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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대 명성 중 하나 쿠마모토성입니다. 어느 여행단체가 기념사진을 찍기에 살짝 하였슴
모지코 칸몬 해협에서
7박8일의 일본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큐슈의 여러곳을 골라 제약없이 자유롭게 둘러보았습니다.
지역 전역을 돌아 볼 수있다면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이지만 항상 시간이란 놈이 발목을 잡습니다.
돌아와 원고를 정리하면서 픽션처럼 흥밋거리들을 가볍게 텃치하였습니다.
앞 사람이 아직 못 가본 이를 위해 붓 가는대로 느낀대로 가감없이 드러내 놓았는데 흥미가 없다면 제껴 두시고,
그렇지만 시간과 무관 하시다면 심심파적 빠져들어도 좋을 것입니다.
이 기행문을 나누지 않고 한데 묶어 22페이지로 엮어 올렸습니다.
여행코스: 고쿠라 - 나가사키 - 쿠마모토 - 카고시마 - 히로시마 - 오이타 유후인 - 후쿠오카
일본 자유 여행기(큐슈를 중심으로)
한여름에 배낭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선생들이 와서 한마디씩 한다.
“혼자 가시는 거예요?,”
“아니.”
“사모님하고요?” “그럼 누구랑 가겠어!”
“참 부럽군요,” “팩키지 여행이 편하실 텐데요.”
“그 동안의 틀을 바꿔보려고 그래.”
지난 2년 동안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전국 이곳저곳을 많이 누볐다.
동해 무릉계곡,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제주올레를 비롯해 새로운 길을 찾아 이들만의 아름다움을 보기위해 틈을 내어 다녔다.
버스를 타고 지방 출장길에서도 눈에 띠는 길을 보아두었다가 찾아가기도 하였다. 많은 이들이 우리 국토가 좁다고 더 넓은 해외로 발길을 내 딛지만 태어난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려보면 모두가 다르고 가보지 못한 곳들이다.
전국 동서남북을 한번만 발을 디딘 다해도 몇 년이 걸릴지 모를 국토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중 명소만 골라 다닌다 쳐도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인다’ 고 했다. 그가 남도 문화를 답사할 때 설명한 부분들을 되새겨보면 미술사에 대한 풍부한 식견은 감탄할 만하다. 물론 미술사를 전공하였기에 그렇겠지만 그의 눈과 보통사람의 보는 눈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한번 간 곳을 다시 답사해보면 처음에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또한 더 세밀한 관찰을 할 수 있어 와보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은 같은 지역을 다시 가더라도 새롭게 보이며 보는 눈이 한층 세련되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이 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중 가장 남쪽의 섬이 큐슈이다. 도착 다음 날 호텔에서 뉴스를 보니 태풍의 진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큐슈를 향해 올라온다는 기상 캐스터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며칠 후의 일이기에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덮어 두었지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후일 이 태풍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태평양 고기압에 밀려 중국으로 상륙하였다.
지난 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그 지역 주변은 물론 일본 전체에도 관광이 저조하여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았다.
특히 북부 지역과 토오쿄 까지도 방사능 오염을 우려하여 여행자들이 꺼려하고 있다.
내심 다른 곳을 물색하다가 남쪽 큐슈를 돌아보기로 하였다.
이번 여행기간은 그리 길진 않다. 하지만 입맛대로 발길 닿는 대로 갈수 있는 여행이어서 좋다. 해가 저물면 숙소를 정해 머물러 보고 정처없이 걷다 쉴 수도 있다. 시간 제약을 받지 않고 독촉하는 사람이 없어 좋은 여행, 아마 자유여행의 장점일 것이다.
이웃나라 먼 나라 일본, 그래도 어쨌든 제주도처럼 지척이기에 가까운 이웃임엔 틀림없다.
일본을 떠올리다보면 지난날의 역사가 말해주듯 항상 대립의 각을 세웠다. 거부와 압박, 쟁취, 부정적인 것들이 무의식에 잠재돼 있기에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희석이 될지 이번 여행의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특유의 정체성과 고유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
그리고 글로벌시대에 윈윈의 정신과 열린 마음으로 좋은 점은 배워 내 것으로 삼는 것도 중요하다. 여행 동안에 일본의 문화와 사회, 경제생활을 내 눈과 마음이 말하고 느끼는 대로 스켓치 하려고 한다.
큐슈는 우리로 보자면 부산과 대전, 부산과 후쿠오카와 비슷한 거리라 보면 된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1시간이다. 가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수도인 토오쿄 보다 서울이 더 가까운 거리에 큐슈가 있다. 그런 만큼 예로부터 우리와 많은 교류를 해왔던 곳이다. 한자로는 九州 즉 옛날에는 9개의 나라가 있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곳은 한 겨울에도 얼음이 언 적이 없을 정도로 온화한 기후를 자랑한다. 따라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지닌 도시가 곳곳에 있다. 활화산과 아열대의 풍경, 다양한 모습을 고루 갖춘 곳이기에 관광지로 인기가 높다. 내가 찾은 기간 동안에도 북 큐슈여행 관광 상품을 이용해 젊은이들이 하카타 공항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배낭을 꾸리면서 오만가지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팩키지 여행과는 달리 여권부터 항공기 티켓, 숙소, 그곳 교통편 지리 언어 등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래서 자유여행이 머리가 무겁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용감하게도 인도를 한 달 동안 배낭여행을 다녀온 여선생이 있다.
“일본을 가신다면서요”
“그래요. 김선생도 떠나는데 나라고 배낭 쯤 못 메겠어?”
“좋으실 거예요. 잘 다녀오세요”
그녀는 대학생 딸과 여행하면서 여행 마니아가 되었다. 그것도 자유배낭여행을 선호하며 다닌다. 그동안의 경험담과 여행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나누었다.
우선 움직이면 돈인 일본에서는 이동수단인 교통편이 매우 중요하다. 교통천국 일본은 외국인여행자에게만 특별한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레일 패스 이용권이다. 내국인에겐 철저히 패스 구입을 배제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만 이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여 일정 기간 동안 계약내용에 따라 일본 어디든 몇 번이든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패스이다.
예를 들면 이번 여행기간동안 나는 7일 권 전 일본(JR) 레일 패스를 한국에서 구입하였다. 일본 국영이 운영하는 기차 버스 배 등 모든 교통수단을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패스이다. 하루에 이 지역 저 지역 또는 원거리를 반복하여 다닐 수도 있다.
일본인들이 여간해선 타지 않는(비싸서) 신칸센을 동네 버스 이용하듯 타고 다녔을 정도이니 교통비 절감에 톡톡한 효자노릇을 하였다. 서울 부산정도의 거리를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고 이른 아침 시간에 나서면 웬만한 거리는 신속하게 옮겨 다닐 수 있어 참 편리하다.
