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세계적인 유명 메신저 플랫폼에 대한 통제에 들어갔다.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이후 일각에서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한 것으로 보면 된다. 어떻게 보면 기존의 유명 메신저 플랫폼을 대신할 러시아 국가 메신저 '막스(Max)'가 나왔으니, 자연스러운 교체 흐름으로 볼 수도 있겠다. 전쟁이 이미 3년 6개월을 넘겼고,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포탈 사이트 얀덱스가 한국의 네이버, 중국의 바이두와 함께 미국의 구글 영향권에서 벗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메신저 '막스'가 모바일 메신저 분야에서도 한국의 카카오톡, 중국의 위챗과 같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러시아 정부는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설 게 틀림없다.
러시아의 새 국가 메신저 막스/사진출처:홈페이지
러시아는 유명 메신저 텔레그램과 왓츠앱의 통화 기능을 제한하기로 했다/사진출처:androidinsider.ru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통신 규제 당국인 러시아 통신·정보기술·매스컴 감독청(로스콤나드조르)은 13일 각종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메신저 왓츠앱과 텔레그램의 통화 기능(음성 서비스)를 부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보이스 피싱과 같은 사기 행위와 테러(러시아 내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의 활동 차단/편집자) 등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로스콤나드조르는 통화 기능 외에 다른 서비스 기능은 제한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디지털 개발부도 이날 "텔레그램과 왓츠앱은 당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법률 요건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며 "이들 기업은 특히 러시아 사법 기관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 내 대규모 사기 사건(보이스 피싱)과 테러 계획 및 실행 사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 메신저는 외국 정보기관의 요청에는 신속하게 응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나아가 "통화 제한은 보이스 피싱을 줄이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며 "메신저들이 러시아 법률 요건을 준수할 경우, 통화 기능의 복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사진출처:홈페이지
앞서 로스콤나드조르는 지난해 12월 왓츠앱을 '정보 전달 매체'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왓츠앱은 모든 사용자의 문자나 통화, 사진 및 영상을 러시아 서버에 저장해야 하고, 러시아 안보 관련 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왓츠앱으로 오간 개개인의 문자및 통화 등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 국내법에 따라 왓츠앱이 차단될 수 있다고 러시아 당국은 경고했다.
러시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모바일 메신저는 왓츠앱과 텔레그램이다. 리서치 회사 미디어스코프(Mediascope)에 따르면, 2025년 7월 기준, 12세 이상 사용자 대상 왓츠앱의 월간 사용자는 9,620만 명, 텔레그램은 8,980만 명이었다. 스베르방크(Sberbank) 메신저가 7,890만 명으로 3위, 텔레그램을 개발한 두로프 형제가 만든 러시아 SNS인 브콘탁테(VKontakte)는 7,290만 명에 그쳤다. 왓츠앱을 하루 한번 이상 사용하는 러시아인은 8,180만 명, 텔레그램은 6,740만 명이다.
왓츠앱은 2014년 페이스북에 팔린 뒤 세계 최대의 메신저 앱으로 자리매김했다. 러시아 당국은 2022년 미국의 '메타 플랫폼'을 '극단주의' 조직으로 지정하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서비스를 차단했지만, 왓츠앱은 그대로 뒀다.
두 메신저의 차단 소문은 지난 몇 주간 러시아에 꾸준히 나돌았다. 전면 차단설과 일부 기능의 제한설이 있었는데, 당국은 두 번째 방안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당국의 공식 발표 직전, 러시아 유명 인플루언서 크세니아 소브차크는 러시아 당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러시아에서 왓츠앱과 텔레그램을 통한 인터넷 전화 통화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7월 말에는 러시아 언론인 아나스타샤 카셰바로바가 8월 1일부터 러시아에서 왓츠앱 메신저와 VPN 서비스가 차단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올가을 공식 런칭할 새 메신저 막스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왓츠앱과 텔레그램 등 대중적인 플랫폼에 제한을 가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로스콤나드조르의 발표후, 막스는 앱스토어 러시아 부문에서 다운로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구글 미트였다.
러시아에서 새롭게 조명되는 구글 미트 메신저/캡처
중국의 위챗 메신저/사진출처:홈페이지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4일 러시아의 새 메신저 막스가 중국의 채팅 앱 '위챗'과 유사한 기능을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챗 사용자는 모바일을 통해 메시지 전송 및 게시물 업로드 외에 공과금 납부, 티켓 예매, 상품 및 서비스 결제, 혼인 및 이혼 신청까지 할 수 있다. 러시아도 막스를 러시아 정부의 디지털 통합 서비스 플랫폼인 '고스우슬루기'와 연동시켜 위챗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오는 9월부터는 러시아에서 판매되는 모든 스마트폰에 막스의 사전 설치가 의무화된다. 이미 학교에서는 교사, 학생, 학부모 간의 소통을 위해 막스의 메신저 기능이 테스트되고 있다.
러시아의 왓츠앱, 텔레그램 통화 제한 조치로 가장 타격을 받는 쪽은 우크라이나인들이다.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돈바스 지역과 자포로제, 헤르손주)이나 러시아에 거주하는 지인들과 소통하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막스' 메신저를 통해 소통이 가능히지만, 막스 설치에는 러시아 또는 벨라루스 전화번호가 필요하다. 또 우크라이나에서는 막스가 차단될 가능성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국가 메신저 애플리케이션(막스) 개발을 승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