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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청명시조문학상 수상 작품 선정 및 심사평
올해 제7회 청명시조문학상에 응모한 작품은 지난해보다 265편이 더 많은 모두 435편이다. 여기서 출품 수 초과와 정격 외 작품을 제외한, 심사대상 작품은 총 350편이다.
응모 요건은, 반드시 정격시조 작품이어야 하며 초장 3434, 중장 3434, 종장 3543 총 43자를 준수할 것을 사전에 안내한 결과, 총 응모자는 91명이며, 총 응모작품은 435편이 접수되었다. 이 중에서 출품수 초과 2편, 정격시조 외 작품 83편을 제외한 350편을 심사대상으로 하였다.
블라인드 심사 방법으로 1차 예심 결과 80편을 선정하였고 2차 예심에서 27편을 선정하였다. 3차 본선 심사에서는 심사위원들 작품을 모두 제외하였고 4차 최종 심사에서는 함세린 창립회장과 함께 심사한 결과, <청명시조문학상> 대상작은 아쉽게도 ‘해당작 없음’으로 처리했으며 심사위원 회의 결과, 규정에는 없지만 동상을 추가하기로 결정하였다.
금상은 진길자 님의 ‘맷돌’, 은상은 우희원 님의 ‘미소’, 동상은 임선규 님의 ‘장독대’가 선정되었으며, 청명회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청명시조작가상>은 <늘봄작가상>에 김건식 님의 ‘저무는 날에’, <연담작가상>에 이정석 님의 ‘대금’, <정혜작가상>에 박영화 님의 ‘죽령 고개’가 선정되었다.
경쟁에서 심사위원들의 눈을 끌기 위해선 새롭거나 떨림을 줘야 한다. 시조도 마찬가지다. 인도 고대시가 ‘수바시따’에 이런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심장을 뚫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도 않는
시나 화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곡을 연주하려면 악기를 준비하고 연주법을 익혀야 하듯이, 현대시조의 특성에 맞게 시조를 쓰려면 시조라는 악기를 잘 알아야 하며 표현기법을 익혀야 한다. 비유와 상징, 이미지와 율격, 시어의 함축성과 철학성, 가치관과 시대정신과 등등에 대해 오랜 기간 연마하고 숙지해야 한다. 특히 '정격시조'라는 명칭 속에는 ‘바른 삶의 가치관, 정해진 율격, 시대 정신, 리듬과 음악성’ 등이 포함돼 있다. 또한 가장 정통성이 있는 단시조와 종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작품을 써야 한다. 어느 분야든 기초와 기본이 가장 중요하듯이 정격시조도 마찬가지다.
이광영 문학평론가는 함세린 시조집 『나의 아리랑』 평설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함 시인은 “우리 시조의 전통적 생명력을 지키는 길은 철저히 정격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일본의 하이쿠나 중국의 한시가 엄격한 틀을 유지하듯이 우리의 시조 창작도 엄정하게 정격의 틀을 지켜내야만 길이길이 전승되어 나아갈 것이라고 역설한다.
아쉽게도 이런 기본적인 특성을 잘 살리면서 현대시조의 감수성과 시대정신을 확보한 응모작을 찾지 못했다. 결국 심사위원회 회의 결과, 대상작은 선정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다음은 금상 수상작인 진길자 님의 시조 <맷돌>이다.
옆구리 터진 고통 모두 다 이겨내어
가슴에 남은 허탈 보듬어 채워내면
한 생애 야무진 삶은 구름처럼 솟는다 (‘맷돌’ 전문)
금상 수상작인 진길자 님의 단시조 <맷돌>은, 공허한 관념이나 낡은 서정이 아닌, 오늘 이곳의 살아 있는 ‘야무진 삶’을 정형 안에 넣고 갈아서 부드럽고 맛깔나는 감각적 이미지로 빚어낸다. 전통적인 소재인 ‘맷돌’의 특성을 현재화 하여 자신의 상승적인 삶을 소망하는 시적화자의 의지가 ‘구름처럼 솟는다’. 이처럼 시조인이 위대한 것은 정형이라는 틀 안에서도 인공위성처럼 우주로 솟아오르게 하는 상상력의 심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옆구리 터진 고통’과 ‘가슴에 남은 허탈’을 이겨내면 존재의 씨앗에서 싹이 돋지 않겠는가. 최양숙 시조인의 작품 <고통의 미학> 초장, ‘흔들어 깨워야만 씨앗이 날아가’듯 보편성과 철학성이라는 두 날개를 동시에 확보한 작품이다.
다음은 은상 수상작인 우희원 님의 <미소> 전문이다.
눈가에 살랑대다 입술에 머뭇대다
살포시 피어내는 마음의 동정인가
연지볼 고운 얼굴로 그려내는 그 사랑 (‘미소’ 전문)
은상 수상작인 우희원 님의 단시조 <미소>는 제목과 시조 사이가 너무 가깝고 다정해서 맑고 고운 미소가 절로 나오는 작품이다. ‘마음의 동정’은 떨림으로 번져서 ‘얼굴에 그려내는 그 사랑’으로 아름답게 숙성되고 승화되어 독자들에게 스쳐 간 추억의 슬픈 향기를 풍긴다. ‘눈가에 살랑대다 입술에 머뭇대다’ 살포시 피워내는 사랑은 현재에 존재하기 어려운 속성이 있다. 지나간 것들은 아름답고 그립다. 기쁨도 감당하기 힘들면 울음이 되듯이.