우리나라의 KTX 열차요금도 상당히 비싼 편이다. 일본의 신칸센은 조금 원거리다 싶으면 우리화폐로 십 만원, 십 오 만원을 훌쩍 넘긴다. 아침시간이었지만 쿠마모토를 갈 때는 내가 탔던 열차 칸에 우리부부 둘만 전세 낸 것처럼 앉아 간적도 있었다.
후쿠오카 국제공항에 내려 잠시 기다리니 공항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서 젊은 아가씨 두 명이 옆자리에 앉았다. 날아갈 것 같은 민소매의 시원한 복장과 예쁜 얼굴에 넓은 챙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어느 지역 여행을 하러 온 건가요?”
“우리는 후쿠오카에 맛 여행을 왔어요.”
“맛 여행이라면 어떤?”
“1박 2일로 하카타에 머물면서 일본 유명 맛 집을 찾아다닐 겁니다.”
젊은이들이 이렇게 테마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항공사 직원이라는데 짬을 내어 이웃집 가듯 여행을 다닐 정도로 이곳이 가깝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마디로 큐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편리하게 갈 수 있는 인기지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후쿠오카의 관문인 하카타역은 여행의 시작점이다. 인구 약 140만명으로 큐슈의 대표적 도시이기도 하며 한국 영사관도 있다. 이곳에는 공항과 부채 살처럼 관광특구와 도시들이 펼쳐져 교통망과 함께 여행에 출발점으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여기서 코쿠라와 모지코, 쿠마모토와 유후인 오이타 남쪽의 가고시마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여러 도시마다 특징이 있다. 도시 공통점 하나는 교통과 숙박과 상권이 역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소통이 되고 있는 점이다. 하카타 역만 하더라도 외국인 관광객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역을 중심으로 도보로 5-10분거리 이내에 크고 작은 호텔이 분포하고 있다. 어느 역을 막론하고 구내에는 여행객 안내소가 있다. 때론 숙박 안내소까지 갖춰져 우리에게 여간 긴요한 역할을 해주며 여행객들에게 큰 보탬이 된다. 나도 처음 찾은 생소한 지역이라서 묵는 동안 꽤나 귀찮게 찾아다녀 안내원이 내 얼굴을 선뜻 알아볼 정도였다.
역전 광장 한 켠에는 버스 터미널과 노면 전차가 다닌다. 도로위에 전차를 뜻한다. 우리나라에 없는 전차를 보니 신기하다. 물론 베이징에도 전차가 있지만 일본의 주요 도시에는 모두 노면 전차가 운행되고 있는 것이 색다른 점이다.
우리처럼 빨리빨리 문화에 젖은 사람들은 애통이 터져 죽을 지경일 것이다. 30-40킬로의 속도에다 빤한 거리를 신호등 지키랴 차량 비켜 다니랴 비효율적일 것 같은데 도시마다 전차가 있으니 이곳 문화에 대해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내 교통흐름상 결국 전차나 버스나 평균 속도는 비슷할 것 같다. 그렇지만 어쩐지 느린 것 같다.
역내에는 백화점이나 마트가 있어 손님맞이에 바쁘다. 대도시의 역내에는 각종 음식점과 상점들이 불을 밝히고 성업을 이루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역을 이용하면서 혹은 출퇴근하며 이곳에서 원스톱으로 일상생활의 필요한 것들은 간단히 해결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이들은 왜 역을 중심으로 역내에 상권이 형성되었을까? 각종 음식과 먹거리 식당을 역에 두었을까? 참 궁금하다. 초행길인 나로서는 우리와는 많이 다른 부분이라서 호기심과 궁금증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대도시의 역들은 거의 모두 대형 마트 또는 백화점이 공존하는 곳이 일본의 역 구조라 생각하면 틀림없다. 몇 해 전 청량리와 영등포 역, 서울역에 백화점이 생겼는데 일본에서는 훨씬 앞서 이미 각 역마다 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저녁을 먹고 큐슈 제일의 번화가 톈진 거리를 보러 호텔을 나섰다. 거리에 다니는 버스 가운데 100엔 순환버스가 있다.
가면 꼭 타보라 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버스에 올랐다.
여행객들이 시내관광을 용의하게 할 수 있도록 일본화폐 100엔을 지불하면 된다. 하카타와 톈진사이의 주요 명소를 한 바퀴 도는데 편리한 이동수단으로 생긴 순환버스이다. 버스에서 내려 공원과 휘황스런 먹자골목 그리고 캐널시티 하카타에 들렀다.
캐널시티 하카타는 우리의 명동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다른 점은 운하를 둘러싼 6개의 대형 건물에 쇼핑, 맛집, 오락, 숙박시설 등 다양한 즐거움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후쿠오카의 인기명소다. 서울의 잠실 롯데백화점 쇼핑몰을 5-6배정도로 부풀려 놓은 것 같지 않나 싶다. 초대형 종합 오락 쇼핑몰로서 인기가 있지만 규모가 커서 그렇지 크게 새롭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일반 시내버스요금은 거리 병산제를 하고 있다. 대략 250엔으로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750원인데 놀랄 정도로 비싼 요금이다. 그들은 모든 것이 일상 몸에 베어 느끼지 못하겠지만 물가는 우리와 비교가 안 된다. 대형 마트에 들려 상품을 구경하다가 여름철의 명물인 머리통만한 수박이 진열되어 있기에 가격표를 보니 370엔(55.000원)이었다.
사실 일본이 1인당 GNP가 4만 달러에 육박하지만 산술적으로 우리의 대략 1,8배의 소득수준이다. 하지만 세계 표준 물가를 기준으로 한 실질 명목소득은 우리가 그들보다 앞선다. 우리도 만만치 않은 실질 소득을 가져 자부심을 가져 보기도 한다.
내일은 아침 일찍 열차를 이용해 고쿠라에 갈 계획이다. 호텔 식사타임이 맞지 앉아서 아침밥을 준비하려고 역에 나갔다. 마침 쌀밥을 여러 가지 색깔로 빚어 찐 밥이 먹음직스러워 반찬과 함께 주문했다.
밥을 용기에 담아주는데 주문한 값으로는 2가지 밖에 줄 수 없다한다.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하여 모두 조금씩 달라고 했더니 푸짐한 한국의 인심과 달리 두 숟갈 정도 분량을 일일이 저울에 달아 4가지 밥을 담아 주었다. 이것 참 다른 문화의 색깔에 혼돈을 느낀다. 매사 오차 없이 정확성을 기하는 그들, 그러나 훈훈한 인심이 깃든 우리와는 판이한 문화의 상대성을 경험 하는 순간이었다.
인도를 따라 걷고 있는데 내 옆으로 바짝 자전거가 지나가기에 깜짝 놀랐다. 인도는 사람과 자전거가 함께 다니는 길이다. 대신 차도는 전차와 자동차만 다닌다. 남녀 웬만한 사람들은 시내를 나갈 때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열차로 출퇴근하는 회사원도 역 앞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것을 보았다. 후에 사진에도 소개하겠지만 인도 곳곳에 자전거 보관소가 있다.
