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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의 믿음의 대상,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의 주님,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 신앙의 근본이며 우리 신앙의 두 기둥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해서 죽으셨다는 것이 신앙의 첫 번째 기둥이고 그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도 영원한 생명, 영적인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셧다는 것이 두 번째 기둥입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는 그냥 그런대로 믿음을 가지기도 합니다. 별 의심없이 예수님의 죽음은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부활에 대해서는 확실히 믿고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참 드뭅니다. 예수 부활에 대해서는 완전히 믿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으로 살아가는 참된 신앙인, 부활의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고 세상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예수 부활의 소식을 기쁨으로 알려야 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
고린도전서 15장 3,4절을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시지내셨다가 성경의 말씀대로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에 대해 너무나 단순한 믿음으로 명료하게 부활을 고백했습니다. 솔직히 부활을 믿고 고백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부활을 해석하고 증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하거나 해석하고 증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들은 대로 그가 믿은 대로 그는 그대로 믿지 않는 사람에게 알렸을 뿐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부활을 기록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전해 듣습니다. 우리는 실제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않은 시대에서 태어나 믿음의 선진을 통해 전하여 들은 부활을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부활에 대해 우리가 믿고 살아갈 때 진정한 신앙인이 되는 것을 깨닫고 온전히 믿고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안식일 다음 날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향품을 바르기 위해 안식 후 첫날인 이 날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지금의 날로 따지면 주일 이른 아침 두 여인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덤은 무덤문이 열려있고 안에 들어가보니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러면서 그 청년은 여인에게 예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부활후에 갈릴리로 가서 만날 것이라고 하신 내용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보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 지 발견하고 우리가 그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떤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인지를 깨닫고 정말 주님안에서 참된 부활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첫째로, 우리앞에 있는 큰 돌을 치우시며 주님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마가복음 16장 3,4절입니다.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예수님에게 바르기 위해 준비해두었던 향품을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안식후 첫날 매우 일찍 해돋을 때쯤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예수님을 진심으로 따르며 섬겼던 여인들은 제자들도 모두 떠나고 감히 예수님의 무덤을 찾지 않는 그 때에 예수님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와서 예수님의 삶을 기리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런 그 여인들에게 놓여진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덤앞에 놓여진 큰 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산 언덕에 뚫려있는 굴을 무덤으로 만든 것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님은 예수님을 만나오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없도록 막고 있는 큰 장애물, 큰 돌을 치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이스라엘성지순례를 가서 비아돌로로사 즉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갔던 그 길을 걸어 예수님의 무덤교회까지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골고다언덕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곳 바로 아래 언덕 굴에 예수님의 무덤교회에 있고 그 안에 예수님의 빈무덤이 있었던 곳을 방문했습니다. 그 예수님의 빈무덤의 크기는 엄청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돌이 없지만 그 입구에 돌이 있었다면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옮기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무덤앞에 놓인 이 큰 돌은 폭이 약 2m 정도의 크기였고 대여섯명의 남성이 옮겨야 옮길 수 있는 큰 돌이었습니다. 무덤을 가로막고 있는 큰 돌은 여자 세 명의 힘으로는 도저히 굴릴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6장 3절을 다시 읽어보시겠습니다.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덤으로 향했고 거기서 심히 큰 돌이 이미 굴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본문에 대해 마태복음 28장 1절, 2절에서는 여인들이 무덤에 당도했을 즈음에 지진이 일어나고 천사가 내려와 무덤 문을 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의 앞 길에 예수님을 향하는 장애물을 다 물리쳐주시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돌을 없애주시는 분이십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막힘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으려고 하면 그 가운데 막힌 것을 허물어주시고 우리와 소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하나되어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있다면 그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님과의 소통으로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앞에 놓인 장애물, 하나님의 앞에서 기적을 막는 돌이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의 역사를 행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5~17절입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데 막힌 돌이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앞에 나아가는데 내가 해결하지 못할 큰 장애물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찾아가야겠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겠다’고 생각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장애물을 물리쳐주시고 큰 돌을 옮겨주실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둘째로, 살아나셔서 영원히 함께 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가복음 16장 5,6절입니다.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성경에는 가끔 이상한 말씀들이 있는데 오늘 성경에도 그렇습니다. “놀라지 말라” 해놓고는 엄청난 놀라운 일을 벌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이 상황에 놀라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왜 놀라지 말라”했을까요? 현실은 엄청 놀라운 일이지만 이것은 신앙으로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기쁜 일입니다. 이 일은 소망을 가져다주는 일입니다. 놀라운 일이면서도 기쁨이 가득한 일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들어갔을 때 무덤 안 우편에 앉아있는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여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무덤 안에 왠 살아있는 사람이 있어서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도 놀랐고 그냥 가만히 서 있는 그 모습도 놀라웠습니다. 