은 왕위 쟁탈 때문에 일어난 골육상잔이었다. 그러나 지맥을 자른 것은 왕권 유지를 위한 죽은 자와 산자의 골육상잔이었다.
【아래 그림】묘역위로 난 용맥을 따라 후룡(後龍)을 오르다보면 파헤쳐진 암반지대를 확인할 수 있는데, 대략 2~3미터 정도로 상당히 깊게 상처가 난 흔적과 함께, 용맥을 자른 부분도 군데군데 발견되면서 곳곳에 푯말이 세워져 있다.
【아래 그림】묘소 주변에는 잣나무가 묘소를 둘러싸고 있어 바람을 막아주어 안정감을 주고 있다.
대부분의 명당자리는 양지 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으나 이곳은 북향으로 음지에 위치한 명당자리이다
【아래 그림】저 멀리 나지막한 앞산이 안산(案山)에 해당된다.
안산은 주산, 청룡, 백호와 함께 풍수학상의 네 가지 요소 중 하나이다. 한양을 예로 들면 경복궁이 자리한 북악산이 주산이고 낙산이 좌청룡, 인왕산이 우백호, 남산이 안산에 해당된다.
【아래 그림】예전에는 저 앞에 있는 건물자리에 고양이 바위가 있었으나 현재는 건물이 들어서있다.
묫자리로 봐서는 저 건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좋지 않고 원래 저 자리에 있었던 고양이 바위가 회안대군 묘소와 혈과 맥을 이어주는 위치이기 때문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혈이 잘려나간 것이다.
【아래 그림】저 멀리 나지막한 산이 우백호에 해당된다.
회안대군의 묘소가 위치한 곳은 먼 산에서 산줄기가 내려와 멈춘 곳에 혈이 있으며 청룡과 백호가 잘 감싸고 있어 좋은 사격(砂格)들이 많이 두르고 있었다.
풍수에서 사격(砂格)이란 무덤 주변에 위치한 주산, 좌청룡, 우백호, 안산과 조산 등의 산에 대한 품격을 뜻하는 말이다.
【아래 그림】저 회안대군 묘소를 풍수학적으로는 ‘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이라 칭한다.
늙은 쥐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밭으로 내려오는 형상이다.
야트막한 산줄기가 논 등 들판으로 내려와 혈을 맺었다.
안산(앞산)은 쥐의 먹이가 있는 노적가리나 창고 같은 사격이 있어야 한다.
멀리 고양이 같은 사격이 있어 쥐를 노리고 있으면 쥐가 긴장하므로 더욱 발복하게 된다.
그러나 가까이 있으면 위험하다. 혈은 쥐의 머리나 배에 있다.
쥐 형국은 부지런하며 지모가 뛰어난 사람을 배출하여 부귀쌍전(富貴雙全)한다.
충남 덕산 가야산에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당자리인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소를 복치혈(伏雉穴 )이라 부른다 이곳도 산의 모습이 마치 숲속에 숨어 엎드려 있는 꿩의 모습으로 꿩이 자신을 노리고 있는 매(가야산 능선)가 있어 바짝 긴장하므로 기가 모아져 혈이 결지되는 명당이다.
【아래 그림】이곳 금상리는 얼마 전까지는 용진면에 속한 마을로 지금은 묻혀진 전설을 간직한 곳으로 이곳 사람들에게는 예전에 회안대군이 언젠가 왕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서 참언(讖言)처럼 퍼저 이 고장을 왕(용)이 나올 땅 용진(龍進)』으로 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나도 이곳이 고향인 사람으로서 언제가 전주(용진) 출신 대통령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풍수기행을 마치면서】
오래 전에 풍수테러 당한 회안대군 묘소는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뜸을 뜬 자리에 풀이 자라면서 어느 정도 지기가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몇 년 전 혈맥의 뒤로 고속도로 터널이 뚫려 회복되기 시작한 지기가 다시 쇠하고 있으며
마을 앞 건물이 있던 곳에 자리하고 있던 고양이 바위도 경지정리 과정에서 옮겨져서 묘소와 연결되었던 혈이 끊긴 상태로 노서하전형의 풍수명당으로서의 이점도 많이 사라진 상태다.
회안대군은 살아서는 동생과의 권력 쟁탈에서 패해 평생 회한(悔恨)을 안고 유배지에서 살았다. 죽은 뒤에는 자신이 누워있는 묘소의 지맥이 끊어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또다시 회한을 맛보았다.
그런데 후손들은 이제는 이미 잘려나간 지맥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고 있으니 살아서나 죽어서나 편할 날이 없는 것 같다.
충남 덕산 가야산에는 고종. 순종을 낳아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로 알려진 흥선 대원군의 부친 남연군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흥선대원군은 이곳이 명당자리라는 것을 알고 기존에 있던 사찰을 불사르고 이곳에 조상님 묫자리를 써서 아들(고종)과 손자(순종)가 2대에 걸쳐 왕이 나오기는 하였으나 손자(순종)때에 오백년 이씨왕조는 거센 외세의 침략에 못 견디고 망하고 말았다.
그곳에 아버지 남연군 묘소를 써서 자손들이 왕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으니 나라가 없는 임금이 무슨 임금이며, 백성 없는 임금이 무슨 입금이라 하겠는가?
세상사 모든 게 인광응보(因果應報)다. 남연군의 묘소 덕분에 그렇게 갈망하던 왕권은 얻었으나 말로가 그렇게 되었음엔 천년 가야사를 불태운 죗값을 치른 것이며 순리를 따르지 않은 결과라는 말이다
집안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는데 나만 잘난들 어쩌겠는가? 내 생각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명당자리는 내 마음속에 있지 않나 싶다.
희망의 새봄을 꿈꾸며 이화구 올림
【설 다음날 저녁 동네에 사는 중학교 동창들과 소주 한 잔 하면서】
설날 오후에 서울로 상경한 후 다음날 나는 우리 동네 뒷산인 북한산에 다녀오는 길에 우리 동네 강북지역에 거주하는 중학교 동창들 몇이서 만나 저녁에 소주 한 잔 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게 행복이 아닌가 싶다.
내가 만나는 중학교 친구들은 주로 학교 다닐 때 공부에는 별로 취미가 없었던 친구들이 많다.
이런 친구들이 만나서 소주 한 잔 하면서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하다보면 훨씬 재미있다.
물론 이 중에는 내 옆으로 안경 쓴 친구는 명문 남성고를 졸업하고 고려대를 나와서 유명한 엔지니어링업체 부사장으로 근무하는 친구도 있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학교 동창생들은 언제나 우리 가슴 속에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우리들 사이엔 잘나고 못나고, 잘살고 못사는 것 같은 세속의 잣대는 중요하지 않다.
흐르는 세월과 연륜에 떠밀려서 저 마다 각자의 삶을 찾아 멀리 흩어져 살지만 세월은 흘러가는 대로 흐르게 하고 이렇게 만나 소주 한 잔 하면 된다
우리나이도 인간사 세월의 연륜이 하늘의 뜻을 안다는 知天命(지천명)을 훌쩍 넘어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耳順(이순)을 향해 달려가는 50대 중반을 넘어서면 가진 친구나 많이 배운 친구나 출세한 친구나 다 같지 않은가 싶다.
더 가지고, 더 배우고, 더 출세했다고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처세명심보감’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친구들이 부르는 데가 있거든 무조건 달려가고 보고 싶은 사람은 미루지 말고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아 만나야 참다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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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화좀 하시지요. 집에 계속 있었는데요
저는 회령대군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