그곳에는 자전거를 세워놓을 수 있도록 튼튼한 철책으로 담장처럼 둘러놓고서 그 안에 자전거를 보관한다. 내가 놀란 것은 경비원인 듯한 노인 두 분이서 이른 아침부터 철책안의 자전거 보관 고리들을 점검하면서 기록하고 자전거를 살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시에서 고용한 분들 같은데 자전거를 안전하게 보관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되어있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 여행가들은 배낭의 무게가 여행을 좌우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온종일 배낭을 메고 약 40일간의 장거리를 걷는다고 생각해보라. 중반부를 넘어서면 손톱깍이는 물론 휴지조각 한 장도 내려놓고 심은 심정이라 한다. 짐을 최소한으로 가볍게 하다보면 배낭을 버려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필수품만 챙겨간다는 것이 사실이다.
8일간의 여행이지만 배낭의 짐을 줄이기 위해 수차례 짐을 점검하여 단출하게 꾸린다고 꾸렸다. 부피가 늘어나서 조금이라도 짐이 될 만한 것은 다시 내려놓았다. 배낭을 저울에 올려놓으니 10킬로그램이 조금 넘는다. 그리 큰 부피는 아닌 것 같다. 간식으로 영양과자나 라면이 좋다고 다녀온 이들의 말을 듣고 라면까지 넣으니 짐이 더욱 늘어났다. 이래저래 짐정리는 끝났다.
편안하게 걸으려면 뭐니 뭐니 해도 등산화가 제격이다. 야간 외출이나 혹시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서 샌달도 넣었다. 그러나 후에 샌달이 자리만 차지하는 무용지물 골치덩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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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코쿠라 시와 모지코를 향해 달렸다. 하카타에서 특급 소닉 열차로 코쿠라까지 약 1시간 20분. 다시 열차를 바꿔 타고 20분이면 모지코에 도착한다. 그렇지만 신칸센으로 코쿠라는 단 15분이면 갈 수 있다. 너무도 차이가 나서 살펴보니 신칸센은 지름길로서 철로 자체가 다르다. 일직선으로 뻗은 철로를 15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축지법 같은 길로 운행되고 있었다. 이런 신간센을 JR 패스로 자유롭게 이용하니 참 편리하였다.
삼복더위 속에 우리나라보다 더 남쪽 지역이라서 훨씬 더울 것 같지만 해양성 기후의 특유함으로 오히려 습도가 낮아 생각보다는 덜 덥다.
모지코는 큐슈 북쪽 최북단의 아담한 항구 도시이다.
여기에 유명한 칸몬 해협이 있다. 해양교통의 요지이다. 해남과 진도 사이의 울돌목을 다리로 연결하듯 이곳에도 약 800미터의 긴 다리를 놓아 모지코와 시모노세키(하관)를 연결 하였다. 그리고 바다 밑으로 자전거나 도보로 다닐 수 있도록 해저 터널을 만들었다.
단체로 외국인도 와서 다녀간다.
현지의 한 부부는 바다 밑 이 길을 운동 삼아 몇 번씩 왕래하는 사람도 있었다. 더위에 이보다 시원한 길이 있을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 평생 오지 못할 수도 있기에 순환도로와 항구를 천천히 구경하며 걷다가 해저터널 끝 저편 시모노세키까지 걸었다. 역에서 약 5킬로 가량 될 것 같다. 해협을 건너 저편에서 이곳 모지코를 바라보니 약간 흥분이 되었다. 걸어서 시모노세키를 건너다니.
북 큐슈와 수도 토오쿄가 있는 섬 혼슈를 사이에 둔 칸몬해협은 하루에 약 700척의 배가 왕래할 정도로 빈번하게 뱃고동을 울리며 다니고 있었다.
오래전에 무역항으로 번영한 모지코는 역사적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옛 정취가 가득한 풍경과 칸몬 해협의 웅대한 경치, 그리고 서양식 건축물,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모지코 항은 어항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고깃배가 보인다. 크고 작은 배들이 항구에 가득 정박해 있다. 그러나 바다 특유의 비린내는 어디에도 없고 휴양지처럼 조용하다.
바닷가에는 예쁜 호텔과 옛 건물이 특이하여 매우 인상적이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항구주변을 구경할 수 있게 특이한 복장의 마부와 말도 보인다. 또한 인력거가 거리를 돌아다닌다. 모지코 해안을 협괘 철도를 놓아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기차도 있다.
한가로우면서도 운치가 서린 멋진 항구 모지코 항을 걸었다.
여전히 바깥은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매일 아침 호텔을 나서기 전에 단단히 채비를 한다. 여러 개의 물통을 간밤에 냉장고에 얼려 작은 배낭에 넣고 얼음물을 유지하기위해 수건으로 말아서 감싸고 덧개도 씌웠다. 이미 한여름에도 트레킹 이력이 붙었기에 걷는 게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햇빛을 차단해주는 넓은 챙 모자는 필수이며 선크림과 팔토시도 꼭 필요하다. 팔토시를 하면 덥고 갑갑할 것 같으나 반대로 시원하다. 목장갑도 준비하면 좋다. 여기에 양산은 더없는 햇빛 가리개이다. 목장갑은 가끔씩 벗기도 하였는데 후에 집에 돌아와서 보니 손등만 새카맣게 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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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경 나가사키로 이동하기위해 하카타역으로 나갔다.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는 사람들로 역은 붐볐다. 역전 횡단보도를 건너자 일찍부터 아가씨가 상품 선전용 티슈를 나눠주고 있다. 주는 것을 마다할 수 없어 이틀 동안 5개 넘게 받아 잘 사용했다. 교통의 중심지라서 사방으로 출발하는 열차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것도 몇 분 간격으로.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 일본에는 있어 소개한다.
대도시 역에는 플랫폼에 시원한 대합실이 손님을 기다린다. 열차를 타려고 플랫폼으로 나갔더니 투명 유리로 만든 대합실 안에서 사람들이 앉아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하고 들어가 보니 냉방이다. 찌는 더위에 시원하여 너무도 기분이 상쾌하였다. 몇 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운행하는 열차와 이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이 많기에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세심하게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원폭지역의 도시로 히로시마를 주로 떠올린다. 하지만 나가사키 역시 세계 제2차 대전의 종말을 고하는 원폭 투하를 하여 큰 피해를 본 도시이다.
역 안내소에 들려 여행정보를 책크하고 이나시야마 전망대로 향했다.
