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식사 후 나른한 신체의 변화에 피곤이 살짝 몸속에 퍼진다. 약 세달 전의 일이다. 내가 작업이 들어간 곳은 팔당대교를 건너기 전 인적 없는 한적한 곳. 한강 둔치의 갈대밭이 좌우로 넘쳐 있고, 사이로 나 있는 산책길에는 빠짐 없이 누군가가 자리하고 있는 명소. 인공으로 심어놓은 외로운 소나무 네 그루가 하늘에 닿을 듯 어부러진 전경들이 보기만 해도 넋을 살짝 놓고 가야하는 곳이다. 바라보이는 곳에 또 하나 인공탑이 솟아 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위를 향해 올라간다. 이곳은 서울과 경기일원의 아베크족들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음악을 듣고 시간을 때우고, 사랑도 불태우고, 말 그대로 낭만을 아는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다. 그렇지만 세월은 흘러가는 법. 시대와 맞지 않게 되어 퇴장을 요구받게 된다. 나의 아내는 불교라는 종교를 좋아한다. 안심도량에 다닌 것이 약 8개월, 법명은 여여향. 강남 어딘가 절에서 받았다는 그 법명을 들을 때면 참 예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법명이 예쁘다 보니 행동도 그 이름 따라 하게 되는 것 같아 보기에도 좋다. 아내가 안심도량에 다닌 후로 많은 변화가 찾아 왔다. 그 변화는 쉽게 구별되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집안 분위기가 항상 밝은 편이다. 큰딸은 28세, 그 아래의 아들은 23세. 그렇게 4식구가 도란도란 행복하게 지내왔다. 아침저녁으로 많은 대화도 나누고 장난도 치고 딸과 레슬링도 하고 다른 집들 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게 지냈다. 나는 건축, 인테리어에 종사하는 건축쟁이다. 25년간 이업에 종사하며 희노애락을 겪었지만 그 희노애락을 사랑한다. 쉬운 일보다는 난공사를 선호하고 손쉬운 일보다는 힘든 일을 좋아한다.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더 즐겨하다 보니 공사도 많이 들어오고 한다, 물론 궂은일을 즐기다 보니 항상 일은 힘이 든다.
공사를 착공한지 두 달이 지났다. 예상은 했지만, 목조 건물이라서인지 예정공기를 벌써 지나버렸다. 예정 공기는 약 60일에서 70일. 하루만 지나도 현장에 쏟아 붓는 현찰만 천 만원 정도. 일주일이 지났으니 약 7천만 원이 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시간에 아이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한다. 법명이 여여향인 아내의 말은 구구절절 나의 가슴을 파고든다. 사람들과의 관계와 소신, 스마트폰으로 흘러나오는 아내의 말은 길이 밀릴 때는 밀리는 데로 짧은면 짧은 대로 나의 마음을 채워준다. 그동안 절에서 들은 법문들을 교훈처럼 말해줄 때는 이해하기가 매우 쉽다. 그 중에서 정말 평소 내생각과 같은 법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려 놓는 일과 바라보는 일이다. 그날 나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지장보살’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하니 믿기지는 않았지만, 전화를 끊고 운전을 하며 지장보살을 조용히 입으로 불렀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데도 쑥스러웠다.
하루 전 날 현장에서 벌어진 일은 수습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찼다. 공사 현장의 조건들이 좋지 않아 원자재가 엄청나가 소모되었다. 날이 갈수록 예산이 초과되고, 그러다 보니 공사비가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사단이 벌어졌다. 인부들이 웅성거렸고, 결국 건축주와 가까운 사람들의 귀에 이러한 일들이 들어가게 되었다. 나에게 돌아오는 일은 불보듯 뻔한 일. 70일 동안 열심히 현장을 이끌어 온 것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었다. 불신이 팽배했고, 어느 것 하나 나에게 유리한 것 없는 절망의 하룻밤을 보내고 출근하는 길이었다. 지장보살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생소했다. 사실 나는 마취가 잘 안 될 때가 있다. 가느다란 침도 내 몸에 잘 들어오지 못한다. 신체구조가 특이 한가보다. 침이 들어오는 순간 경련이 일어난다. 신앙이란 내게 침과도 같았다. 그것을 받아들이기엔 내 안의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떨쳐지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앙의 문제를 놓고 아내와 같이 가족끼리 많은 대화를 나눈다. 아내가 기도한다고 늦을 때면 안쓰러워 밤에 데리러 가기도 한다. 아이들도 같이. 아내를 좋아하고 아내가 믿는 종교를 좋아 한다. 내가 그 신앙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일 뿐. 그래서 아내로부터의 대리 만족과 성취감으로 여태껏 살아 왔다. 내가 참 어리석게 삶을 살아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불과 보름 전의 일이었다. 내 나이 오십대 중반, 평생을 다 보내고 이제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뒤늦게 입안에서 지장보살을 되뇌고 있다. 이 순간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고 얻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지했다. 그저 답답한 마음, 앞이 캄캄하며 어두운 상태, 누군가 교통정리를 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상태였다. 다년간 쌓은 경력과 지혜보다는 능력의 한계가 보이는 상황이었다. 수십 명의 인부들이 빚어내는 것은 작품이 되어 빚을 뿜어내지만, 공사비는 한정이 되어 있다는 것이 항상 딜레마인 것을. 결국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인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지장보살을 삼십분 정도 욀 즈음 마음이 뜨거워졌다. 일할 때 아내를 데리고 다녀 버릇한 것이 습관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홀로인 것을 느끼는 허전함이 채워진 것이다. 지장보살이 몸 안 가득 훈기를 주었다. 내가 마치 지장보살과 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즐거워졌다. 입으로 외기만 했을 뿐이었다. 이런 기분은 과연 뭘까. 지장보살을 외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뜨겁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그저 마음이 뜨겁고, 무언가 꽉 채워져 있다는 것만 느꼈다.
