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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English? - 영어, 제 2 공용어화 필요 |
이길 수 없으면 한편이 되라 |
이영조 _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교수 |
가벼운 몸 풀기 삼아 간단한 퀴즈 하나로 시작해 보자. 로마의 지배자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연애’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이저>를 통해서건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통해서건,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었다기보다는 다분히 정략적인 연합으로 보이지만, 당시 지중해 지역 최강국과 최부국 지도자 사이 결합은 지중해 세계의 국제정치 판도는 물론 로마와 이집트 국내정치에도 엄청난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의 밀어는? 그런데 도대체 이 두 사람은 무슨 언어로 사랑을 속삭였을까? 아니, 흥정을 했을까? 라틴어? 때~앵. 정답은 그리스어이다. 이 언어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지중해 지역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그 사용 범위가 확대되었고,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를 정복하고 지중해 동부 지역 곳곳에 그리스계 왕가를 세우면서 지중해 지역의 국제어로 자리를 잡았다. 기원전 146년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숙적 카르타고를 완전히 멸망시킨 후 지중해 지역의 유일 패권국가가 되었고, 같은 해 코린토 전투에서 그리스를 궤멸시켰지만 100년이나 지난 이때에도 라틴어보다는 그리스어가 지중해 세계의 국제어였다. 따라서 그리스어는 로마 엘리트층에게는 필수적인 교양의 일부였다. 카이사르도 젊은 시절 그리스의 로도스섬으로 유학을 간 적이 있었다. 훗날 동로마제국이 성립되면서 그리스어는 동로마제국의 공용어가 되었다. 미국이 망해도 영어는 남는다? 굳이 먼지 풀풀 날리는 고대사의 한 페이지에서 이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세계어로서의 영어의 미래를 점치기 위해서이다. 영어도 고대의 그리스어와 마찬가지로 대영제국과 초강대국 미국의 영향력 및 패권 확대에 힘입어 세계어가 된 것은 분명하다. 설사 내일 미국이 망하더라도 이미 세계어의 지위를 확보한 영어는 살아남을 것이다. 이 점은 그리스어에 이어 세계어가 되었던 라틴어를 보아도 분명하다. 로마제국의 팽창과 패권에 힘입어 라틴어는 마침내 로마 세계의 공용어가 되었다. 기원후 476년 서로마제국은 내우와 외환이 겹쳐 멸망했다. 그러나 제국은 망했지만 유럽 지역의 세계어로서 라틴어의 지위는 1,000년 이상 유지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로마 가톨릭교회라는 또 다른 ‘제국’의 공식 언어가 라틴어였던 것도 크게 한몫을 했다. 아무튼 세계어 등장은 제국의 팽창과 패권 확립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일단 세계어 지위를 획득한 제국의 언어는 그 제국이 멸망한 다음에도 오래도록 세계어로 살아남는다. 같은 이유로 미국이 내일 망하더라도 세계어로서 영어의 지위는, 오늘날 변화 속도가 과거보다 빠르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100년 이상 유지될 것이다. 그런데 왜 제국의 언어는 제국보다 오래 살아남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언어를 배우는 데 필요한 노력이 같다고 한다면 같은 노력으로 가장 널리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세계어이다. 비용 대비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세계어이다. 제국이 망해도 그 언어가 세계어로 남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영어가 중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요 교과목이니까, 입시의 주요 과목이니까, 아니면 취업에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영어가 세계어라는 데서 파생된 부수적인 이유일 뿐이다. 영어의 중요성은 그것이 진정한 세계어라는 점에 있다. 브리티시 카운슬(British Council) 조사에 의하면 현재 세계의 영어 사용 인구는 15억명이다. 3억5천만은 모국어로, 3억5천만은 제2의 언어로, 그리고 7억5천만이 외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영어를 현재 배우고 있는 숫자는 10억이다. 숫자만 중요한 게 아니다. 숫자로만 따지면 중국어의 사용 인구도 못지않다. 하지만 거의 전적으로 중국 한 나라에 집중된 중국어 사용 인구와는 달리 영어 사용 인구는 5대양 6대주에 퍼져 있다. 영어만 하면 사실상 세계 어디에서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역사상 그 어떤 언어도 이런 지위를 누린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화된 정보의 80%가 영어로 되어 있다. 바로 전례 없이 널리 사용되는 세계어이기 때문에 비용 대비 효과가 엄청난 것이 영어이다. 영어는 이미 전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 사용하거나 배우는 언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의 운명과는 관계없이 오래도록 사용될 것이다. 