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타부> Tehran Taboo
알리 수잔데 / 오스트리아, 독일 / 2017년 / 96분 / 와이드 앵글
<망각의 시> Oblivion Verses
알리레자 하타미 /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칠레 / 2017년 / 92분 / 플래시 포워드
시체보관소를 관리하는 노인이 있다. 평생 죽은 자의 뒤를 정리한 그는 어느새 자신의 이름마저 잊었다. 노인의 곁을 지키는 동료는 땅을 파는 남자와 운구차 운전사다. 이제는 안치된 시신도 많지 않은 외진 자리의 시체보관소에서 노인은 뜰에 있는 꽃에 물을 주고, 죽은 자의 기록을 관리하며, 무덤을 손보는 일을 수행처럼 해나간다. 그런 그에게 더이상 여기서 일할 수 없다는 명령이 떨어진다. 정부의 민병대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상자를 여기에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신원미상의 젊은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의 모습에서 상실의 경험을 떠올린 노인은 정체 모를 시신을 위해 합당한 장례를 치러주려 한다. 영화는 젊은이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노인의 여정을 가만히 따른다. 방해꾼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자신이 평생 해 온 방식으로 그의 시신을 보내준다. 누일 땅을 알아보고, 부고를 알리며, 장례식을 치른다. 조용하지만 고집스럽게 죽은 이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노인의 행보는 어떤 면에서 투쟁처럼 보이기도 한다. 노인과 그의 동료들은 망각과 싸우는 이들이다. 노인이 수집한 죽은 자들의 기록은 서가를 가득 채우고, 땅을 파는 사내는 자신이 판 무덤의 수와 묻힌 이들의 사연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영화는 죽음 앞에서 고집스레 삶을 상기하는 이들의 고집을 통해, 사람은 잊혀질 때 비로소 죽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드러낸다. 상실의 슬픔으로 자살을 택한 범고래, 구도자의 손을 닮은 거대한 조형물 앞에 선 노인의 이미지는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함축함과 동시에 영화에 시적 긴장을 불어넣는다.
<신원불상> No Date, No Signature
바히드 잘릴반드 / 이란 / 2017년 / 104분 / 아시아영화의 창
법의학자 나리만은 차를 몰다 일가족이 탄 오토바이와 부딪힌다. 다행히 아무도 큰 부상을 입지 않고 사고는 정리된다. 이튿날, 부모와 함께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소년의 시신이 부검소에 들어온다. 부검 결과 소년의 사인은 식중독으로 밝혀지나, 나리만은 지난밤 사고가 소년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소년의 죽음을 둘러싼 사정은 복잡하다. 소년의 부모는 장사꾼에게 속아 상한 닭을 아이에게 먹였고, 때문에 사고가 아니었더라도 아이는 식중독으로 죽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 부부는 사고 직후 병원에 가라는 권고도 듣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나리만이 자신에게 충분한 알리바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곤경에 빠지기를 택하는 이유는 그가 법적 책임보다 양심을 더 무겁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느 편에도 서기 힘든 딜레마를 통해 나리만의 선택이 지니는 무게를 부각함과 동시에, 빈부 격차로 인한 부조리한 사회상을 짚어내는 세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