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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의 관계
출 22: 6-15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만 잘 믿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물론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믿음의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기 때문에 그 순종을 통하여 모범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관계는 잘 하면서 이웃에 관계를 잘못함으로 하나님을 욕 먹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이런 형편을 잘 알기 때문에 아무리 믿는 형제의 관계라 하더라도 꼭 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기 위하여 이웃의 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웃과의 문제를 잘 생각하고 잘못된 점이 있었다면 고치고 앞으로도 이런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잘 해결하여 함께 사는 이웃으로 더 좋은 관계를 가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이웃의 곡식을 태웠을 때(6)
본문 5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토지의 경계를 무엇으로 했는가. 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이 토지 구역을 나누어 토지 경계를 울타리를 그 지역에 흔한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었는데 자신의 토지 안에서 불을 피우다가 그 울타리에 불이 붙어 그 땅에 곡식을 다 태워 버렸으면 불을 놓은 자가 반드시 배상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에는 적당히 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믿음의 형제라고 친한 친구라고 해도 분명하게 경제적 손실에 대하여는 정확하게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저가 섬에서 목회 할 때
안수 집사님의 소가 풀어져 동네 여 집사님의 콩밭의 콩잎을 많이 먹어버렸습니다. 주인은 당연히 화가 나서 난리를 치는데 안수 집사 하는 말이 뭘 그까진 것 가지고 그러냐고 도리어 한동네요. 교회 안에 성도로서 그렇게 이야기 했지만 나중에 말다툼 했다는 소리를 듣고 안수 집사님께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해주라고 했습니다. 사소한 것에도 사과하고 그 주인이 손해 난 만큼 물품이나 돈으로 배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맺게 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2 믿는 이웃에게 맡겨진 돈이나 물품이 逢賊(봉적) 당했을 때 (7-9)
봉적(bn"G: 가나브) 훔치다, 도둑질하다-이웃과 좋은 관계를 가진 사람일수록 이웃을 신뢰하고 자신이 바쁜 일이나 급한 일이 있으면 이웃에게 잠시 맡겨놓고 일을 보려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믿었던 사람이 돌변해 자신이 맡겨놓은 물건이나 돈을 가져가고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모르긴 해도 당해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실 까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탐심을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시간과 장소와 환경에 따라서 잘 변하고 욕심을 부리는 인간 겉은 멋있고 탐욕이 없는 정직한 사람으로 보여도 그 속에는 불타는 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을 너무 잘 아시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규례를 가르쳐 주심으로 미연에 탐심으로 인한 도적질을 방지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배려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잘 관리하고 있었는데 도적이 침입하여 도적질 해갔다면 그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또한 도적은 만약 도적질해서 갈지라도 잡히면 갑절을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이 법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법은 행정적이지만 그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는 공정히 집행됩니다. 우리가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위반 할 때는 무슨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법이 그 이유를 들어줄 때가 있습니다. 긴급한 일 응급환자 운송이나 또 긴급대피 기타 법적으로 긴급을 요하는 일은 위반을 했을 때 그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첨부해야 법규위반의 범칙금을 면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적은 분명하게 정당화 되지 못합니다.
오늘 이웃에 좋은 관계 속에서 맡겨진 물건이나 짐승까지도 그 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신뢰가 깨어졌을 때 재판장에게 가서 판결을 받는 것 까지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3. 이웃에게 빌려온 짐승이 임자와 함께 있지 아니할 때 상하거나 죽으면 변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과 함께 있으면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세를 주고 빌려와 일하다가 죽었거나 상했기 때문입니다. (회사 다닐 때 유아철 좌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회사도 그만 두고 지금까지 안돌려 준 사람)
이 말씀을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옛날에 경운기나 트랙타가 나오기 전에 농사를 지을 때 논이나 밭을 갈려면 소나 말이나 나귀를 이용하여 밭이나 논을 쟁기질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짐승을 잘 다루며 쟁기질을 할 줄 알면 짐승과 농기구만 빌려와서 사용하면 됩니다. 그런데 일정한 돈을 받고 논이나 밭을 가는 사람은 짐승이 상하거나 다쳐도 논이나 밭 주인에게 배상의 책임이 없다는 말입니다.