다음은 동상 수상작인 임성규 님의 <장독대> 전문이다.
고향집 뒤란에는 옹기들 모여 산다
해와 달 오고 가고 장들이 익어가고
정한수 사발 속에는 새벽달이 뜨는 곳
동치미 설핏 어는 동짓달 추운 밤에
문풍지 재워 놓고 사뿐히 눈 내리면
눈 덮인 항아리들은 수채화를 그린다 (‘장독대’ 전문)
시어와 시상의 평이성이 보편적 정서라는 색으로 그린 한 폭의 ‘수채화’가 눈앞에 나타난다. ‘고향집 뒤란’ ‘옹기’ ‘정한수’ ‘사발’ ‘동치미’ ‘문풍지’‘항아리’가 저마다 한 장의 벽돌이 되어 ‘장독대’라는 이미지의 집을 완성한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가 ‘눈’처럼 정갈하게 내려 독자들의 가슴 뜰에 ‘사뿐히’ 쌓인다. 고요와 적멸의 아름다움을 안고 익어가는 ‘항아리들’이 ‘새벽달’처럼 희미하게 빛난다.
350편 중에서 7명의 심사위원이 심사숙고해서 가려낸 수상작이지만, 시조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을 날려 줄 참신하고 역동적인 표현기법과 치열한 작가 정신이 녹아 흐르는 시대정신과 철학성의 부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음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명시조작가상> 중에서 <늘봄작가상> 수상작인 김건식 님의 ‘저무는 날에’ 전문이다.
저무는 창가에서 어둠속 바라보다
차가운 유리창에 뽀오얀 입김 불어
손가락 가는 곳 따라 적어보는 네 이름
세월이 흐른 만큼 그리움 옅어지면
못 잊어 그리운 이 천지간 있으랴만
망각을 다짐했지만 아직 나는 못 잊어 (‘저무는 날에’ 전문)
‘창’밖에는 수려한 청풍호가 펼쳐지는 곳, 그 호수 너머 ‘그리운 이’ 있어 ‘저무는 날에’ ‘차가운 유리창에 뽀오얀 입김 불어’ ‘적어 보는 네 이름’을 ‘망각’하고 싶지만, 차마 ‘나는 못 잊어’ 애틋한 ‘그리움’의 대상이 잔잔한 물결처럼 독자들의 가슴에 밀려든다. 아파서 떠난 어린 아들을 그리워하는 정지용의 시 ‘유리창1’을 연상시키는 ‘상실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아름답고도 슬픈 여운을 남긴다.
다음은 <연담작가상> 수상작인 이정석 님의 <대금> 전문이다.
뼈대만 곧게 세워 하늘로 올라간 너
빈 마디 숨겨 놓은 천상의 연주 소리
비어도 빈 것이 아닌 천년 소리 내재율 (‘대금’ 전문)
모든 선자들의 호평을 받은 수작이다. 대나무로 만드는 ‘대금’이라는 악기의 속성을 우리의 정체성 속에 담아 ‘천상의 연주 소리’가 울림이 깊은 철학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단시조는 정격시조의 정통성을 대표한다. 초장 중장 종장은 ‘천·지·인’을 담는 그릇이다. 어쩌면 ‘핵폭탄’ 수만 개보다 더 폭발력과 확장성을 지닐 수도 있다. ‘대금’의 ‘연주 소리’는 천상을 날고 우주와 교감하여 ‘천 년 소리 내재율’로 승화된다. ‘비어도 빈 것이 아닌’ 비움의 철학을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천상’의 절창이다.
다음은 <정혜작가상>을 수상한 박영화 님의 ‘죽령 고개’ 전문이다.
어쩌다 여행 길목 죽령에 올라서면
천상의 고아던가 가슴이 허전하네
칠순 꽃 머리에 이고 고향길이 서럽다 (‘죽령 고개’ 전문)
모든 ‘고향길’엔 ‘고개’가 있다. 초장, 중장, 종장마다 고개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들고 아름다운 고개는 ‘종장 고개’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자신의 삶에서 ‘팔 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대다수 문학인과 평론가들은 시조에서 종장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가장 크고 깊다고 말한다. 이 ‘죽령 고개’라는 작품이 선정된 것도 ‘종장’ 덕분이다.
‘칠순 꽃 머리에 이고 고향길이 서럽다’
한번 읽어 보시라. 가슴속에서 찌르르 풀벌레 소리가 울리고 인생무상의 꽃이 지는 애틋한 풍경이 보이지 않는가.
끝으로, 수상한 모든 분께 축하를 드리면서 사족 같은 말씀으로 끝맺음을 합니다.
거대한 바다가 지구라는 틀 안에서 출렁이며 온갖 생명체를 품고 있듯이 낯설고 분방한 그래서 더 역동적인 비유와 이미지를 정형의 율격에 담아 독자들의 가슴에 떨림으로 다가오는 그래서 고단한 삶에 흥겨움과 감동을 선물하는 그런 작품의 출현을 기대합니다.
응모한 모든 시조인들의 삶이 더 넓고 깊어져서 건강하고 행복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수상하지 못한 모든 분께서도 자신만의 때가 있으니 포기하지 마시고 수상할 때까지 줄기차게 응모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실망과 아쉬움도 푹 삭히면 언젠가는 비옥한 거름이 된다고 합니다. 찬 바람에 서리맞고 피는 늦가을 소국의 향기가 더 간절하고 진하듯이.
2023년 11월 11일
청풍명월정격시조문학회 청명시조문학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