심지어 같은 이유에서 영어 사용 인구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당장에 망할 이유도 없고 보면 세계어로서 영어의 지위는 앞으로 최소한 2백년은 지속될 것이다. 공용화가 왜 필요한가 이처럼 앞으로의 세계는 싫든 좋든 영어가 통용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좀 더 일찍 적극적으로 수용하느냐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지구촌이 더욱 더 긴밀하게 하나의 단위로 엮어질 미래에는 영어를 못하면 세계를 상대로는 사업도, 학문도, 그 무엇도 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영어를 못하면 사실상 장애인이 겪을 만큼의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는 반면, 영어를 잘하는 게 엄청난 강점이 된다. 이미 영어 능력은 하나의 특권이다. 흔히 우리 주변에서 “영어만 잘해도 먹고 산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 이 능력이 얼마나 큰 혜택을 수반하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표현이다. 이처럼 영어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가운데 영어 능력은 새로운 사회적 분화의 기준이 될 것이다. 지금같이 소수만 영어 능력을 갖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과거에 부의 소유, 생산수단의 소유가 그랬던 것처럼, 소수의 영어 특권층이 계속 기득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영어 교육이 현재와 같이 거의 전적으로 시장에 방임되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영어는 조선시대의 한문과 같은 지위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특권층의 언어가 되고, 지배를 위한 언어가 될 것이다. 또 영어를 잘한다는 게 많은 비용 지출을 수반한다면 소득 격차가 영어 격차로 연결될 것이다. 이것은 다시 소득 격차를 확대시킬 것이다. 따지고 보면 소득에 의한 지배이지만 이것을 능력의 차이로 호도시켜 정당화하게 될 것이다. 엄연히 능력의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식으로 말이다.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먹고 살 수 없는 나라, 영어가 더 이상 특권이 되지 않는 나라, 영어는 기본이고 다른 능력이 더 중요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영어를 제2의 공영어로 채택하고 국민 누구나 개인적인 지출 없이도 일정 수준의 영어 능력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국가가 조성하는 것이다. 물론 많은 비용이 수반되지만 그에 상응하는 부수적 경제효과를 감안하면 비용은 상쇄되고도 남는다. 영어 공용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잠시 접어두고 영어 공용화에 대해 흔히 제기되는 반론들을 먼저 살펴보자. 국민 모두가 잘할 필요 있는가? 낭비 아닌가?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다지만 업무와 관련해서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은 소수이게 마련인데 과연 모든 국민이 이 언어를 잘할 필요가 있는가? 당연한 질문이다. 사실 지금의 우리나라라면 업무상 영어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은 1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도 과연 그럴까? 이 문제는 우리나라가 장차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와 세계 경제의 접촉은 주로 무역의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원자재와 일부 중간재 그리고 자본재를 수입해 생산한 제조품을 세계시장에 내다팔았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앞으로도 이런 형태로 계속 발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인도·베트남 같은 나라도 추격해 오고 있다. 10년 뒤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국내의 산업이나 회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극소수의 산업, 극소수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국제경쟁력을 지니지 못하게 될 공산이 크다. 국민의 정부 이후 참여 정부에서 동북아 중심국가(hub state)니 동북아 금융 중심이니, 동북아 물류 중심이니 하는 우리나라의 미래 비전을 내놓은 것도 사실 같은 문제의식에서 비롯한다. 우리가 제조업이 아니라 각종 서비스를 매개하는 중개국가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면, 영어는 우리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것은 싱가포르의 경우를 보면 분명해진다. 왜 싱가포르에 세계 유수 기업의 아시아지역총괄본부, 세계 유수 대학의 분교, 세계 유수 금융기관의 지점이 몰리겠는가? 위치 때문에? 물론 위치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위치라면 우리나라도 해양 동북아와 대륙 동북아를 가교하는 절묘한 위치에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를 연결해 보라. 그 한가운데 서울이 있다. 