나가사키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렇다. 나가사키 짬뽕이 생각나지 않을런지. 맛 여행을 즐긴 사람들은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19세기말 일본 나가사키의 중국식당에서 만든 것이 유래가 되어 이 지역 대표 향토 음식이 되었다. 국물이 맵지 않고 진한 육수를 우려내 만들어 면은 라멘과 유사하다. 당시 창업자 천숭핑이 가난한 자기나라 유학생들을 위해 간단한 국수요리를 만들어 대접한 것이 오늘날의 나가사키 짬뽕이라 한다.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에서 나오는 우동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곳 나가사키에 여행 오는 한국 관광객중 이 유명한 짬뽕 원조를 먹어보려고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첫날부터 아침을 제외하고 좋아하는 짬봉 라면 등 면류로 몇 끼를 먹고나니 쳐다보기도 싫었다. 심지어 저녁간식도 라면을 먹었었다. 나가사키에 와서는 그 유명한 짬뽕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곳에 오면 식도락가들은 열심히 식당을 찾아다닐 것이다. 몇 해 전 아내와 딸이 일본을 다녀오면서 라면을 사왔다. 부엌 설합에 넣어두고 까맣게 잊어버렸다가 생각이나 먹어 보니 역시 우리 라면이 훨씬 단백하고 더 맛있다.
이나시야마산의 전망대에서 나가사키의 야경은 그들의 제 1경으로 친다. 대낮에 이곳을 찾으니 야경을 보지 못해 아쉽다. 야경 때문에 차라리 이곳에 숙박을 정할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 앞 정류장에서 버스로 10분가량이면 산 아래에 도착한다. 전망대를 오르려면 우리의 남산처럼 승용차를 이용하거나 케이블카로 올라야 한다. 주중이라서 손님도 별로 없어 35인승 케이블카에 4명이서 탔다. 5분도 안 되어 정상에 당도하고 보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산 길을 걸어서 오른다면 2시간 거리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사소한 것에도 한 번씩 감탄을 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남자안내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런데 깎듯이 90도로 허리를 굽혀 약 5초 동안 숙이고 있다. 많은 수가 내린다면 혹 모르겠지만 4명 손님에게까지 똑 같다. 지나친 인사에 머쓱하였지만 대접 받는것 같아 싫지만은 않았다.
정상에 올라야 아래를 조망할 수 있듯 이나시야마 전망대에 서면 나가사키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와 하는 감탄사가 그냥 나온다. 밤이라면 참 아름답겠구나 거듭 탄성이 나왔다. 남산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야경도 대단하다. 이곳의 특징은 파노라마처럼 일자로 형성된 시가지와 항구와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색다른 풍경을 연출할 것 같았다. 대낮에도 이렇게 보이니 말이다.
내려다보는 나가사키시는 매우 독특한 모양을 띠고 있다.
시가지가 마치 협곡 안에 들어있는 모양이다. 북쪽에 산이 길게 일자로 동서로 뻗어있고 건너편에는 이나시야마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뻗어있다. 단순하게 보인다. 그 사이에 집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항도이기에 항구에서 바라보면 동중국해가 널게 펼쳐 보인다.
시내를 한 번 돌아보고자 한다면 서쪽 끝에서 동쪽 항구까지 일자로 훑어 내려오면 완전 답사가 될 정도이다. 한때 서울에 산동네가 많았다. 언덕배기에 옹기종기 모여 집을 짓고 살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가사키에는 북편 산 중턱에 남향받이 가득한 집들이 우리의 산동네를 연상시킨다.
시가지에 노면전차와 버스가 조화를 이루며 항구에서는 크루즈선과 선박의 왕래가 활발하다. 시내 어디를 가나 우리와 비슷하여 특별히 볼 것은 없지만 원폭 피해지역의 의미가 담겨있어 몇 군데 돌아보았다.
전망대에서 다시 내려와 평화공원을 향했다.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공원근처에 내렸다. 한 노인 분에게 평화공원 가는 길을 물었더니 가다말고 공원 입구까지 우리를 안내해 준다. 대낮 무더위에 만사 귀찮을 시간이었다. 고마워서 그분에게 연신 “아리가도 고자이마스” 를 외치며 허리 숙여 답례하였다.
당시 원폭투하를 기념하기위해 피해현장을 그대로 보존한 평화공원이 시가지 서쪽에 있다. 시에서는 공원을 새로 단장하고 관광객에게 보이기 위해 여간 수고하는 모습이다. 이날은 공원으로 오르는 에스커레이터 설치공사가 한창이었다.
각국에서 보내온 것들을 동상으로 만들어 세워놓았고 한쪽에서는 건물이 파괴된 터를 다시 보존하기위해 다듬고 있었다.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실제 원폭이 낙하하여 직접 피해 지역을 보존해서 놓았다.
그곳은 당시 테니스 코트였는데 500미터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하여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지역이다. 참상을 알리기 위해 이곳은 별로 가꾸지 않은 채로 운동장처럼 덩그러니 그대로 두었다. 몇 가지 시설물과 기념탑 정도로 두고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주변에 원폭 자료관과 원폭 사망자 추도 기념관이 있다.
미국이 일본에 원폭투하를 결정한다.
히로시마에 원폭 ‘리틀보이’를 투하했다. 그래도 항복을 하지 않자 계획대로 두 번째 핵폭탄 ‘팻맨’을 고쿠라에 떨어뜨리기로 한다. 그런데 전에 터뜨린 핵폭탄으로 생긴 연기와 두터운 구름층이 고쿠라 상공을 뒤덮어 시가지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B29 폭격기는 나가사키로 향하게 된다. 이피해로 당시 인구 24만 명 중 35,000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후에 29,000명이 추가로 숨졌다.<세계사 캐스터 참조>
역사는 되돌릴 수 없겠지만 만약 나가사키 시민의 입장에서 이곳에도 구름이 끼어 지척의 분간이 어려웠다면 어땠을까? 고쿠라의 행운처럼 말이다. 6.25전쟁처럼 전쟁의 참상은 잊기 어려우며 다시는 재발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나가사키에서 되새겨본다.
3
쿠마모토, 하카타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도시이다. 그리고 일본 제일의 물의 고장답게 시내를 흐르는 하천물이 매우 맑아 보였다. 숙소는 역에서 5분거리의 한적한 동네에 잡았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호텔로서 말하자면 리버사이드 호텔이다. 제법 운치가 있어 보인다.
말이 호텔이지 서울의 모텔 수준이다. 일본의 보통 호텔 대부분이 그러하듯 방은 협소하고 비좁아 간신히 두 사람 비켜 다닐 정도이니 갑갑하기 짝이 없다. 값이 조금 저렴한 숙소 중 1실 1인 여관도 있다. 샤워겸용 화장실의 크기가 호텔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양말 빨기가 불편할 정도이니 우리나라의 모텔은 거기에 비하면 널널하기가 A급 호텔 급이다. 예전에도 교토의 시내 호텔에서 머물 때 호텔 방이 협소하여 참 깍쟁이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짐을 내려놓고 밤공기를 쐬기 위해 주변의 강가를 찾았다. 집에서 튼튼하게 신었던 샌달이 여기 와서 탈이 붙는다. 제대로 신어보지도 못하고 망가졌으니 어이가 없다. 그런데 더욱 난감한 것은 떨어진 샌달을 처리할 곳을 찾으니 버릴만한 곳이 없다. 그렇다고 슬그머니 호텔에 두고 나올 수도 없고. 한국에서는 주변을 잘 찾아보면 집 밖에 쓰레기용 비닐 봉투를 내놓아 간단한 것은 끼워 넣어 처리할 수도 있다. 이곳은 도통 쓰레기처리를 어찌 하는지 쓰레기통 구경을 할 수가 없다.