그 마음으로 현장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인부들에게서 전날의 술렁임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저마다 열심히 자기 일들을 하고 있었다. 공사현장의 일은 남은 공기가 말해주는 것이다. 이제 약 이십 일 남짓의 기간이 관건이었다. 그러한 시점에서 총책임자인 내게는 자금 문제 보다는 한시바삐 공사를 마감해야 하는 것이 최대의 관건이었다. 그런데 인부들이 돈으로 술렁거리지 않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곧 아내에게 전해주었다.
그러던 중에 며칠이 흘렀다. 중요한 목수들 몇 명이 결근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그렇잖아도 건축주의 당부가 있어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는데,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탁해서 될 일도 아니었고, 용역업체에서 목수를 알아보았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아내는 지장보살을 염하라고 했다. 내가 지장보살을 왼 것은 단지 목수 일을 해결해 보고자 함은 아니었지만, 그 날 오후 내내 지장보살은 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장보살은 마치 친구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사실 지장보살이 부처님처럼 예쁜 얼굴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지장보살은 ‘어떤 형태로도’ 다가올 수 있다고 했다. 입속에서 반복된 지장보살은 커다란 힘이 되어 나의 아랫배로, 몸속으로 퍼졌다. 다음날도 역시 많이 막히는 길목에서 아내와 긴긴 통화를 했다 그러고 다시금 지장보살을 염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현장으로 갔다. 그런데, 어제 상황으로 보면 오늘 일을 못하겠다는 목수들이 현장에 나와 연장을 손에 쥐고 일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정말 신기하다고 이 사람들 미친게 아니냐고. 아! 미친 듯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현장에서 일어난 이번 일이 정말 신기했다. 그저 열심히 하는 정도였으면 신기해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마치 누가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그렇게 또 며칠이 흘렀다 지장보살을 염하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절실하게 할 때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절실하게 한다고 해서 지장보살님의 상 앞에 가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계속 기도한다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적절한 템포도 필요 한 것 같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자신의 충만이지 않을까 싶다. 기도를 통해 치유와 은혜를 받는 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나는 믿지 않았었다. 기도를 해 보고, 그 효과를 체험하고 나니 경험자의 말이 그제사 실감났다.
또 며칠이 흘렀다. 이번에는 금속 팀이 작업 상승분을 요구하며 죄다 결근했다. 정말 여러가지로 난감한 일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장보살을 염하는 일 밖에는 없었다. 현장에서는 ‘돈’이라야 해결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현찰이 모자라면 그만큼 공사가 어려워진다. 아내는 같이 힘들어 해주었고 함께 염해보자고 했다. 하루 종일 지장보살을 외며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이제는 내 손에서 떠난 일들이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금속 팀은 돈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새벽 일곱 시에 짐을 잔뜩 실은 금속차가 현장에 들어섰다. 눈을 의심했다. 나는 또다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 신기하다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정말 신기했다. 신기하다란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날 나는 아내에게 사정을 했다. 철야기도회에 가고 싶다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안심도량을 향해 달렸다. 기도하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많은 신도들 그리고 스님 모두 나의 연출자였다. 그날의 주인공은 ‘나’였다. 도량 안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심장을 파고 녹아들었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기가 힘들었다.