위치만으로는 이들 동북아의 주요 도시를 자전거 바퀴의 살(spoke)처럼 연결하는 축(hub)이 서울이다. 싱가포르가 동남아의 서비스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다분히 영어가 통용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그만큼 세계의 기업이나 금융기관 그리고 학교가 활동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지역을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국제적인 업무를 볼 사람만 영어를 잘하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적재를 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유연성을 잠식한다. 이 점은 기업들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필수적인 업무가 그리 많지 않다 하더라도 기업들은 채용의 조건으로 높은 수준의 영어 능력을 요구한다. 물론 어느 특정 시점에서 우수한 영어 능력이 요구되는 직책은 그렇게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 능력을 가진 사람을 그 직책의 수만큼만 채용한다면 그들만 영어 필요 업무에 종사하고 나머지는 영원히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만약 기업의 필요가 달라지더라도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아울러 영어 필요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 영어는 잘하지만 다른 능력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업무분장이 이렇게 영어 능력에 따라 고정된다면 오래도록 인도의 발전을 저해해 온 카스트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흔히 카스트를 계급으로만 이해하지만 강제적으로 고정된 사회적 분업이 이 제도의 본질이기도 하다. 잠재적인 수요에 대비하고 변화하는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는 점에서 전 국민을 영어 상용 인구로 바꾸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지금도 영어 학습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돈을 지출하고 있다. 초·중등 과정을 거치면서 학원에 쏟아붓는 돈은 물론이고 대학생의 경우도 1년쯤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조기유학도 많이 간다. 많은 경우 영어 구사 능력만을 위해. 물론 이렇게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없는 부모는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한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영어를 배우기 위한 지출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영어 능력을 기르기 위해 사용된 비용 이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두들 영어 학습에 열을 올리다 보니 함량 미달의 엉터리 원어민 영어 강사들도 횡행할 수 있었다. 국가가 나서서 좀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영어 교육 시스템을 마련한다면 적어도 엉터리 강사나 영어만을 위한 유학이나 연수에 사용되는 사회적 낭비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어 상용 국가가 됨으로써 얻게 될 부수적인 이익까지 고려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혜택은 더 커질 것이다. 한국어의 보존과 발전에 줄 악영향은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채택할 경우 가장 심각한 걱정거리는 그것이 우리의 얼과 역사 그리고 관습과 제도가 녹아들어 있는 우리의 국어에 미칠 영향이다. 영어의 공용화는 분명히 국어의 발전과 순수성을 많든 적든 훼손할 것이다. 외국어가 우리말에 대해 미칠 수 있는 불행한 영향력에 대해서는 지금의 우리말 자체가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중국과 끊임없는 문화적 접촉 하에 있었고 지배층이 중국의 사상과 학문에 크게 경도되었던 우리나라는 많은 고유의 어휘를 상실했다. 이웃의 일본어만 해도 고유 어휘들이 많이 살아남아 있다. 한자를 빌려 쓰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 자기들의 원래 말로 풀어 읽는다(訓讀). 몽고어를 보면 중국어에서 비롯된 어휘가 매우 적다. 나의 제한된 몽고어 실력으로는 거의 없다시피 한 것으로 보인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말 가운데서 뽀즈(중국어의 바오즈: 만두) 정도가 아닌가 싶다(대신 70년간 소련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서 러시아어에서 온 어휘는 매우 많다). 우리말은 어떤가? 많은 고유의 어휘들이 사라져 버렸다. 오늘, 내일, 모레. 내일을 가리키는 우리의 본디말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본어와 몽고어에는 이런 어휘들이 다 살아 있다. 일본어의 경우 한자로 쓰긴 하지만 읽기는 고유의 말로 읽는다. 적절한 대책이 없는 한 이 같은 한국어의 비극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지 않더라도 영어에 의한 우리말 ‘오염’은 이미 진행 중이다. 뿐만 아니라 굳이 영어가 아니더라도 100년 혹은 200년 후의 한국어는 지금과는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다. 