남에게 그 무엇을 빌린다는 것은 신용을 모토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용을 가지고 남의 것을 빌렸을 경우 그는 그 빌린 것에 대하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동안 잘 활용한 후에 주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할 의무를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빌린 것에 대한 반환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곧 자신이 신용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빌린 물건에 대하여 반환의 의무를 행치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첫째, 스스로 부정직함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둘째, 스스로 불성실함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셋째, 스스로 자신의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넷째, 사회의 가장 소중한 이웃간에 신용을 먼저 깨며 불신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의 표출과 함께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그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시편 37편 21절 '악인은 주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웃에 대한 우리의 좋은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이웃과의 관계를 갖는 것은 바른 신앙생활의 초석입니다.
사람이 부지런하여 열심히 일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의식주에 부족함이 없이 주십니다. 재물이 죄나 악이 아닙니다. 그 성질이 중성입니다. 선하게 벌어서 잘 쓰면 좋은 것이요. 도둑질해서 잘못 쓰면 죄가 됩니다. 도둑질이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족하게 여기지 않고 인간의 수단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취하려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자기 것인 양 불법으로 취하는 것이 도둑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대사회에는 배가 고파서 도둑질하는 일이 거의 없도록 제도적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레 19:9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신 24:19-22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보십시오. 밀을 벨 때에도 떨어지는 이삭은 줍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고아와 과부들이 그것을 주어가지고 자기들의 양식을 삼기 위해서입니다.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딴 다음에도 두 번 돌아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무화과나 감람나무도 한번 수확하면 그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거기 숨은 것은 모두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남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이라도 밥만 먹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요 저들도 포도도 무화과도 감람열매도 먹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난한자들을 돌본다든지 게으로고 공짜만 바라고사는 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뜻이 아닙니다. 가난해도 들에 나가서 이삭을 주우며 부지런히 일을 하며 소득을 얻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를 영접하고 나서 자기가 누구에게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가 갚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회개하고 청산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말씀에 순종하고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표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올바른 경제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앞세우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없습니다. 그러나 이웃과의 좋은 관계는 신용과 신의입니다. 서로 믿고 서로의 재산에 탐하지 않고 좋은 관계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은 과거나 오늘이나 누구도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가지고 살기위한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보다 좋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도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는 성도들의 삶이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른 믿음의 생활
출 22: 16-19
'사람이 처녀를 꾀어.' 이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정당하지 못한 성적 관계를 위해 '유혹한다'는 의미이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처녀를 유괴하여'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정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아버지에게 속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출 21:7) 따라서 처녀를 유괴하는 범죄는 가정 소유물을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빙폐를 드려 아내로 삼을 것이요.' 빙폐는 '약혼을 위한 약혼 예물 또는 약조물을 말합니다. 즉 결혼 지참금에 해당되는 의미로 처녀의 결혼을 합당하고 정당하게 보이기 위해서 관습에 의해 지불되는 '돈'을 말 합니다. 이러한 빙폐에 대한 그 당시의 풍습은 은 오십 세겔(신 22:29그 통간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비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로 아내를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을 처녀 아버지에게 지불하는 것이었고, 이로써 결혼은 성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성사된 결혼은 취소할 수 없었다.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지니라.' 무당이란 '이웃의 재산과 그의 몸이나 생명까지 해치는 가장 사악한 무리입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무당은 악령에게서 마력(魔力)이나 주술(呪術)을 빌어 초인간적(超人間的)인 능력을 행하는 여자를 의미한데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은 이스라엘 경내에 무당을 다 죽였는데 어떻게 엔돌에 있는 무당이 살아있다가 사울은 그에게 점을 받고 결국 망했습니다.(삼상 28:9).
따라서 무당은 '감언이설로 하나님을 모반하는 세력의 무리입니다(레 19:31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들 신접한 자들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를 도용하며 유대 신정(神政) 하에서 사형에 처하여졌던 무리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살려 두지 말지니라'라는 말은 '결단코 죽이라'는 의미이다.