우여곡절끝에 리모델링 공사가 12월 7일 에 끝이 나 오픈을 했다. 미사리에서 마지막 남은 여섯 개의 라이브카페 중 가장 전통있고 명물이었던 한 곳이 문을 닫고, 내 손에 의해 주꾸미 전문점으로 재탄생했다. 마지막까지 공사를 마감하며 어려웠던 부분에서 함께 해 주신 지장보살님과, 기도의 방법을 터득하게 해 주신 스님께 감사드린다. 어제는 아내와 딸과 같이 강서도량으로 향했다.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스님을 기다리는 내내 천둥이 치고, 눈발은 점점 심해졌다. 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일어서는 우리 가족들의 마음에는 희망이 생겼다. 하늘에선 끝없이,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포근한 눈 세례가 쏟아진다. 끝
-현봉-
첫댓글 거사님과 법우님을 알기에 감동의 눈물이......
훌륭하십니다.
만사 원만성취 기원합니다.
아미타불~()()()
나모명양구고대원본존지장왕보살마하살 _()_
나모명양구고대원본존지장왕보살마하살..._()_
감동의 글~~잘 읽었습니다...
저도 힘을 내서 아침 출근길 차안에서 혼자 외치는 지장보살님~~~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눈물이 맺히고 가슴이 찡하네요
불보살님의 가피가 나 한테도 오는듯 감동입니다
나날이 복된날 되세요.
감동감동()()()
나무관세음보살()()()
글을읽는 동안 제마음이 뜨거워지네요 정말 감동입니다 ㅎㅎㅎ 저도 매일 지장보살명호를 염불한다고 하지만 어느때는 그냥 염하고 잇고 어느때는 알아차리는 경우도 잇는데 법우님의 신명나는 애기를 듣다보니 정말로 열심히 염불을 시도때도없이 오로지 일심으로 해야겟구나 하는 다짐을 합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정말 감동입니다 -()()()-^~^
늘감사하는마음으로기도하다보면좋은일이많을겁니다.
성취성불하십시요.
지장보살지장보살지장보살
한편의 드라마를 보듯이 멋진글 잘읽었읍니다..현장의 고충은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들이 많이 예측하기 힘들죠..멋지십니다 정말 진심으로 박수가 절로 나오네요..가족의 화목과 사랑이 그대로 전해지는글 신심이 전해지는글 ....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참 좋은 인연입니다.
앞으로 좋은 일이 계속되어 법우님 가족 모두 부처님의 가피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아미타불 _()_
저도 건축현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충분이 공감이 갑니다. 요즈음에 인건비는 오르고 숙련공은 드물고... 울산에 와 일 년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를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곳 일도 마무리되어 가네요. 수없이 기도하며 그 어려움을 극복했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부디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빌며 항상 건강하시길 염원합니다.
감동적인 글 감사합니다
감동 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기도중인데 정말 행복을 주십니다..()()()
철야기도회 에 참석한날 기도 내내 눈물이나서 혼났습니다,남자라 생각하며 이래도 되나 누가 보지는 않을까.눈물이 주룩주룩. 옆사람에게 들킬수 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중요한것은 제가 이렇게 마음이 편안한곳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열심히 아내를 따라 다녀야 겠습니다. 어렵던공사가 꿈처럼 끝이 났습니다. 이제 기도도 열심히 하고 아내랑 데이트도 열심히하고 그렇게 살겠습니다.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스님소개하셔서 듣고 오늘다시 읽어보니 감동의 도가니가 ^^ 정말잘돼~!!!! 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우리 지장보살님은 늘 우리 곁에서 동행해 주시네요.
여여향님의 지장보살님께서 가장 좋은 때 좋은것을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_()
진실로 지극한 마음으로 믿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나모명양구고대원본존지장왕보살마하살 _()()()_
법우님의 글 잘읽었습니다.
정말 드라마 같은 장편드라마 입니다.기도시 눈물이 나는것은 업장이 소멸되거나 부처님의 가피를 입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도시 눈물이 나는것은 흔히 있는일입니다. 부끄러워할 일도 아닙니다.
지장보살님을 염하는것만으로 그렇게 가피를 입는군요? 저도 아침 운동 오고가는도중 계속해서 지장보살님을
염하는것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그러면 정말로 운동하는 2시간 내내 마음이 편합니다.
아내의 덕분으로 불교에 입문한것을 축하드립니다.
뜻이있는곳에 길이 있다하였습니다. 노력하고 기도한 만큼 내개 돌아온답니다.
감사합니다.
휼륭하십니다. 또한 가피도 축하드립니다. 더 좋은 일들이 이어지시기를 기원합니다.
나모지장보살마하살 _()_
정말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무궁무진 크나크신 부처님의 가피받으소서_()_
그야말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선근복덕 많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가가 아니고 작가라고 해도 될만큼 감동깊게 쓴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이부분 "그날 나는 아내에게 사정을 했다. 철야기도회에 가고 싶다고."을 읽을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습니다.
신심과 감동을 주는 기도체험수기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나무 지장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