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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2일(목) 새벽설교 마태복음 6:1~8 '은밀한 구제와 기도' 새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예산수정교회 이몽용 목사
오늘은 마태복음 6:1~8절 말씀을 중심으로 ‘은밀한 구제와 기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지 말고 은밀하게 구제할 때 하나님이 은밀한 중에 갚으신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는 행위를 구제라고 합니다. 재난이나 고난을 당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행위를 의미하는데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운 이웃을 돕고 가난한 자에게 우리의 소유를 나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눌 때 그 모든 것을 기억해주시고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제에 관한 구약의 말씀을 몇 구절 살펴보면, 잠언 31:20절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16절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신명기 14장 27~29 말씀에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그랬습니다. 이외에도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구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신 15:11절 말씀에 보면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고 구제에 대해서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제자들도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가난한 자들을 친히 도우셨습니다(요 13: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구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생활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며 복된 구제의 일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동기에서 출발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남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으려는 동기에서 하는 구제는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해서 자기를 돕는 것이 됩니다.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스러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4절)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는 목적으로 하는 선행과 구제에 대해서 경고하십니다. 외식하는 사람들은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 듯이 자랑하고 자기 과시를 합니다(2절).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박수를 받기 위함이 목적입니다. 이렇게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박수와 인정을 받고 상을 받게 되었다면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더 받을 것이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소망삼고 하나님 나라를 푯대 삼아 사는 믿음의 성도들은 3절 말씀처럼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듯이 은밀한 구제와 섬김으로 자신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은밀한 중에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상을 기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른손은 우리가 늘 쓰는 손입니다. 구제를 이처럼 오른손 쓰듯이 일상적인 활동으로 자주 하되, 자신이 하는 일을 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알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구제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일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높이며 받드는 삶이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삶이요, 그 아들 예수님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여 그를 자기의 구세주로 믿고 섬기도록 하는 삶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찬양하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 43:7에서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하셨고, 사 43:21에서도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의 삶은 이 세상에서는 ‘선한 행실’ 즉 ‘구제’로 나타납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특히 구제를 할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은밀한 구제는 받는 사람을 비굴하게 하지 않는 일이어야 합니다. 바른 구제는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를 회복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 유명한 ‘이삭줍기’를 그린 프랑스의 화가 밀레는 젊은 시절 너무나 가난하고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이 가난함을 벗어버리고자 누드화를 그리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 순간에 그의 친구 루소가 찾아왔습니다. “여보게 밀레. 드디어 자네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네.” 루소는 300프랑을 주면서 “구매인은 급한 일 때문에 못 왔지만, 그림 선택은 내게 맡겼으니 저 ‘접목하는 농부’라는 그림을 주게”라고 했습니다. 밀레는 덕분에 오랜만에 가난을 벗어나서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후 친구 루소의 집에 갔던 밀레는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에 ‘접목하는 농부’라는 그림이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다른 친구가 사는 척하면서 자신이 밀레의 그림을 산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참된 구제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방편 안에서 이루어질 때 구제를 받는 사람뿐 아니라 구제를 하는 자기 자신에게까지 진정으로 유익함을 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기도할 때에도 외식하는 자와 같이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할 수 있는 그 분의 자녀만이 드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따라서 사람을 의식하면서 하는 외식적인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고, 응답도 없습니다. 그래서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특히 새벽기도에 와서도 기도할 때 옆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집중해서 오직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만 나의 기도를 올려드린다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때로는 ‘습관을 따라 기도하러 감람산에 가셨습니다’ 골방은 물론 아무도 없는 한적하고 조용한 방을 말합니다. 그러나 골방의 기도를 영적으로 본다면 주님 안에서, 성령안에서 기도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즉 자신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기도해야만 한적하고 아늑한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6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기도할 때 자신의 마음을 지켜며 세상의 모든 잡된 생각을 차단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려고 더욱 힘쓰고 매달려서 전심전력을 기울이면 점점 마음이 고요해고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께로 기울어지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일어나게 되어 온전한 기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골방에서 드리는 은밀한 기도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주님은 구제와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보이고자 함이 아니라 은밀하게 드리는 구제와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구제, 하나님께만 올려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시고 그런 구제와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이런 구제와 기도로 나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