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모님의 사랑과 박근혜님의 탄생
벚 꽂은 지고 갈매기 너울 너울
거울 같은 호수에 나룻배 하나
鏡浦臺 나간에 기대인 나와 英
老松은 亭亭 亭子는 우뚝
복숭아꽃 수를 놓아 그림이고야
여기가 鏡浦臺냐 古人도 찾드라니
거기가 東海냐 여기가 鏡浦냐
백사장 푸른 솔밭 갈매기 날으도다
春三月 긴긴날에 때 가는줄 모르도다
바람은 솔솔 호수는 잔잔
저 건너 봄 沙場에 갈매기 떼 날아나네
우리도 노를 저어 누려 볼까나. -- 1951년 4월5일--
이 무렵 박 정희 중령이 아내에게 편지로 보낸 시이다.
여기에 육 여사는 시 3째줄의 나와 英 의 영자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친필로
<나 영수>라고 적어 놓았다. 애처롭도록 소녀적인 순정으로 영이라는 글자가 표시하
는 제 자신을 확인하고 다짐해보던, 젊은 날의 육 여사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
훗날 육 여사는
<이 시를 읽으면 언제나 신혼초를 연상할 수 있어 즐거워요>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바깥 울타리의 하얀 탱자 꽃이 피었다가 거의 질 무렵이었다.
육 여사는 신 것이 까닭 없이 당기고, 입맛을 잃었다.
입덧이 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지켜보던 이 경령여사는 기뻐 하였다.
- 아기가 서나 보다
탱자꽃이 져버리고 열매가 맺었다.
그 것이 노랗게 익기 시작하는 가을 이 되었다.
육여사는 한시도 쉬는 때가 없었다. 틈 만 있으면 온 집안을 뒤져 빨래거리를
찾아내어 빨았다.
<웬 빨랠 그렇게 하지>
박 대령이 걱정할 정도였다.
<즐거운 걸요>. 그러다 손가락 끝이 갈라졌다.
< 거, 보라고>
<그래도 즐거운 걸요>
그 무렵 육 여사는 새 생명의 태동을 깨달았다.
11월 29일. 박 대령은 퇴근길에 꾸러미를 들고 왔다.
육 여사가 받아 들었다.
박 대령은 그 씨익 웃는 특징 있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끌러 봐요>
하며 재촉하였다. 육 여사가 꾸러미를 끌러 보자 파아란 스웨터가 들어 있었다.
<어머> 놀라며 쳐다보는 아내를 향하여 박 대령은 또 씨익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영수 생일 선물!
육 여사는 선물 그 자체보다 자기의 생일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 남편이 한없이 고마웠다.
해가 바뀌었다. 이른 봄 어느 날 육 여사는 가벼운 진통을 느꼈다.
-저렇게 고생하는 것 차마 못 보겠는데, 어떤 방법이 없을까?
산파에게 물었다. 당시만 하여도 무통 분만의 새 의술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산부인과도 흔하지 않았다. 고작 산파를 부를 따름이었다.
-잠시만 참아요. 아내를 달랬다.
그 고통 속에서도 산모는 정신이 들면
-언니 저분 잠자리를 다른 방에 펴드리고 좀 쉬시게 해주세요.
하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다음 날 새벽 아기를 낳았다.
1952년 2월 2일이었다.
이름을 지어야했다.
예수 동생도 돌아와서 산모의 뒷바라지를 해 주며,밤이면 산모 곁에 박 대령과
세 사람이 아기의 이름 짓기에 골몰하였다.
옥편을 뒤적거렸다. 제각기 마음에 드는 글자를 골라내기로 하였다.
3일간 옥편을 뒤적거린 나머지 여섯 자를 골랐다. 박 대령이 그중에서
槿자 惠자를 지적하였다.
槿 자는 무궁화--- 나라의 국화일 뿐만 아니라 조국을 상징한다.
惠 자는 은혜로움. 朴槿惠라는 이름이 결정되었다.
당시 박 대령은 36세, 육 여사는 28세이었다.
아기가 아작아작 걸어 다닐 무렵인 이듬해(1953년) 1월17일.
근혜양의 첫돌을 앞두고 박 대령은 광주 포병학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육 여사는 어린 근혜양을 포대기에 싸안고, 박 대령을 따라 광주로 떠났다.
광주 동명동에 셋방을 얻어 살림을 하였다.
근혜양의 돌잔치도 그곳에서 치렀다. 가족끼리 모인 오붓한 잔치였다.
밤은 깊어 갈수록 고요해지는 군
대리석과도 같이 하이얀 피부
복옥한 백합과도 같이 향훈을 뿜는 듯한 그 얼굴
숨소리 가늘게, 멀리 행복의 꿈나라를 거니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 ,잠든 얼굴 더욱 어여쁘고
평화의 상징!
사랑의 권화!
아, 그대의 그 눈, 그 귀, 그 코, 그 입,
그대는 인(仁)과 자(慈)와 선(善)의 세가닥 실로 엮은
한 폭의 위대한 예술일진저.
옥과도 같이 금(金)과도 같이
아무리 혼탁한 세속에 젖을 지언정
길이 빛나고 길이 아름다워라
나의 모든 부족하고 미흡한 것은
착하고 어질고 위대한 그대의 여성다운 인격에
흡수되고 동화되고 정화되어
한 개 사나이의 개성으로 세련하고 완성하리.
행복에 도취한 이 한밤 이 찰나가
무한한 그대의 인력으로써 인생의 코오스가 되어 주오
그대 편안히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이 밤이 다 가도록 새날이 오도록
나는 그대 옆에서 그대를 보고 앉아
행복한 이 시간을 영원히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1952년 7월2일 밤 - 영수의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아기 옆에 잠들고 있는 아내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에 대한 축복과 남편의 행복감으로 넘치는 작품이다.
아내에 대한 박 대령의 애정의 심도를 살필 수 있으며 또한 이와 같은 표현의
이면에 감추어진 전시의 군인으로서 아내 곁을 떠나야하는 남편으로서의 애달픈
심정도 엿볼 수 있다.
카페 게시글
박사모 부산동부지부
부모님의 사랑과 박근혜님의 탄생 2.-
덕필유린
추천 0
조회 68
04.06.19 15:5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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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덕필유린님 좋은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좋은자료 잘 보구 갑니다. ,,편안한 주말 되세요..ㅎㅎㅎ
덕필유린님^^ 글 넘 좋습니다..집에서 책많이 보신다고 하더니 절대 뻥^^ 이 아니였군요..또 올려 주실거죠^^ 편안한밤 되십시요...^^
덕필님 어려운 한자는 한글로 번역해서 올려주세요..난 신세대하서 한문 몰러요..ㅋㅋ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