일본의 이미지 중에 질서와 청결을 떠올린다. 비록 조그만 시골에서도 골목길이 깨끗하고 정돈이 잘 돼있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수 없다. 이럴진대 샌달을 어디다 함부로 버리겠는가. 결국 동네를 한 바퀴 돌고서 어느 회사 기숙사 건물 앞에 큰 쓰레기 함을 발견하고 그곳에 실례하고 돌아왔다.
쿠마모토 현의 중심지 쿠마모토 시는 큐슈 남쪽으로 갈 때 꼭 거치는 곳이다.
그러기에 큐슈 신칸센의 중심역이며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이곳에 일본의 나고야성 오사카성과 함께 3대 명성중 하나인 쿠마모토 성은 이 지역의 상징처럼 되어있다. 요금 150엔을 내면 탈 수 있는 노면 전차를 이용하면 성을 갈 수 있다.
또한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임진왜란 당시 선봉에 섰던 가토 가요마사가 전장의 경험을 살려 7년간에 걸쳐 요새처럼 지은 성이다. 임진왜란 때 배운 조선의 축성술도 응용했다고 한다. 일본의 다이묘(영주)는 전국시대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지역 영주로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성은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이나 다를 바 없다. 일본의 수많은 성중 3대 명성에 들어갈 정도로 막강권력자였음을 성이 말해준다.
5년 전, 교토, 나라, 오사카를 갈 때이다. 지역마다 성과 절을 둘러보았는데 기억에 남는 성이 오사카 성이다. 바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이곳에 축성을 개시했다. 때는 1583년이다. 외간이 5층 5계로 이루어진 일종의 궁이다. 그가 죽기 전 까지 해자와 운하가 있는 견실한 성으로 완성되었으나 그후 전쟁으로 모두 소실되고 마지막 여름전투에서 패배함으로서 히데요시 가문은 멸문이 되었으며 애도시대의 막을 내린다.
5층 맨 꼭대기가 천수각이다. 망루라 보면 된다. 그리고 성의 상징적인 건물이므로 성의 방위나 내화 내진을 갖춘 다른 건물과는 특별히 차별화 되어있다. 5층에 내진을 대비하려면 어떻게 보호를 하였나 살펴보니 천수대를 돌로 쌓아올려 그 위에 천수각을 올려놓는 건축술이다.
쿠마모토 성은 후에 혹 사진으로 소개되겠지만 성이 웅장하기가 이를 데 없다. 고쿠라 성을 방문하였을 때 직접 꼭대기 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내부 시설과 유물 크기 등은 쿠마모토 성을 따르지 못함을 한 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성 주위에 반드시 해자를 만든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에 넓은 수로를 인공으로 파서 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일본에 있는 대부분의 성들이 이렇게 해자를 파 놓았다. 그리고 외부성벽을 높게 쌓아 올린다. 출입구는 돌다리로 연결하여 오직 이 길이 출입로이다. 외부 성벽은 돌의 크기가 우람하며 성벽을 기어오르기 못하도록 견고하고 높게 축성했다. 쿠마모토 성은 물이 보이지 않고 바닥이 드러나 있지만 지금도 일본의 고성을 가보면 성 주위 해자에 물이 가득 고여 어떻게 물길을 만들었는지 모르나 잘 보존해 놓았다.
성을 구경하고 시내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옛날로 돌아갔다가 온 느낌이다. 전차를 타고 시내를 돌았다. 회사원인 듯한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이 주변에서 가볼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자 그가 우리를 안내한다.
쿠마모토 시내 스이젠지(수전사 성취원) 공원이었다. 물의 도시답게 쿠마모토시의 대표적 정원으로 맑은 호수가 있다. 원래 호소카와 가문의 별장이었다.
스이젠지 공원은 마치 능과도 같은 둔덕들이 호수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곳곳에 기묘한 형상의 수석들과 잘 다듬어진 소나무들이 감각적으로 식재되어 있다.
스이젠지를 그들은 조경 전체가 일본 전통 정원의 진수라고 자랑한다. 또 일본 정원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잉어다. 이곳 잉어들은 정원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만만찮은 녀석들이다. 다가가서 만져도 얼른 도망가지 않는다. 먹이를 얻어먹기 위해.
당시에는 별장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도심에 대표적 정원이자 공원으로서 입장료를 받고 있다. 개인 별장이라서 규모가 생각보다 작지만 아담하면서도 깔끔하게 조성해 놓은 공원이다.
정문에 들어서자 왼쪽 편으로 깊숙한 곳에 굵은 동아줄을 꼬아 금줄을 걸어놓은 신사가 보인다.
앞마당이 정결하면서도 조용하여 얼른 접근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곳이다. 신사는 문부터 독특하여 들어가기도 전에 스산한 묘한 기운이 엄습하여 여행 동안 한 번도 신사에 들어가 보지 않고 밖에서만 바라보았다.
여름철 납량특집에서 귀신이 있는 집처럼 음산한 기분이 나도 모르게 드는 곳이다. 신사는 일본 고유종교인 신도(神道)에서 신령을 모시는 곳이며 신령을 부르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교회가 수 없이 많듯, 그들은 신사가 그러하다. 일본 내에 십만 개에 가까운 신사가 있고 신자가 1억명이 넘는다니 놀랄 만하다. 각 신사는 신관과 신도 대표들로 구성되어 신사 위원회에서 관리되고 있다.
대신 절을 대단히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곳에 수전사(스이젠지)를 오랜만에 본다. 오사카에 청수사 은각사처럼 큰절을 보았지만 보기 드물기에 아마 신사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다.
4
가고시마 츄오, 5일째에는 큐슈 남쪽 가고시마를 신칸센으로 내려갔다. 쿠마모토에서 1시간 가량의 거리이다. 5시 50분에 기상하였다. 늦잠을 좋아하는 내가 여행 동안에는 새벽에 눈이 떠져 신통하다. 빨리 빨리가 몸에 베어 신속하게 준비하고 신속하게 이동하며 보는 것은 느긋하게, 잠시 쉴 때에는 시원한 캔 맥주 한잔마시며 땀을 씻노라면 마음에 담아둔 티끌까지도 비워진다.