물론 활자매체의 발달로 예전보다는 변화의 속도가 느리겠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간다면 과연 우리가 얼마나 우리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이 오늘날 우리의 말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말의 보존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변화하면 변화하는 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변화를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변화의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우리말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더 강화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말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우리말 연구, 우리말 교육, 우리말로 글쓰기 등을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지원하며 우리 얼을 지키기 위해 국사 교육을 강화하는 노력이 병행된다면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우리말이 사라진다든가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문의 압도적인 영향 하에서도 면면히 전해진, 생명력이 매우 큰 언어가 바로 우리말이 아니었던가? 영어를 제2공용어로 채택한다고 해서 쉽사리 무너질 우리말이 아니다. 게다가 다른 언어가 지배하고 있는 환경 하에서 극소수의 집단이 사용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 언어란 게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일은 없다. 싱가포르의 중국어를 보라. 식민지시대부터 따지면 영어가 싱가포르의 공용어가 된 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중국계의 중국어는 멀쩡히 살아 있지 않은가. 공용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물론 하루 아침에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채택할 수는 없다. 정부는 적어도 한 세대(25년)에 걸친 장기계획에 따라 단계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단계적인 준비과정을 세세히 다룰 수는 없고 몇 가지 기본 방향만 제시한다. 우선 정부기관부터 시작해서 기업·사회단체 등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문서 양식을, 현재의 출입국신고서처럼, 2중언어화함으로써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장차 추가될 제2의 공용어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둘째, 영어과목만이 아니라 일반교과목을 일부는 국어로, 일부는 영어로 가르치기 시작한다. 예컨대, 국사와 도덕·한국지리는 우리말로, 세계사와 세계지리·수학과 과학은 영어로 가르치는 것이다. 문제는 교사인데, 기존의 교사들을 영어권에 2년 정도 유학을 보내 영어도 익히고 전담과목에 대한 연구도 하게 할 수도 있고, 숫제 외국인 교사를 수입해도 된다. 이 경우 특별히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우리 교사들과 같은 임금을 주는 수준에 약간의 인센티브만 제공하면 비교적 소득 정도가 낮은 영어권에서 한국에 와 가르칠 교사는 많다. 하지만 교육기관이 교사를 어떻게 확보하는가에 대해서는 정부가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아래에서 이야기하는 ‘voucher system’(바우처 제도, 공·사립을 불문하고 학생이 다니는 학교에 재정이 투입되는 제도, 편집자)을 이용하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정부가 할 일은 각 과목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교육 내용과 수준만 결정하고 이 시스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는 일뿐이다. 셋째, 바우처를 이용한 경쟁체제를 통해 교육의 질을 담보한다. 정부는 각 학생에게 특정 교과목을 학교든 사설교육시설이든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선택해서 수강할 수 있는 바우처를 발행한다. 교육기관은 이 바우처를 정부에 제시하고 상응하는 금액을 받게 된다. 학교의 경우 아주 기본적인 운영비를 제외한 교사의 월급은 이 바우처 수입에서 지출하게 된다. 따라서 학교와 학교 사이에도 경쟁이 일어나고 학교와 사설교육기관 사이에도 경쟁이 일어난다. 경쟁의 과정에서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경쟁력 있는 우수 교사를 유치할 것이기 때문에 교육의 질은 자연스럽게 확보된다. 이렇게 될 경우 공교육과 사교육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 제도의 시행에 앞서 공립학교는 모두 지역공동체에 이전하여 자체적으로 운영케 하거나 아니면 민영화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교사도 공무원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학교운영위원회나 운영재단과 새로 고용계약을 체결케 해야 함은 물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