그 모습이 천사와 같아서 더더욱 놀랐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청년에 대해 분명하게 천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인들이 깜짝 놀라 충격을 받고 있을 때 이 천사는 “놀라지 말라”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천사는 “예수님이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누워 계셨던 곳을 보라고 알려줍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여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고 왔는데 예수님은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기에 정말 믿음을 가지고 부활을 기대하는 성도였다면 예수님의 빈 무덤은 공포나 당황의 마음이 아니라 기쁨의 상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놀라서 떨 일이 아니라 즐거워하며 행복하며 찬양해야할 일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영원히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천국인생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부류인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2장 27절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을 뿐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시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영적으로 살아난 성도만이 참 부활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참 성도라고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님, 영원히 살아서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인 우리들의 관계를 깨닫고 정말 지금도 우리 삶 가운데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속에서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시는 성도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셋째로 두려움을 해결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마가복음 16장 7,8절입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생겨난 것은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 두려움의 해결은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6장 7절을 보니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제자들, 특히 베드로에게 해야할 말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왜 특별히 베드로를 제자들과 따로 구별하며 따로 언급했을까요? 그 이유는 아마 제자들보다 더 큰 좌절감과 부끄러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심문을 받을 때 예수님을 따라 심문장소에 갔지만 그 곳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함으로써 깊은 영적 고통과 절망과 두려움 속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와 제자들이 낙담과 좌절속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회복시키실 방법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들과 처음 만난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낙심된 제자들을 일으키시며 다시 사명을 주실 계획이셨던 것입니다. 제가 7년전 이스라엘성지순례를 갔을 때 갈릴리 호수에 가서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만났던 장소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재회를 기념하며 지은 교회를 찾아서 기념사진을 찍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교회의 이름이 “베드로 새사명교회”라고 지칭하는 것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실수와 우리의 잘못으로 인생에 대한 좌절감을 느끼고 온갖 세상의 삶에 두려움을 느끼며 세상의 좌절, 낙담, 두려움에 빠져 종노릇하고 있는 인생에게 찾아오셔서 친히 좌절, 낙담, 두려움, 공포를 물리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찾아오셔서 가장 큰 두려움의 문제인 질병과 사망, 죄악과 저주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참 평안과 영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 주 예수님은 사망과 저주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평안과 영생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온전한 사랑으로 우리의 두려움을 물리쳐주시는 분이십니다. 미국 기독교계 소식지인 Christianity Today(크리스처너티 투데이)에서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성경 애플리케이션에 올해 가장 많이 읽히고 검색된 성경 구절로 이사야 41장 10절을 꼽았다”는 소식이 실렸습니다. 코로나 19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올 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힌 성경 구절은 “두려워하지 말라”로 시작되는 이사야 41장 10절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검색된 단어로 “두려움”“치유”라는 단어가 꾸준이 상위순위로 검색되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일서 4장 18절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정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참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세상의 어떤 일도 다 해결해주시며 우리에게 일어나는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담대함을 주시고 두려움을 물리쳐주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 두려움을 멀리하며 걱정과 염려를 물리치며 좌절과 낙담을 거부하며 정말 참 신앙으로 담대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다시 한 번 묵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의 사람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불신앙의 주변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부활이라는 것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라고 하느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부활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부활신앙이라는 허무맹랑한 것을 믿느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신’이시라고 믿는다면 못하실 것이 없으신 분이신데 왜 ‘부활’을 못 믿겠습니까? 그리고 경험해야 믿을 수 있다고, 내가 눈으로 봐야지 믿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제가 물어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남편이 충실하고 제대로 남편으로서 전혀 딴 짓을 안 한다고 믿습니까? 반대로 아내는 요? 어떻게 남편과 아내가 외도하지 않고 성실하며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매일 24시간 함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믿냐는 말이죠? 이런 저런 느낌을 통해서 안다고요? 속이려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숨길 수 있고 속일 수 있습니다. 사실 남편과 아내의 가정과 직장에 대한 정직과 성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 주는거 아닙니까? 내가 매시간 감시하고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 대해 그리고 내가 봐왔던 것에 대해 인정하며 그런 사람이라고 믿어주는거 아닙니까? 그러니 계속 믿음을 유지하며 가정을 유지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 정도의 믿음으로도 아내와 남편을 믿고 살아가는데 왜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그리고 성경에 나로은 놀라운 기적에 대해 오늘 본문에 나온 부활에 대해서 믿지 못하는 지 저는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합니다. 봐야지 믿겠다?? 어떻게 볼 수 있냐고요.. 말씀가운데 기록하신 그 역사, 말씀가운데 기록하신 그 놀라운 능력을 믿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부활하신 주님도 여러분이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의 인생에 주님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 큰 돈을 치워주시는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부활하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것을 보여주신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참 생명을 허락하시고 어둠과 죽음의 세상에서 이제는 빛과 생명의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빛과 생명을 얻어 참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세상의 두려움도 이겨내는 것을 오늘 말씀속에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두려움을 떨쳐버리시고 평안과 기쁨,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으로 생활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부활을 경험한 신앙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