아침식사가 있는 호텔과 없는 호텔이 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역에 가면 식품점과 마트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골라서 사먹을 수 있어 전혀 부담이 없다. 열차에서 식사 할 요량으로 초밥과 김밥 등 간단한 아침 식사거리를 준비했다.
이날 내가 탄 신칸센 5호차 자유석 칸에는 우리 둘 뿐으로 열차를 전세 내었다. 6시 40분 열차에 몸을 실은 이른 시간이지만 출근할 시간인데 손님이 없으니 요즘처럼 일본의 불경기가 남의 일 같지 않다. 괜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기차는 가고시마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
농촌의 풍경이 차창을 스쳐 지나간다.
일본의 농촌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경지정리가 잘되어 네모반듯한 논에 모가 제법 자라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그런데 벌써 노랗게 고개 숙인 벼가 있어 놀랐다. 농촌생활을 하며 성장하여 농사를 알기에 금방 눈에 띠었다. 너무 이웃 논과 달라 아내에게 내가 잘못 보았는지 자세히 보라 했더니 역시 그렇다. 조생종 벼가 익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곳이 남쪽이라서 그럴까.
시골집들은 전통 일본식 가옥으로 단층 내지 이층으로 올린 검은 기와집 일색이다. 우리처럼 지붕 색깔이 울긋불긋 변화가 있을 법 한데 한결같다. 여행 내내 다른 색깔의 지붕을 보지 못했다. 아마 그만한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톡 튀려하지 않은 획일성과 그들만의 연대감도 작용하고 있지 않나 싶다.
농촌마을 마당 한켠에 소형 승용차도 보인다.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이들은 거의 마티즈처럼 아담한 승용차를 애용한다. 도시거리에서 어쩌다 중형차가 지나가기에 보면 택시이다. 큐슈지역에 있는 동안 일본에서 중 대형차를 몰고 다니는 운전자는 어쩌다 손에 꼽을 정도로 본 것 같다. 그들의 실용적 절약정신은 본받을 만하다. 하지만 국부 일본 가난한 일본사람을 엿볼수 있을 것 같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평지보다 산이 많이 나온다. 열차는 어느덧 바닷가를 달리고 있다.
가고시마까지 가는 동안 5개의 역에 정차한다. 열차가 출수(出水)역에 정차했다. 시가지가 온통 푸르게 우거진 숲 속이다. 건물들이 그 속에 파묻혀 있는 것 같다. 거리에 가로수는 우거져서 열심히 녹화한 것임에 틀림없다. 출수는 아늑하고 아담한 속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 준것 같다.
가고시마 츄오 역에 당도했다. 가고시마에는 볼거리가 넘친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라도 꼭 가보아야 할 곳이 있다. 사쿠라지마 활화산이다. 글자대로 벚꽃(사쿠라) 섬(지마)이라는 뜻인데 1914년 분화를 시작해 지금까지 활화산을 유지하고 있어 직접 목격하러 가는 것이다. 섬 둘레가 약 52킬로미터의 불규칙한 타원형으로 택시로 한 바퀴 도는데 1시간이면 돌 수 있다. 지금은 한쪽이 화산폭발 당시 다른 지역과 연결되어 육지나 다름없다. 연중 흰 연기를 뿜어내어 산 정상 2킬로 이내는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분화구에서 간혹 폭발이 일어나므로 운이 좋아 이 광경을 본다면 행운이라 한다. 우리가 사쿠라지마에 도착했더니 7시 20분경에 이미 폭발이 있었다며 간발의 차이로 그 광경을 보지 못해 안타까왔다. 이 화산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활화산 16개중 하나로 뽑힌다. 55만명의 인구를 가진 가고시마와 불과 4킬로 떨어진 곳에서 매일같이 연기를 뿜고 있다는 것도 유래를 찾기 힘들다.
항구에서 바라보면 사쿠라지마가 손에 잡힐 듯 지척이다.
섬에 내리니 제일먼저 화산재가 우릴 반긴다. 도로에 뿌연 흰 가루가 화산활동의 산물임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산에 나무와 마을의 지붕이 온통 재로 덮여 세상이 잿빛이다. 정상에서는 흰 연기가 계속 솟아오르고 남쪽 분화구 하늘은 온통 안개처럼 자욱한 연기가 뒤덮여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태평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여객 터미널 부근에 온천이 흘러 이곳에 야외 족탕을 만들어 놓았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해놓아서 오랜 시간 족욕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피로가 개운하게 씻기는 기분이었다.
화산재로 인한 피해도 커서 산 밑 어느 동네는 통째로 이주를 하였다고 한다. 순환버스를 타고 화산재를 뒤집어쓴 빈 동네와 나무들을 보며 지나가는데 마치 귀신 나오는 집처럼 기분이 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버스에 함께 탄 일본인 관광객들도 이 모습을 보고 놀란다. 1시간가량의 관광을 마치고 여객선 터미널로 왔다. 연중 분화구에서 방출되는 화산재는 가고시마까지 날아들어 특히 섬 가까운 육지항구의 모든 도로에 재가루가 휘날리고 있다. 그냥두면 화산재가 계속 날아들어 쌓이므로 물청소 차가 돌아다니는 것이 마치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5
히로시마시의 미야자와는 일본의 삼경(三境)중 하나로 책자에 미야자와의 대표적 표지 모델로 소개된다. 궁금하여 일본인들에게 3경을 물었더니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괜히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서 무안을 준 것 같다.
나머지는 센다이 마츠시마, 교토 야미노하 시다테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자연 경관이니만큼 기대가 된다.
미야자와에 가는 길은 노면 전차를 이용하면 1시간가량 걸리지만 JR기차 편을 이용한다면 30분이면 갈 수 있다.
10분에서 15분 간격으로 페리선착장에서 출항하는 JR 페리호가 있고, 민간이 운영하는 선박이 따로 있는데 요금에서 차이가 난다. JR 패스를 제시하니 무사통과다. 참 편리해서 좋다. 드디어 섬에 도착했다.
여객터미널 광장에 방목한 사슴들이 순한 양처럼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며 따라 다닌다. 만져도 얌전히 있다. 맞은편 산 계곡에서는 내리는 물이 상가 앞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다. 물이 잘 흐르도록 청계천의 상류처럼 좁게 만든 개천의 바닥을 몽돌과 돌을 이용해 평지처럼 만들어 놓으니 그렇지 않아도 맑은 물이 더욱 투명하게 비친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요즈음 무더위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앉아서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혔다.
식료품 가게 주인에게 물었더니 이곳은 캐나다와 유럽관광객 사이에 인기가 있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아시아권은 의외로 많지 않다고 주인이 귀뜸 해준다.
미야자와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은 이쓰쿠시마 신사가 있다.