본문의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며 질투하시는 몇 가지의 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죄의 책벌에 대하여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죄들은 모두 하나님의 증오와 질투를 유발시키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첫째, 자기의 음욕을 채우기 위하여 여인을 유혹하여 동침한 자와 그에 대한 책벌의 말씀입니다. 둘째, 무당을 살려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셋째, 수간(獸姦)하는 자와 그에 대한 책벌의 말씀입니다. 넷째,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일들을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유혹자와 그 책벌- 율법은 어떠한 경우이건 간에 음욕을 범죄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신명기 22장 13-21(누구든지 아내를 취하여 그와 동침한 후에 그를 미워하여 비방거리를 만들어 그에게 누명을 씌워 가로되 내가 이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와 동침할 때에 그의 처녀인 표적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면 그 처녀의 부모가 처녀의 처녀인 표를 얻어 가지고 그 성읍문 장로들에게로 가서 처녀의 아비가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내 딸을 이 사람에게 아내로 주었더니 그가 미워하여 비방거리를 만들어 말하기를 내가 네 딸의 처녀인 표적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나 보라 내 딸의 처녀인 표적이 이것이라 하고 그 부모가 그 자리옷을 그 성읍 장로들 앞에 펼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 사람을 잡아 때리고 이스라엘 처녀에게 누명 씌움을 인하여 그에게서 은 일백 세겔을 벌금으로 받아 여자의 아비에게 주고 그 여자로 그 남자의 평생 에 버리지 못할 아내가 되게 하려니와 그 일이 참되어 그 처녀에게 처녀인 표적이 없거든 처녀를 그 아비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 아비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어떠한 경우든지 결혼하지 아니한 여자의 정조는 보호받아야 하며 또한 남자로부터 보호되어져야 한다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유혹하여 동침을 한다는 것은 그 여자의 일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에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의 말씀에서 바로 이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자가 부모의 권한 하에 있기 때문에 그 부모가 음행한 남자에게 딸 주기를 거절할 경우 그는 여자와 부모에게 결혼지참금을 지불하고서라도 그 여자를 데려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는 평생 그 여자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간음에 대한 첫 번째 규례입니다.
2. 무당을 살려 두지 말라- 이런 자들의 활동은 현대까지도 강신술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결코 살려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1) 신앙의 파괴자
이들은 사술과 복술로써 귀신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도덕적 기준을 무너뜨려 죄에 대한 무감각한 심령의 인간으로 타락시킵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믿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만들어 버리게 됨으로 이러한 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사기 행위- 이들은 진리의 사기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떠한 형상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나타내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형상으로 진리를 가장하여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가장한 사기 행각, 이는 마땅히 이 땅에서 그 생명을 멸절시켜야 합니다.
3) 영혼의 도둑 -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영혼은 인간의 범죄 할 때 죽음이라는 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소중한 영혼을 무당은 진리를 가장하여 내가 너의 주인이라고 복종을 강요함으로 하나님의 영혼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결코 살려 둘 수 없는 존재입니다.
3. 수간(獸姦) 하는 자- 인간은 그 창조의 역사에서부터 동물과 다른 형태의 피조물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창 1:26-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렇듯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의 설비의 대행자가 되어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인간이 인간과 관계를 갖지 아니하고 짐승으로 더불어 행하는 수간이야말로 가장 추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들을 향한 죽음의 징벌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임에 틀림없습니다.
4. 다른 신에 대한 희생- 이 말씀은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에서 이미 명하신 명령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에서는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본 계명의 보이지 않은 부분까지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1) 영적 간음- 성경은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간음이라고 수없이 많은 곳에서 단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성경 속에서 항상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평생에 섬겨야 할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는 여기에 비추어 항상 영적 간음으로 단죄되었습니다.
2) 악마를 섬기는 것- 본문의 말씀과 함께 신명기 32장 17-18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근래에 일어난 새 신,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않던 것들이로다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 말씀을 볼 때,
우리는 더욱 분명하게 이러한 행위의 의미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내게 제사하지 않고 마귀에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신약시대에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에서 (고전 10:20-21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 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러므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망하는 것이요 그 죄악은 자녀 손에 넘어가 세상에서 성공 같으나 실패자요 결국은 자신 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 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을 섬기는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들을 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멸하심이 있는 이러한 진노의 자리에 들지 아니하도록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하나님은 오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몰라서 하는 과거의 행위에 대하여 우리가 회개하면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배우고 순종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처녀성을 귀중하게 지킬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방해되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 것과 수간하는 자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에 대하여 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약시대에 그런 사람을 다 죽이면 모두가 살인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생명의 길을 가기위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처녀는 처녀성을 잘 지키고 어떠한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가서는 안 됩니다.
오직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를 주께 다 고하여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시대가 음란해지면 가정에서 키우는 짐승을 통하여 쾌락을 가질려는 우려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죄임을 우리는 다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생명 있을 동안에 성별된 생활로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사는 성도의 삶이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