더욱 특이한 것은 신사 본전 200미터 전방 바다 속에 이쓰쿠시마 신사와 미야지마의 심볼이라 할 수 있는 주홍색의 오토리가 서있다. 오토리는 일종의 신사의 정문에 해당한다. 높이는 자연목 녹나무로 만든 16미터이고, 버팀목의 둘레가 10미터에 이른다. 바닷 속에 기둥을 파서 세워놓은 것이 아니라 무게자체로 서있다고 한다. 왜 바다위에 바다를 향해 세웠는지 모르지만 그런데 썰물에는 몸체 전체가 드러나고 들물이 되면 물속에 서있는 모습이 장엄하게 보인다.
페리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까이 다가가자 한눈에 띤다.
오토리 문을 지나 신사가 보이는데 웅장하고 아름다운 구조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선상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저기서 셔터소리가 들린다. 섬 전체가 관광지일 만큼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섬에 내린다. 사방에 바다를 끼고 있는 일본이지만 해안가 바다에 신사와 오토리를 세울 생각을 하였을까? 답은 얻지 못 하였다. 짧은 일본어 실력 때문에? 아니다. 물어서 모르면 무안해 할까봐이다.(농담임)
우리가 들어갈 때는 마침 썰물이라서 신사와 오토리가 드넓은 모래사장에 몸체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래사장을 걸어가서 오토리를 만져보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신사에 대한 흥미가 없어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붉은색 칠을 한 이스쿠시마 신사에 바닷물이 들어오면 장관이다. 바다에 기둥을 박고 그 위에 신사 건물을 올렸다. 밀물 때 만조가 되면 바닷물이 기둥을 덮어 마치 신사가 물위에 떠있듯 보이니 야경은 실로 황홀할 것 같았다. 사진을 보면 실제로 그렇다.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보고 나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쉽다.
좀체 구경하기 힘든 절이 여기에 있다. 다이간지 절이다. 명치유신까지 이스쿠시마 신사의 수리와 건축을 맡아온 절이라한다. 일본은 절과 신사가 마치 우리나라로 치면 절과 산신각과의 사이처럼 가까운 것 같다.
우리 절에는 반드시 절터 주변 윗쪽에 산신각을 모시고 있다. 여기에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지만 불교가 들어올 그 이전부터 토속 종교가 민간에 먼저 자리를 잡았다. 민간과의 융합을 위해 절과 산신각 또는 삼성각이 자연스럽게 유착되었다는 주장이 근거가 있다. 또는 절을 지을 때에는 산신의 허락이 있어야 하기에 정중하게 산신각을 지어 모신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일본의 절도 신사와 무관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일본의 서민생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보존된 거리를 걸었다.
여기에는 민가와 상점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언뜻 보아도 현대적인 거리가 아닌 일본식 옛 거리로 보존해 놓았기에 골목들을 돌아다녀 보았다. 어떤 음식점은 작지만 특화되어 손님들이 오물오물 비집고 앉아 식사하는 모습도 보인다. 역사박물관과 특히 수족관은 오늘따라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견학하고 있었다. 아마 돌고래와 강치쇼가 인기 있어 왔는지. 온 김에 쇼를 볼 수 있을까 싶어 기웃거렸더니 이미 만원이어서 별 수 없이 나왔다.
6
큐슈의 주요 여행지를 다니다가 내친걸음에 바다건너 히로시마에서 하루를 묵고 오사카를 향했다. 배낭을 다시 정리하고 가져간 간식거리도 유용하게 쓰고 해서 부피가 줄어든 느낌이다. 남은 이틀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 이곳을 선택했다.
열차 안에서 그동안 JR패스를 잘 이용하였다고 느긋하게 등받이에 허리를 펴는 순간 아내가 슬쩍 패스를 보다 깜짝 놀란다. 유효기간에 착오가 생겼다. 마지막 날은 이용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분명 철도 이용시 첫 날은 도착 일 이라서 제외했는데 마지막 날이 제외되어 있었다. 오사카에서 하룻밤을 묵고 마지막 날 하카타 공항으로 이동 할 계획이었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일정에 차질을 빚을 뻔 했다. 하긴 그래서 같이 다닌게 아닌가.
만일 다음날 정식 열차표를 끊어 내려간다면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다.
방향을 큐슈로 되돌아 잡아 하카타로 다시 내려가 묵으면서 이틀을 보내기로 했다. 자유여행이 아니면 어떻게 마음대로 계획을 변경할 수 있을까.
유후인(由布院)
유후인 하면 온천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유명하다.
영화와 TV에도 여성적인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경치가 자주 나오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북큐슈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오이타 행 열차 안에서 한 아주머니에게 벳푸와 유후인 중 어느 곳을 추천하고 싶은가 하고 물었다. 자기는 벳푸에 살면서도 유후인이 최고다며 표정만 봐도 알 수 있게 진지하게 얘기해주는데 알아듣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북큐슈 동쪽 끝 도시 오이타역에서 내려 유후인 행 열차를 기다렸다. 하카타에서 유후인까지 직접가는 노모리 열차를 타면 좋았을 텐데 열차시간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두 칸짜리 전동 열차가 들어온다. 벌써 시골냄새가 물씬 풍긴다. 사람들이 순박하고 말을 꺼내면 친절하다. 기관사석이 버스 운전석처럼 투명 칸막이로 막아 차내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여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오이타에서 유후인을 가는 동안 주위가 모두 산악지대이다. 1,584미터의 유후다케 산 아래에 있는 분지지형의 마을 유후인이 그 곳에 있다.
우리나라 강원도에서는 서에서 동으로 갈수록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지만 이곳은 산속을 향해 들어가는데 그만그만한 산들 사이로 철로가 지나간다. 간혹 평지가 나오면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복선이 아닌 단선 철로를 타고서 분지를 향해 가는 동안 조용하면서도 정서적인 산간의 공간을 함께 하다보니 포근한 시골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버스 정류장처럼 정차장만 달랑 하나 만들어놓은 아담한 간이역은 너무도 인상적이다. 이런 곳에 역이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에 불쑥 역이 나타나기도 한다.
열차는 협곡사이 또는 철로 양쪽으로 나무숲이 계속되어 그 사이로 기차가 터널을 지나듯 가기도 하고 때론 분지에 있는 크지 않은 평야지대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가는 동안만도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지역이기에 남성보다 여성들이 많이 찾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제껏 여행 중에 큐슈에서 21세기의 현대판 도시와 조형물을 보아왔다면 여기 유후인은 동떨어진 세상에 들어와 온천과 호수와 갤러리가 함께하고 낭만을 즐길 수 있도록 인공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조성된 공간임을 그냥 느끼게 된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눈앞에 손에 잡힐 듯 큰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유후다케 산이다. 킨린코(金鱗湖) 호수와 함께 유후인을 대표하는 자연 경관이다.
하지만 그곳까지는 2-3킬로쯤 떨어져 있는 거리이다. 산봉우리에 걸친 구름이 회오리가 되어 요동을 친다. 몰아치는 바람에 봉우리가 가렸다 나타났다 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한해에 찾아오는 관광객이 400만명이 된다고 하니 주민의 90%가 관광업무에 종사한다고 한다. 온천으로는 벳푸가 제1이지만 이런 경관과 전통마을 보존으로 이를 보기위해 유후인 온천을 더 많이 찾는다고 했다.
‘킨린코 호수는 1884년 일본 어느 학자가 오수의 물고기 비늘이 저녁놀에 금빛나는 모습을 보고 새로 붙인 이름이다. 가을과 겨울 아침에는 호수 바닥에서 올라온 온천수와 민물이 만나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호수를 신비롭게 꾸며준다고 한다.’(안내서 참조)
역을 중심으로 대로가 시작된다. 역전에서 유후인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맞은 편 유후다케 산을 향해 뻗어 있다. 길 양쪽은 상가로 조성되어 정갈스런 마을과 상점들이 빼곡이 들어서서 우리를 반겼다. 주택은 옛날 전통 가옥을 그대로 보존한 채 주민들이 살고 있다.
젊은 부부 한 쌍이 다가와서 길을 묻는다. 보니 한국인이다. 초행길이라서 가르쳐주진 못했지만 호수에 가는 길이라 했더니 자기는 오늘 1박 할 것이라 한다. 낭만의 산골을 찾아왔으니 아마도 그들은 아늑하고 편안한 하룻밤이 될 것이다.
킨린코 호수를 찾아가기 위해 바삐 걸었다. 호수는 유후다케 산 아래에 자리 잡고서 석양 노을에 반사된 금빛 노을이 찬란하게 눈이 부시다. 그래서 한자어로 금린호(킨린호)라 하는 모양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개울바닥에서 물이 퐁퐁 솟아나오는 것이 보인다. 물과 온천이 한데 섞여 호수에 흘러들고 있다. 그런데 솟아오르는 지하수를 손으로 받아보니 미지근하다. 온천이 아니란 말인가? 이곳이 유후인인데. 온천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산과 호수가 함께한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가져간 간식을 펼쳐놓고 둘이서 술 한 잔으로 온 기념을 대신 하였다. 호숫가 마을에 시골스런 온천 목욕탕이 여러 군데 있었다. 자그마한 일본식 가옥이 있어 다가가서 보니 예약을 하는 온천 목욕탕이다. 온천지역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여기서 하룻밤을 묵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짧은 여정에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사실 오늘 늦은 시간에 길을 나섰다. 출발하여 돌아올 시간이 부족해 걱정되기도 했지만 돌아와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 11시가 조금 넘었다.
오사카에서 한나절을 까먹어 열차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여행이 계획대로만 잘 이루어지는 것이 어디 있을까? 의외의 상황과 비상상황도 발생하듯이 순탄할 수만은 없다.
황산여행에서 황당한 일이 바로 그런 경우다. 8쌍 부부가 식당에 같은 음식을 먹었다. 그 중 두 명이 이튿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배탈로 너무 고생한적이 있다. 모두 걱정하면서 여행을 했지만 정작 본인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왜 하필 내가 배탈로 고생할까. 의외의 상황은 항상 발생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 까지만 해도 유후인은 계획에 없었다. 교통편이 잘 맞지 않아서 먼 후일로 미뤘던 곳이다. 그렇지만 이런 곳을 놓치지 말라고 헛걸음을 시켰는지 모른다. 오사카와 하카타 유휴인 왕복을 한 거리가 700 킬로 이상의 강행군을 한 것 같다.
즐거운 기분으로 다니다보니 피로함을 모르고 시간만 흐른 것이다. 여행자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을 다녀와 무엇보다도 흡족하다. 내일은 오전에 가까우면서도 가보지 못한 후쿠오카 시내를 구경해야겠다. 편안한 잠자리를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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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남쪽 큐슈를 여행하면서 날씨는 무더웠지만 여행하는 동안 그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시간에 쫒기지 않고 느긋한 마음만은 한켠에 도사리고 있었기에 편안했다.
‘여행은 혼자서 보다는 좋은 친구와 좋은 친구보다는 부부가 함께 하는 여행이 낫다’ 이건 나의 견해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길에서 만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본다. 친구이거나 연인이거나 가족 또는 부부들이다. 그중 가장 많이 만나는 경우는 친구와 부부다. 부부 중에 같은 취미라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훌훌 털고 혼자 나서기도 한다.
4년 전 쯤, 아내가 일본어를 배우겠다고 동네 주민자치센터에서
개강하는 일본어 교실에 등록신청을 할 때 만 해도 속으로 웃었다.
그 나이에 무얼 하겠다고 부산을 떨며 밤낮으로 일본어에 매달리고 있는지.
기역 니은부터 시작하듯 한 달, 두 달, 해를 더해 삼년쯤 되었을까. 벙어리였던 입이 점점 떨어지더니 언제부턴가 일본인 선생과 간단한 대화를 시작하고. 문자가 오면 답장을 보내고 전화가 오면 간단한 대화들이 오가며 웃어가면서 떠드는 모습을 곁눈질로 보았다.
하카타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하카타 역에 도착했다. 역 안내센터에서 안내 아가씨에게 건네는 아내의 첫마디다.
스미마센,..... 으로 시작해서 무언가를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아가씨는 알아듣고서 대답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바로 아내의 현장실습 일본에서의 첫 대화의 자리였다. 여행 기간 내내 나는 아내에게 모든 걸 일임했다. 아니 일임이 아니라 대화의 전권을 가져갖다.
내가 궁금한 것들은 아내가 일본어로 통역하여 일본여행의 원만한 물꼬를 트게 되었다.
한 비야는 “방문국의 언어를 몰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모르면 있잖아요. 그것, 바디 랭귀지.” 하며 언어걱정을 하지 말고 떠나라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알아듣기 위해 시간이 걸리고 잘못하면 오해하는 경우가 생겨 낭패를 볼 때도 있다. 그러기에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 놓을 필요성을 느낀 것도 이번 여행 중 배운 점이다.
내가 일본인을 만나면 하는 말은 “스미마센과 아리가도 고자이마스” 였다.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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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 교장! 오랜만에 대문에서 보니 정말 반갑구먼,
더운 날씨에 알차고 즐거운 여행 잘하셨으리라 믿네.
올림픽 축구는 어디서 봤을꼬? ㅎㅎㅎ
일본에서 봤으면 그놈들 미친 꼴을 봤을 텐데.ㅋㅋㅋㅋ
검정 바둑알처럼 늘어져있는 꼴이 불쌍하기는 하드라.
해피 손! 그동안 잘 있었지? 일본에 있었더라면 숨 죽이고 다녔겠지. 여기나 저기나 덥기는 마찬가지야.
동문카페에 턱 하니 자리 잡고 있구만요~(조회 수도 급속도로 늘어나구먼)
담아온 사진, 카메라 속에서 차근차근 풀어보소. 역시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